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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간만에 책을 읽었습니다..
얼마전에 박스로 구입한 독일 맥주 웨팅거 골드를 와인잔에 따라 한모금씩 마시면서.....
오래전에 윗분에게 선물받은 책을...오늘에서야 읽고 느낀바이지만....
새삼 징기스칸...이란 인물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몽골군 4만명으로...몽골인구 100-200만명으로 수억의 아시아 인구와 유럽인구를
복종시킨 신화적인 인물..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1000년내 역사상 최고의 역활을 한 인물로 징기스칸을 선발했다.
약 800년전에 21세기를 살다간 인물로..징기스칸이란 인물을 알게되었다...
고인물은 썩는다. 그러나 흐른물은 영원히 발전한다는 ..진리를 일께운 인물...
ceo라면 일어볼만한 책이다..
특히 감명깊었던 핵심 내용은...
신기술 개발
조직의 시스템화
수평적 대인관계
스피드....
기습...
정보...
오늘날 사회는 조직에 따른 관료주의로 변화하면서 부패등이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데...
고대로 올라가보면 농경문화의 정착에 따른 기득권 지키지 문화가 파생시킨 최대의 문제점이다.
이런 성을 쌓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와 피지배관계가 상하관계로 발전하고 관료화시겨왔던 것이다.
성을 쌓고 내것을 지키는 울타리 문화는 안정적인것을 추구하고 그 조직에 순응하는 한 먹고살수 있는 기본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면 관료주의에 따른 조직의 비효율성과 상하관계적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유목문화는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이다. 그러나 단점은 안정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과거 역사를 보면 농경문화가 유목문화를 이겨본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유목문화에 의해 유린되었다.
농경문화가 거대한 힘을 키워 유목문화를 공격했으나 결코 성공한적이 없었다.
지키기 위한 성은 반드시 무너진다..그리고 멈추는 순간 죽는 다고 유목민족들의 위대한 명장들은 말했다.
흐르는 물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치와 상통한다.
그들은 시대와 상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다.
유명한 아틸라부터 해서 징기스칸등에 이르기따지 유목민족이 서양을 공포에 떨게 했던 사료는 너무나 많다.
우리가 오랑케로 불러왔던 유목문화...그러나 알고 보니 결코 오랑케가 아니었다...
파괴적 문화인것 같으나
결론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문화이고....동서양의 문화의 교통을 시킨 문화이고....
오늘날 경쟁사회속에 유목문화의 시스템이 필요할 정도로 유목문화가 인류에 남긴 업적은 위대하다.
특히 그들 문화속에 잠재한 수평적 대인관계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이고 창의적이었다..
이런 관계속에 믿고 신뢰하는 대인관계가 형성되었고 단결을 통해 그들은 최단 시간내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오늘날 외국여행을 해보면 한국인을 믿지 말라고 한다..외국인보다 오히려 한국인이 속인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루하고 지저분한 말인다.
그만큼 대인관계를 신뢰하지 못하는 한 문화의 한 단면에서 파생된 문제점...
우리가 역사를 잘못 배웠던것 같고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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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제가 대군을 이끌고 스키타이라는 유목민 국가를 침공하면서 결국
전투한번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8만명을 잃고 패퇴하고 돌아오면서..
도시도 성채도 없이 어디를 가든 자기네 집을 갖고 다니는 적을 어덯게 공격하고 정복할수 있단 말인가?
신기루와 같은 유목민을 이길수는 없었던 것이다.
성이란 조그만 틀안에서...생활하던 민족이 광대한 초원을 집삼아 살아가는 유목민을 어찌 해볼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인류문화 유산중에 달에서도 보이는 문화유적이 만리장성이라 한다.
그러나 그 만리장성도 알고보면 성이란 틀속에 갖힌 농경문화권 사람들의 공간적 마인드에서 나온 것이고..
이공간을 시간이란 마인드로 바꾸어 속도전으로 전 유럽과 아시아 권등을 간단히 유리해버린 징기스칸의 공격전술은..
틀에 밖힌 방어권자들의 전술을 종횡무진 휩쓸어버릴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귀납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성을 만든 순간 이미 그 문명은 멸망의 길로 치닫는다는 결론을 얻을수가 있는데...
유목민족처럼 자유럽게...상황에 따라 다재다양한 전술등으로 삶을 살아가는 문화권은 결코 정복하기 어려운 상대이다.
알고보면 주원장이 원을 무너트린것이 아니라 원이 스스로 부패하여 스스로 무너진것이다. 그리고
그 본연의 힘은 다시 몽골로 돌아갔고 이후에도 다시 몽골족과 뿌리가 같은 유목민족에 의해 청나라가 세워지고 중국 대륙을 장악했다. 이런 유목민족의 힘을 우리는 그동안 오랑캐라 비하하며 알려고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우리가 사대주의에 빠져 청나라에 머리를 조아렸지만..그들은 바로 우리가 오랭케라 일컫었던 여진족의 후예였고..
그 여진족은 금나라의 후예였으며 금나라등이나 몽골등은 우리민족과 역사적으로 한족보다 더 가까운 민족이었다.
당장 몽골 징기스캉의 어머니가 우리나라와 밀접한 연관을 몇은...부족이었고, 그들도 명절날이면 색동저고리를 입었다.
색동 저고리가 몽골의 지배로 우리에 파생되었다는 설도 있지만...어렸을때 그렇게 배웠던것 같다.
실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것으로 추후 책을 통해 인식하고 있다.
고려후기 때 징기스칸의 군대에 우리가 그나마 무사할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혈연적으로 문화적으로 가까웠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렇게 판단하는 역사학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틀과 고정관점과 안주는 바로 현대사회에서 사회에서 도태를 말한다.
우리는 지금도 치열한 전쟁을 치루며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또 개인은 전쟁을 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목민의 흐르는 삶의 철학과...일정한 틀속에서 성을 쌓고 그것을 지키지 위한 농경민의 정착민의
관료주의화...이것을 냉철하게 분석해 놓은 자료를 읽고
유목민의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삶의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징기스칸이 말했다..
내 자손이...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이 말은 고인물은 썩는다는 유목민 삶의 마인드였고 창의적인 삶을 살다간 징기스칸의 삶이었고
오늘날 21세기의 선구자들이 징기스칸의 삶을 이해하고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징기스칸의 4준마 4맹견(우리는 명장의 이름앞에 이런 말이니 개니 하는 표현을 불경스럽다하지만 몽골에서는 명예스런 호칭이다. 징기스칸을 푸른늑대에 비유한 것은 바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그래서 동물을 숭배하는
최상위의 신성한 존재인것이다. 지금도 몽골에 가면 최고의 술이나 최고의 것에는 징기스칸이름이 붙는다.)
이라는 명장들중에 한명이 전투중 패하고 도주한 적장을 좇아 지중해까지 1만리 이상을 추적하고 결국 임무를 완성하고
돌아오면서 병사한 그 끈질긴 집요함은 오늘날 사업하는 사람들이 배워야하는 역사가 아닌가 한다.
1만리라면 지구의 반바퀴 가깝게 추격했다는 말이 아닌가? 전률스러운 집요함에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외적의 침입을 받아 어려울 때는 간밤에 잘 주무셨어요라는 인사를 하지만
안주문화는 안정의 인사가....습관이 박혀 있는 셈이다.
몽골의 인사는 그쪽 지역은 어떠세요?로 출발한다...
이는 정보문화이다...다른쪽의 정보는 현재의 나의 삶의 생사를 가늠하는 척박한 환경이기에...
인사법부터 다른 것이다.
광할한 대지에서 울타리에 갖힌 공간속에서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광할한 대지에서 오는 공간개념은 사라지고
시간개념의 문화가 자리잡는...문화이다..즉 신속성이야말고 징기스칸이 전세계를 정복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의 정복속도는 과히 말을 타고 달리는 속도와 같았다...넓은 공간에서 최대의 효율성을 완성키위해 그들은 오래전부터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 왔던 것이다..
중앙아시아 및 북아시아에서 기마유목민족은 수없이 여러번 역사의 변환을 불러온 막강한 힘으로 작용했다.
여러 부족이 함께 어울려 대집단을 형성하고 강력한 지도자를 따라 좀더 살기 좋은 평원지대로 이주하고 때로는 중국과 인도의 부패왕조를 전복시키고 북극아래 시베리아지방부터 남으로 만주까지를 휩쓸었다. 요새를 불태우고 남녀포로와 약탈한 전리품들을 챙겨 떠났다.
인도의 힌두쿠시산맥도 중국의 만리장성도 이들을 막지 못했다.
과거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건설한 세계정복 국가들의 이름이 한국(칸국)이란 이름으로 불려졌으며
어느 정도까지 정복했는가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차가타이 한국과 일 한국 그리고 분홍색의 킵차크 한국 킵차크 한국의 러시아 속령
후세까지 서구 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진
카니슈카, 훈족의 아틸라, 징기스칸, 타머레인, 호랑이 바부르 등의 존재와 스키티아, 훈, 타타르, 투르크(돌궐), 몽골과 만주족들이 정복자 부족으로 이름을 떨쳤다.
아시아초원지대의 잔혹한 기마민족들은 중국과 인도, 유럽의 거주민들을 짓밟아 정복했다.
서력기원이 열릴 무렵 지금 한국(북위 38도선에 이르는 지정학 구역)이라 불리우는 나라의 남반부에는 농사와 수렵 어업 등으로 살아가는 여러 부족들이 서로 느슨한 연대를 맺고 있었고 이중에는 대마도해협을 건너 왜와의 해상교역에 나선 부족도 있었다.
이때까지도 강력한 왕국은 형성되지 않았다. 거리상 멀리 떨어지고 척박한 지역인 일본은 한반도에서 후일 삼국이라고 지칭하게된 부족들의 영역밖에 밀려나 있었다.
오늘날 한반도를 양분하는 선 이북에는 역시 알타이 계통어를 쓰는 기마종족들이 살면서 영토와 지배권을 두고 내부 분란과 함께 사나운 이웃들과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중국의 한나라는 한때 대동강유역에 낙랑이라 불리는 소규모 관리구역을 설정했다 한다 .
(역자주; 이당시 코벨은 한사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설을 접하지 못하고 대동강유역이라는 과거의 통설을 차용했다).
그들 한반도 북쪽의 사나운 기마족들은 두 번 휜 활을 무기로 다루며 기마전술에 능하고 용맹무쌍하기 이를데 없는 기질로 미개한 문명을 모두 정복했다. (바로 고구려를 말한다.)
고구려는 그 뿌리가 기마유목민족쪽이다...몽골등과는 한 뿌리인 셈이다.
우리가 이 자랑스런 기마유목민족이었음을 일깨운 분이 바로 광개토대왕이다.
위에서 말한 징기스칸은 결코 남이 아니다.
참고로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세운 국가를 한국( 칸국)이라 한다
그들의 영토는 동유럽과 러시아, 인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권과 유럽권을 거의 복속시켰다.
(이 글을 올린것은 우리도 자존의 세월이 있었다는 것이다...강한 기마유목민족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여 많은 시시비비가 있지만 이미 외국의 유명한 역사학자들에 의해 그들이 고대 문명이
부여에서 건너간것이고 이후 삼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말이 길어지므로 각설하고...
할리문화도 미국이라는 광대한 영토에서 효율적으로 이동키 위한 시간과 자유로움의 개념이 잔뜩 묻은 문화이다..
그래서인가? 할리문화는 유목문화와 많이 닮았다.
맥주 한잔과 징기스칸이란 책은 오늘밤 저에게 또 다른 삶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감명깊게 읽어서..나도모르게 한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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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그 점이 너무 유사하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오랜만에 이책을 다시 접하는군요...학교강의에도 사용되던 훌륭한 지침서 입니다.
웬만한 식자라면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 줄로 압니다...식자들 사이에서 서로 권하였던 좋은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이 더 훌륭한걸로 생각됩니다.6세기경 땅덩어리를 보면 유라시아를 절반도 더 먹었습니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대왕입니다..기마유목민족의 저력을 보여주신 분이죠... 저는 광개토대왕과 고구려시대의 위대한 명장들과 그를 보좌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순신장군을 존경합니다...불세출의 인물들이죠...그러나 세계와 비교하여 본다면..무수히 많은 인물중의 한명이고...오늘날 우리가 그 진위를 잘모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고구려시대의 위대한 명잘들의 삶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국의 역사를 빛낸 대부분의 인물은 고구려 시대에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기마유목민족의 후예로써..
어제 저녁 못다한 글을 오늘 사무실에서 간단히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맟아요, 사실 우리민족의 조상이나 몰골의 조상이나 같은 데서 왔다고 하더군요. 바이칼인종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몽고인들 보면 우리하고 분간않갑니다. 더 토속적같더군요. 사실 우리민족이 좀더 주변 인종이 좀 섰인것 같습니다.
사실 만주벌판이 우리땅 이었고....몽골과 우리는 같은 기마유목민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징기스칸이 고려를 침략해서 가한 살육과 고통을 생각하다면....., 존경만큼은 피해햐 할 듯,,,ㅎㅎㅎ
러시아 대함대를 부순 일본의 도고가 이순신장군을 가장 연구했고 존경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몽골과 고려는 형제지국이었는데..못난 무신정권놈들이 집권의 야욕 때문에 외교를 무시하고 전 국토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 갔으며 심지어는 일본정벌도 이놈들의 조작으로 몽골을 자극하여 발생된 일입니다..이 부분은 내일 와인 시음회시 한번 즐겁게 얘기해 봅시다.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만주벌판의 광활한 대지를 소유한적도 있었는데...안주하는것이 결국은 부패를 양산하는게 아닌가 생각이듭니다.
안녕하셨습니까? ..^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