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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결국 성령입니다!
기도! 하면 대체로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청원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그리고 습관적으로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네. 기도해 드릴게요.’ 같은 대화를 자주 나눕니다.
물론 오늘 주님 가르침에 따라, 간절한 원이 하나 있다면, 정말 절박하다면, 마음과 정신, 목숨과 영혼을 다해 아버지께 청할 필요도 있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 9)
사실 내가 건강해야 복음 선포도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가 합격해야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몫을 당당히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평화롭고 가화만사성해야, 그를 바탕으로 이웃 사랑의 실천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기도의 전부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기도는 청하는 것, 훨씬 그 이상의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현존 안에 지속적으로 머물려는 노력입니다.
기도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기쁘고 충만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일입니다. 기도는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일입니다.
이런 기도는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결국 성령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굳건히 현존하시며 힘차게 활동하실 때, 성령께서 우리 인생 여정을 항상 인도하실 때,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기적을 기꺼이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하느님께서 기도를 빨리 안 들어주시는 이유>
복음: 루카 11,5-13
오늘 복음도 역시 예수님께서 기도에 관해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청할 때 꾸준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무언가를 청할 때 들어줄 때까지 떼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바로 줍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빨리 얻어내는 방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밤에 손님을 맞은 친구는 먼저 자는 친구를 깨웁니다.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그러나 계속 졸라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다 줍니다. 그 친구는 속으로 ‘이 친구가 이렇게 나를 괴롭히니 들어줘야지. 아니면 또 찾아와서 괴롭힐 거 아니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친구는 빵을 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친구의 친밀감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언가 계속 청해도 된다고 믿는 관계는 깊은 관계입니다. 아내만이 남편에게 계속 청할 수 있고 아이만이 엄마에게 계속 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청하는 것을 최대한 빨리 받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 청을 거부한다는 말은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는 내가 청하고 받고 또 상대의 청을 들어주는 것으로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조앤 롤링의 ‘해피 포터’ 시리즈 출판 여정은 인내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녀의 원고는 최종적으로 승인되기 전에 12개의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책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를 믿고 그 출판을 맡아준 출판사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일단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 사람의 인격을 믿고 함께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게 점원이라면 가장 두려워할 것이 무엇일까요? 손님이 떠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느님도 이것을 가장 두려워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지나다가 진열장에 꼭 입고 싶은 옷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비쌀까 봐 문을 열고 머리만 집어넣고 점원에게 묻습니다.
“이 옷 얼마예요?”
점원은 “100만 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때 그 사람이 그 옷을 살 확률이 높을까요? 아마 “당신은 저 옷을 살 돈이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이 없죠. 가격만 빨리 알고 그냥 가던 길 가세요!”라고 느낄 것입니다. “뭐? 나를 무시해?”라며 보란 듯이 옷을 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그 사람에게 옷을 사서 기쁨을 주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말 훌륭한 직원은 어떻게 말할까요?
“아, 예! 잠깐 들어와서 앉으세요. 제가 가격을 알아보는 동안 차 한 잔 드시면서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다?”
일단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그 친절함에 점점 보답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점원은 눈썰미로 이미 그 사람의 치수를 알아서 맞는 옷을 가져와 입어보라고 합니다. 입어보니 딱 맞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150만 원이라고 해도 그 옷을 살 것입니다. 존중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서 무언가를 청하는 우리에게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청을 들어주면 다시 필요한 게 있을 때까지 오지 않을까 봐 그게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잡아놓고 싶어서 지금 청하는 것을 당장은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사우로부터 도망쳐서 외삼촌 라반의 동네로 피신하였습니다.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레아와 라헬이었습니다. 야곱은 동생 라헬을 더 좋아하였고 라반에게 청하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축복의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7년을 일해주면 라헬을 주겠다고 합니다. 야곱이 7년을 일하고 눈을 떠보니 레아가 누워있었습니다. 라반은 라헬과 결혼시켜 주면 금방 자신을 떠날 것을 알고 7년만 더 일하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래서 7년을 더 일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마음도 라반의 마음과 같으실 것입니다. 무언가를 들어주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떠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평생 죽기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청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처럼 이 시대에 그리고 이후에도 이해하기 힘든 구원의 원리를 쉽게 정립하여 놓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별처럼 많아지게 하시겠다고. 그러나 그 약속은 이사악 하나 낳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어서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빌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작은 청은 그냥 들어주십니다. 당신을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1,5-13: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9절) 하늘나라는 게으르고 한눈파는 자들이 아니라, 그것을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들에게 주어지고 발견되고 열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나라의 문은 기도로 청하고 바른 삶으로 찾고 한결같은 신앙으로 두드려야만 열리는 문이다. 기도와 올바른 삶 그리고 한결같은 신앙으로 노력해야 한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12절). 생선은 믿음을 상징한다. 생선은 물세례를 연상할 수 있고 이 세상 파도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반대로 뱀은 사람을 속여 하느님을 떠나게 한다. 달걀은 희망을 상징한다. 앞으로 병아리가 생겨나듯 곧 눈에 보이리라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전갈은 희망의 반대이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꼬리에 독침을 품고 있는 전갈을 경계해야 한다.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태 7,9) 빵은 사랑을 상징한다. 음식물 가운데서는 빵이 단연 으뜸이다. 돌은 그 반대이다. 돌처럼 단단히 굳은 마음은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당신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실 줄 아시는 그분이 우리에게 청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13절) 우리의 마음이 악에 휩쓸리기 쉽고 만유의 하느님과 달리 선에만 이끌리는 존재가 아니지만, 우리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듯이 그분께서는 성령을 주신다고 하신다. 여기서 성령은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들어감을 뜻하며 또한 성령의 은사를 가리킨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좋은 것이다. 그것을 얻는 사람은 가장 복되고 칭송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기도로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 안에 깨어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여야겠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꿈’이 무엇인지 발표하게 하셨습니다. 다양한 꿈이 나왔는데(당시 한 반에 70명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말했던 꿈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친구는 자신있게 ‘교수님’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의 말에 다들 크게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기에 이 친구는 전혀 교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수업 시간에도 항상 딴짓만 했습니다. 당연히 늘 반에서 꼴찌는 이 친구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교수님이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지? 오늘부터 열심히 공부하면 분명히 훌륭한 교수님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친구는 커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교수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친구는 끝까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목표(꿈)을 향한 과정 안에서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지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꿈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꿈이 크면 클수록 여기에 들어갈 노력의 크기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노력 없이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빵을 꾸어 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친구에게 빵을 내어주는 것은 혈연이나 학연, 인맥과 화려한 경력 때문이 아니라, 청하는 사람의 간절함과 진실함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기억하는 유명한 말씀을 하시지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절로 얻고자 한다면 큰 욕심입니다. 간절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편하고 쉬운 것만을 좇으면서 풍요와 안락을 달라는 것은 더 큰 욕심입니다. 그런 욕심으로는 절대로 우리가 정말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합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시고, 또 실제로 그렇게 좋은 것만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지요. 그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바라보기에 주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도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께 간절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 가장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휴식 없는 행복을 찾으려는 것은 헛된 일이다(토마스 제퍼슨).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9)
우리가 청해야 하는 것은
그분의 의로움이고
우리가 두드려야 하는 것은
그분 나라의 문이며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그분에 대한 희망이라네.
우리는
돌처럼 굳은 마음으로
뱀이나 전갈을 청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성령의 부드러운 빵을
간절히 청해야 한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깜찍이는 하느님께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성장판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깜빡하셔서
성장판 칩을 장착시켜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교만했던 깜찍이로 하여금
겸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깜찍이는 하느님께 가장 좋은 악기인
좋은 목소리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깜찍이에게
좋은 성대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깜찍이가
하느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깜찍이는 하느님께 튼튼한 간을 주십사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깜찍이에게
모델 하우스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간댕이를 주셨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깜찍이가 술까지 좋아했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는 제가 너무나 많은 것을 받고있다는 것을
사제의 삶을 살면서 깨닫습니다.
저는 가장 사랑받는 사제임에 분명합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3,1-5
1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참으로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5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