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83]산취 무쳐 먹은 '나홀로 저녁밥상'
산에서만 나는 냄새를 ‘산내’라 한다지만, 사전에 오른 낱말은 아니다. 2010년초 판교 원마을6단지 아파트로 이사를 하니, 축하차 방문한 형수(친구 아내의 통칭)의 첫마디가 “여기는 정말 좋다. 산내가 폴폴 나네”라고 말해 “산내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산에서 나는 냄새’임을 처음 알았다. 아파트 로얄층 바로 앞이 남서울CC가 있는 광교산 자락의 산이었다. ‘산내’는 좋은 말이다. 마치 산속에 있는 것같지 않은가. 봄비 개인 어제 오후 뒷산을 올랐다. 어디선가 산취 내음이 솔솔 풍겼다. 취나물이 군데군데 제법 보였다. 코를 들이대고 흠흠할 필요도 없이 ‘확실한 향香’이 있다. 산에는 취향도 있지만 더덕향도 있다. 산에만 들어서면 무슨무슨 향을 기막히게 잘 알아맞히는 부안이 고향인 친구가 생각났다. 솔향, 솔향기는 들어보셨으리라. 시어詩語로 쓰이는 내음도 냄새와 함께 표준어로 인정됐다고 한다. 이때의 향은 냄새보다는 내음이라야 어울릴 터. 정신없이 뜯었더니 비닐봉투에 하나 가득. 이것을 어떻게 헌다냐? 이 귀한 산나물을 어이헌다냐?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데쳐서 물기를 뺀 상태로 팩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놓으라고 한다. 다음에 내려갈 때 무쳐주겠다고 한다.
그래? 그 향취를 못내 못잊을 것같아 내가 한번 무쳐보기로 맘을 먹었다. 먼저 유튜브의 영상 두 개를 보고, 준비물을 챙겼다. 잘게 썬 대파 한 뿌리(이 1개가 875원일까?), 멸치액젓, 참치액젓, 들기름, 다진 마늘, 볶은 참깨 등이 그것. 먼저 산취를 두어 번 깨끗이 씻은 후 굵은 소금 한 숟가락(1T) 넣고 끓인 물에 넣었다. 3분만 해도 된다. 살짝 데쳐진 취를 찬물에 씻고 손으로 물기를 지긋이 짜낸 후 위생장갑를 끼고 “조물조물” 양념들을 골고루 섞었다. 그리고는 간을 보니 “딱”이었다. 이렇게 진한 향내가 입안에 오래오래 머무르는 제철 기막힌 반찬. 한마디로 황홀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지긋이 감긴다. “히야-, 이것을 어떻게 혼자 먹는대?”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데, 이 향기를 보내줄 수 없어 유감천만이다. 게다가 좀 늦었지만 몇 개 따온 두릅순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부러울 것이 없이, 지금 이 순간(now and here), 나는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the most happiest man가 된다. 덕분에 한 그릇 반, 과식過食하는 게 흠이지만, 뭐 어떠랴? 한번쯤 포만감을 실컷 느끼며 먹기도 해야거늘.
월말부부로 5년째 살고 있다. 달포 전까지는 초고령 아버지와 같이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질환(전립선 비대증)으로 요양원에 가셨다. 앞으론 돌아가실 때까지 그곳이 당신의 집이라고 말씀을 드리니, 할 수 없이 수긍을 하셨으나, 여전히 고향집에 혼자 있는 막내아들이 맘에 걸려 안절부절못하시는 것같다. 하루 세 끼 안부전화를 대여섯 번도 넘게 하신다. 솔직히 성가신 일이긴 하나(전라도 표준말로는 ‘숭시럽다’), 그 분이 무슨 낙이 있으시겠는가? 아침, 점심, 저녁 어김없이 “밥 먹어야제?” "밥 먹어야지?" 안부를 묻는다. 전체적으로 치매癡呆는 아니지만, 한두 달 전의 일은 까먹는 단기치매 증세가 갑자기 심해지셨다. 젊은 날의 일들을 기억하는 총기는 여전하지만. 언젠가도 썼지만, 아버지는 우리에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같은 '큰 산'이었다. 그 아버지, 약관弱冠 스무 살에 열일곱 살 어머니를 만나 72년 동안 해로偕老하셨다. 2016년 11월 KBS 휴먼다큐멘터리 <인간극장> 5부작으로 공중파를 타면서, 그 기록을 온전히 남겼다.
아버지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글이 옆길로 샜다. 산취는 쓰거나 맵지도 않지만, 왕년에 학교에서 외웠던 시조時調가 생각났다. <쓴 나물 데온 물이 고기도곤 맛이 이셰/초옥草屋 좁은 줄이 긔 더욱 내 분(分)이라/ 다만당 님 그린 탓으로 시름 계워하노라> 정치적으로는 아주 나빴던 시인 송강 정철이 지었다던가. ‘데온 물’은 ‘더운 국물’이다. ‘도곤’은 ‘보다’의 고어古語, ‘다만당’이라는 부사는 ‘다만’을 뜻하는데 어감이 좋다. 쓴 나물이든 쑥국이든 진짜로 고기보다 몇 배 더 맛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이 시조의 주제는 작은 집이지만 자기의 분수로 안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님(아내)을 그린 탓’에 시름이 겨워 ‘골병’이 들 것같다. '그립다 말을 할까하니 더욱 그리운 운명공동체인 아내여! 다음엔 당신의 입을 한껏 행복하게 산취를 조물조물 무쳐주리랴. 행복한 만찬, 즐거운 투정. 하하. 아쉽지만,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