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자서전
유옹 송창재
예고된 태풍속에
아직 사납지 않은
전야의 조용한 비가
조짐의 촉수처럼 내리는 오늘이 가는 시간.
가진 것 하나없이
시 만을 사랑하는 시인은
태풍의 바람을 바로 쓰려고
창에 부딪쳐 그려지는
추상의 그림같은 빗줄기만 반짝이는 눈으로
또릿하게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유리창이
폭발하듯 흔들리는
활기찬 광란의 시간이 올까.
간밤
한 방울의 흔적조차 없이
감쪽같이 치워버려
마른 열정의 뜨거움만 단단하고 메마르게
한겨울 매서운 북풍에 시달려
아무 군더더기 살집없이
잘 마른 북어처럼
빙글빙글 빨랫줄에 널려
잘 떠돌더니
여태까지 나눈 이야기는
어차피 새드 엔딩으로 예정되어 있는
불안한 러브 스토리
기어이
폭풍전야에 막을 내리려 미풍에 잔잔히 흔들리고 있다.
가진 것 이라고는
전전긍긍 아쉬움에
빚을 놓는 세상에
받을 빚은 애초에 없이
갚을 빚 몇 푼이
세상의 무게보다 더한 무서움이 되어서
사랑을 버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었는데
等價등가의 사랑으로 셈을 하는
바보의 글쓰기는
언제나 마치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태풍이 밀리는 날
붉은 펜을 놓아 사색의 끈을
사랑이라는 연민으로 가장하여
미안함으로 꾸미는 예고된 이별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는 애틋함임을 모르면 어떠리
여지껏 그렇게 끄적였는데.
이만하면 오늘 밤이 딱 써 버리기에 좋은거다.
시인은 시로 자기를 쓰고 싶었다.
슬프고 길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애상의 시들을
두꺼운 대학노트에
가을의 편지처럼.
열 다섯편의 시로는
칠십을 쓰기에는 너무 짧은데.
쓸 수가 있을까.
한 잔의 찬 소주가 준비되어 있어도
뜨거운 가슴은
시원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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