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매장하다
민서현
유품으로 남긴 표정 몇 컷
텃밭 사과나무 밑에 묻고 돌아왔다
목울대가 마른 장작처럼 뻑뻑한
봄, 이었다
그리움도 오래 묵으면 굳어지는지
묻어둔 눈물은 불쏘시개가 되어
내 몸에 박혀 있던 그녀를 불 지핀다
뭉쳐놓은 피사체 한 컷이 뭉텅 잘려 나가자
불현듯 뻐꾸기가 울었다
꽃 시절 땅심 좋은 곳에 뿌린
씨방 두 개 하늘에 닿을 듯 듬쑥하게 자랐다
꽃빛의 혈통은 단호해
휘둘리지 않은 빛깔을 토해 놓았다
뿌리와 섞인 흙은 화색이 돌아
백 년을 버려도 쪼개지지 않는 핏줄로 얽혀
씨앗 한 톨의 전생이 묻어 있다
닫혔던 하늘 문이 열리고
땅의 유치를 뽑아내듯 터져 나오는 통증
깨진 것은 둥글게 닫혀야 옹골찬 열매가 된다
태우려 해도 타지 않던 땅의 심지는
평생을 갈아엎는 흙의 몸을 빌려
씨앗을 연기처럼 하늘로 올려 보냈다
앞다투듯 얼굴 내민 붉은 꽃 잔치
사과나무는 지금 폭죽을 터트리는 중이다
오늘 사진을 태웠다
한 줌의 그을음으로 사라진 그녀
꽃
다
졌다
김포신인문학상으로 등단(2018)
사)한국문인협회 김포 지부 이사
김포문학상, 마로니에 전국 여성백일장에서 수상하였고,
<달詩>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달詩> 시선3 공저 『꽃을 매장하다 』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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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꽃을 매장하다 / 민서현
박미림*
추천 1
조회 48
23.06.01 07:0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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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목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즐감했습니다~~
마른 장작처럼 뻑뻑한
봄에 유치로 돋아나는 애도
무성영화로 감상하였습니다.
시인은...
얼마나 깊어야 이런 제목이 나올 수 있을까요...
예사롭지 않은 제목에 이미 저는 옴짝달싹 할 수가 없습니다...
시가 좋습니다 시 하나하나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자연과 자신의 메타포가 잘 형상화 된 시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읽고 또 읽어보며
꽃을 매장하는 시인님의 마음속에 그녀를 늘 간직하시겠죠? 가슴이 찡합니다 강애나 드림
이른 폭염에 넝쿨장미가 그 싱그럽던 붉음을 견디지 못하고 빛을 잃어가고 있는 장미 터널을 어제는 잠시 거닐었지요.
진서우작가님. 박소미시인님. 이명옥시인님, 강애나시인님 ~ 그 길 동행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