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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주소: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54&contents_id=67949)
나는 지금까지 한 60~70권의 책을 썼지만 단 한 권도 서재가 없는 곳에서, 집 밖에서는 써보지를 못했습니다. 언제든 내가 어떤 정신적인 작업을 할 때는 서재 옆에서 할 때가 제일 안정적이고 제일 든든하고. 그다음에 참 아무것도 없는 데에 가서 혼자서 생각해 가지고 기억에 의지해서 할 때가 제일 불안하고 그럼 그렇게 써놓고도 금방 돌아와서 그것 맞느냐 틀리냐부터 확인합니다. 내가 아마 책에 대한 의존도가 특히 많아서 그럴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또 서재이기도 하고 이제 그걸 책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 책의 경우 같으면 나는 늘 그냥 내 선생. 선생님. 내가 학교를 많이 못 다녀서 주로 책으로 많이 거래를 했습니다. 그 지식을 주고받는 것을. 그러니까 스승은 아무도 기억나는 사람이 없고. 은사라 하는 사람은 정말 지금도 참 슬픈 일인데 어떨 때 스승의 날에 한번 떠올려 볼 은사도 하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항상 스승의 날 떠오르는 은사가 있냐고 그러면 서재를 떠올립니다. 내 서재는 결국 내 스승님들이 계신 곳입니다.
원래는 이 서재에 한 2만 권의 책이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제 그 서재를 고향으로 옮길까 해서 일단 책을 옮겨 놓아가지고 지금은 뭐 몇천 권도 안 남아 있습니다. 그럼 이건 다분히 참 그 전시성이 강한 본보기 같은 그런 서재고. 원래 제 서재라는 것은 세 종류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이제 내가 절실히 필요해서 먼저 그 제목과 내용을 알고 서점에 가서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고. 그다음에 이제 내가 익히고. 그리고 그건 이제 소위 그 수택이라고 해서 내 손때가 묻은, 줄이 그어져 있다거나 내가 줄을 넣었다거나 그런 책의 종류가 하나 있고요. 이제 또 하나는 광범위한 교양 욕구 혹은, 교양 수요에 의해서 '아, 이거는 읽어놔야 되지 않을까?' 해서 이제 했던 것들. 그런 것들은 그때는 '아, 이거 한 번 봐야지.'하고 사 놨다가 못 보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그건 그 도장만 찍혀있고 거기에는 그 어떤 내 개인적인 경험이나 그런 게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 별로 들어있지 않은 것. 그런 것이 있고. 또 한 종류는 이제 내가 이름을 얻고 난 후에 사방에서 보내주는 책들인데. 그거는 이제 뭐 3분의 1도 타작을 못 합니다. 3분의 2 정도는 그냥 도장 찍어서 꽂아 넣는 것에 지나지 않는 책. 그렇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근데 그게 뭐 세월이 되다 보니까 내가 그렇게 많이 가져왔는지 한 2만 권 정도 되더군요.
저는 학교를 보통 우리가 대학 교육까지를 일반 교육이라고 보고 그러면 대개 16년 정도 됩니다. 어쩌다 보니까 뭐 16년 중의 한 8년 정도밖에는 정규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남는 시간이 이상하게도 나한테는 그렇게 또 아주 적빈이 되어서 내가 내 것을 벌어서 먹어야 되는 그런 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또래보다는 해야 할 일은 못 하면서도 또 시간이 많이 남는 그런 세월을 8년이나 지냈는데, 그때 아마 이것저것 그 무료한 시간 혹은 애매한 시간을 때우는 데 주로 아마 책을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 어떤 책하고 이루어지는 그 교감에서 혹은 그 가르침에서 아마 내가 제일 접근하기 쉽고 또 제일 도달하기 쉬운 것이 어떻게 문학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우리가 소설을 쓴다고 하면 그 전에 소설을 쓸 줄 알아야 되고. 소설을 쓸 줄 알려고 하면 그 앞에 있었던 소설의 양식들에 익숙해야 되고. 그럼 다른 소설을 많이 읽거나 공부를 했어야 되는 거죠. 근데 이거를 뭐 대학 가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는 대부분 그냥 자기 주관적인 경험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제 경우에는 아까 말한 대로 성장기에 있었던 이상한 여유 시간. 학교는 안 가지만 어디 뭐 노동하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빈둥거리면서 보내는 어떤 일거리가 아마 책이었던 것 같고. 또 책 중에도 아마 소설책이 많았던 것 같고. 그래서 거기서 이제 남다른 어떤 그 소설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쌓고. 그다음에 또 하나 있다면 이제 내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 이러한 것이 또 축적이 되는데 그것도 남보다는 더 절실하고 더 유리하게 풍부하게 많았던 어떤 환경. 예를 들면 뭐 집안이 뭐 아버지가 어떻게 하고 뭐 집안이 어떻고 이런 식의 그 어떤 개인 사정의 문제. 흔히 사람들 마다 왜 '내 인생도 소설로 쓰면 12권이다.'하는 그 할 얘기. 그것들의 어떤 축적. 이 두 가지가 아마 연관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하나의 보통 서사구조로 말하는 것들. 그 시작과 끝이 있고. 이 시작과 끝 사이에는 어떤 일정한 인과관계와 연속성이 있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 소리 하다가 저 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한 끈에 이어진 긴. 근데 그거는 반드시 어떤 총체성 혹은 완결성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한 토막의 긴 이야기가 그 아주 정연한 그 형태를 가지고 총체성과 완결성으로 끝이 나면 거기서 어떤 그 세계의 한 부분을. 그 몇 시간 동안에 본 듯한 느낌. 뭐, 이런 것들이 나한테는 좋았던 것 같고. 그게 아마 나를 소설에 끌리게 했을 겁니다.
이제 우리가 책을 읽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정보이겠는데. 뭐 정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이제 남의 경험. 남의 경험 중에도 우리가 들을 만한 남의 경험. 뭐 예를 들면 수학자 같은 경우도 사실 그 수치로 되어 있지만, 결국엔 남의 경험 얘기거든요. 피타고라스가 경험한 그 직각삼각형의 어떤 특별한 그 특징. 그거 정리한 게 교과서 원리고 수학이 기하학이 어떤 모양이 되는 건데 사실은 그것이 수에 대한 그의 경험입니다. 이와 같이 이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을 많이 읽는데. 그리고 경험이 나중에 정보나 혹은 어떤 지식의 원천으로 활용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전에는 지금 시절 이전에는 그 나름대로 오히려 뭐랄까? 속독 혹은 난독을 기초로 하는 기억 저장법 같은 것 그 나름의 어떤 머릿속의 사서 원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책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처음부터 정독을 해서 아주 거의 참 암기하다시피 알아야 될 것이 있고 어떤 것들은 양도 많을 뿐 아니라 개념도 광범위해가지고. 어차피 그걸 정보화해서 짧게 해서 머리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이제 몇 단락의 큰 개념화를 하고 그 개념화에 대해서 대강의 기억을 해둡니다. 했다가 이걸 정밀하게 내가 확실히 인용하거나 활용해야 될 때가 오면 그때 가서 그 부분을 떼어내서 정독을 하고 내 것을 만드는. 그전에는 그냥 '아, 그런 종류의 지식은 어디에 있다.'라는 것만 기억해 두었다가 대강 이제 전체를 큰 책을 막 난독을 하고 그래서 큰 개념 혹은 큰 지식의 소재만 기억을 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정독을 해서 활용해 쓰는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 이제 인터넷 시대는 그런 게 별로 필요 없어진 시대라서….
그 세계성 혹은 세계화라 하는 게 이제 옛날처럼 한국 문학에다가 따로 구역 짓는 걸 용서하겠는가. 뭐 이런 문제 같은 걸 가끔씩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세계화 속의 한국 문화, 이런 것들이 어떤 사람들은 뭐 세월이 지나도 그 예를 들면 민족이라든가 혈통이라든가 뭐 이런 것들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을 거라고 그러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폐기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도 폐기된 나라들도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문학이라는 걸 따로 이렇게 구역 지을 수 있을진 모르지만, 지금 문제는 어떤 그 세계 문학과 대비되는 한국 문학의 특성이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세계화하느냐 하는 전략 그게 아마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세계화 전략으로써 우리가 어떤 그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 뭐 어떤 방식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뭐 그건 있을 수 있지만. 그 외의 우리의 어떤 특수성 고유성 뭐 이런 것 가지고 우리 문학을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그다음에는 저 전략 측면으로 볼 때는 글쎄 지금 뭐 우리가 와있는 것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그렇게 늦진 않습니다. 문학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제 전 세계에 활발하게 책들이 번역되고 있고 또 뭐 그 신경숙 같은 작가는 뉴욕 시장에서 히트작도 한 번 냈습니다. 히트 상품도 낸 적이 있으니까. 꼭 그렇게 늦은 건 아니고요. 그걸 갖다가 어떤 고전적으로 해석해서 뭐 과연 저것이 우리 문학을 대표하느냐 우리 어떤 한국 문화의 어떤 정통성하고 닿아 있느냐. 그거 따질 필요 없잖아요? 지금 현재 어떤 상품으로 볼 때는. 그래서 아마 그런 일반적인 생산 원리. 좀 상품이라 하면 야박하긴 하지만 분명히 이것도 문화 상품이니까요. 그거하고 연관 지어서 아마 찾아보면 뭐 조금 지름길이 지금보다 빠른 지름길이 나올지도 모르죠.
이제 뭐 여러 가지 이유인데 어떤 것들은 내가 참 그게 힘이 많이 들어가서 애착이 가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그것이 나한테 준 게 너무 많아서. 나는 대충했는데 갑자기 많이 팔리고 많은 걸 줬을 때 오는 것도 있고 합니다. 한데 그래도 나이를 먹으니까 아무래도 이 애착이라는 것이 결국 내가 들인 공. 그 작품에 내가 바친 노력. 이게 아마 이제 그 결정을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이제 가만히 내가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대답하는 것들이. 두 가지. 그게 들인 노력이란 건데. 그 노력 중에 어떤 것들은 내가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그걸 겪은 것, 절실하게 나한테 닿았던 것. 그것들을 많이 다루는 것. 뭐 이것도 애착의 원인이 됩니다. 되는데 최근에 내가 <변경>이란 책을 12권을 다시 냈는데요. 지금은 주로 <변경>을 뭐 내가 제일 그 뭐라 할까? 가장 나한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말하게 되고.
그전에는 이제 어떤 때는 <황제를 위하여>를 대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뭐 <사람의 아들>을 댈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시인>을 댈 때도 있고. 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달랐고. 또 오만할 때는 가장 내가 애착하는 책은 가장, 내가 아직 안 쓴 책. 앞으로 쓸 책. 뭔진 모르지만. 그게 내가 결국은 내가 가장 애착하는 책이고. 나를 대표하는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대답을 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뭐 이제 정말 남은 세월에 지금 내가 썼던 것보다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을는지도 의문되는 상황이 돼버려서 이제 그런 그 객기는 못 부리겠고. 지금 현재로는 <변경>이고. 현재는 그런데. 모르죠. 또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웃음)
예전 같으면 뭐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또 뭐 문학 같은 거 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사실 요즘은 바뀌었어요. 안 할지도 모르겠어요. 안 할지도 모르고 오히려 내가 못 가본 길. 안 해본 것. 그쪽에서 새로 한 번 어떤 새로운 그 즐거움과 기쁨을 만들 기회가 있다면 그걸 한 번 해볼까?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은 상당히 내가 꽤 생생한 상상을 가지고도 포기하게 됐던 것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학문 같은 것도 그래요. 굉장히 그것이 거기에 참 몰두하면 그게 어떤 답도 지금 내가 헤매는 것보다 더 명쾌한 답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또 즐거움도. 성취감도. 그쪽에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가치 있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 전 같은 그런 단정이 안 되고. 아 그게 더 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꾸 (그런 생각이) 더 커지는 게 그게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내가 했던 일에 대한 회의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어떤 가치에 대한 그 안목이 더 확대된 것인지 그건 모르겠는데 뭐 기회가 주어지고 내가 충분하게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딴 것도 하고. 못할 게 없다. 이런 기분입니다.
문학 안에서는 내가 공언한 대로 80년대를 한 번 내 작품 속에 끌어왔으면 싶습니다. 뭐 이렇게 다른 그 문화적 창작은 충분히 했다고 보고 여러 가지 그 어떤 캐릭터들을 참 그 이상한 황제부터 저기 저 로마 시대의 저 끝까지 많이 충분히 했다고 보고. 내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어떤 충실한 기록 같은 것으로 80년대를 한번 그리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서 나한테도 이제 무한한 세월이 없다는 것이 이제 명백해졌고. 잘 써야 뭐 한 5년 정도가 제대로 제정신으로 쓰는 거. 그것도 70까지 써야 그래야 한 정서인데. 그것 쓰는 게 양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하다가는 정말 쓰고 싶을 얘기는 못 쓰는데. 정말 쓰고 싶은 얘기 중 하나가 80년대를 정리하는 것. 또 시간이 남고 내 생명이 더 길어서 그렇다면 뭐 나중에 한 번 또 이 오늘을 얘기하는 양이 짧더라도 한 번 그 결말처럼 그렇게 했으면 싶은데. 지금 현재는 80년대를 어떻게든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또 우리 다른 의미에서의 역사나 어떤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어떤 연결성을 회복하고 뭐 이런 것들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얘기고. 일이고.
그다음에 문학 외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근데 이제는 그걸 참 꿈꾸는 것 조차도 어색해졌어요. 그전에는 내가 사실 내가 다 쓰고 시간이 남으면 정말 참 좋은 시나리오를 한번 쓰고 싶었는데. 그냥 많이는 아니더라도 한 서너 편 정도만 괜찮은. 그걸 누가 가서 영화를 만들어도 뭐 괜찮아지게 되는 그래서 다시 또 어떤 사람이 또 만들고 또 만들고 할 수 있는 영화. 난 제대로 한 번 썼으면 싶은데 지금 틀리지 않았나 싶어요. 이것 막 이거 하면 아마 한 3~4년 걸릴 텐데 그거 끝나면 그럼 70세 넘어가지고 뭐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그게 자신이 없어지네요.
(지식인의 서재 '이문열' 편은 부악문원에 위치한 이문열 님 개인 서재에서 촬영했습니다.)
예전에도 굉장히 힘들게 읽었던 건데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참 힘들게 읽었던 건데 요새 갑자기 보고 싶어가지고 지금 이제 1권 보고 2권째 보고 있습니다. 이제 보통 이게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의식의 흐름이 아니고 극사실화 같은 느낌. 그러니까 시간을 굉장히 초 단위로 이렇게 해서 아주 세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린 세밀화를 보는 느낌을 늘 받습니다. 그게 물론 그중에는 의식을 그려낸 부분이 많으니까 의식의 흐름이라고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의식하고 관계없이 자기 추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어떤 그 장면들을 갖다가 굉장히 세밀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그 저기 <율리시즈>라든가 <분노의 포도>라든가 그 같은 계열의 답보하고 다르게. 그래서 아주 감성적으로도 굉장히 그 감동을 주는 그런 묘사인데. 전체적으로 이렇게 세상을 그리는 방법도 있다는 것도 괜찮고. 한번 보고 싶었는데 요새 최근에 보던 거고요.
그다음에 조금 전에 보던 것은 내가 지금 책이 없는데 <모던 타임스>라고 폴 존슨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 있습니다. 그것도 양이 많습니다. 1,600면 정도 됩니다. 두 권이. 1,600페이지 정도. 이만하죠. 두 권이. 근데 그것도 아주 굉장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제 20세기 초기에 우리의 어떤 그 의식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몇 개의 사건. 그러니까 이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그다음에 그 저기 프로이트의 심리학. 그다음에 저기 저 다윈의 진화론. 이 3개가 어떤 그 우리 문화사의 정신에 미치는 거를 마찬가지로 그 뒤에 일어나는 세계의 모든 역사. 그 1,900년 이후의 모든 역사도 일반적으로 우리한테 알려진 것하고는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근거 없는 것이 아니고 저는 오히려 그쪽이 더 근거가 많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뭐 여러 가지 그런 것이 많이 있는데. 이 사람(폴 존슨)이 원래는 미술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랍니다. 그 미술 하려고 했는데 미술 대학 가려고 지원서를 내려고 하는데 미술 선생인 아버지가 이제 그거를 말립니다. "야, 너 미술 하지 마." 왜 그러냐 그러니까 "지금 말이야. 피카소라는 사기꾼이 나왔는데 저놈이 백 년 해먹을 거야. 그러니 너는 해 봐야 소용없어." 그래서 할 수 없이 역사를 했답니다. 근데 이게 진짜 농담 같지만 대단한 거 우리 세대에 뭐 어떤 정곡을 찌르는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 한두 달 동안. 그런데 요새는 독서 능력이 떨어져 가지고 한 1,600면 읽으려고 하면 두 달 걸립니다. 이제 두 달 동안 굉장히 낄낄거리면서 재밌게 읽었고 '아, 세계사를 이렇게 보는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사실은 나는 역사책으로 보다도 어떤 그 이제 우리가 그 문장을 배울 때 문장의 어떤 그 교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거는 이제 우리 한국적인 문장. 동양 문장의 교범이 있고 서양 문장의 교범이 있는데 서양 문장 중에도 이제 아주 그 만연체 그러니까 중문하고 복문을 많이 쓰고 문장이 긴 것. 그런 문장에서 그 잘된 것들이 소위 빅토리아 시대의 그 영문학책에 좋은 문장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그 빅토리아 시대에 쓴. 에드워드 기번이 역사가이기도 하지만 문장가입니다. 그래서 이거 아마 보통 보시면 알겠지만, 이 한 줄이 원고지 한 페이지 이상이 되는 문장이 많습니다. 아주 장중하고 거기 뭐 명사 앞에다가 아주 장엄한 형용사를 두세 개씩 붙이고. 그다음에 관계사 걸고. 이래가지고 문장이 그 한 문장이 보통 우리 200장 원고지가 뭐 두 장 되기도 하고. 뭐 그런 문장으로 돼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장중하게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내용보다 그것 때문에 봤던 기억이 나는데 마침 아들 서고에 갔더니만 아들 책 중에 이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옛날 생각이 나서 가져온 겁니다.
이거는 춘추 좌 씨인데 이거는 보통 우리가 이제 좌전이라고도 하고 춘추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건 역사책입니다. 보통 어떤 사기의 역사성을 말할 때 이제 어떤 그 '의(義)'. 의라는 걸 갖다가 이제 밝히는 책으로 유명한데요. 그걸 여기서 배웠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저 중국집에 가면 관운장 그림 나올 때 관운장이 뭐 하나 들고 있지요. 그게 이 책입니다. 관운장의 의리가 이 책에서 나왔다 그러는데 하여튼 그게 아니라 이거는 저 그냥 공자의 그 음정한 필체 그 필체 같은 게 있는데. 이런 책들은 저기 있을 때 집에 있다가 어떤 자극을 받아서 그 구절을 뽑아 보기도 하고 뭐 시간이 많이 나면 그냥 소일거리로 한 장을 본다든가 뭐 이런 식으로 늘 읽는 책입니다. 웬만한 시간이 나면 한 번씩 정독하기를 권합니다. 그 정 뭐 이렇게 한문으로 해서 뭐 주석 달고 이렇게 하지 말고 번역 잘해놓은 것. 번역본으로 쭉 한 번 읽어도 됩니다. 어쨌든 한 번쯤은 그 정신을, 전철을 조망해서 통독하는 것 대단히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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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이버 가셔서 동영상까지 다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리하고 솔직하고 푸근하게 - 우리 이문열 선생님은 작품 뿐 아니라 말씀도 어쩜 이리 매력적일까요.
작가님 스스로 꼽는 아끼는 작품 [젊은 날의 초상]이 빠졌네요. 마음의 고향같은 책이시라 새삼 언급을 하지 않으신 듯 한데 저도 그렇고 댓글에 이 작품을 언급하시는 분이 많네요.
작가님의 말씀 귀하게 잘 들었고 새 변경작품도 많이 읽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