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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방세계 >
내속에 너 있다 |
글 | 임현리
중국 우환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이 21대 국회의원 총선으로 뜨거운 4월 현재, 세계 많은 나라들을 휩쓸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알고 동경하던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대다수 나라들의 행정력이 쑥대밭이 되고 우왕좌왕하며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나날이 증가하는 사망자 수는 연일 매스컴에 빅뉴스로 올라오고 있다. 각국이 공항을 닫고, 국경을 폐쇄하고, 학교는 개학일을 전망할 수 없는 방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을 통제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두기를 사회 운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처럼 변함없던 삶의 일상들, 학교를 가고, 직장을 가고, 일터로 가던 풍경이 달라지고,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체험을 전 인류가 함께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학교들이 개학을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 자택 온라인 수업으로 개강을 했다. 사회 전체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삶이 불 꺼진 무대처럼 고요해지고 각자 개인적인 소소한 일상 안으로 축소되었다.
찬란한 발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21세기 인류 문명과 우리 스스로 가장 뛰어난 존재로 알던 ‘인간’ 존재에 대해 많은 의문이 올라온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 지구적인 큰 문제에 인류는 우리가 믿고 살아온 만큼, 대단한 기술력과 완벽한 대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걸까? 전 지구적 재난에 대한 방어 기술과 완벽한 대처는 누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고, 누가 이 큰 사태의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붓다의 진리가 담긴 수많은 경전과 수행자와 불교는 이 지구적 재난과 내 삶과 어떤 연결이 있는가?
20대에 작은 서점에 점원이었던 나는. 아침마다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하면서 서점 사방 벽 가득 꽂힌 책에 먼지를 털다 마음이 끌리는 제목이 보이면 그 책을 늘 뽑아 살펴봤다. 이 반복된 일상의 일에서, 나에게 쌓인 것은 오히려 부족함, 열등감이었다. 한글로 된 문장인데 모르겠다. “무슨 뜻이지? 뭐라고 한 거야”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책들 앞에 “아! 나는 너무 모르는 게 많구나” 무슨 전문, 무슨 전공, 무슨 대학, 무슨 박사, 무슨 연구소장......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 수두룩 많고, 난 작고, 잘 모르고......
자동차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굴러가는지 모르고 그냥 탄다. 전기도 내 집까지 어떻게 오는지 굳이 알지 않아도 냉장고도 에어컨도 잘만 돌아간다. “수세식 변기는 아유, 알려고 하지 마. 궁금하지도 마, 사는 집의 각종 건축자재들...... 아유, 그걸 골치 아프게 왜 궁금해 해. 궁금한 게 웃기고, 특이한 거야. 먹는 것은 마트나 시장가면 되고, 요리하는 식재료들 겹겹이 포장한 비닐류와 플라스틱 잘 분리 배출이나 하면 되지. ‘쓰레기’ 그거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되는 거고. 각종 포장 용기, 포장 병들이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되는지 알 필요 없어. 입는 것은 판매장을 거쳐 나에게로 오고, TV 속에 약소국의 안타까운 뉴스도, 볼 뿐, 즐길 뿐.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 이렇게 쌓인 내 주변의 많은 모르는 것들,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들이, 때론 알기를 바라지 않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 잘 모르는 것들 속에 사는 게 본래부터 그랬던 삶 같이 하루하루 이어진다.
보통사람인 나는 보통 수준으로 궁금하다. 붓다의 가르침은 누굴 위한 걸까? 수다원을 아라한으로 만들고, 아라한을 붓다로 만들기 위해 있다고 말 할 수는 없는데...... 코로나가 만연한 지금 우리 세상에 당신은 혹시 붓다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 불교 국가에 아마 붓다 몇 명쯤은 있지 않을까? 아라한도 수다원도 여러 명은 있을 것이다. 원하기만 하면 책에, 인터넷에, 불교 정보와 경전말씀으로 지천이다. 우리나라, 티벳, 미국,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세계 곳곳에 불교 사찰이 있고, 이젠 현대 과학도 불교를 증명하는 수준으로 가고 있는데, 붓다의 진리에 접근된 꽤 많은 수다원과 아라한이 있을 터이고, 모든 가르침을 깨우치신 붓다도 어쩌면 소수일지언정, 세계 곳곳에 분명 살고는 있을 텐데, 코로나 사태로 집콕, 방콕하고 사는 작은 내 삶과 불교가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철학을 모른다고, 경전을 못 배웠다고, 대학을 안 갔다고, 좀 무식하다고 삶이 멈추나. 형이상학, 형이하학 나누는데 골치 아프고, 신경 끄고 그냥 살어. 그렇게 청년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아, 삶은 더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이디어 고갈, 어글랑노글랑 책략...... 능력 부족, 화두처럼 딱 걸려 버린 삶의 벽이 질문의 벽이 되어, 산다는 것은 그저 천천히 죽어가는 일처럼 보였다. 흐르기를 멈춘 썩은 물 같은 나에게, 인간도 사는 것도, 너무도 시시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좌절 되었고 침체되고 침몰하였다. 나는 내가 얼마나 벼랑 끝에 서 있는지(를) 느꼈다. 인내는 작아져 이승과 저승이 하루 속에 왔다 갔다 했다. 아마 내 삶이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살던 나였더라면, 절대로 할 수 없고, 하지 않았을 낭비이며 미친 선택, 큰돈을 학비로 들이고, 많은 무리수를 두면서, 동국대학교에 입학하고, 미친 듯이 대학을 다녔다. 어쩌면 그곳에 내가 찾는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으로, 나를 달래고 일으키고 살아낸 몇 년 동안, 경전을 배우고 공부를 하면서 나는 내가 알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보았다. 무아(無我)라니, 무상(無常)이라니, 인과(因果)라고......중관학, 유식,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법성게, 선(禪)......
그 말씀들을 배우고 들어,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내가 되었지만, 알게 된 나와 모르던 나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불교 공부 전에는 불교가 이 세상 큰 재난과 재앙적 문제에, 왜 좋은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가 하고 조르던 마음이, 이제는 야, 부처님 말씀 아는 너는 뭐하냐? 왜 이러냐? 이게 뭐냐? 사사건건 나를 향해서 닥달하는 골치 아픈 내가 생겼다. 삶과 이론의 괴리, 나와 삶과 경전의 말씀들이 나란히 보조를 맞추어 잘 걷지 못하고,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책 따로, 현실 따로, 따로따로 가다가, 다시 왼발 오른발 바짝 의식하며 또 조심조심 걷다가, 아차차하면 짝 다리를 놓고 있는 나. 하지만 나처럼 뭔가를 찾아가고 쫓아가는 아주 열심인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곧 답이 바로 앞에 있는 듯 확고하고 밝았다. 여전히 나만 뭔가 많이 모자라고 부족하고...... 그들은 그들 세상에서 언제나 밝고 환하고, 나는 여전히 어떻게 굴러가는지 통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이것을 타는 게 우리에게 진짜 좋은지, 아닌지도 모르는 자동차를 타고, 몰고 다니며, 어떻게 키워서 내 앞에 온 것인지 모르는 먹거리를 먹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쓰레기를 만들며, 온통 모르는 물질 환경들 속에서 습관처럼 살고, 에라이, 모르겠다. 내던지고 살고, 살긴 살았다.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졌다. 우울한 아침, 새로 당선된 그 대통령을 따라 달라질 세상에 대한 예견으로 걱정을 올리던 나는 내 속에서 나에게 심하게 욕을 했다. “나는 뭐 했어. 내가 바쁘면 그들도 바쁘고, 내가 하기 싫은 건 그들도 더 하기 싫겠지. 그래도 난 조금 착한 측에 들잖아? 세상 다수가 나보다 더 많이 착하라는 거야. 내가 신경 안 쓰고, 내 세상 속에서만 살았는데, 세상일, 그 골치 아픈 걸, 그들은 왜 신경을 쓰겠니? 주인 없는 배가 산으로 간들, 외면하며 대강 얹혀 살아왔던 세상을, 잘못 간다 만다 하고 말하고 걱정하는 거, 정말 웃기는 거잖아? 난 말할 자격이 없어. 이 세상이 망하든지 말든지 입도 떼지 말고, 고개도 들지 마라.” 혼자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어이없게 침몰해 300여 명이 사망했다. 해경과 정부는, 분초를 다투는데, 아이들은 빨리 구하지 않고 말만 많았다. 그 목소리들의 차분함이라니. 업무적 접근이라니. 기가 막히고 환장을 하겠는데, 느긋하게 업무적으로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연극 같고, 거짓말 같이, 정말 코메디처럼 다 죽었다. 왜 사고가 났는지, 왜 못 구했는지, 물을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정확하고 속 시원한 답을 해 주는 곳도 없었다. 매스컴은 이런 저런 추측들을 했지만, 그건 추측일 뿐, 정확한 사건 경위와 내막은, ‘조사하고 있다’ ‘조사 중이다’로 시간이 가고, 해가 갔다. 4대강 비리에 대한 의혹과 자원 외교의 사기 의혹이 연일 오르내리고, 자살 당한 듯한 의혹의 사망 뉴스가 떠돌고, 세상은 점점 흉흉해지더니, 아이들 입에서 드디어 “공부해서 뭐해. 공금 회령하고 감방 가서 몇 년 썩고 나오지. 나와서 그 돈으로 잘 먹고 잘 살면 되잖아. ‘청부살인’, 한 5억 주면...... 난 한다. 한탕...... 까짓거. 감방, 몇 년 가지. 일해서 5억, 10억 언제, 어떻게 벌어...... ” 경기는 나날이 바닥을 치고 임대가 나붙는 가게들은 늘어나고, 출근길 도시는 썰렁하고 우울했다. 헬조선이 피부로 일상처럼 느껴지던 세상이었다.
이 헬조선 누구 책임이야? 아니 책임이 문제가 아니라, 이 헬조선은, 앞으로 어디로 가지. 아이들이 300명이나 죽어도 모르쇠로 밀고 가는 나라, 법이 오작동하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음험한 세상, 이 심각한 문제 앞에 난 제 정신이 들었다. “나야 벌써 오십이니, 살다 가면 되지만 내 아이들이 살 세상인데...... 어쩌지...... 누구에게 이 세상을 구하라 할 거야? 나도 하기 싫어했잖아. 다 맡겼잖아. 나는 안하고, 나는 없었는데 너는 바보겠니? 너도 안하지. 왜 움직이겠어. 나도 너도 손 놓은 나라일, 손 놓은 대로 지금 막가는 거잖아. 우째 되긴, 헬조선 되지, ‘헬조선’. 대한민국 호에서 니 새끼도 죽고, 내 새끼도 죽고 하겠지......”
“이게 나라냐? 나라가 이렇게 되면 안 되지. 그래...... ! 잘못 가는 이 헬 조선. 이 세상은 내 책임이야. 너는 나서 준다면 고마운 거고. 너를 믿고, 나는 뒤로 쳐지고, 꽁지 뺐는데, 내가 빠진, 잘못 간 세상 일, 너의 책임이 아니고, 내 책임이 맞다.” 나는 붓다가 되기 전에 엄마라도 되자고, ‘세월호’ 이후에는 아주 정치적인 사람으로 태어났다. 적극적으로 정치 뉴스를 여기저기 챙겨보고, 서울 광장 집회도 열일을 제치고 상주에서 서울까지 오르내리며, 정치에 신경을 늘 두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세상일에 책임을 느끼고 나섰던 세상엔, 너도 나와서 광장을 가득 메우고, 촛불을 밝히고, 우리는 외치고 외쳐서 국회를 움직이고, 탄핵 재판을 열어, 자격 없는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투표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그 모든 일들에 나도 진심으로 열심히 앞장섰고, 지치지도 않고 고마운, 훌륭한 너들은 더 열심히 광장에 있었다.
그런데 새로 대통령은 바꾸었지만, 해결하라는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차곡차곡 쌓인 채 국회에서, 미적미적 꼼짝을 안한다. 문재인 정부 3년을 보내며, 희망은 다시 멈췄고, 이래서 그렇고, 저래서 그렇고...... 참고, 참고 마음에서 사리가 생겼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 적어도 나는 2020년 4월 15일만 손꼽아 기다렸다. 내가 원하고 원했던 것을, 나뿐만 아니라 너도 원해서, 우리는 진짜로, 우리가 원하던 대로 기적같이, 2020년 4월 15일 민주 정부에게, 여당 단독, 180석과 제1당을 만들어주었다. 코로나 전염사태의 비상 정국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는 투표장으로, 투표장으로 가서, 우리 책임을 찍었다. “일해라 문 정부. 그동안 못한 일, 처박힌 문제들, 똑바로 해결해라, 일해라 국회, 정부를 밀어줘라.”
나보다 더 지혜로운 너였던 우리는, 헬조선을 절망에서 건져 올려, 간절히, 간절히 어렵게 견인해서, 희망 앞에 세웠다. ‘세월호’부터 21대 국회 선거까지, 나는 세상일과 무관하지 않았고, 광장에서 나만큼 열심인 너를 확인했다. 우리가 지지하고 미는 진짜 일하는 정부는, 코로나 사태, 대응을 보니, 세계에서도, 가장 일을 잘하고 있다. 지혜로운 집단지성, 너의 덕분이다. 대한민국, 우리는 넘치는 아이디어와 간절함과 실력까지 있다. 나와 네가 만든 대한민국이 헬조선이 되고, 세계 일류국가가 되는 것, 내 한 마음 안에 있었다.
나는 너는 우리는 진정 무엇이 되고 싶은 거냐?
세상아, 붓다는 이 세상을 어떤 세상이 되길 바랄까?
전도몽상 된 굴절된 작은 눈과 마음을 놓아라
허상을 보지 말고, 똑바로 봐라
세상의 일이 내 마음의 바깥에 있는 일이 아니고, 세계의 일이 내 나라, 내 가정, 나의 속에서 겪어내는 나의 일과 따로 있지 않다. 세계가 얼마나 깨어나야 지구에 평온이 올까? 인류가 머리로 아는 이론과 실제 체험하고 사는 삶의 거리,..... 아마 세계인들이 불교의 자비송( 랑리 탕빠 기도문)을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되면...... 또 통렌 수행...... 허허벌판인 척박한 나라 찬바람 부는 언덕에, 작은 수행 천막 속에서 수행으로 맑혀진 자신속의 밝은 에너지를, 어머니인 세상 속으로 보내고, 세상의 탁한 에너지들을 자신의 가슴속으로 불러들여, 맑히는 이 수행승들이, 이 수행이, 세계 사람들 눈에, 마음에, 미친 짓으로 보이지 않고, 감동으로 무릎을 꿇고 경배를 올리게 되는 그때쯤...... ‘그 시간’, 까마득히 멀까? 바로 코앞일까? 그 시간, 나와 너의 마음 안에서 답할 것이다.
앞으로 인도와 중국이 교역을 이유로 가까워지면 티벳 망명 정부의 앞날은 알 수가 없다고들 한다...... 가슴이 아프다. 티벳에 불교가 없었다면, 그 불모의 땅에 사람들은 무엇으로, 그렇게 깊고 자애로운, 맑은 얼굴을 하고, 소박한 삶, 따뜻한 품성들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티벳 불교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보물인지 알아보는 그날이, 제발 지구 종말보다 먼저 오기를 서원한다. 불교 이론은 많지만 이론을 실체험으로 전승 시킬 수 있는 능력은, 티벳 불교가 간직한 고귀한 가치다. 티벳이 처한 정치적 어려움으로, 그 전승이 끊길 수 있는 가능성을 우려하고 염려하시는, 아남 툽텐 린포체의 걱정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세계적 큰 재난을 바라보는 개개인의 안목이 번쩍 깨어나서, 종말로 가고 있다고 말해지는, 이 전 지구적 환경문제, 약소국의 정치적 문제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고 있는 위기와 재난을 통찰하는 안목이 나와 너 속에 속히 열리길 서원한다.
붓다가, 예수가, 이 땅에 왔든지, 안 왔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인과(因果)의 법칙으로, 작동되는 세상 속에 산다. 이 지구적 재난의 위기는 내가 원인이고 재난은 결과이다. 내가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지구의 문제는 나의 책임이다. 변기 속 오물이 물과 만나 어디로 가는지. 플라스틱, 비닐, 병, 지구가 제 몸으로 삭혀낼 수 없는 이 끊임없이 배출하는 쓰레기는 어디서 어떻게 되는지. 내가 눈 감아버리고 닫아버린 저 일들은, 어디로 갈 것인지...... 우리에게는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해결을 안하는 거다. 우리가 내 나라의 정부이고, 세계이며, 인류이고 지구다. 내가 원인이고 지구는, 세계는, 결과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내 마음에 다시 읽히고 다시 살아오는 붓다의 말씀들, 작은 마당가, 작은 꽃밭, 포로롱 짹짹이는 새소리, 눈부신 아침햇살 아래 웃는 꽃들의 투명한 미소를 당신에게 부친다. 세상은 너를 위해 맑다.
法性偈 - 법의 성품을 노래 함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붓다의 성품과 법의 마음 작용은 세상과 별개가 아니고 한 근원이라네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붓다의 마음은 본래적 근원의 고요함에서 한시도 한 발짝도 움직여 사라진 적이 없네
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어쩌고 저쩌고 이렇다 저렇다 생각이 끊어진 고요한 통찰의 자리 주관도 객관도 없는 텅 비운 둘 아닌 마음은
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
내가 임해 움직인 속에서 증명되고 내 속에서 비로소 알아질 일이지 지식으로 알아지는 경계가 아니네
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
진실한 성품은 깊고 깊고 미묘하고 섬세하여
不守自性隨綠成 불수자성수연성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는 연기자성일뿐 독자적인 자성과 성품이 있어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니
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나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나도 있으니
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다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작고 작은 티끌 같은 각각의 일 그 한가지 일의 징조 속에 세상 전체가 다 끌려가 담기니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업쳐 겹쳐 벌어지고 나타나고 일어난 일 또한 이와 같다
無量遠劫卽一念 무량원겁즉일념
아득한 옛날 옛적 먹은 한 마음 그 한 생각이 지금 문득 선택 앞에 한 생각이요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
지금 문득 올리는 한 생각이 아득한 원 겁 중에 했던 한 생각이 원인으로 흘러 온 생각이네
九世十世互相卽 구세십세호상즉
일의 과정 속에 결과가 서로 서로 같이 있어 과정이 결과이고 결과가 과정과 다르지가 않다네
仍不雜亂隔別成 잉불잡란격별성
복잡하고 어지러운 일이 원인과 별개로 해서 결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니
初發心是便正覺 초발심시변정각
처음 먹은 바른 한 생각 원인이 바른 정각의 결과로 오니
生死涅槃常共和 생사열반상공화살고
죽고 열반이 항상 처음 먹는 내 한 생각과 한 마음에 동시에 작용하니
理事冥然無分別 이사명연무분별
일을 함에 원리 맞고 틀리다는 소인적인 사적 안목의 분별을 놓고
十佛普賢大人境 시불보현대인경
원만 세계 본원붓다의 넓고 넓어 경계 없이 어진 대인의 경지
能仁诲印三昧中 능인해인삼매중
곰곰이 고요히 맑혀 닿는 근원 바다의 그 마음 그 경지의 한 조각
繁岀如意不思議 번출여의부사의
번개 치듯 문득 떠오르는 한 생각 그 생각 그 뜻에 불가사의함은
雨寶益生滿虛空 우보익생만허공
보배의 비가 전 허공에서 내려 유익함으로 만 생명을 살리듯衆生隨器得利益 중생수기득이익
중생의 제 그릇 인연 따라 유익을 얻게 하니
是故行者還本際 시공행자환본제
이런고로 수행자는 내 마음 자리를 잘 살펴서 근원의 경지로 돌려놓아라
叵息妄想必不得 파식망상필부득
망상을 반드시 버리지 않으면 호흡이 어렵다
無綠善巧捉如意 무연선교착여의망상 연을 놓고 삼매 속 교묘히 선하게 잡은 한 생각이 의중이 되어
歸家隨分得資糧 귀가수분득자량
그 생각 따라 마음 따라 제 능력만큼 재물과 양식을 얻어 집으로 돌아가네
以陀羅尼無盡寶 이다라니무진보
이 다라니는 다함이 없는 보물로
莊嚴法界實寶殿 장엄법계실보전
모든 세상 마음 법 세계의 실제 하는 보물 궁전이다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치우침 없는 평정의 자리가 궁극 근원의 실제 자리이네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원겁에서 와 닿는 변함 없는 이 자리 그 이름을 붓다라 하네.
필자 임현리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에서 선학을 전공하였고 현재는 대학원
에서 불교상담학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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