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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 힐레숨(Esther Hillesum, 1914–1943)은 1943년 아우슈비츠에서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생을 마친 네덜란드의 유대인 여성이다. 세례를 받지 않은 유대인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며 하느님을 찾아갔고, 기도를 통해 그분의 현존을 발견하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3년 일반알현에서 그녀를 언급하며, 홀로코스트의 비극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사랑과 내적 평화를 살아간 사람으로 소개하였다.
일요일 아침의 기도
1942년 7월 12일
하느님, 지금은 참으로 불안한 시절입니다. 어젯밤 저는 처음으로 어둠 속에 누워 타는 듯한 눈으로, 인간이 겪는 고통의 무수한 광경들이 제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느님, 저는 당신께 한 가지를 약속하겠습니다. 정말 작은 것 하나만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다가올 날들에 대한 걱정으로 오늘 하루를 무겁게 짓누르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물론 이 일에도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겠지요. 그날의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니까요.
하느님, 제 안에서 당신께서 무너지지 않으시도록 제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미리 그 무엇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제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당신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을 도움으로써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돕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또한 참으로 중요한 유일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깃든 당신의 작은 한 조각을 지켜내는 것. 그리고 어쩌면 고통받는 다른 이들의 상처 입은 마음속에 묻혀 있는 당신을 다시 파내어 일으키는 일에도, 우리가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도 지금 우리의 이 상황들을 어쩌지는 못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이 삶에 속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책임을 당신께 묻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훗날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셔야 할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그리고 심장이 뛸 때마다 제게는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없기에 우리가 당신을 도와야 하며, 당신께서 머무시는 우리 안의 거처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당신을 지키기보다는 진공청소기와 은 식기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몸만을 안전하게 지키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 몸은 이제 수많은 두려움과 쓰라림만이 깃든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나를 손아귀에 넣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잊고 있습니다. 당신의 품 안에 머무는 이는 그 누구의 손아귀에도 붙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의 하느님, 당신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다시 조금씩 마음이 평온해지기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당신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제게서 달아나지 못하시도록 붙들겠습니다. 물론 당신께서도 앞으로 제 안에서 메마른 시절을 겪으실 것입니다. 제 믿음이 당신을 굳건히 받쳐드리지 못하는 날도 있겠지요. 그러나 부디 믿어주십시오. 저는 끊임없이 당신을 위해 일할 것이며, 당신께 끝까지 충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제 마음의 자리에서 당신을 내쫓지 않겠습니다.
거대하고 영웅적인 고통을 마주할 힘은 제게 충분히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그러나 때로는 오히려 불시에 물어뜯는 해충처럼 수많은 일상의 자잘한 걱정들이 저를 덮쳐옵니다. 어쨌든 당분간은 그 가려움을 조금 긁어내며, 날마다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위한 돌봄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환대해 주는 집의 아늑한 벽들이 오래 입어 익숙한 옷처럼 아직 내 어깨를 감싸고 있다. 오늘 먹을 음식은 충분하며, 흰 시트와 따뜻한 담요가 덮인 침대가 밤을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오늘 하루, 나 자신을 둘러싼 사소한 물질적 걱정들로 단 하나의 티끌만한 힘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매 순간을 온전히 쏟아부어 이 하루를 열매 맺는 날로 만들어라. 다가올 가난하고 두려운 날들이 조금이나마 기댈 수 있도록, 그 기초 위에 튼튼한 돌 하나를 더 놓는 날로 만들어라.’
집 뒤편의 재스민은 지난 며칠 동안 내린 비바람에 완전히 꺾여 버렸습니다. 하얀 꽃잎들은 흩어진 채 낮은 차고 지붕 위, 진흙탕물이 고인 검은 웅덩이에 떠다닙니다. 그러나 제 안 어딘가에서는 그 재스민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여전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풍성하고 부드럽게 피어납니다. 그리고 하느님, 당신께서 머무시는 그 집 주위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을 잘 돌보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께 저의 눈물과 불길한 예감만을 가져다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잿빛 일요일 아침에, 저는 당신께 그윽한 향기의 재스민마저 바칩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마주치게 될 모든 꽃들을 당신께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저의 하느님. 정말이지, 제 길에는 그런 꽃들이 아주 많으니까요. 당신은 정녕 제 안에서 평안히 머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아주 사소한 예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일 제가 좁은 감방에 갇혀 있고 작은 쇠창살 너머로 구름 한 점이 흘러간다면, 저의 하느님, 제게 그럴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저는 당신께 그 구름을 가져다 바칠 것입니다. 제가 미리 그 무엇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의 뜻만큼은 더없이 온전하다는 것을 당신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하루 속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저는 많은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온갖 흉흉한 소문과 위협들이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를 에워싸는 적군들처럼 또다시 제게 들이닥칠 것입니다.
아우슈비츠행 화물열차에서 던진 마지막 엽서
1943년 9월 7일
성경을 아무 데나 펼쳐 읽으니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은 저의 높은 피난처이십니다.”
저는 지금 가득 찬 화물열차 한가운데에서 배낭 위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미샤는 몇 칸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결국 떠남은 아무런 예고 없이 닥쳐왔습니다. 헤이그에서 갑자기 내려온 특별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는 노래를 부르며 수용소를 떠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굳건하고 의연하셨으며, 미샤 또한 그러했습니다. 이동은 사흘 동안 이어질 것입니다.
베풀어 주신 온갖 친절과 보살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뒤에 남은 벗들이 여전히 암스테르담으로 편지를 보낼 터이니, 어쩌면 그들에게서 소식을 들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수용소에서 보낸 저의 마지막 편지를 통해서라도요. 작별을 고합니다.
에티 힐레숨
에티 힐레숨(Etty Hillesum, 1914–1943)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로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네덜란드의 유대인 지식인이자 작가이다. 네덜란드 미델뷔르흐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암스테르담에서 법학과 슬라브어를 공부했으며, 러시아 문학과 심리학,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41년 정신치료사 율리우스 슈피어(Julius Spier)를 만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불안과 혼란을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릴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성경 등을 읽으며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성찰을 이어갔고, 자신의 내면과 영적 변화를 일기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1942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면서 에티는 유대인 평의회에서 일했고, 자신의 요청으로 웨스터보르크(Westerbork) 통과수용소의 이송자 사회복지 부서에서 일했다. 수용소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돕는 한편, 자신이 경험한 현실과 내면의 변화를 일기와 편지에 기록했다. 은신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유대인들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943년 9월 7일, 에티는 부모와 동생 미샤와 함께 웨스터보르크에서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수송열차에 올랐다. 열차 안에서 마지막 엽서를 써 밖으로 던졌으며, 그 엽서에는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수용소를 떠났다”라는 문장이 남아 있다. 그녀는 그해 11월 30일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되었다.
에티 힐레숨의 일기에는 전쟁과 박해 속에서 하느님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자신의 내면을 깊은 우물에 비유하며, 그 안에 하느님께서 계시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돌과 자갈처럼 그 우물을 막을 수 있다고 썼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3년 2월 13일 일반알현에서 에티 힐레숨을 직접 언급하였다. 교황은 그녀가 처음에는 하느님에게서 멀리 있었지만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하느님을 발견했고, 홀로코스트의 비극 한가운데서 사랑과 내적 평화를 지닌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다고 소개하였다. 또한 그녀의 ‘내면의 우물’에 관한 기록을 인용하며, 인간의 마음 안에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자리를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출처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저는 아우슈비츠에서 생을 마감한 유대인 출신의 네덜란드 소녀 에티 힐레숨을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그녀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하느님을 발견했고, 이렇게 썼습니다. “내 안에는 정말 깊은 우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때로는 나도 그곳에 있지만, 대부분은 돌과 모래가 우물을 막아 하느님이 그 아래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파내야 합니다.” ( 일기 , 97).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 그녀는 20세기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연약하고 불만족스러웠던 이 젊은 여성은 믿음으로 변화되어 사랑과 내면의 평화로 가득 찬 여성이 되었고, “나는 하느님과 끊임없이 친밀하게 살아갑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첫댓글 당신께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당신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을 도움으로써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돕게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