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봉군의 먹이공급
꿀벌의 먹이로는 화분(꽃가루)과 당액과 맑은물을 들 수 있다. 한 봉장에 여러 무리의 봉군을 사육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먹이 공급을 할 필요가 없게 되며 옛 어른들이 가을 에 한차례의 꿀만 채취하듯 한다면 그리 문제가 될게 없지만 그래도 양봉(養蜂)을 한다고 했으면 벌무리를 강하게 키위 많은 꿀을 생산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지난해 초로 생각된다. 양봉농협(養蜂農協)에서는 남산 자유센타에서 신년 연찬회 및 지역(서울, 경기지역)대의원 선거가 있었고 양재동에서는 토봉협회의 토종벌학술발표대회가 있었다. 나는 양쪽을 다니느라 눈(雪)길에 고생을 했다. 마천농협 김 병진씨, 토종벌3대 무지개꿀 생산자인 김대립씨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 했으며 재래종(토종)벌 협회도 한국토봉협회와 한국토종벌협회 2개로 갈라져 있어 토종벌협회 김 대립기술이사는 뒤에서 나랑 구경만 하고 주로 경남 함양 전북 남원 팀들의 한국토봉협회의 주 무대였으며 그래도 전국에서 많이 모여들었다. 내가 늦게 가서 단체장님들의 축사와 학자들의 연구발표가 끝나고, 기술적으로 토종벌 새기술 책 저자 김 병진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끝나고 질문을 받는 중 단상을 향해볼 때 오른쪽 앞부분에 앉으신 목포에서 오신 한분이 내용과는 좀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는 일년에 꿀을 한 봉군에 다섯말 딴다고 큰소리를 치니 질문도 아니고 기술발표도 아니어서 끝말을 있지 못하고 중단 시켰으나 이 사람은 중얼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뒤로 뛰쳐나오며 넋두리를 하는 것이 내가 듣기에 참고가 될 것 같아서 뒤따라 나와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걸었다.
교통편도 지원하고, 농한기고, 갯일(바다 고기잡이)도 그렇고, 서울구경이나 온다고 생각하고 왔지만 저들 머리꼭대기에 앉았는데 쓰잘데기 없는 소리고 지금 내려간다 해도 밤중에 집에 들어가기 글렀다는 이야기와 작은말 닷 말 딸 수 있다는 이야기 였으나 깊이 이야기를 들으니 그렇고 그런 꿀을 따는 방법이었고 내가 되물으니 양복입고 온 사람은 되잖은 소리, 모르는 소리고 밑에(단상)앉아 듣는 사람은 서울 구경시켜준다니 벌을 키우지도 않는 이웃이라고 하며 자기가 알기로는 전부 그런 사람들만 모였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전하기보다 내가 격고 본 것을 나열 하려한다. 서울에서 경남 함양 처가를 가려면 지금은 고속도로가 잘 되어있지만 경북 김천을 지나 거창을 거처 함양을 들어 같다. 처가 집안이 남원에도 있어 남원으로 가자면 팔령치를 넘어 인월, 운봉, 남원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인월의 한 젊은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서울에서 산다기에 반가워하며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예전 행정구역은 남원군 동면(지금 인월면으로 바뀜) 성산리 였다. 흥부마을이란 작은 마을이었는데 옛날 흥부 놀부가 살던 곳이라며 지금도 함양 팔령치 사람들은 성안부락이라 칭한다.
남원 목기도 한 벌 산후 인월에서 재래종 벌통 만드는 곳도 몇 집 구경을 하며 벌 키우는 이야기도 들으며 벌집꿀(됫박통체)을 사려하니 집에 갈 때 사라고 말리며 눈짓을 하는 것이었다. 도자기에 들어 있는 꿀을 사려해도 이따가 갈 때 오자며 벌통도 사려하니 그것도 못하게 했다.
마천(꿀)가공사업소에 가니 됫박 벌통이 정말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그 친구가 말을 잘해서 승용차 뒷 트렁크에 못 싣도록 얻어왔다.
최근에 이친구가 찾아와서 꿀벌을 팔라고 하며 고향에 좀 가져가겠다기에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쪽은 낭충봉아병(낭충봉아부패병) 때문에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원, 함양, 구래, 곡성, 쪽의 벌이 없어졌단다. 그래서 내가, 너무 욕심 많게 꿀을 벌들로부터 착취하고 먹을 것도 안주고 굶겨 죽였다고 하니 그는 예전에 꿀을 못 사게 하던 이야기까지 들을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벌을 너무 혹사한다고나 할까? 토종꿀은 양봉꿀보다 붉게(검게)보이게 하려고 백설탕을 주는 것보다 흑설탕을 주면서 그것도 .... 상세히 이야기 하려고 시작 했지만 다 옮기지 못하겠다. 그 친구 말을 한마디로 옮기자면 부자(父子)간에도 속이는 것이 꿀 아라는 것이다. 어찌 거기뿐이랴!
벌을 키우면서 자기봉장주위에 얼마만한 밀원이 형성되어 있나가 중요하다. 봉장반경 2km안에 밀원형성이 충분하지 못하면 재래종 꿀벌은 욕심내어 많이 키울 수 없다. 양봉이든 재래종이든 반경 2km 안에서 50군 이상이 있으면 목적하는 수밀량은 반감한다고 본다. 특히 양봉처럼 대 유밀기에 꿀을 많이 채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밀력은 재래종이 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양봉보다 수밀력이 약하므로 양봉에서의 아카시아 대 유밀기 같은 채밀량은 바랄 수 없으며, 그러므로 이동양봉의 의미가 없으니 고정양봉으로 정착되었는지 모른다. 봄철에도 활동을 양봉보다 일찍이 시작하니. 봄철에 자극사양은 특별히 할 필요는 없으나 식량이 떨어져 아사(餓死)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봄철 첫내검은 그 지역의 양지쪽냇가에 버들개지가 피어나는 2월하순에 사각벌통이면 약간의 훈연으로 벌통을 조심스럽게 뒤집어 보면 벌들이 하부 벌집날 끝에서 집을 지어 내려오며 산란이 시작된다. 재래종은 양봉과 달리 겨울동안 자기집을 부수어 공간을 만들고 먹이를 소모해가며 봉구를 이루고 월동을 한다.
양봉보다 월동먹이는 월등히 적게 소모하며 합봉을 하여 강군으로 만들어 월동을 시켜도 사각벌통 4개 이상의 월동식량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래 부분에서 벌집을 부수어가며 식량을 먹고 봉구를 이루는데 윗부분으로 이동해가며 벌집을 부수고 월동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즉 월동중에는 양봉에 비해 식량 소모가 극히 적었다. 나는 월동 들어갈 때 4층 이상의 식량을 주지 않기로 했다. 월동 포장도 그 이상이면 불편한 점이 많았고 그래도 봄에 첫내검을 해보면 반 이상 먹지 않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식량이 꽉 차지 않은 것(통)은 식량소모가 훨씬 많았으며 식량으로 꽉 찬 벌집은 방한작용(보온효과)도 있는 듯했다. 놈들이 중앙에서 봉구를 이루고 양갓쪽 벌집날(저밀방)의 식량은 남겨두며 가운데만 파먹는 것을 보면 느낄 수 있고, 첫내검후에는 남은 가장자리의 식량을 파먹어가면서 벌집을 예쁘고 질서 있게 지어내러 오는 것을 보면 겨울 추위에 가장자리의 식량은 보온효과를 기대하고 남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첫내검 할 무렵에는 벌집 부서진 부스러기가 더 많이 나온다. 그 만큼 봄철의 먹이소모가 많아진다 고나 할까.
첫댓글 위의 글은 토종벌을 기르기 시작할 때 몇 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다시 읽으니 합봉시킨 강군이라도 월동 먹이로 됫박벌통 기준 4칸 이상은 의미가 없다는 구절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일반적으로 증식군엔 사양을 하지만, 채밀군엔 사양을 일체 안하는 걸 원칙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