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문고 소년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엄마는 우아하고 청초한 여성이었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이제 와서는 서영이나 아빠의 엄마 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수필 <엄마> 中에서
‘금아’라는 그의 호는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이다.
거문고를 잘 탔던 어머니 덕에 얻은 이름, 금아.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던 금아에게 어머니는 각별한 존재였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아빠’가 된 피천득은 딸 ‘서영이’에게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는데.
피천득 선생의 둘째 아들이자,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의사인 피수영 박사를 통해
故피천득 선생의 특별한 가족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2. 수필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 수필 <수필> 中에서
1968년 ‘인연’, ‘수필’ 등의 작품들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수필’의 대명사로 자리해온 피천득.
중년의 소시민들에게 여전히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피천득의 수필은 그가 만난 애틋한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다.
도산 안창호, 춘원 이광수,
그리고 소설가 최인호, 박완서, 이해인 수녀, 김재순 前국회의장 등
故피천득 선생의 수필 같은 삶과 함께 이어진 인연들을 만난다.
도산 안창호 장례식에 참석 못했지 가긴 갔는데, 뒤에 물러서 있었지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겁이 나서 거길 들어가면 내 몸이 위험하니까
돌이켜 보면 그때 왜 좀 더 용감하지 못했나
모든 것만은 버려도 자기 자신만은 지켰으면 좋겠어
- 故피천득 선생의 인터뷰 中에서
3. 장미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이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 수필 <장미> 中에서
故피천득 선생은 장미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장미를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을 좋아했다.
옆집이 시끄러울까봐 액자 걸 못도 박지 못했던 그는,
카사블랑카의 여인을 좋아했고,
비오는 날이면 수첩에 적어 두었던 여배우의 이름을 읽어보며
예전에 보았던 영화를 회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분이 믿는 아름다움은
우리가 보고 예쁘다고 하는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선함, 진리, 이런 것이 포함된,
군더더기를 덜어낸 감동이 있습니다.
- 소설가 박완서의 인터뷰 中에서
4. 오월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수필 <오월> 中에서
오월에 태어나 오월에 떠난 故피천득 선생.
그는 소년과도 같은 오월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았다.
자식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인형들을 소중하게 보살피며,
월드컵 때는 93세의 나이에 붉은 티셔츠를 입고 ‘붉은 악마’ 시를 지었던 피천득 선생.
한 세기 동안 ‘거문고 소년’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가 떠난 자리에,
미국에서 돌아온 딸 ‘서영이’와 그의 ‘인연’들이 모였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없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아.
그만하면 잘 살다 가는 거야
- 故피천득 선생의 인터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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