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회 92차 산행기 - 백양산 정상
11월 3일 10시 학생 교육 문화 회관 앞 뜰 등나무 벤치 아래
오늘의 참여자 - 조정, 정상조, 허세영, 최광석, 이규상, 방춘일, 김갑석, 전흥, 안혜자,
류송자, 현호웅, 이호기, 손관선, 박석현, 정경권, 류근모 이상 16 명.
10시 반, 빙 둘러서서 초읍에 사는 죽암 이호기 친구를 대장으로 출발 산삼!
쑥쑥 잘 자란 삼나무 숲 사이로 난 계단 길을 따라 10 여분 오르니 성지곡 수원지 - 청둥오리 10여 마리가 잔물결을 일으키며 평화롭게 떠다닌다.
성지곡은 신라시대의 유명한 지관 (地官) 인 성지 (聖知) 라는 분이 명당이라고 알아준 곳이라 그분 이름을 붙였다.
삼나무 숲이 소나무 숲으로 바뀌는 지점부터 방화벽 대용으로 친 철조망을 따라 제법 가파른 길을 걸었다. 소나무들도 삼나무를 닮아 키가 크고 곧다.
철조망이 끝나고 돌로 쌓은 방화벽이 낮은 성처럼 쌓여있어 백양산을 동서로 가른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그것을 돌 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남천 전흥 친구의 설명을 듣고 그것이 1907년 ~ 1909 년 일인들이 성지곡 수원지를 조성할 때 백양산의 산불 방지용으로 쌓은 방화벽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다.
학수천 주변의 나무 의자에 걸터앉을 무렵에는 다들 이마에 송송 땀이 맺혔다.
이 샘물 마시고 학처럼 오래 오래 살라고 鶴壽泉.
샘 뒤에 정성껏 쌓은 돌탑의 공덕이 물에 스며 있음직하다.
백사와 죽암이 곱게 썬 단감 조각들을 배급한다.
백양산 정상까지 갈려면 오늘은 좀 강행군이 될 것이니 감 먹고 감 잡읍시다.
방화벽을 따라 계속 오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키 큰 소나무들이 줄어들고 편백과 향나무들이 무리를 짓는가 싶더니
이내 키 작은 참나무, 떡갈나무 숲으로 바뀐다. 제법 단풍물이 들고 있다.
올해의 단풍은 오랜 가뭄으로 색깔이 곱지 않다.
계속 가파른 길의 연속.
뒤에 처지는 친구들이 쉬어 가자고 호소.
넓적넓적한 돌 위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는다.
여항이 시원한 배를,
적송이 찰떡을 내놓는다.
입에 짝짝 붙는 찰떡과 물 많은 배가 그야말로 찰떡궁합 - 맛있게 먹는다.
12시
드디어 당감동에서 초읍으로 넘어오는 고개 마루 - 헬기 착륙장에 도달.
당감동, 개금동, 주례동 등이 눈 아래 들어온다.
친구들 다들 잘 올라왔다. 특히 두 여자 친구 - 장하다.
12시 15 분에 백양산 정상에 선다.
돌탑처럼 높은 돌무지 위에 정상석이 서 있고 무슨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부산 제일 금정산이 801 m,
다음으로 백양산 642 m, 장산이 634 m.
16 명이란 적잖은 대원이 근래에 드물게 강행군을 하여 전원 백양산 정상에 섰다.
일단 기념사진 한 커트.
낙동강, 삼각주 명지면, 양산, 물금, 저 멀리 김해평야의 하얀 하우스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앞을 내려다보니 약간은 울긋불긋하지만 아직은 푸른 백양산 기슭, 성지곡 수원지, 초읍동 -- 저 멀리 연제구, 동래구, 남구, 수영구 등도 보인다. 부산의 절반 이상이 눈 아래 엎드려 있다.
등산은 역시 정상에 서 보는 것이 클라이맥스.
내려오는 길은 당감동 쪽을 택하다.
먼지가 풀썩풀썩하다. 가을 가뭄이 너무 길었다.
12시 반
애진봉 (愛鎭峯) 헬기장에 착륙하여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많이 가져와서 16 명이 널찍하게 앉아 점심상을 차린다.
흰 쌀밥, 김밥에 술,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봉곡 허세영, 아산 최광석, 여항 조정, 남계, 여수 정상조등이 술을
국은 박석현, 남계, 청암 이규상 등이 귤을 내놓았다.
술은 주로 매실주 - 먹기 좋은 술이라고 몇 잔씩들을 하여 제법 기분이 고조된다.
세미나가 없을 수 없다.
백사 김갑석 - 이승만 박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우리 술꾼들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음주 60 년 만에 내린 결론 - 모임에서 1차만하고 2차는 안 해)
적송 류송자 - 어느 사내가 길을 가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쉬는데 그 소나무에
요상한 구멍을 발견하고 엉큼한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살펴보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그 구멍에 대고 거시기를 비벼댔다.
오랜만에 거시기에 고인 물을 쏟아버린 사내, 흡족한 미소를 띠우고 소나무를 쓰다듬어주고 떠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듬해 어쩌다가 그 소나무 곁을 지나가는데 난데없이
“아빠, 아빠!” 하는 소리가 마구 들리지 않은가.
눈을 들어 소나무를 보니 어린 솔방울들이 일제히 대가리를 쳐들고 자기를 향해 외쳐 대는 것이다.
“아빠, 아빠!”
세미나를 끝내고 일행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애진봉 비석 앞에 앉고, 서고, 포즈를 잡아 사진 한 컷 박다.
애진봉 비석은 부산진구를 사랑하자고 부산진 구청장이 세운 비.
이렇게 전망 좋은데서 우리가 사진만 찍어 되겠나.
기분인데 한 곡 해야지.
찔레꽃, 울고 넘는 박달재, 처녀 뱃사공, 황포 돛대.
술이 적당히 들어간 상태라 음악부장 죽암의 박자 반주만으로도 신이 났다.
일행은 당감동 쪽으로 하산 길을 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가기 시작.
2시 15 분에 선암사 뒤 휴게소에 도착하여 잠시 쉬다.
여수와 죽암이 아껴 두었던 배와 사과를 제공하여 입을 또 축이다.
내려올 때의 입가심이 더 반갑네요.
선암사 (仙岩寺) 는 675 년 통일 신라 때 원효 스님이 창건한 절.
신라의 젊은이들인 화랑도 - 국선 (國仙) - 들이 심신을 단련했던 곳에 지은 절이라 선암사라 이름했다.
현재 부산광역시 교육감 설동근 군은 원효 스님의 46 대 종손
설군은 부부가 다 독실한 불자이고 선암사의 신도회장을 하고 있으니
원효 스님은 1330 여 년 동안 몇 번의 윤회를 거쳐 다시 설동근으로 환생한 거나 아닌지.
절 입구에 범종각. 범종각에는 범종, 목어, 법고, 운판 등 사물 (四物) 이 있다.
여항 회장의 간단한 설명을 듣다.
범종(梵鐘)을 침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뜻이다.
물고기같이 생긴 것은 목어 (木魚) - 물고기를 구제하는 뜻과 물고기처럼 눈을 감지 말고 계속 정진하라는 두 가지 뜻. 목탁은 목어의 변형이다.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함은 언제나 깨어있겠다는 뜻.
법고(法鼓)는 가죽으로 된 것 - 뭍의 모든 짐승들을 구제한다.
구름 같이 생긴 운판 (雲板) - 날짐승들을 구제한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 구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남자 친구들은 대웅전 앞에서 부처님께 간단한 예를 드리고 밖으로 나와서 당감동 가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두 여자 친구는 신발을 벗고 법당에 들어가 본격적인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그것도 모르고 두 친구를 기다려 주지 않고 내쳐 아래로 내려 가버렸다.
서구로, 동래구로 각자 가는 방향 따라 이내 버스를 타거나 더 아래 정류소로 내려갔다.
두 친구가 절 밖으로 나왔을 때 남자 친구들은 다 “꽁무니를 빼” 버린 상태였다.
이 친구들이 어디로 갔을까?
두리번거리다가 그만 절 뒷길을 잡아 초읍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아무리 가도 이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다. 산불 초소만 보이는 호젓한 길.
연약한 여자 둘을 산에 이렇게 내버려 두고 너희들만 내려가? 그래도 친구야?
내 다시 산삼회 따라 오나 봐라.
둘은 30 여분을 헤맨 끝에 초연 중학 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정말 정말 미안하게 되었어요. 입이 열 네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어요.
누구 한 명이라도 “아니, 여자 친구들 안 보이네. 찾아봐, 같이 내려가야지.”
했어야지.
그러나 사실 남자들은 두 여자 친구가 우리 보다 먼저 내려갔거나 다른 남자친구들과 같이 갔겠지 라고 생각했지 부처님 전에 기도하고 절에서 늦게 나왔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부처님 전에 남자들 깊이 반성하고 여자 친구들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오늘 92 차 산행 - 다수 참여, 백양산 정상 답파, 산행 시간 4시간 정도 - 성공적이었는데 마무리가 좀 그랬군요.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석가모니 불.
첫댓글 내가 가자고 주장해 놓고 못가니 자기들만 재미있게 산행하고, 여자들은 돌보지 않고 떨어뜨려 놓고 오는 불상사를 저지르다니? 적송, 영운 미안해요. 다음에는 그런 일 없으리라고 내가 보증할게....몸 풀고 마음 풀고 다음에도 꼭 오세요.....
어젠 길잃은 두 기러기가 상당히 황당했지만 자고나니 반쯤 풀리고 산행기 읽고나니 싹~다 풀려버렸네유. 그래서 친구 아이가! 암튼 92차 산행은 특종 추억거리임다. 다음은 을숙도에서 만납시다!
그래요. 처음에는 다시 따라오나 봐라 했지만 화가 풀리고 나니 오히려 안 데리고 다니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요. 힘들고 멋진 산행이었었는데 끝맺음이 영 그랬어요.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새로운 길을 알았다고 자위를 해 봅니다. 언제 초연중학교 그 길을 갈 수 있겠어요. 한편 불안했지만 내려오는 그 길이 숲으로 둘러싸여 그늘을 이루고 알맞은 길의 크기도 아담했어요. 데이트 코스로도 적당했구요. 난곡이 왔더라면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텐데. 다음에는 꼭 챙겨 주세요. 우리도 단체이탈을 삼가할께요. 그 날 산행은 좀 무리였지만 지금은 몸이 개운하고 힘든 산행을 해 냈다는것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워요.산삼회 덕분,고마워요.
여사님들을 잘 모시지 못한 남정들 반성 또 반성 다음엔 다시 이런일이 없도록 각별한 관심과 주의를 하게심더. 건강한 백수를 위해 모두 모이자, 걷자, 웃자, 노래하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