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키워드 이 글은 메를로-퐁티의 작업 노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단서들을 통해서 그의 문제 의식을 구체화시키는 두 번째 시도로 공간에 대한 시론이다. 지상의 사물들을 안고 있는 공간의 위상은 애매하다. 그것은 근대 과학을 통해서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 즉 빈 공간으로 재현되어 왔는데 현대 과학과 더불어 그러한 공간의 개념은 변모하기 시작했다.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서 공간은 이미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기술되기 시작하는데, 그러한 분석의 핵심에는 그의 유명한 신체-주체 개념이 있다. 과학적 반성의 한계와 더불어 공간 개념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한데, 이 글은 그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기 인간의 발견이 원근법적 회화에서 구현된 공간의 발견과의 상관성을 추적한다. 이러한 예술적 발견이 과학자들에 의해 모방되면서 이른바 근대 과학의 공간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다루는데, 특히 푸코가 말과 사물을 통해 말과 사물이 분리되었다고 말한 고전주의 시기는 비전을 잃고 말의 세계로 이행하게 된다. 이러한 근대적 소외과정은 빛을 기호화시키면서 빈 공간을 요청하게 되는 광학자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서 기술된다. 근대를 지나온 현대인들에 향한 이 글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상실에 올바른 애도의 태도를 촉구하는데 있는데, 프로이트가 암시한 바 있듯이, 애도의 문제는 애도하는 주체의 자기 정체성의 형성과도 연관을 가지기 때문이다. 유한한 인간 존재가 상실하고 애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애도에 있어 죽은 자의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움으로써 죽음을 부정하는 소외적 방식은 상실을 반복할 뿐이다. 애도란 죽은 자를 떠나보내기를 거부하나 죽은 자를 자신 안에 심어놓음으로써 죽음을 끌어안고 그가 살아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비전을 상실한 현대인들이 애도적 절망 속에서도 새롭게 뭔가를 볼 수 있다면, 메를로-퐁티가 말했듯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무의 공간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맹목과 소외를 재촉하는 소위 과학적 인간상에서 거리두기하면서 새로운 인간성을 모색하는, 그러나 잃어버렸던 본래의 인간성을 되찾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메를로-퐁티가 만년에 이룩하고자 했던 대작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이 150쪽 원고뿐이다. 이것의 역할은 무엇인가? 도입하기이다. 즉 독자를 통상의 사유 습관으로는 직접 이해할 수없는 어떤 사고 영역으로 안내하고자 한다. 특히 근대 철학의 기본 개념들 - 예컨대 주관과 객관, 본질과 사실, 존재와 무 등의 구별, 그리고 의식·이미지·사물에 대한 개념들-은 끊임없이 사용되어 온 터라 이미 세계에 대해 특수한 해석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러니까 결국 이 개념들은 우리 의도가 우리 경험과 대면하여 우리 경험 가운데서 의미의 탄생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일 때 특별한 자격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을 독자에게 납득시키고자 한다.
목차 1. 보이는 것과 자연 - 철학적 물음 반성과 물음 물음과 변증법 물음과 직관 얽힘-교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