마음수업 - 가치 있는 수행 주제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질문
수행자의 공부는 롱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전 3아승지겁은 커녕 30년? 아니 3년도 막막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사실 한 가지를 끝까지 한다는 것의 가치는 인정하고 동경하지만 의심이 공존합니다. '정말 이게 답일까? 가치 있을까?' 만약 가치 있는 대상을 찾아 확신할 수 있다면 오랫 동안 지속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가치 있는 대상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묻지마 투자 = 집단 자살
시간이 아닌 자산 투자의 영역에서 묻지마 투자는 금기시 됩니다. 한 경제학자는 이를 집단자살이라고 비유했습니다. 광신도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교주의 명령에 따라 다 함께 청산가리를 먹는 현장과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근거 없이 투자하는 것은 비슷한 모습일 뿐 아니라 결과 역시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자산을 모두 잃으면 생존을 위협 받기 때문입니다.
자산 투자의 영역에서는 가치 있는 대상을 선택하려면 반드시 스스로 판별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자산을 지키고 성공적인 투자로 나아갈 수 있는 기본기입니다. 그렇기에 가치 있는 대상을 알아보는 첫걸음은 당연히 공부입니다. 이는 시간 투자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천일천독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발견하는 것,
시간 투자의 특이성, 윈-윈
자산 투자와 시간 투자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자산 투자는 누군가가 손실을 입어야 그만큼 누군가가 수익을 볼 수 있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하지만 시간 투자에는 사실 경쟁이 없습니다. 특히 수행자가 가치 있게 여기는 시간 투자의 대상은 오히려 윈-윈에 가까운 법칙이 적용됩니다. 타인의 손실을 빼앗는 게임이 아니라 나의 성공을 나눌수록 다 함께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영역이죠.
경쟁 없이, 다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투자의 대상이 있다는 것이 믿기시나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걸까요? '보리심'의 특성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목표는 파초와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는 순간, 더 이상 에너지원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리심이라는 목표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나 자신을 포함한 일체중생을 모두 성불에 이르도록 책임지겠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보리심이라는 마음의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보리심의 영역인 반야의 지혜와 상대적인 보리심의 영역인 자비심입니다. 지혜는 어리석음을 꿰뚫어 허상을 밝힙니다. 이 지혜는 '내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를 약탈해야 한다'는 어리석음과 탐욕 그리고 분노를 깨뜨립니다. 자비심은 그 자체로 이타심입니다. 이기심이 무너진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행복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 보리심의 서원입니다.
수행자가 시간을 투자하는 대상은 이런 특징으로 인해 확신이 결여된 상태에서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꼭 천일천독이라는 기간을 탐색에 소모하지 않더라도 신뢰할만한 선배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공부 주제가 있다면 시작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불보살님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공부 주제는 단연코 보리심입니다. 보리심을 완성하여 성불에 이르는 것, 그 과정에서 일체중생을 돕는 것이 바로 수행자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모범답안입니다.
안심이 근본입니다
<금강경>을 꿰뚫는 대전제는 이 질문에서 해결됩니다.
"모든 불보살님이 공통으로 권하시는 길, 보리심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속에서는 의심과 저항이 생겨납니다. 이를 어떻게 항복 받아 보리심 수행을 끝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의문은 보리심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주제가 아닙니다. 변화를 결심한 이들 대부분이 겪는 보편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중생은 모두 마음 속에 청개구리를 품고 있지 않나요?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쓰이는 것 아닐까요? 3년짜리 장기간의 공부가 아니라 30일짜리 변화에도 어차피 저항감과 의심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 역시 단 하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 뿐입니다.
모든 변화는 결국 반복을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또한 사띠의 밀도를 촉매로 활용하게 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반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집중할 수 있는지가 모든 성공의 척도입니다. 여기에 더해 각양각색의 모습을 지닌 저항감을 극복하는 것이 직면하여 해결해야 할 공부주제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키워드는 결국 이런 공식으로 정리됩니다.
'저항극복 = 지속가능 and 집중상승'
수행자가 가치 있는 공부 주제를 선정하는 방법의 시작은 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에 권장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더해 불보살에 대한 신뢰가 더해진다면 분명히 용기 낼 수 있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이 맹신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천일천독과 더불어 교과서의 만독을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합니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저항감을 극복하고 의심을 해결해야 합니다.
해결되지 못한 의심은 불안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의심을 해결하면 신기하게도 이름이 의문으로 바뀝니다. 의문을 해결했으니 그 속에서 지식과 지혜의 꽃이 피겠죠? 3년, 30년, 300년, 3아승지겁의 시간을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붓다스쿨의 성불공부의 과정에서 의심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를 억누를 이유는 없습니다. 도망치지 말고 해결해야 하는 주제입니다. 의심이 만든 불안을 해결하여 안심에 이르러야 합니다.
수행자의 공부법은 촉독에서 시작되어 만독으로 나아갑니다. 보편적으로는 천일천독의 과정을 통해 교과서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지만, 이미 불보살님과 삼보에 대한 신뢰를 지니고 있다면 '보리심'에 대한 맹신으로 만독을 시작해보는 용기를 내도 좋습니다. 이 가치 있는 공부 주제를 촉독과 병행하며 의심이라는 장애를 지혜로 꽃 피우는 과정을 소화한다면 분명히 확고한 이해와 신심을 지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혹시 이런 의문이 드시나요?
'언제까지 의심이 일어날까요?'
끝까지입니다. 심지어 그 저항감의 크기는 더욱 거대해질 것입니다. 도고마성이라고 했듯이, 싯달타 왕자가 성불에 이르기 직전 마라의 저항이 가장 극심했듯이 이 의심의 저항은 수행의 완성에 이를 때까지 반복됩니다. 이를 지겹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물이 끊는 과정을 상상해보세요. 열을 전달 받아 점점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들끓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100도씨에 이르는 것입니다. 100%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의심의 열기가 점점 높아지고, 들끓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이 모든 의심을 해결함으로써 점점 더 큰 도를 이루는 것, 이것이 수행자의 공부 과정입니다. 안 그래도 끊임없이 불안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이 공부의 길에서 스스로를 더 들볶을 이유는 없지 않나요? 의심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해결하면 지혜가 샘솟는다는 것을 되새기세요. 그리고 이 원칙 하나를 마음에 새기시면 됩니다.
"안심이 근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