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5~6)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5)
'누구입니까'로 번역된 '티스 에스틴'(tis estin)에서 의문 대명사 '티스'(tis)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설의 법적 표현이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승리를 매우 구체적이며 개인적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원리와 수단이기는 하지만(1요한5,4), 삶속에서 실제적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는 주체는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본문에서 '이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호 니콘'(ho nikon)에서 '니콘'(nikon)은 현재분사로서 계속적 으로 '쳐부수는 자', '정복하는 자'라는 뜻이다. 즉 완성적 차원의 승리가 아니라 계속되는 전투에서 계속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계속되는 사탄의 유혹을 극복하면서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많은 이단들의 속임이 있었는데, 그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나감으로써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그리스도론적인 메시지와 함께 당시에 있었던 이단들을 염두에 두고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6)
사도 요한은 이제 요한1서 5장 6~9절에서 육화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확실한 믿음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물'로 번역된 '휘다토스'(hydatos)와 '피'로 번역된 '하이마토스'(haimatos)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다. 첫째는 물과 피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둘째는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물과 피로써 수난을 상징한다는 견해이다.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절의 물과 피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연관시켜 해석하였다. 셋째로 물과 피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심과 동시에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사건과 마지막 생애를 마감하실 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사건이라는 견해이다. 이 세번째 견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인간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께서 물세례(수세; 水洗)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고,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인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 하셨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생활 활동의 시작을 상징하는 물과 공생활 활동의 완성을 상징하는 피란 표현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행하신 활동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새 성경은 '오신'으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오신 분'(호 엘톤; ho elthon)이다.
'엘톤'(elthon)의 원형 '에르코마이'(erchomai)는 기본적으로 '오다'(come), '가다'(go)란 뜻인데, 여기에서는 부정 과거 분사로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이미 우리에게로 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당시 이단들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그릇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이 세례와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증명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영어의 'not~but'의 용법과 같이 전자를 부정함으로써 후자의 긍정적 의미를 보다 강조하는 '우크~알르'(uk~all)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만이 아니라'에서 '만'(only)에 해당하는 '모논'(monon)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물' 단 하나와만 연관시키는 자들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영지주의 이단 가운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떠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공생활 기간 잠시동안만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했다고 보는 견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즉 사도 요한은 '단 하나 그것만'이란 매우 강한 배타적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이단 사상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며, 또한 '우크'(uk)란 부정어를 사용하여 이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특히 후반절의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로 번역된 '엔 토 휘다티 카이 엔 토 하이마티'(en to hydati kai en to haimati)에서는 '토'(to)란 정관사와 더불어 '~안에'란 뜻이 있는 전치사 '엔'이 '물'과 '피'란 단어 앞에 개별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물'뿐 아니라 '피'도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며, 둘 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됨을 역설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증언하시는 분'으로 번역된 '토 마르튀룬'(to martyrun)의 원형 '마르튀레오'(martyreo)는 법적 용어로서 어떤 사실을 공적으로 증언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사도22,5; 1코린15,15).
여기서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성령의 역사(役事)를 묘사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곧 성령께서 친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을 증언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튀룬'(martyrun)은 현재 분사이므로, 그 증거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낸다(요한15,26; 16,13.14).
'성령은 진리입니다'로 번역된 '호티 토 프뉴마 에스틴 헤 알레테이아'(hoti to pneuma estin he alletheia)를 직역하면,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because the Spirit is truth)가 된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그 성령이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며, 그가 진리 자체이시므로 그가 증거하는 내용 역시 진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역시 진리인 것이다. 성령께서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내용이다(요한14,17).
한편 본문의 시제는 직설법 현재 시제이다. 그리스어에서 직설법 현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변치 않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령이 진리'라는 사실은 예수님 활동 당시에도, 초대 교회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변치않는 진리임을 나타낸다.
출처: 피앗사랑 /글쓴이: rigel |
첫댓글 🌺👣💕
늘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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