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업 -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질문
스님께서 아웃풋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것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전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말로는 생각을 어느정도 표현할 수 있는데 반해 글로 쓰는 것은 기술이 모자란 것인지 진도가 나가지를 않습니다. 읽었으면 글로 써야 할텐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웃풋의 본질 - 대화
아웃풋은 단순히 글을 쓰는 공부가 아닙니다. 오해하고 계신듯 하니 그 본질을 먼저 살펴봐야겠군요. 아웃풋의 본질은 대화입니다. 학생들의 문해력을 키우는 독서교육을 위해 만든 독서법이 있습니다. 그 명칭은 'Communication Reading Program'입니다. 독서는 곧 복합적인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인풋 독서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의식의 기둥을 세우는 과정이라면, 이 기둥으로 타인과 대화하는 것이 바로 아웃풋 독서입니다. 어른수업의 세 가지 큰 주제인 육체와 정신 그리고 경제의 홀로서기 중 정신을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이유를 잊으면 안 됩니다. 정신이 홀로서려는 이유는 홀로 살아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둥이 단단하게 홀로설 때 비로소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의 공부법에 대한 다양한 설명으로 기둥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 말했으니 이제 관계 속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아웃풋 독서법으로.
사띠의 선순환과 아웃풋
인생에서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른의 홀로서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인간은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귀하고 중한 관계 맺기를 하기 전 해야 할 것이 있지 않나요? 준비해야 합니다. 사띠의 선순환을 활용하여.
삶은 경험으로 구성됩니다. 경험은 세 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생각으로 하는 경험과 말 그리고 행동으로 하는 경험입니다. 공부와 수행, 놀이와 일상, 관계와 섭생 등 모든 행위는 이 세 가지 경험의 틀 속에 포함됩니다. 그렇기에 어른스러움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예외 없이 올바른 마음가짐을 '준비'해야 합니다.
번뇌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을 깨어있음으로 깨우고, 얼룩진 번뇌를 마음챙김으로 정돈합니다. 그 후에 알아차림으로 관계를 맺을 준비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이 준비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아웃풋입니다.
낙서부터 시작해보세요. 하고 싶은 말을 형식 없이 아무렇게나 연상되는 내용을 그냥 적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려도 좋습니다. 낙서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끄적거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작하는 것은 곧 Start 버튼이기에, 생각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낙서로.
낙서가 익숙해지면 이번에는 메모를 해보세요. 메모도 별다른 주제로 할 것이 아니라, 낙서를 하던 중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나 '이건 나중에 꼭 다시 봐야되!'라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를 다시 한번 정리하며 메모하는 것입니다. 사금과도 같은 낙서들을 뜰채로 건저내면 정리된 마음의 순금이 드러날 것입니다.
아웃풋의 시작으로 낙서와 메모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작문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메모한 글, 인용한 글에 대한 단상을 붙여도 좋고, 자신이나 소중한 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도 좋습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시로 표현해도 좋고, 미래의 자신에게 요구하는 명령을 남겨도 좋습니다. 내용과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 중 일부를 표현하여 글을 만들어내는 훈련이 중요한 것입니다. 안에 있는 생각을 백지 위에 표현하는 것은 꽤 연습이 필요한 과정이니까요.
한 법우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 제가 중요한 통화를 해야 하는데, 자신감이 없습니다. 평소에 생각을 말로 잘 표현 못하거든요. 특히 감정이 격해질 때는 더 버벅거리는데... 통화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통화 즉, 말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연습하면 됩니다. 첫째 해야 할 말을 적으세요. 낙서든 메모든 작문이든. 둘째 적어둔 내용을 소리내서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연습하다보면 대본을 계속 수정하며 최적화를 시작합니다. 셋째 연습할만큼 했다면 이제 전화해서 말해보세요. 그럼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에도 입을 해야 할 말을 하게 됩니다.
승가대학교 1학년 때 스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하더군요. 제가 졌습니다. 알고 보니 '설법 대회'를 의무적으로 학년마다 참가해야 하는데, 그걸 가위바위보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가대학교 1학년 학생의 설법대회 참석이 결정되었습니다.
위의 방법대로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원고를 소리 내어 연습했습니다. 처음 10분짜리 원고가 100번쯤 연습을 하니 최적화 되어 7분까지 줄어들더군요. 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차를 타서도 꿈 속에서도 계속 연습했는데도 법상에 올라가기전 정말 떨리더군요.
법상에 섰습니다. 마술처럼 떨림이 멈췄을까요? 충분히 준비했으니? NO! 거의 정신이 나갔습니다. 앞을 보니 학장스님부터 수십명의 교수님들 그리고 수백명의 선배스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계시더군요.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 합니다. 나중에 도반에게 물어보니 얼굴이 벌개지기는 했지만 연습한대로 또박또박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날 1학년 스님이 설법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극찬을 받으면서.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말을 잘해서? 아닙니다. 아웃풋은 누가 뭐래도 연습입니다. 설법 주제에 대해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라고 하면 여전히 서투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하지만 법상에 올라 설법을 하는 것은 평균 이상으로 할 자신이 있습니다. 준비하면 되니까요. 연습하면 되니까요. 소통의 기본은 아웃풋에 대한 연습입니다.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
말실수를 자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띠의 선순환을 배우고 익혀서 행위를 하기 전 꼭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신경써서 더욱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말실수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말실수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말실수의 종류는 여러가지입니다. 부정확한 정보를 말하는 것, 알게 모르게 거짓을 말하는 것, 소화하지 못한 감정을 들키는 것, 어른스럽지 못하게 남탓을 하는 표현을 하는 것 등등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실수의 범위는 무궁무진합니다. 이 말실수는 일종의 독소배출입니다. 정신이 먹은 정보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해 생겨난 독소를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입으로 똥을 싼다는 의미입니다.
대변을 보는 것을 비하하지 않습니다. 건강에 매우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대로에서 대변을 보는 것은 똥을 싸는 것이라고 표현하는게 적절합니다. 이것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주변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홀로서기를 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이런 행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똥을 싸는 것도 부끄러운데, 그 똥은 스스로 치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보고 들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그 똥이 묻었기 때문에, 그들이 치워야 합니다. 내가 싼 똥을.
올바른 마음가짐을 준비하고 대화할 내용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왜 어른의 매너인지 이해되시나요? 인풋으로 정신의 기둥을 세우고, 아웃풋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인풋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머릿속에 노이즈만 가득 채울 뿐 실속이 없이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아웃풋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계의 훈련에 게으른 것이고, 대화를 연습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신구의 삼업으로 저지르는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동시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마음을 꺼내놓는 아웃풋을 연습하지 않으면 누구나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이유는 연습을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관계 속에서 어른스러운 건강함으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의미이기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아이가 싼 똥을 어른이 치워주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 일이지만, 스스로 어른이라고 억지주장을 펴는 이가 싼 똥을 남이 치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까요. 그렇죠?
어른수업을 공부하는 이들은 이제 핑계는 그만두면 좋겠습니다.
"전 생각을 말로 잘 표현 못해요, 생각을 글로 잘 표현 못해요, 글은 되는데 말은 잘 안 되요..."
이런 핑계는 이제 그만두죠. 연습하면 되는데 못한다고 핑계만 대는 것은 어른의 태도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