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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Series 07. 광야교회의 가치(5)
200719(주일오전)
신명기 32:15-25
작년 연말 중국 우한에서 발현한 코로나 19가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는 중이고,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전 세계를 심각한 두려움에 몰아넣고 있으며, 전 세계가 여러 방면에서 심각한 몸살과 아픔들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이러한 와중에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몸살과 아픔이 대다수의 교회들이 앓고 있는 영적인 몸살과 아픔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건강한 교회는 어떤 모습의 교회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건강한 교회와 교회의 본질에 관한 말씀들을 나누어야 하겠다는 거룩한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건강한 교회와 교회의 본질에 관한 말씀들을 나누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성경적인 교회, 정상적인 교회는 전염병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하심과 치유하심이 있는 단체입니다. 시91편 말씀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91:1-7)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나는 예전에 군생활의 후유증으로 복부에 피부곰팡이인 백선이 쭈욱 퍼져나가는 상태에 있었고 복부 전체를 다 덮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피부병을 치료할 만한 약도 없었습니다.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었다면 나는 그 약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약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샤워를 할 때마다 물을 뿌리며 “예수의 피! 예수의 피! 예수의 피!”를, 뜨거운 물을 뿌릴 때는 “성령의 불! 성령의 불! 성령의 불!”을 선포하며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이미 이루어놓으신 하나님의 치유를 믿음으로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노라!”(벧전2:24)는 믿음의 선포를 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가 지났을까... 꽤 많은 날들이 흘러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도 여전히 예수의 피와 성령의 불을 선포하며 치유의 말씀을 주장하려고 샤워기를 들고 복부를 쳐다보았는데, ‘어? 없어졌네! 깨끗해졌네!’ 복부의 백선이 흔적도 남지 않고 다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온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의학으로 치유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유받은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위에서 행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염병 따위에 두려워하며 움츠러들고, 예배드리는 일까지 등한시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전진하는 교회입니다.
2천년 전, 소아시아의 7개 교회들 가운데 하나가 사데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그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너는 죽은 자(you are dead!)”라는 사망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계 3:1) 『사데 교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I know your deeds, that you have a name that you are alive, but you are dead.』
그리고 사데 교회의 사자(목회자)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계 3:2-6)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저는 우리 지구촌사랑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라는 책망을 받았던 사데 교회처럼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2:9)는 주님의 칭찬을 들었던 서머나 교회와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계3:8,10)는 주님의 칭찬과 격려를 받았던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살아있는 교회,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우리 지구촌사랑교회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로 그 교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로 그 교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지금 그러한 소원을 품고 그것에 관한 성경의 진리들을 하나하나 선포하며, 저 자신과 여러분들을 일깨우고 있는 중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세워 가시는 교회의 원뿌리가 “광야교회”에 있음을 보여줍니다(행7:38).
교회의 원뿌리가 되는, 광야교회의 특징은
1] 유월절 어린양의 살과 피로 구원받은 교회
2] 살아 있는 주의 말씀을 받고 부흥하는 교회
3] 예배에 생명을 건 교회
4]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원뿌리가 되는, 광야교회의 세 가지 중심축은
1] 회막(성막, 성전, 예배당)
2] 율법(말씀)
3] 모세(하나님의 종,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이상의 특징들을 한 마디로 줄이자면 “교회란 구별된 장소에 모이는 하나님의 백성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유요한 목사님께서 코로나19 사태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상황들을 바라보며 그분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리셨습니다.
이른바 ‘온라인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온라인설교’라는 말은 있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선교회’라는 명칭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온라인교회’라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얼음” “따끈한 냉면” “달 밝은 대낮”이라는 말처럼 성립할 수 없는 말입니다.
‘교회’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ecclesia)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로부터 from”의 뜻을 지닌 전치사 에크(ἐκ / ek)와 “부르다 call summon”의 뜻을 지닌 동사 칼레오(καλέω / caleo)의 합성어입니다. ‘ek+caleo’(~로부터 부름 받다)의 명사형이 ‘ecclesia’입니다.
그 의미는 “~로부터 불려나온 사람들” 혹은 “~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에클레시아’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이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모임은 ‘공적 모임’을 뜻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본래 아테네 시민의 총회인 ‘민회’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어떤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부름 받은 시민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했습니다. 아테네 민회(에클레시아)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꽃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집 곧 가정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날 ‘민회’에 참가하기 위해 어떤 특정한 장소에 공적으로 함께 모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에클레시아’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일 때만” 존재합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테네 시민의 ‘민회’처럼 신자들이 자신의 집에 있다가 주일날 공예배로 특정한 장소(건물이든, 공터이든)에 공적으로 모일 때 비로소 교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이지 않으면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형교회는 모일 때에만 존재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온라인교회’라는 것은 言語道斷(언어도단)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교회’라는 말은 ‘뜨거운 얼음’이라는 말처럼 ‘사기성 언어’입니다. ‘에클레시아’는 공적 모임이며, 모여서 예배하는 공예배가 사라진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온라인선교회’라는 말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교회’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로 교회 되게 하십시오. 교회는 모일 때에만 존재합니다. 이른바 ‘온라인교회’를 세워 헌금을 온라인으로 받아 챙기는 자들을 주의하십시오. -이상.
교회의 원뿌리인 광야교회는 이상과 같은 특징과 중심축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원뿌리가 되는, 광야교회의 가치는
1.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모세의 설교사역에 있었습니다.
(신 31:30-32:3) 『[30]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 [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2. 하나님의 택하심과 보호하심에 있었습니다.
(신 32:9-10)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3. 광야교회의 가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에 있었습니다.
(신 32:11-14)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4. 광야교회의 가치는 신주주의(神主主義)에 있었습니다.
광야교회의 주인은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아론도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니었습니다. 광야교회의 주인은 오직 한 분 주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광야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만 움직여야 했습니다. 모세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교회여야만 했습니다. 비록 모세가 광야교회의 전면에 나서고 지도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지시하심을 따른 것이었지 모세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광야교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섬겨나가지 아니하였을 때 가나안의 축복에서 제외되고 버림받았습니다.
오늘도 광야교회의 가치에 관한 말씀을 이어서 선포하도록 하겠습니다.
5. 광야교회의 가치는 하나님의 사랑의 간섭하심과 징계에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미움”이라는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9:13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야곱과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에서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 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헬. miseo ; 싫어하다. 미워하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말라기 1:2,3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말 1:2-3)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히. sane ; 미워하다. 증오하다)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하나님은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고, 에서에 대한 하나님의 미움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에서를 향하신 하나님의 미움은, 에서가 그 어떤 잘못을 범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시지 않고 훈계하시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에서가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삼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에서에게 훈계하시거나 간섭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고 에서가 그냥 에서의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야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야곱이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징계의 매를 드셨고, 그 결과 그로 하여금 올바른 길로 돌이키도록 해 주셨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받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보상을 받게 해주시는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인생에 사랑으로 적극 간섭하시고 징계의 매를 드셨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그냥 야곱으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이 사기꾼으로 살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이 잘못한 부분들에 대하여 철저히 간섭하시고 징계하심으로 그를 올바른 길로 돌이키게 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길에 들어서도록 적극적으로 간섭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복된 자리로 나아가기까지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한 징계를 경험하는 시간은 야곱 자신에게 참으로 “험악한 세월”로 느껴졌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여 생활하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의 죄에 대한 징계를 하셨지만, 동시에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도 주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가문이 본격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삶은 그가 애굽으로 이전한 후 17년간 진행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창 47:27-28)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야곱의 가문이 애굽으로 내려와, 그곳에서의 복된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그 때에, 야곱이 애굽의 왕 바로 앞에 서서 고백했던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애굽의 왕 바로 앞에서 자기를 이렇게 소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이 말하는 ‘험악한 세월’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을 야곱으로 살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의 잘못을 깨닫고 의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려고 사기꾼인 외삼촌 라반을 통하여 14년의 봉사기간을 거치고, 일에 대한 품삯이 10번이나 바뀌는 어려움들을 거치며 그의 잘못에 대한 징계를 대가들을 치루게 하셨고, 그의 이름까지 이스라엘로 만드시기 위하여 야곱과 씨름을 하는 동안 그의 허벅지관절을 위골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형인 에서를 피해서 하란으로 도망갔다가 20년 만에 고향인 가나안으로 돌아오는데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다가 허벅지관절을 다쳐서 다리를 절게 하신 것입니다. 다리를 절며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멀쩡하게 힘 있어 보이는 에서와 다리를 절고 있는 초라한 모습의 야곱 중에서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누가 더 하나님의 자녀처럼 보이고, 누가 더 복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까?
당연히 멀쩡하게 힘 있어 보이는 에서가 하나님의 자녀로 보이고 복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하나님께서 인생에 관여하셔서 다리를 절고 있는 초라한 모습의 야곱이 하나님의 자녀요 복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우리를 향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간섭하심과 징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광야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대상이신지라,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광야교회를 간섭하셨다는 이야기이고, 바로 그것이 광야교회의 가치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광야교회는 유월절 어린양의 살과 피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고 계속해서 복을 주실 계획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을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며, 땅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고,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게 하시며, 포도즙의 붉은 술(히. hemer ; 발효음료)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삶을 기름지고 윤택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 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잠 10:22)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시 112:1-3)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이상의 말씀들처럼 하나님께서는 광야교회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상과 같은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교회를 그토록 사랑하시고 그와 같은 풍성한 복을 주시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소원이셨기 때문이었고, 그들에게 그런 풍성한 은혜들을 베푸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답게 “올바른 자(히. ieshurun, 여수룬)”로 세워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호명할 때, “올바른 자”라는 의미의 “여수룬”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와 같은 기대감을 가지시고, 그들로 하여금 윤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풍성한 복을 주시는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반대되는 길을 향하여 달음질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악한 모습에 대하여 모세가 이렇게 한탄하였습니다.
(신 32:5-18)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15] 그런데 여수룬[히. ieshurun ; 올바른 자]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광야교회가 하나님을 향하여 이상과 같이 타락한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신 32:19-25) 『[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히. naats ; 거부하다. 경멸하다. 업신여기다. 이 말은 말1:3의 에서를 미워하셨다(히. sane ; 미워하다. 증오하다)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에서에게는 방임하는 미움이고, 광야교회에는 그들의 악함을 용인할 수 없다는 미움입니다.)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22]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23]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24]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25]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26] 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광야교회를 유월절 어린양의 살과 피로 구속하여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사, 그들을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며, 땅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고,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게 하시며, 포도즙의 붉은 술(히. hemer ; 발효음료)을 마시게 하사, 그들의 삶을 기름지고 윤택하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교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복 주심에 부응하여 더욱 더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함으로 배은망덕한 행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백성들을 통하여 그들을 시기 나게 하시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실 것이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 수 더 떠서 굶주림과 독한 질병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심으로 밖으로는 칼 즉 전쟁으로 멸망하고 방 안에서는 놀람 즉 두려움으로 멸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광야교회가 이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차 사라지도록 철저히 응징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의 타락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의 타락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공동체의 타락을 경계하는 그 길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요, 복 받는 길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광야교회가 비록 타락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광야교회를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광야교회로 하여금 총체적인 위기 가운데 더 이상 물러서거나 피할 때가 없기에, 꼼짝없이 두려워 떨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 꿇고 회개밖에 할 것이 없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광야교회가 죄악 가운데 빠졌을지라도 그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간섭하셔서, 마침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부르는 찬송이 이것입니다.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입니다.
1.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2.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주시니 그 사랑 한 없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3. 나 예수 의지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주님께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아멘.
광야교회가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놀라우신 복을 받고도 배은망덕하여 죄악 가운데 빠졌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간섭하셔서, 마침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해 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광야교회의 5번째 가치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 12:3-17)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은 옛 가수 박재란씨를 아십니까? 박재란씨는 1960년~1970년대 초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럭키 모닝, 님” 등등의 히트곡들을 내며 무려 17년간 1,000여 곡의 노래들을 불렀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내었던 스타가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80년대 초반, 미국에서 어느 날 응급차에 실려 갔습니다. 난치성 신경성위궤양이란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진맥진해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는데, '광야의 소리'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국말로 나오는 방송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 또한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도 고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온 몸이 눈물과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라는 외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건강을 회복하였고, 그 후로 하나님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하나님의 은혜들을 간증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죽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이켜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특별한 은혜가 그녀에게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광야교회의 가치가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잘못된 상태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의 간섭하심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참 된 하나님의 교회에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한 복이 있고, 교회가 비록 잘못된 길, 사망의 길로 들어설 때조차 하나님은 그 교회를 곧 바로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잘못된 길,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돌이킬 수 있도록 징계로 간섭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타락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진다면 즉시 하나님께로 돌이켜 회개함으로 생명의 길, 거룩의 길, 부흥의 길을 달려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지구촌사랑교회가 바로 그와 같은 복된 길을 달려갈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지금까지 선포한 광야교회의 가치에 관한 말씀을 총정리합니다.
1. 광야교회의 가치와 생명력은 모세의 설교사역에 있었습니다.
2. 광야교회의 가치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보호하심에 있었습니다.
3. 광야교회의 가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에 있었습니다.
4. 광야교회의 가치는 신주주의(神主主義)에 있었습니다.
5. 광야교회의 가치는 하나님의 사랑의 간섭하심과 징계하심에 있었습니다.
우리 지구촌사랑교회가 이상과 같은 광야교회의 가치를 따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정해주시는 가치 있는 복된 교회로 우뚝 서 가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보상을 마음껏 누리되, 광야교회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복 주심을 망각하고 배은망덕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징계의 자리에까지 들어가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거룩의 길, 생명의 길, 부흥의 길을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