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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정(金水亭)
蓬萊風流登金水(봉래풍류등금수)-양사언 풍류가 빛나는 금수정에 오르니
古人位置遺詩文(고인위치유시문)-고인이 앉았던 자리에 시문(詩文)만 남았구나
歷史悠久山川變(역사유구산천변)-역사는 유구하지만 산천은 변했고
風流亭子落葉轉(풍류정자낙엽전)-풍류를 읊던 정자에 낙엽만 구르네
永平淸水浮雲影(영평청수부운영)-영평천(永平川) 맑은 물위에 뜬구름 그림자
你也如我故迹見(니야여아고적견)-너도 나처럼 옛흔적을 보러왔나
人生長百不過活(인생장백불과활)-인생은 길어야 백년 안을 사는데
判别是非何用呢(판별시비하용니)-옳고 그르고 시비가 무슨 소용 있으랴?
농월(弄月)
양사언(楊士彦) 풍류(風流)가 빛나는 금수정(金水亭)에 올라 !
설을 쇠고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겨울 날씨다.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蒼水面) 오가리(伍佳里) 546번지 금수정(金水亭) 정자(亭子)를찾았다.
유적지 답사를 갈 때마다 느끼지만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한 산촌(山村)자연을 여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힐링(healing)이다.
지극히 조용한 들길 산길에서 가슴을 펴고 길고 깊은 호흡을 하여 본다.
역사 유적지를 답사하다보면 모두가 고유한 의미를 가진 역사의 흔적이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귀한 유물(遺物)을 만날 때 그 기분은 뭐라고 표현 할 수가 없다.
오늘 찾은 금수정(金水亭)이 그렇다 !
막연히 “양사언(楊士彦)의 금수정(金水亭)”의 제목만으로 찾은 길이다.
양사언하면 필자가 2000.12.18. 남북교류때 금강산 여행 시에 삼일포 바위에
새겨진 양사언 시가 항상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시다.
삼일포(三日浦)
鏡裏芙蓉三十六(경리부용삼십육)-거울 속에 피어 있는 연꽃송이 서른여섯
天邊鬟䯻萬二千(천변환고만이천)-하늘가에 솟아오른 봉우리는 일만이천
中間一片滄洲石(중간일편창주석)-그 가운데에 놓여 있는 한 조각 바윗돌은
合着東來海客眠(합착동래해객면)-바다 찾은 길손이 잠깐 쉬기 알맞구나
양사언(楊士彦)
오늘 찾은 “양사언(楊士彦)의 금수정(金水亭)”에서 생각지도 않은 귀한 역사속의
지성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대의 시인이며 최고의 명필인 양사언(楊士彦)을 비롯하여
사암(思菴) 박순(朴淳),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석봉(石峯) 한호(韓濩),
강산(薑山) 이서구(李書九), 목은(牧隱) 이색(李穡),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 상촌(象村) 신흠(申欽),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등 당대의 명사(名士)들의
시문(詩文) 유적이 남겨져 있다.
“금수정(金水亭)” 정자는 영평천(永平川)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명사들의 시(詩)가 어우러져 있다.
“금수정(金水亭)” 정자에 관한 유적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다.
금수정(金水亭)은 포천 영평천(永平川)으로 둘러싸인 절벽위에 위치하고 있다.
예부터 영평8경(永平八景)의 하나로 손꼽힌 절경이다.
이 정자는 고려 후기의 문신(文臣)이며 문인(文人)인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1338~1384)의 아들 김명리(金明理)가 아버지를 위해
세운 정자라고 하였다.
정자를 지을 당시 이곳이 풍수 지리적으로 소(牛)의 머리를 닮아서 정자이름을
“우두정(牛頭亭)”이라 했다.
그후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금수정(金水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양사언은 이집안(안동김씨고택)의 사위로 시와 명필로 이름나 정자에 글씨를 많이 남겼다.
금수정(金水亭) 주위에는 깍아지른 바위병풍인 창옥병(蒼玉屛)을 비롯해
준암(罇巖) 연화암 동천석문(洞天石門) 등 아름다운 명승지(名勝地)가 많아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정자(亭子)를 찾아와 시화(詩畵)와 풍류(風流)를
즐겼다고 한다.
영평천(永平川) 바위에 새겨진 “금수정(金水亭)”과 영평천(永平川)냇가 한 복판
바위에 “경도(瓊島)”라고 쓴 초서 각자(刻字)는 양사언의 서예 대가임을 마음껏
보여 주고 있다.
금수정은 안동 김씨(安東金氏) 문중에서 소유하며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유지되다가
본래의 금수정(金水亭)은 6.25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기단(基壇)과 장초석(長礎石)만
남아있던 것을 1989년 관계 문헌과 현지답사 등의 고증을 받아 포천시에서 3천5백만원을 투입 5.2평 규모의 현 건물을 복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현 정자의 현판은 바위에 새긴 양사언의 “금수정(金水亭)”이란 글씨를 탁
본(拓本)하여 제작하였다.
“양사언(楊士彦)의 금수정(金水亭)” 정자(亭子) 유적지 정리는
▲금수정(金水亭)
▲포천 안동김씨 고택(古宅)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 묘지
▲양사언 묘지로 분류하여 정리한다.
아래의 시(詩)는 금수정(金水亭)에 걸려 있는 편액(扁額)과 영평천(永平川) 바위에
쓴 석각(石刻)들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고려말과 조선을 통하여 최고의 명사들의 시문(詩文)이므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래 각자(刻字)를 탁본(拓本)하여 위의 금수정(金水亭) 현판을 만들었다 양사언 글씨다
)
△금수정(金水亭) 편액(扁額)
끝에 양사언(楊士彦) 서(書) 탁본(拓本) 보필(補筆)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태산(泰山)이 놉다 하되
태산(泰山)이 놉다 하되 하늘 아래 뫼히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理) 업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흘 놉다 하다니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도미사기경지(道美寺寄敬之)
六友堂中君子居(육우당중군자거)-육우당에 군자가 살고 계시기에
滿天淸興更無餘(만천청흥갱무여)-온 세상에 가득한 흥취 다시 남음이 없네
滂江家處多苛絶(방강가처다가절)-여강(驪江) 가는 곳마다 좋은 경치 많아
欲乞殘生對結盧(욕걸잔생대결로)-원컨대 남은 삶 마주보고 집지어 살고 싶다네
목은(牧隱) 이색(李穡)
△범급(帆急)
帆急山如走(범급산여주)-돛이 빨리 나부끼니 산이 달리는 듯
舟行岸自移(주행안자이)-배가 나아가니 언덕이 스스로 옮기는 듯
異鄕頻問俗(이향빈문속)-낯선 땅에 이르면 풍속을 묻고
佳妻强題詩(가처강제시)-경치 좋은 곳에선 억지 시를 읊고요
吳楚千年地(오초천년지)-오나라 초나라 오래된 땅에
江湖五月時(강호오월시)-양자강과 호수는 오월이구나
莫嫌無一物(막혐무일물)-내 한푼 없다고 싫어를 말라
風月也相隨(풍월야상수)-나에겐 아직도 풍월이 서로 따른다네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
△금수정(金水亭)
牛頭自昔亦聞名(우두자석역문명)-소머리 형상바위는 일찌기들어 알았네,
今日還來水上行(금일환래수상행)-오늘 뱃길로 돌아드니,
曾識主人無處問(증식주인무처문)-이미 주인은 안계시네
可憐浮世足傷情(가련부세족상정)-안타깝도다 아픈마음이여
亭前巖畔小舟橫(정전암반소주횡)-금수정앞 너럭바위에 작은 배 묶여있고
常有游人得渡行(상유유인득도행)-늘 여행객들이 건너기를 기다리네
淸絶江山誰管領(청절강산수관령)-뛰어난 경관은 누구 것이란 말인가
水禽空自向人情(수금공자향인정)-물오리만이 사람들을 따르네
纍纍疊石曝黿鼉(류류첩석폭원타)-여기저기 기괴한 바위들 널려있고
半倚溪頭半入波(반의계두반입파)-반만큼 기대어 물속에 잠기네
見有楊家題刻在(견유양가제각재)-양사언의 명필석각 눈에 띄니
數行堪換一群鵝(수행감환일군아)-이아니 군계일학인가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우두정(牛頭亭)
碧樹牛頭北(벽수우두북)-푸른 나무숲 우두산(牛頭山) 북쪽에 있고
秋風馬首東(추풍마수동)-가을바람은 마적산(馬蹟山) 동쪽으로 분다.
重來傷歲換(중래상세환)-다시 와서 바뀐 세월을 슬퍼하고
久坐惜亭空(구좌석정공)-오래도록 앉아 없어진 정자를 애석해하네.
水冷煙霏歇(수랭연비헐)-물은 차고 안개 걷히니
林疏日氣通(림소일기통)-숲은 트이고 햇살은 들어오네.
仍將桃竹杖(잉장도죽장)-이에 대나무 지팡이 짚으려 하니
暫映菊花叢(잠영국화총)-잠시 국화꽃을 비추네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
△우두정(牛頭亭)
携酒遠相送(휴주원상송)-술자리 벌여 멀리 서로 보내니
牛頭潭上亭(우두담상정)-우두산(牛頭山) 못가에 솟은 정자라.
淵源河內學(연원하내학)-정자(程子)의 학문을 근원으로 하였고
詩禮濟南生(시례제남생)-시경(詩經)과 예기(禮記)는 복생(伏生)의 생도이다.
晩水如鷗白(만수여구백)-해질녘 물가 갈매기처럼 하얗고
遙山與眼靑(요산여안청)-먼 산 눈빛 함께 푸르스름해라.
悠悠千古調(유유천고조)-유구한 천고의 가락으로
留取歲寒情(류취세한정)-추위를 견뎌낸 소나무의 마음 취하네.
상촌(象村) 신흠(申欽
△증 금옹시(贈 琴翁詩)
緣綺琴伯牙心(연기금백아심)-녹기금(초록비단에 싼 거문고)백아(伯牙)의 마음
種子是知音(종자시지음)-종자기가 바로 知音을 하는 구려
一鼓復一吟(일고복일음)-한번 타고 다시 한 번 읊으니
冷冷虛籟起遙岑(냉냉허뢰기요잠)-서늘한 약한 바람은 먼 봉우리서 일어나고
江月娟娟江水深(강월연연강수심)-강가의 달은 곱디고우며 강물은 깊고 깊다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백아(伯牙)-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거문고 명인
종자기(鍾子期)-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들었다고 한다
△준암(罇巖)
준암급주(尊巖汲酒)
平生漫浪翁(평생만랑옹)-한 평생 부질없는 늙인이가
自汲준巖酒(自汲준암주)-혼자 준암의 술을 길어내는데
溪水日東流(계수일동류)-냇물은 햇살 동쪽으로 흐르건만
淸傷不我負(청상부아부)-푸른 술잔을 날 버리지 않네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
*이곳에 술을 부으면 7말 정도 들어간다고 했다.
△준암(罇巖)
錄綺琴伯牙心(녹기금백아심)-거문고 타는 백아의 마음은
鍾子始知音(종자시지음)-종자기만 알아듣는 다오
一鼓復一吟(일고복일음)-한번 타매 또 한 번 읊조리니
冷冷虛籟起遙岑(냉냉허뢰기요잠)-맑디맑은 바람소리 먼 봉우리에 일고
江月娟娟江水深(강월연연강수심)-강달은 아름답고 강물은 깊기도 해라.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琴翁 錦水亭主人也 刻此詩於尊岩
금옹은 금수정 주인이다.
이 시를 준암에 새겼다.
△영평우두연(永平牛頭淵)
野闊暮光薄(야활모광박)-넓은 들판에 어둠이 엷게 깔리고
水明山影多(수명산영다)-맑은 물엔 산 그림자 비추네
綠陰白煙起(녹음백연기)-짙은 숲속 흰 연기 일고
芳草兩三家(방초양삼가)-풀밭사이로 집 몇채 보이네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양자강도망북고산도(揚子江渡望北固山悼)
先生豪氣蓋南州(선생호기개남주)-선생의 호기가 중국 남쪽을 다 덮으니
憶昔同登多景樓(억석동등다경루)-다경루(多景樓)에 더불어 오른 옛일 생각나네
今日重來君不見(금일중래군부견)-오늘 다시 왔어도 그대 볼 수 없으니
蜀江何處獨魂遊(촉강하처독혼유)-양자강 어느 곳에 홀로 넋이 떠 계시느뇨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금수정(金水亭)
春游已多日(춘유이다일)-어느새 며칠 된 이번 봄놀이
夙駕更侵星(숙가경침성)-새벽에 길을 나서 밤까지 노네
馬首知何處(마수지하처)-말 머리 어느 쪽을 향해야 할지
牛頭問古亭(우두문고정)-우두연(牛頭淵) 옛 정자서 길을 묻노라
洞門分石扇(동문분석선)-골짝 문은 큰 바위 갈라 서 있고
江路接雲屛(강로접운병)-강물은 구름 덮인 먼 산에 닿아
醞藉諧心賞(온자해심상)-가슴이 부푸는 건 당연지사니
瓌奇歎地形(괴기탄지형)-기이한 산수 모습 감탄스러워
觴流仍禊節(상류잉계절)-물 위에 술잔 띄워 삼짇날 쇠고
柯爛卽仙扃(가란즉선경)-도끼자루 썩는 선경 따로 없으니
晉日追高會(진일추고회)-진 나라의 고상한 모임과 같고
秦餘訝近坰(진여아근경)-무릉도원 가까이 있는 듯하네
坐隨花屢改(좌수화루개)-앉은자리 꽃 찾아 옮기며 놀 제
興與境俱冥(흥여경구명)-경치 따라 봄 흥취도 그윽하여라
杖屨移風磴(구이풍등)-바람 부는 돌 비탈 걸어 오르고
樽罍上釣舲(준뢰상조령)-낚시배에 술동이 실어 올리니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중구감회(重九感懷)
去年重九龍山巓(거년중구용산전)-작년 구월구일에는 용산에 갔었지
坐客望若登神仙(좌객망약등신선)-함께한 친구들 바라보니 신선이 하늘을 오르는 듯
達可放歌徹廖廓(달가방가철료곽)-달가는 노래 불러 쓸쓸함을 달래고
敬之下筆橫雲烟(경지하필횡운연)-경지가 붓을 돌리니 안개구름 피어나네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창옥병(蒼玉屛) 벼랑 바위에 아래의 암각(巖刻) 시문(詩文)이 있다.
谷鳥時時聞一箇(곡조시시문일개)-골짜기의 새소리 간간이 들리는데.
匡床寂寂散群書(광상적적산군서)-쓸쓸한 침상에는 책들만 나딩구네.
每憐白鶴臺前水(매린백학대전수)-안타갑도다, 백학대 앞 흐르는 물이,
纔出山門便帶淤(재출산문변대어)-겨우 산문(門)을 지나오니 문득 흙탕물일세.
사암(思庵) 박순(朴淳)
△경도(瓊島)
사진은 포천시 금수정에서 서남간의 물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새겨 져 있는
양사언의 글씨 경도(瓊島)다.
경도(瓊島)의 의미는 “경(瓊)”은 구슬경자 로서 “옥 바위섬”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북경의 고궁 서편 북해공원에 호수 안에 있는 황제의 궁원 안쪽 한 돌 섬이다.
봉래 양사언는 그 유서 깊은 경도(瓊島)가 여기 포천의 금수정 아래 바위라고 여긴 듯 멋들어진 글씨를 남겼다. 몇 번을 보아도 잘쓴 글씨이다
△창옥병(蒼玉屛)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영평천변에 있는 벼랑이다.
영평8경 중 3경이다. 창옥병(蒼玉屛)이란 이름이 말하듯이 기암괴석이 마치
푸른 옥으로된 병풍(屛風)이란 뜻이다.
“해동지도(海東地圖)”에 “창옥병(蒼玉屛)은 영평천(永平川)가의 벼랑으로
푸른 바위가 옥병풍(玉屛風)처럼 벌여 있어 생긴 이름이며 영평팔경의 하나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수정(金水亭)
十年塵土鬂如絲(십년진토빈여사)-10년을 속세에 사니 귀밑털이 실같이 적어졌는데
一笑懽娛問幾時(일소환오문기시)-한번 웃으며 대단히 즐거워하는 경우가 몇 번이나 될까?
晩向江湖訪漁父(만향강호방어부)-늘그막에 속세를 떠나 자연 속으로 어부를 찾아가니
白鷗心事少人知(백구심사소인지)-갈매기처럼 끼룩거리며 날고 싶은 생각 아는 사람이 적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란석(瀾石)
중국 사신 허국이 쓴 “회란석(廻瀾石)”이란 글자를 새긴 것이라 하는데
“란석(瀾石)”만 남아 있다
회란석(廻瀾石)은 “물결이 휘감아 도는 바위”라는 설명이다.
△동천(洞天)
동천석문(洞天石門)이란 글씨 중에 석문(石門) 글자는 땅에 묻혀 있다고 하나다
洞天石門(동천석문)은 한석봉의 친필로 유명하다.
동천(洞天)은 도가(道家)에서 신선(神仙)이 산다는 별천지를 말한다.
즉 신선(神仙)이 사는 별천지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포천 안동김씨 고가(古家)
안동김씨 문온공(文溫公) 김구용(金九容) 종택(宗宅)이다.
양평 지역 8곳의 절경(양평8경)중에 하나인 금수정의 북쪽 구릉지에 포천 안동김씨
고가(古家)가 남동 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찾았던 곳으로 외부 손님들이 자주 방문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가옥 구조에서 사랑채의 규모가 큰 편이다.
안동김씨 고가(古家)는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그대로 지미고 있으며 한강 이북 지역에 몇 안 되는 조선 후기 양반가옥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온공(文溫公) 김구용(金九容)
문온공(文溫公) 김구용(金九容)은 서기 1338년에서 1384까지의 고려말엽의
정치가, 교육자, 성리학자(性理學者)다.
시(詩)에 능하여 동국시성(東國詩聖), 해동공자(海東孔子)라 불리었다.
고려 공민왕 때 16세의 어린 나이로 진사에 합격한 뒤 18세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정몽주, 박상충, 이숭인 등과 더불어 성리학을 일으키고 불교를 배척하는 척불숭유의 선봉에 섰으며, 원나라를 밀어내고 중국을 장악하기 시작한 명나라와 친교를 하자는 친명파였다. 원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일을 반대하다가 6년 동안 유배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1384년 명나라와 국교수립을 위한 사신(使臣)으로 가던 중 요동에서
백금 1백냥과 세모시, 마포 각 50필을 지참했다는 누명으로 체포되고,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명으로 대리위로 유배되던 중 병사하였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