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개미취 피는 길을 걷다
가을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줄 알았다. 산꼭대기 단풍이 붉어지고, 그 빛이 조금씩 산허리를 타고 내려와 마을에 닿으면 비로소 가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주 가야산 숲에 들어서니 가을은 낮은 곳에서 먼저 피어나고 있었다. 나무 아래, 사람의 발목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서 연보랏빛 별개미취가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경견모주길에 들어섰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가야산 자락의 숲길은 산을 정복하기 위한 길이라기보다 마음을 내려놓으며 걷는 길에 가까웠다. 높이 솟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하늘을 받치고, 그 아래 별개미취가 끝없이 이어졌다. 초록 일색이던 여름 숲에 누군가 연보라색 물감을 아주 엷게 풀어놓은 듯했다.
별개미취는 가까이에서 보면 소박하다. 노란 꽃술을 가운데 두고 가느다란 꽃잎들이 별처럼 퍼져 있다. 한 송이는 여리고 수수하지만 수백, 수천 송이가 모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탈 하나를 덮고 숲의 빈자리마다 스며들어 거대한 꽃의 강을 만든다.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앞에서는 크고 화려한 것만을 좇았던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꽃말이 ‘너를 잊지 않으리’, ‘추억’, ‘숨겨진 사랑’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꽃길을 걷다 보면 오래전 사람들이 문득 떠오른다. 한때는 매일 만나던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이름 하나로 남고,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도 어느 날 희미한 기억이 된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꽃 한 송이, 바람 냄새 하나가 그 시간을 데려오기도 한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어딘가에서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은 꽃밭 사이로 완만하게 이어졌다. 앞서 걷던 사람들이 꽃 앞에서 멈추었다. 카메라를 들고 서로를 찍어 주는 사람도 있었고, 그네에 앉아 숲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정자에서는 몇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아 보였다. 숲에서는 쉬는 일조차 하나의 여행이 된다. 나는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그곳으로 가는 과정이 더 좋아진다. 젊은 날에는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다. 더 많이 보고, 더 높은 곳에 오르고, 하나라도 더 기억에 담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꽃 하나 때문에 멈추고, 나무 한 그루 때문에 돌아보고, 정자 하나를 만나면 잠시 앉아 가는 여행이 좋다.
경견모주길에서는 그런 느린 걸음이 자연스럽다. 길 양쪽으로 꽃들이 이어져 있으니 서두를 까닭이 없다.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내려왔다 사라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꽃들이 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사람의 삶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수없이 흔들리며 살아왔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살아 있음의 힘인지 모른다.
숲 한편에서 시비를 만났다. 돌에 새겨진 글씨 곁으로 별개미취가 피어 있었다. 글과 꽃이 나란히 있는 풍경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람은 사라져도 문장은 남고, 꽃은 지더라도 다시 계절을 찾아온다. 문학과 자연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견딘다. 하나는 글자로, 하나는 씨앗으로 다음 시간을 준비한다.
경견모주길에는 야간 트레킹을 알리는 안내판도 서 있었다. ‘나이트 트레킹 & 별빛 디저트 다이닝’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낮의 숲도 아름답지만 별빛 아래 걷는 길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햇빛이 사라진 숲에서 나무의 실루엣을 바라보고, 별을 따라 걷는 일. 지역의 자연을 단순히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머물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모습이 반갑다.
하지만 이날 내게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는 일이었다. 휴대전화도 잠시 내려놓고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사람들이 멀어지며 작아지는 말소리, 발밑에서 흙이 눌리는 소리. 도시에서는 좀처럼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늘 존재했지만 내가 듣지 않았던 소리일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행복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 걸어서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좋은 사람도 있었고 따뜻한 순간도 있었는데 다음 목적지만 바라보느라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여행길에서 자꾸 걸음을 늦추게 되는 것은 이제야 그것을 조금 알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별개미취가 가득한 언덕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지나온 길이 꽃 사이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앞으로 난 길보다 지나온 길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삶도 그렇다. 걸어갈 때는 힘들었던 길도 돌아보면 하나의 풍경이 된다. 넘어졌던 자리도, 오래 기다렸던 시간도, 헤어짐으로 아팠던 날도 세월이라는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삶을 이루는 한 장면이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멀리 볼 수 있는 거리가 생기는 일이다. 가까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비로소 보인다. 그때 왜 그렇게 아팠는지,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삶은 지나간 뒤에야 문장의 뜻을 알려주는 긴 글과도 같다.
숲길 끝에서 다시 별개미취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꽃 가운데 어느 한 송이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다. 큰 꽃 옆에서 작은 꽃이 피고, 햇볕 드는 곳과 그늘진 곳에서도 저마다 제 몫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서로 비교하지 않으면서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의 삶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먼저 갈 필요도, 더 높이 피어날 필요도 없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나다운 빛깔 하나 품고 살아가면 된다. 때로는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주고, 때로는 함께 흔들리며 한 계절을 건너면 된다.
가야산 숲을 빠져나오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소나무 사이로 연보랏빛 꽃밭이 점점 멀어졌다. 조금 전까지 걷던 길이 벌써 하나의 추억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을은 아직 깊지 않았다. 단풍도 오지 않았고 바람 끝에도 여름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별개미취는 알고 있었다. 떠나야 할 계절과 다가오는 계절 사이에서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피워 내고 있었다.
나는 그 꽃들에게서 여행의 이유 하나를 다시 배웠다. 여행은 먼 곳에 도착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견모주길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가을은 먼 산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잠시 걸음을 늦춘 자리, 그 발끝에서 이미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