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짙은 절망일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섭리』
역대상 7:22-23, 27. 471장
22 그의 아버지 에브라임이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의 형제가 가서 위로하였더라
23 그리고 에브라임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매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집이 재앙을 받았으므로 그의 이름을 브리아라 하였더라
27 그의 아들은 눈이요 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
역대상 7장에는 북이스라엘 6 지파의 족보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 당할 당시 함께 멸망한 지파입니다. 특히 수도 사마리아가 있던 므낫세 서쪽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를 예수 시대에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르며 이방인보다 경멸했으며, 예수의 주 활동 무대였던 갈릴리 지역은 마태복음 4장 15절 이하에서 ‘스불론이여 납달리여 이방의 갈릴리여’라고 부르며 이방인 취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족보가 역대기에 실려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세상에서는 사마리아 사람으로 갈릴리로 낙인찍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잊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비록 우상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외면하다 나라마저 잃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와 족보를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북쪽 이스라엘 지파들처럼 하나님을 외면하고 심판을 받게 되어 세상에서 낙인찍힐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의 이름을 생명록에 기록하실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이스라엘 12지파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완전 수입니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 처지에서 북이스라엘 지파를 기록하고 싶을까요? 남과 북은 멸망하던 순간까지 서로 원수처럼 싸웠습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 지파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을까요? 그러나 북쪽 지파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성경의 족보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큰 물줄기라면 그 물줄기를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북쪽 지파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공동체나 북쪽 지파와 같은 이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이유는 그들이 있어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북쪽 이스라엘의 족보를 기록하던 역대기 사가처럼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섭리를 위해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의 저주를 끊고 하나님의 사람이 마련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역대상 7장 23~24절을 보면 에브라임은 자기 아들들이 가드 원주민들의 가축을 빼앗다가 몰살을 당한 이후 다시 아들을 낳았을 때 ‘브리아-저주 재앙’이라고 이름합니다. 에브라임은 자기 아들들이 몰살당했을 때 이미 자기 지파와 가문은 희망이 없다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27절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나옵니다. 마치 놉 땅으로 유대된 아히멜렉 제사장 가문에서 예레미야가 나오듯이 말입니다. 에브라임은 절망하고 포기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문을 통해 여호수아를 예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이렇게 볼 때 우리의 깊은 절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더욱 밝히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지금 내 삶이 애브라임처럼 ‘브리아-저주, 재앙’이라면 곧 하나님께서 더 크게 일하실 것을 소망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삶의 적용 : 하나님은 인간의 절망을 무엇으로 끊으십니까?
마무리기도
깊은 절망 속에서 소망을 틔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