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폭염에 농민들도, 가축도, 작물도 모두 맥을 못 추는 모양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3일 기준 온열질환자 1303명이 발생해 이중 14명이 사망했다. 가축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폭염으로 25일 9시 기준 1435농가에서 217만7000여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고 밝혔다. 불볕더위를 피해 농작업을 밤에 하는 등 고육지책도 나오고 있다. 폭염 속 농축산물 관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농촌 현장을 들여다봤다.
◆더위 피해 농작업시간 변경 등 자구책=경북 봉화의 수박농가들은 요즘 낮과 밤이 완전히 바뀌었다. 35℃ 내외의 폭염이 지속되면서 한낮에는 정상적인 수박 출하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수박농가들이 한낮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 10시께부터 시작해 오전 9시께 상차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작업시간을 변경했다.
수박 재배농민인 황창호씨(57·재산면 갈산리)는 “요즘 같은 폭염에는 한낮 작업이 힘들 뿐만 아니라 수박품질을 저하시킬 우려도 있다”며 “야간작업이 힘들기는 하지만 폭염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작업시간을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간작업을 할 인부를 구하기가 힘들어 외국인 근로자로 구성된 수박작업팀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수박작업이 마무리되는 8월초까지는 이러한 작업패턴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소 재배농민들도 일하는 시간을 조정하고 작업방식을 바꾸는 등 나름의 묘안을 짜내며 폭염과 싸우고 있다.
감자 재배농가인 송중헌씨(52·명호면 도천리)는 “더위가 심한 한낮엔 감자 수확이 불가능해 점심시간을 3시간 정도로 늘리고, 대신 날씨가 선선한 아침과 저녁에 보충하도록 인부들의 작업시간을 조정했다”며 “밭에서 캐낸 감자는 열상을 입지 않도록 한시간 이내에 그늘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농작물 관리에 안간힘 쏟지만 피해 불가피=계속되는 폭염에 시설작물을 키우는 농가들의 속도 타들어가고 있다.
경남 김해에서 5950㎡(1800평) 규모로 상추·시금치·열무 등을 재배하는 김경희씨(51·대동면 초정리)는 “날이 너무 뜨거워 상추가 크지 못하는 데다 잎이 타고 꼬부라지는 현상이 나타나 하우스비닐을 벗겨내고 차광막만 남겨놓았다”며 “이렇게라도 환기를 해줘야 작물이 생육을 멈추거나 고사하는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비닐하우스 한동에서 상추를 한번 수확할 때 2㎏들이 50상자 정도 내는데, 지금은 절반도 채 안 나온다”고 했다.
부산 강서구에서 깻잎농사를 짓는 김구용씨(52·강동동)는 “햇빛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차광막을 이중으로 설치했지만 비닐하우스 안의 깻잎이 익을 정도로 뜨거워 소용이 없다”며 “아침저녁으로 물을 대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작물이 뙤약볕을 견디지 못해 크지 않고 타들어간다”고 토로했다.
경기 포천과 남양주에서 채소류를 재배하는 양명석씨(62)는 폭염이 맹위를 떨친 24일 오후에 힘들여 가꾼 참나물을 모두 갈아엎었다. 물을 자주 뿌려줬지만 고온에 잎이 말라버려 수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참나물뿐만이 아니다. 상추와 청경채 등 하우스 내 거의 모든 작물의 잎이 타들어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양씨는 “30년 넘게 농사를 지어왔지만 올해처럼 폭염으로 힘든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당일 수확해 바로 출하해야 하는 시설채소의 특성상 미리 수확을 해둘 수도 없어 숨이 턱턱 막히지만 뙤약볕 아래 힘들게 작업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곽동은 중앙엽연초생산협동조합 조합장은 “담배농가들도 농작물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면서 “봄철 잦은 비로 토양에 질소성분이 부족한 데다, 최근 폭염까지 지속돼 일부 담배밭에서 잎이 고사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축사 곁 대기, 24시간 환풍기 가동 ‘비상’=축산농가들도 수시로 축사 안팎에 찬물을 뿌려주거나 축사 안 환풍기를 24시간 돌려 더운 공기를 강제 배출하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사정이 녹록지 않다.
박천구 충남 금산축협 조합장은 “축산농가들, 특히 닭과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들은 최악의 폭염과 싸우느라 24시간 축사 곁을 지키고 있다”며 “최악의 피해를 막아보려고 더위와 전쟁을 치르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육중인 종계 2만마리 중 최근 4000마리가 폐사하는 피해를 본 유경식씨(58·충남 논산시 연무읍)는 “계사 내부가 후끈후끈해도 닭털이 날린다는 주변 민원 때문에 팬 환기구를 제대로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에어컨이나 지붕의 열 반사패드 등 시설을 보완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자금은 단기상환을 요구해 농가로서는 쉽게 쓰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경기 안성 일죽에서 11만마리 규모의 산란계농장을 운영하는 최종필씨(47)는 최근 계사 지붕에 점적관수시설을 설치했다. 한낮에 지붕에 물을 뿌려 닭장 안 온도를 낮추기 위한 고육책이다. 최씨는 “지붕에 관수시설을 설치해 물을 뿌려보니 내부 온도가 2~3℃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폭염피해를 줄이는 데는 역부족이다. 최씨는 “벌써 2주째 계속되는 폭염에 닭 한마리당 하루 사료 섭취량이 평소 125g 정도였는데, 최근 110g 안팎으로 줄어 달걀 크기도 작아졌다”면서 “사료에 영양제와 소금을 첨가해 먹이고 있는데, 이같은 폭염이 한달 정도 지속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남 김해 한림면에서 한우 130여마리를 키우는 박정석씨(52·장방리)는 “여름철 폭염이 지속되면 가축은 사료 섭취량이 줄고 면역력이 떨어져 질병이 발생하기 쉽다”며 “배합사료와 풀사료를 적정한 비율로 급여하고 미네랄 블록을 급여기 옆에 둬 소들이 소금을 보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천=김은암, 안성=유건연, 괴산=류호천, 금산·논산=김광동, 봉화=남우균, 부산·김해=노현숙, 김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