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머님 보고 枯윱求?(12월 20일 일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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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청옥이 아버님게서 돌아가셨습니다. 20일에 문상하기 위해 고향 현리에 갔었습니다. 혜자와 진다리 옥자집에
들려 함께 빈소를 찾았었습니다. 그곳에서 덕문이도 만났습니다. 진다리에서는 송편과 시래기 된장국을 먹었는데 정이 듬뿍 들어 있었습니다.
너무도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옛집을 보고 싶어 시간을 내서 발길을 옮겼습니다. 다른 집들은 모두 달라졌지만 유독 제가 살던 집만이
폐허가 되어 그대로 있었습니다. 얘기로는 그 집이 부모가 죽은 후 자식들 간에 재산 분쟁 때문에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저는 고향의 집을 그대로 만났고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추억을 회상하며 5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안
계시지만 어머님과 함께 한 어린 시절을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을 많이도 사랑한 저는 몇 자 넋두리를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누구나 훌륭하신 어머님이 계십니다. 물론 저처럼 돌아가신 친구도 있겠고요. ‘사모곡’을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한결 같을 것입니다. 한평생 희생으로 살아가시는 이 세상의 어머니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어머니입니다.
다른 뜻은 없고 일기장에
있는 글을 그냥 들추어 냈습니다. 어머님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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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머님 ( 40년 지난 어머님의 집에서 )
- 나의 일기장에서(2005.12.20) -
어머님
오늘에야
당신과 함께 했던 고향의 집을 찾았습니다.
몇 십 년 당신의 손때가 묻었던 터라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4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은
고향의 정든 집을 앗아가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
아니었습니다.
온 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잘 보존된 집 앞에서
저는 우두커니 한 참을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폐허처럼 변한 집이지만
방과 부엌, 그리고 앞과 뒤의 마루가 그대로였습니다.
지워졌던 추억의 편린들이
맞추어지는
퍼즐처럼
제 자리를 분주하게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님
오늘 고향의 옛집,
이곳저곳에서 어머님의 체취에 빠졌습니다.
아득한 옛날
당신의
어린 막내아들로 되돌아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당신께서 안 계실 때면 울면서 당신을 찾아 나섰던 저의 모습,
어쩌다 과자나
사탕이라도 얻게 되는 날이면
하루빨리 학교가 끝나기를 바라며 하루 종일 주머니 속의 사탕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결국 녹은 사탕을
꼬옥 쥐었던 손은 당신 앞에서야 펼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오고, 노는 것을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붙어 다니던 옆집 진섭이와의 추억.
고향의 집에서
추억의 깊은 바다 속에 잠들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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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저는 오늘
그 옛날의 당신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으로 가득 찬 부엌,
함지 안의
보자기에 초두부를 퍼 담으시며
두부를 만드시던 부엌 속의 당신의 모습.
당신의 치맛자락만이
아궁이 앞에 끄집어 낸 숯불에
비추워지고 있었습니다.
김 속에 묻혔던 당신의 얼굴을 찾으려고
한동안 애를 써 보았습니다.
자식들 공부 때문에
당신은
두부와 아이스케키를 만드셨습니다.
밭농사, 땔나무까지 …
고단한
삶의 고통
자식들이 당신에게 씌운 굴레였습니다.
등이 휘도록 무거운 짐을 드렸습니다.
초두부를 담은 보를 눌렀던
그
맷돌처럼이나 무거운 짐을 말입니다.
뼈에 스미는 아픈 삶을
언제나 가슴속에 삼키신 죄로
당신은 심장병을 얻으셨습니다.
자식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물로 배를 채우시고
당신의 배부른 척 거짓은
자식들이 철이 들고도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제야
당신께서 마셨던 물 만큼의 눈물을
자식들이 쏟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님
그 어느 해 봄이었지요.
밤사이 내렸던 때 아닌 눈이 한 낮의 봄볕에 녹아내리는
그러한
봄이었습니다.
따스한 햇볕이
어눅한 방으로부터 우리를 밖으로 나오게 했었지요.
저는 어머님의 무릎을 베고 누웠고
참빗으로 어머님께서 저의 머리를 매만지며
서캐훑이질을 해 주셨습니다.
그 때만해도 이나 서캐가 많았으니 말입니다.
어머니의 무릎에서 들었던
댓돌 앞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마당 구석 닭장에서 닭들의 홰치는 소리,
이따금씩 음지의
처마에서 고드름이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들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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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지금은 먼지로 덮여 있지만
검은 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던 마루.
할머님의 손때부터 어머님의
눈물까지 서려 있던
그 마루에서
호야를 닦던 제 모습이 되살아났습니다.
따뜻한 물을 세숫대야에 담아
밤새 떠안은
끄름을 닦아 내는 것은 제몫이었지요.
매섭게 추운 겨울에는 대야에 손이 달라붙어
시린 손이 때로는 호야를 깨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막내였던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형제 중에 유달리 어머님을 사랑했던 저로서는
그것이
아마 힘드셔 했던 어머님을 사랑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당신은 꽃을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꽃을 심고 가꾸며
꽃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장독대 옆에는 당신께서 가꾸시던 꽃밭이 있었습니다.
분꽃, 채송화, 백일홍, 맨드라미, 봉숭아, 코스모스 …
그리고 울타리 보다 큰 키의 해바라기가 마루 쪽을 응시하고 …
부추와 꽈리도 장독대를 감싸고 있었는데
이 모두를 당신께서는
소중하게 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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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눈이 오는 날이면
40년 전,
눈에 파묻히는 고향의 겨울 속으로 상상의 여행을 하곤 합니다.
하얀 세상
…
밤새도록 내리는 눈은
마음의 그을음을 털어내는 순수의 전령이었습니다.
어둠 위에 하얀 눈이 덮이는 밤에는
모든
소리가 눈 속에 파묻히고
설레임만 가만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몇 번이고
문틈으로 함박눈 쌓이는 소리 들릴까
문설주에
귀 기울이는 밤이었습니다.
어머님 눈가에 졸음이 가득하고
호야불도 깜박깜박
밤이 깊어
조용히 숨죽이며 마당에 나가면
하얀 세상
꼬리 꼬리 물으며 어둠 속에 내리는 함박눈
그 끝을 찾아 멀리멀리 마음을 빼앗기고
어느덧 설레이던 마음
눈이 되어 나를 감싸주었습니다.
어쩌다
많은 눈이 올라치면
아침의 마당은 은세계였습니다.
장독대의 크고 작은 항아리의 높이는 같아지고
죽데기
울타리 끝에는
높다랗게 많은 눈이 간신히 얹혀있었습니다.
눈의 나라,
은빛 세계 속에 나오는
동화 속 주인공의 들뜬
마음처럼
눈은 아침 햇살에 반짝여
눈 시린 새하얀 세상을 가슴에 안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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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知天命이라는 제 나이
지금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 서면
그리움에 가슴 조이며
함박눈 내리던 고향의 집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 덮인 장독대,
눈싸움과 눈사람이 그려진 겨울 방학책,
마을
앞에 있는 강에서 즐기던 썰매,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 …
아직도 저의 마음을 잡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항상
그리워만 했고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 집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당신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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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 있는 광
곡식, 아이스케키를 만들던 도구, 독, 항아리 ...
이내 40년 묵은 냄새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런 광인데 …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얼어보지 않은 것이 평생 한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뒷곁에
있던 굴뚝은 없었지만
버얼건 진흙, 돌맹이 쌓은 굴뚝
갈라진 틈으로 몽글몽글 삐져나오던
연기의 매캐한 추억의 냄새가 저를
한동안 붙잡았습니다.
옛날
뒷문으로 나서면 배나무도, 정낭도, 돼지우리도, 밭도 있었는데 …
세월이 그것들을 삼켰습니다.
어릴 때 크다고 느낀 안방인데
오늘 보고 있는 안방은 너무도 작습니다.
자식들에게 양보하셨던 아랫목도 그대로였고
강냉이 광박을 숨겼던 벽장도 그대로였습니다.
화로가 있던 침침한 방
그 화로에 된장국을 데워 찬밥을 데워 주시던
당신의 모습이 저의 눈시울을 달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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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오늘 진다리에 사는 친구 집에서
그 옛날 화롯가에서 데워 먹던
그런 씨래기 된장국을
먹었습니다.
그 진다리는
당신께서 땔나무를 하러 늘 다니셨던 곳입니다.
형과 나는 구슬치기나 자치기를 하다가도
어둠이 내리면
구루마를 빌려 나무 마중을 나갔지요.
땅거미 지고
모든 것을 어둠이 삼키는 때,
짊어 지셨던
삶의 무게만큼이나 버거운
몇 단의 나무와 함께 나타난
어머님의 모습,
어둠 속이지만 어머님의 주름진 얼굴을 훔쳐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고개라지만
어둠살이 내린 양운이 고개(?)를
종일토록 당신께서 하신 나무를 싣고
허기진
사람 셋이 힘들게 넘을 때면
어눅한 어둠까지 고된 삶을 짓눌렀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자식을 위한 헌신적인 희생 때문에 말입니다.
어머니의 희생을 먹고 자란 자식들
어리석게도 철이 들어서야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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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오늘 저는 어머님을 만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님이 그립습니다.
'어 머 님'- 김중순 작사 /
고봉산
작곡
노래 남진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백날을 하루같이 이못난 자식위해
손발이
금이가고
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
몸 만은 떠나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번
모시리라
어머님 어젯밤 꿈엔 너무나 늙으셨어요
그 정성 눈물속에 세월이 흘렀건만
웃음을
모르시고
검은머리 희어지신 어머님
몸 만은 떠나있어도
잊으리까 잊으오리까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번
모시리라
첫댓글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담아주셨군요 그리운 모습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