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6회 아카데미상 작품상은 실화의 주인공이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에 돌아갔다. 자유인으로 살아가던 바이올리니스트 솔로몬 노섭(영화속 이름 플랫)이 1841년 백인에게 납치돼 노예로 팔려간 후 혹독한 시련을 겪고 12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이야기다.
흑인노예에 관한 영화를 만든 흑인감독이 작품상 등 3개의 주요한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지 86년 만에 처음이다. 한 신문은 '노예가 주인이 되었다'라는 제목을 달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이유는 단지 노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빈정거림도 있었다. 백인들이 갖는 노예제도로 인한 죄책감에 대한 보상심리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흑인을 도운 착한 백인도 있었고 흑인들도 나름대로 만족하고 산 경우도 있는데 노예학대에만 초점을 맞춰 백인들을 깎아내렸다는 불만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여우조연상을 받은 루피타 니용고는 수상소감으로 "이 기쁜 최고의 순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의 영혼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동화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지네트 윈터의 '조롱박을 따라서'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다른 말로 '북두칠성을 따라서'란 이 노래는 탈출한 노예들에게 길가나 집 창틀에 묶어 놓은 식별표를 보고 계속 북쪽으로 가라고 인도해 주는 노래였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길 안내를 해주고 그러면 자유로운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는 흑인노예들을 비밀리에 탈출시키는 도망 루트를 말하는 '지하철로'였다. 여기서 철로는 실제로 철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비밀통로를 뜻한다. 그 뒤에는 노예들의 모세로 불리는 해리엇 터브먼이나 외발이 조 같은 그들을 돕는 비밀결사위원들이 있었고 간혹 백인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남북전쟁 후 노예제도가 종식되고 노예 금지법이 공포됐다. 하지만 법은 법일 뿐 실제로 노예에 대한 인종차별 의식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그 후로도 1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면서도 노예들의 탈출노래 '조롱박(북두칠성)을 따라서'는 죽지 않고 살아있더니 근세의 인권운동이나 민권 부흥운동에까지도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 초등학교 교육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흑인들의 인권신장을 위한 장구한 노력은 계속돼 왔고 그 결과 드디어 흑인을 대통령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흑인노예를 잡아다 강제노동으로 지은 백악관에 그들의 후손을 상징하는 '검은' 대통령이 자유인으로 들어서는 데 거의 2세기 이상이나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곳곳에서 차별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백인이었지만 흑인노예 해방에 평생을 받쳤던 윌리엄 뒤 보아는 인간의 삶에는 4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살아서 움직이고, 배워서 알고, 사랑하며, 꿈을 갖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노예나 억압 받는 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3개의 선택만이 주어질 뿐이다. '복종하느냐, 싸우느냐, 아니면 도망치느냐.' 그러나 이것마저도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만 한다.
이번에 작품상을 받은 영국계 흑인 스티브 맥퀸 감독은 "모든 사람은 생존(survive)을 넘어 삶(live)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흑인 노예제는 폐지됐지만 솔로몬 노섭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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