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바다에 대한 규제가 많아지는 것이 역설적으로 한국에는 큰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에 대응할 해법이 조선과 정보통신기술(ICT)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들에 있거든요. 발 빠르게 움직이면 한국은 1000조원이 넘는 미래 시장을 선점할 수 있습니다.”
김영석(57) 해양수산부 장관은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저성장에 빠진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영석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드문 해당 분야 정통 관료 출신이다. 정치인이나 기획재정부 출신 등이 장관을 맡은 대다수 부처와 달리 해수부는 해양수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김 장관이 이끌고 있다. 김 장관은 천안고와 경북대 행정학과를 나와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했고 해양정책국장,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사무차장, 대통령실 해양수산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김 장관은 인터뷰 내내 해양수산 분야에서 신산업이 열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이 해운업과 수산업 위주의 전통적인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양식, 관광, 서비스 등에서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고도화돼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바다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은 작년에 사하라 사막에서 새우 양식에 성공하는가 하면, 뱀장어와 연어 등 국민이 많이 소비하는 어종의 양식에 잇달아 성공했다. 낯설기만 하던 크루즈 관광객 수는 200만명을 눈앞에 뒀고, 요트 등을 관리하는 마리나 서비스업에서는 창업자가 여럿 나오기 시작하며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김 장관은 특히 해양 규제에 대응하는 신시장인 선박평형수 처리와 e-내비게이션(e-navigation·선박용 자동항법장치) 분야에서 1000조원 이상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 장관은 친절한 선생님 같았다. 한 가지씩 해양수산 분야 신산업에 대해 소개할 때마다 구어체로 알기 쉽게 설명했고, 많은 숫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해양수산 분야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잠재력에 비해 덜 알려진 바다에 대해 알리고 싶어 애쓰는 모습이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위기를 맞은 해운업에 대해 설명할 때는 안경을 벗고 메모지에 연필로 항로를 그려가며 한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장관은 자신이 천성이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해 공직생활 내내 죽어라 매달리는 방식으로 일해왔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가 표현한 것처럼 ‘일 중독자’이기만 한 것은 아닌 듯했다. 주말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정말 재미있게 본다고 했고, 최신 영화는 밤 늦게 유료방송으로라도 꼭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음은 김 장관과의 일문일답.
바다가 한국 경제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전통적으로 바다 산업이라고 하면 해운과 수산이 꼽혔다. 수출이 성장동력인 한국에서 해외로 내보내는 상품의 대부분을 바다로 옮길 만큼 국제 물류는 해운이 주도하고 있다. 또 한국은 1인당 연간 소비량이 세계 1위인 수산물 소비국이다. 연안에서의 고기잡이나 양식부터 태평양 같은 먼 바다로 가는 원양어업까지 포괄한 수산업이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며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규모도 이제 상당히 커졌다. 공무원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한국의 선대는 1000만t도 안 되는 규모였지만 지금은 8500만t까지 올라가 세계 5위 규모를 자랑한다. 어업 생산량이나 양식업 규모도 세계 10위권이다. 주목할 것은 바다가 더 큰 경제적 미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무수히 많은 바다 신산업이 새로 생기고,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눈에 띄는 신산업으로 어떤 것이 있나.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로 생기는 신산업들이다. 대표적으로 환경규제와 안전규제로 생기는 기회들을 꼽을수 있다. IMO는 선박평형수(船舶平衡水) 처리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선박평형수는 배의 균형을 잡고 운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배에 넣었다 뺐다 하는 바닷물이다. 아프리카에서 채운 바닷물을 한국 연안에 버리면 새로운 어종이 갑자기 섞이면서 생태계가 교란된다. IMO는 이런 것을 막기 위해 선박평형수 정화 처리 시설을 의무화할 예정인데, 그 시장 규모가 앞으로 5년 동안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 강국인 한국이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 큰 기대를 받는 것이 e-내비게이션 분야다. 배를 움직이는 조타실이 있는 브리지에 올라가 보면 사방에 통신, 항행장비가 정말 많이 들어 있다. IMO는 자동운항 등 안전운항과 관련된 이런 장비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기준을 만들고 있다. 2021년쯤이면 시행될 전망이다. 해양 사고의 82%를 차지하는 인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자는 취지다. e-내비게이션 장착이 법제화되면 10년 동안 직접 시장만 300조원, 서비스 등 간접 시장까지 합하면 1200조원의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ICT 강국이지 않은가. 그동안 스웨덴과 덴마크가 이 시장을 주도했는데 한국이 새로운 규제에 미리 준비한다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국제기구의 규제들이 한국에 큰 기회가 되는 셈이다.”
전부 배와 관련된 것들인데, 수산 분야는 어떤가.
“양식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세상은 이미 어로어획의 시대에서 양식의 시대로 넘어가 있다. 양식 생산량은 작년에 178만t 규모였다. 어업자원 고갈과 기후변화로 어획량이 100만t을 넘지 못하는 것과 비교할 때 양식이 고기잡이의 두 배 이상 규모가 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양식하지 않는 어종이 무궁무진하다. 한국은 작년에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양식에 성공했고 새우, 뱀장어, 연어, 참다랑어 등의 양식 기술도 개발했다. 새우 양식은 수입을 대체하기도 바쁘다. 연간 900억원어치를 수입하는 연어는 작년 상업생산 규모가 100t이었는데 올해는 500t이 된다. 세계 뱀장어 종자 시장은 연간 4조원에 달한다. 양식 분야에 대규모 자본과 벤처 투자가 들어오도록 여건을 조성할 예정이다. 연안 양식을 넘어 대형 양식에도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양식 기업인 마린하베스트는 매출이 연 4조원을 넘는다. 노르웨이는 연간 7조원 이상 규모의 수산물을 수출한다. 이런 기업을 만들려고 하는데 다행히 한국의 양식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수산업에도 대기업을 유치한다는 것인가.
“기존에는 수산인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많이 했다. 바닥식 패류, 연안에서 하는 전복과 김처럼 일반 어민이 주로 하는 분야는 여전히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막대한 초기자본과 첨단기술이 접목돼야 하는 분야의 규제는 과감히 풀려고 한다. 작년 12월에 양식 산업 발전법을 발의했다. 기존에 한 개 기업에 20ha(헥타르)로 제한했던 규모를 60ha까지 늘리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해조류의 경우에도 비식용해조류 양식은 대규모 자본에 개방하려고 한다.”
서비스업 분야도 유망하다고 했는데 무엇인가.
“크루즈가 대표적이다. 작년에 195만명이 크루즈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올해는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크루즈가 들어오면 그것과 관계된 다양한 산업이 함께 성장한다. 관광객 1인당 평균 지출액이 102만원임을 감안하면 경제적 효과가 2조원이 넘는다. 일자리도 1700개가 새로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또 주목할 분야는 마리나 서비스업이다. 요트 등을 빌려주고 보관하는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푼 결과, 작년에만 69개 회사가 창업했다. 올해는 140개 이상 창업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여기서도 일자리 1000개가 새로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해양 플랜트 서비스 산업 육성과 항만 개발도 준비하고 있다. 해양 플랜트 건조 이후의 운영, 유지 보수, 해체 등을 담당하는 산업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정부 협력 체계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항만 개발과 재개발에는 정부예산 1조4000억원 등 총 3조7000억원이 올해 투입된다.”
한진해운이 끝내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은 수출입 물동량이 세계적으로도 많은 나라다. 환적 물동량도 많다. 부산항은 컨테이너 기준으로 세계 3위의 환적 화물항이다. 이렇게 많은 물동량을 갖고 있으면 이를 스스로 처리할 국적 선사가 꼭 있어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 중국, 일본도 다 갖고 있다. 미국은 예외다. 미국은 물동량이 워낙 많아 선사들이 오히려 미국에 의존한다. 한국의 물동량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30% 정도를 담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좀 더 큰 한진해운이 무너진 것이다. 한진해운을 가장 많이 활용한 건 한국과 미국, 중국 화주들이었다. 수년 동안 장기 수송 계약을 맺고 있었다. 국적 선사가 없으면 한국 화주들이 다른 나라 선박을 이용할 때 불리해진다. 국적 선사가 뒤에 있어야 협상도 유리해진다. 또 국적 선사가 활발해야 항만이 동반 성장한다. 선사가 속한 얼라이언스의 덕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 축이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정부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1조원을 들여 경쟁력이 약한 원양선사의 배를 인수해 운영할 한국선박회사를 설립하고, 초대형 고효율 컨테이너선을 확보하는 것을 돕기 위해 2조6000억원 규모의 선박신조지원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밖에 캠코의 선박펀드를 확대하는 등 총 6조5000억원의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한진해운 같은 대형 선사를 꼭 다시 키워야 한다.”
경제에 가장 보탬이 될 것을 꼽으라면 무엇인가.
“e-내비게이션과 양식이다. 그 다음으로 크루즈와 마리나가 우리에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블루칩 같은 분야다. 크루즈는 후발 주자지만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동북아 크루즈 시장의 성장 속도를 볼 때 기대할 만하다.”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여수엑스포를 유치한 일이다. 직원들이 다 같이 목숨 걸고 했다. 해양개발과장을 하면서 이어도 기지를 구축하고 북극 다산 기지를 개소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선배고 후배고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비주류 출신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혈연이나 지연, 학연보다는 이런 사람을 밀어준다. 천성이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해 공직생활 내내 죽어라 매달리는 방식으로 일해서 그런 것 같다.”
쉴 때는 무엇을 하나.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토요일 오전에는 꼭 테니스를 친다. 테니스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다. 그리고 유치할지 모르겠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 본다. 정말 재미 있다. 짬이 나면 영화도 보는데 시간이 없어 밤 늦게 유료방송을 통해 보는 경우가 많다. 유행을 알고 젊은이들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나. 책은 몇 권을 동시에 읽는 방식으로 읽는다. 관사에서 읽는 책, 차에서 읽는 책 등을 따로 놓고 틈날 때 본다.”
plus point
어촌 개발 위한 도시민 귀어(歸漁) 정책
지난해 1인당 최대 3억5000만원 지원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관심 있게 추진하는 또 하나의 사업은 어촌 개발이다. 귀어인을 늘려 어촌을 활성화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어촌으로 이주하는 도시민 268명을 선정해 1인당 최대 3억5000만원을 지원했다. 어업에 종사하거나 은퇴 후 어촌에서 노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지면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수산업 발전도 동시에 노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창업이나 정착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사업을 하지 않는 사람은 주택자금으로 쓸 수도 있다.
작년에 어촌에서 창업하려는 사람 중에서는 어선어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176명(65.7%)으로 가장 많았고, 양식어업(68명), 어촌관광·레저(7명), 수산종묘(7명) 등이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40대가 98명(36.6%)으로 가장 많았고, 50대(85명), 30대 이하(69명), 60대 이상(16명)순으로 지원자가 많았다. 은퇴 후 어촌으로 돌아가기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어촌에서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2015년 기준 어가 소득은 가구당 4390만원으로 전년(4101만원)보다 7% 증가했다. 이 중 어업 소득 증가분이 전체 증가분의 73%에 달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양식어가의 경우 평균소득이 6139만원으로 이미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5780만원)을 앞지른 상황이다.
김 장관은 특히 젊은 인력의 어촌 유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젊은이들이 어촌에서 인생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 수산계 학교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수산계 고교생 채용을 늘리는 정책도 추진할 예정이다.
어촌을 관광 명소로 키우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10대 명품어촌테마마을을 조성해 어업 외 소득도 늘리겠다는 것. 역사와 문화가 있는 어촌, 레저가 있는 어촌, 휴식이 있는 어촌 등이 주요 테마다. 김 장관은 “현재 도시근로자 소득의 76%인 어가소득을 2020년까지 80% 수준으로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