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심반야바라밀다시
行深般若波羅蜜多時’
『반야심경』에 나오는 일절이다.
‘반야’는 인도어,
‘지혜’는 중국어 이다.
‘반야지혜’는, ‘공空’을 아는
지혜를 완성한다고 하는 의미다.
그런데 ‘심深’의 글자가 나온다.
‘심深’의 반대는 ‘천淺’이다.
반야에는 원래 ‘심천’은 없다. 그러나,
보는 각도에 따라 심천이 나온다.
이런 내용을 책에서 읽었다.
“공空을 구하고 색色을 판破한다.
이것을 ‘천淺’이라고 말하고,
색을 온전히 하고 공을 본다.
이것을 ‘심深’이라고 한다”
백은선사의 『毒語心經』
‘空을 구하고 色을 破한다’는 것은,
‘空’이라고 하는 것을,
‘비어있다, 허무하다’라고 허무적으로 해석하고,
‘色’, 곧 눈에 보이는 것을 부정해가는 것,
곧, 세상을 허무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천淺’이라고 말한다.
‘
空’을 허무감만으로 생각하는 것이 ‘천淺’
곧 ‘천반야淺般若’는. 곧 허무감을 의미한다.
.
그러나 ‘空’은 결코 허무적인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양은 각일각 변해가지만,
허무감에 빠지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변하는 대로 보고, ‘色’을 온전히 긍정하고
구애되지 않는 상태가 ‘심반야深般若’.
곧,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대로의 모습 안에 ‘空’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깊은 심深’이다.
『반야심경』에서 ‘색과 공’을 반복하여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