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우리가 얻은 구원은 나의 의나 행위로 인함이 아님을 믿습니다.
오직 주의 긍휼하심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그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딛 3:5-7).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율법에 불순종한 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고 또 죽을 자들이나 우리 주님의 창세전 언약에 근거하여 오늘 이렇게 성령으로 새롭게 되었습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영이요 생명 되신 주의 말씀 앞에서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오직 주의 영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말씀은 내 길에 빛이요 내 발에 등불입니다.
그 안에서 오늘 하루도 사는 자 되게 하소서.
오늘 몽골 한인선교사회 컨퍼런스 마지막 날입니다.
선포되었던 복음이 생명이 되게 하시고 진정한 빛과 등불이 되어 영생을 누리는 주의 종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9:1-9
제목 :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
2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
8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 나의 묵상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과 자신의 왕궁까지 건축을 하였고 성전 봉헌식까지 마쳤다.
이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
너의 기도를 내가 들었다.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내가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과 마음을 항상 거기에 둘 것이다.
네가 다윗처럼 마음과 뜻을 온전히 하여 행하며 나의 율법에 순종하면 다윗에게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말대로 너의 이스라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
하지만 너나 너희 자손이 나를 돌아서서 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면 내가 너희에게 준 땅에서 이스라엘을 끊어버릴 것이다.
또한 내 이름을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이 성전이 아무리 높고 화려하다 한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황폐하게 된 이 성전을 보면서 비웃으며 입을 댈 것이다.
도대체 왜 하나님이 이 땅과 이 성전을 이렇게 만드셨지?, 하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조상들을 출애굽시킨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며 섬겼기 때문에 이런 재앙을 내렸노라고...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에 사람을 지으셨다.
그 사람들은 아담의 계보를 이어 여러 민족을 이루며 퍼져나갔다.
그들은 아담의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그런 자기주장의지를 발휘해서 심지어 바벨탑을 쌓기도 하였다.
그들이 바벨탑을 쌓은 이유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곳을 침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땅에 일어날 홍수를 피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 땅에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하지만 그 화목을 이유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간다면 이를 하나님께서 죄로 규정하시고 그들이 쌓은 탑을 무너뜨리신다.
당시의 방법으로는 인간들이 아무리 탑을 높게 쌓는다 해도 100m 이상을 올릴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 탑과 대를 무너뜨리신 것은 그들의 스스로 쌓은 ‘자기 의’를 무너뜨리신 것이다.
그 후에 노아의 큰 아들 셈의 계보를 통하여 히브리 민족이 형성된다.
이 민족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통하여 이루어진 민족이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과 땅을 약속하신다.
(창 15:5, 7)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이렇게 약속을 하시고 횃불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횃불언약을 맺으신다(창 15:12-17).
구약시대는 철저히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
이는 하나님이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이다.
그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만, 이를 어기거나 거역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맺었던 횃불언약이 바로 그것이다.
철저히 율법을 주시고 이를 지켜 행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마고 하셨지만, 사실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별명까지 받은 아브라함이라도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를 뒤집어 쓴 죄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애굽 왕 바로 앞에서도 그렇고 블레셋 왕 아비멜렉 앞에서도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던 자이다.
그것도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의한 자 아브라함이지만 그를 용납하실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와 맺은 횃불언약 때문이다.
이 횃불언약은 횃불로 나타나신 하나님 혼자서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가신 후에 언약 끝을 외치셨던 것이다.
이 언약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뜻하기 때문이다.
횃불언약을 통해서 당신만 지나가시고 아브라함은 지나갈 틈도 주시지 않은 것은 네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내가 책임지시겠다는 뜻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행위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그를 덮으신 것이다.
이 ‘덮으심의 은혜’는 곧 범죄한 아담을 덮으신 가죽옷이다.
가죽옷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옷이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와 히브리 민족을 세우셨다.
그리고 그 민족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인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출 19:5-6).
이렇게 하심은 그 민족의 숫자가 많거나 크고 강한 나라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수효가 적기 때문이다.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잘 보여주심이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의 숫자로 일하시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처음 모인 군사 숫자가 32,000명이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는 결코 32,000명이 많은 숫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숫자가 많으므로 그들을 돌려보내라고 하시고 결국 300명만 남기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300명으로 하나님의 전쟁을 치르시는 것이다.
그렇게 세워진 이스라엘이 사울과 다윗을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된 시대까지 왔다.
그가 하나님 여호와의 집인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하여 드렸다.
이를 하나님이 기뻐받으시지만 만일 나의 명령대로 복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던져버릴 것이며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로 삼으시겠단다.
결국 이후에 솔로몬 왕도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는 타락의 길로 들어갔고 이스라엘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일에 열심이 특심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이후에 스룹바벨 성전이나 헤롯 성전 등을 진짜 하나님의 집이라 여기며 그것을 섬기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건물 성전을 다 헐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몸이 진짜 성전임을 천명하셨다(요 2:19-21).
결국 솔로몬 성전이나 헤롯 성전인 건물 성전은 철저하게 다 무너졌다.
그리고 진짜 성전인 우리 주님의 몸 역시 십자가에 찢겨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건물 성전은 무너진 그 자체로 다시 짓는 것이 무익하지만, 무너진 예수님의 몸은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 안에 다시 지어졌다.
그렇게 오늘 나의 몸이 바로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것이다(고전 6:19-20, 3:16-17).
그리고 무엇보다 무너진 주님의 성전은 다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그 성전을 다시 일으키셨다.
나는 무너지는 것이 마땅한 건물을 성전 삼고 살아왔던 자이다.
내 안에 자기의 의로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곧 유대인들이 들어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오늘날 교회이다.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야 말로 무너져야 할 건물을 성전처럼 붙들고 있던 자였다.
교회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이다.
그것은 결코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얼마나 건물에 집착하고 건물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던지 그런 내가 바로 율법과 건물 성전에 집착했던 유대인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이런 나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교회는 겉으로 보이는 건물의 화려함과 치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높은 첨탑은 그 위용을 자랑하고 그 첨탑 위에 꽂혀 있는 피뢰침은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건데 왜 교회에 피뢰침이 있는 거야?, 하면서 말이다.
단순히 피뢰침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보다 이 땅에서 더 많이 가지고 더 크게 쌓아가려는 아집의 전쟁터를 방불한 삶을 살고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일하신다.
연약하고 불의할지라도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그 은혜 앞에 엎드릴 뿐이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저를 포함한 이 땅의 교회들이 진짜 세상 사람들의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주님을 중심에 두고 살기보다 나를 중심에 놓고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제2 제3의 아담들이 즐비합니다.
이런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공의의 심판을 내리시어 우리를 회개케 하시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 고난의 심판을 통하여 영원한 소망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누리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땅의 것에 치심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인 영생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