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이 가셨다.
두레교회 초창기 멤버로,
교회의 첫 강단을 손수 만드신 목공으로,
퇴직 후엔 빚과 암으로 고생하던 노인으로 사셨으나
어느 누구 그를 '장로' 아닌 다른 신분으로 말하지 않게끔
따스한 미소,
맑은 눈빛,
격려의 말투,
진실한 기도로 무장한 장로님이 가셨다.
김신권 장로님.
입관 후 위로예배 중에 약력을 소개할 때
누구처럼 번듯한 내용 하나 없이
오직 월남한 사실과 교회를 섬긴 일만 적혀있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잘 어울릴 수 없었다.
부족함 하나 없이 꽉 차게 사신 인생.
신앙의 사람, 장로님.
임종 직전까지 너무 의식이 또렷해
몇달을 병원 침상 지키신 분이라 생각지 못하고
다만 얼만큼은 더 사실 거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두어 달 전쯤에는
자꾸 헛 것이 보이고 영적 전투가 심하다고
기도 부탁까지 하셨는데,
마지막에는 권사님을 위로하고
찾아온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 흘리시고
야윈 손 높이 들어 '할렐루야'를 두어 번 외치시고
평안히 아버지 품으로 가셨다.
분립한 김포에 가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몸으로 봉사하고프다고 하시고
교인들도 모두 한 번이라도 예배 함께 드리길 원했지만
마지막 떠나실 때 아무 아쉬움도 남음이 없었다.
슬픔보다 위로와 소망이 더 넘쳤다.
평생 남편의 보살핌 속에 산 공주같은 권사님도
병 수발하시면서 몸은 지쳤으나
영혼은 더 강건해지셔서
빈소를 찾은 이들을 오히려 걱정하시고 기도해주셨다.
3일동안 온전히 교회장으로 치르느라
온 교인이 달려들었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천국 소망이 넘쳐 흘렀다.
화장(火葬) 후에 곱게 빻은 재는
김포 교회 옆 나무 아래 심겨졌다.
늦게나마 분립 교회를 찾았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돌아오며
혼자 몰래 하늘 보고 묻는다.
"아버지 품은 어때요?
예수님 손 꼭 붙잡고 기다려주세요.
그 소망 잃지 않고 살도록 기도해주세요.
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