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꿈꾸는 아이☆
1화 -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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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메니아 차원의 카라니아 대륙은 태초에는 동물도, 식물도, 아무 것도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였다고 한다. 신족들이 만들고는 곧바로 버렸다고 하는 땅. 카라니아 대륙의 시작은 그러했다.
그렇게 억겁의 시간이 지났지만, 카라니아 대륙은 여전히 불모의 땅이었다. 신족들조차도 자신들이 만든 카라니아 대륙이 그렇게 아무 변화가 없고 침묵만을 하고 있자, 아예 있었다는 사실마저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리고는 그 차원의 남 대륙인 케드로안 대륙을 살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카라니아 대륙을 버려 둔 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르메니아 차원의 시간으로 지금으로부터 4만여 년 전. 카라니아 대륙은 갑작스런 변화를 겪게 된다.
바로 대륙의 변형과 이상 기후가 그 주인공인데, 그 둘은 이때까지 버려진 땅이었던 카라니아 대륙을 다른 차원의 어느 대륙보다도 더 기름진 땅으로 탈바꿈 시켰던 것이다.
그 과정은 나도 잘 모르나 그‘사건’이후 카라니아 대륙은 남 대륙인 케드로안 대륙과 같이 산맥과 평지, 호수 등이 생겼고, 동물들과 식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카라니아 대륙은…….
신계의 여러 차원 이야기 중.
-19장 카라니아 대륙의 태초 - 에서 발췌.
하리세온력 2301년.
발키안·로인의 마지막 주.
뮤레이·로딘이 묘한 자줏빛을 내뿜으며 모든 생물들을 평안한 잠자리로 이끌고 있는 그때…….
파앗!
갑작스런 섬광과 함께 대륙으로 떨어지는 유성, 아니 빛 무리가 있었다. 그 빛 무리는 이 세상에 비치는 어느 빛보다도 환하고 아름다웠으며, 신성한 광휘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밤에만 눈을 뜨고 활동하는 부엉이들도, 누군가에게 쫓겨 밤을 도와 달아나는 사람들도, 꼭두새벽에 도둑으로부터 저택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도, 그 누구도 그 빛 무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새벽하늘의 자줏빛 달만이 그 빛 무리, 아니 새벽 하늘에 홀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광휘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콰당!
모든 생물들이 평안한 달빛에 취해 잠자리에 들어 묘한 정적만이 숲을 돌고 있었고, 부엉이와 늑대들의 울음소리만이 이 어두컴컴한 숲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을 무렵.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떨어진 빛, 아니 한 인영(人影)이 숲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으윽! 하필이면 이런 숲에 떨어질 게 뭐람. 역시 워프 존은 별로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니까.”
역시 그 정적을 깬 사람(?)은 떨어질 때의 고통으로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는 이베리노였다. 그리고 그 옆에 두둥실 떠 있는, 아주 자그마한 인영은 바로…….
[어쩔 수 없잖아요, 주신족이 이 세계에 강림한 것은 신계력으로는 벌써 2천여 년이 넘게 지났는걸요. 다른 물건들 속에 워프 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구요.]
왠지 신계와는 다르게 장난 끼가 다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샤르니아. 그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왠지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고 있었다. 이베리노도 그랬던 것일까?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우욱. 그런 표정은 짓지 말라고, 에나. 왠지 불안하니까 말이야.”
[호호홋. 알고 계셨어요?]
실제로 샤르니아의 말대로 2천 년 전의 카라니아 대륙과 지금의 카라니아 대륙은 확연한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이 숲이 2천 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어쨌든 샤르니아의 미소를 보고는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는 듯이 과장된 몸짓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이베리노를 바라보고는 왠지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아서 샤르니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그나저나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좌표를 정한 것도 이베리노님 이셨지, 제가 아니었다고요.]
하지만 나오는 말과는 달리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씽긋 웃고 있는 그녀가 왠지 사악해 보인다는 것은 이베리노만의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이베리노는 그 미소를 못 봤다는 듯이 그 답지 않게 쉽게 포기하고는 돌아섰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가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 일단 걸어 보자고.”
[그러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이베리노의 강림의 시작은 다른 것도 아닌, 골치 아픈 길 찾기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아직도 뮤레이·로딘이 자줏빛 자장가를 부르며 지상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럇!”
덜커덩 덜커덩.
숲의 평안을 깨는 것은 이베리노 일행만이 아니었다. 다급한 듯한 마부의 말을 재촉하는 소리, 그리고 그에 부흥해서 울부짖으며, 발을 힘차게 놀리는 네 마리의 갈색 말, 그리고 그 뒤에 매어져 있는 붉은 마차.
“워워!”
히히힝!
한동안 앞으로 계속 전진하던 그 새빨간 마차는 밤을 도와 도망 다니는 자들이나 다닐 법한, 자그마한 오솔길을 그 커다란 마차로 약 20여분동안이나 달린 후에야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위에서 말들을 재촉하던 마부는 좁은 길들만 찾아서 달리다가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말들도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 이제는 좀 안심하셔도 될 듯싶습니다, 아가씨.”
끼익!
얼마나 지났을까? 한 동안 숨을 헐떡이던 마부가 드디어 입을 열었고, 그가 말을 함과 동시에 열리는 마차의 문 사이로 자그마한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새빨간 머리칼은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핏빛과 같았으며, 그 사이로 비치는 새하얀 얼굴은 분명, 아름답지만 뭔가가 결여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치…, 감정이 결여된 인형의 그것과 같았다.
“드디어…, 따돌린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아가씨.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군요.”
마차 안에서는 은은하게 새빨간 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지만 의자에 앉아있는 소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녀의 정신과는 상관없이, 온몸이 두려움에 휩싸여 휘청거리는 듯했다.
“하지만, 정확히는 모르니 아가씨께서는 마차 안에 들어가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괜찮…, 겠어, 아란?”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 이래봬도 저도 꽤 유명한 검사였으니까요.”
그때까지 감정 없는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던 소녀가 그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자 마부는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을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미소의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미소에 안심을 했을 따름일까? 소녀 또한 얼굴에 불안한 기색을 지우며 살포시 마주 미소지어 보였다.
“그래.”
하지만 그것은 그 마부에 한정된 것인 듯, 다시 고개를 돌린 소녀의 표정은 원래의 인형과 같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정적.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숲 속의 동물들은 거의 모두가 꿈나라에 가 있었고, 이때까지 깨어있던 부엉이들과 늑대들은 진원지 모를 살기에 눌렸는지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심지어 보통 때는 자그마한 소리를 내며 나뭇잎을 데려가던 바람조차도 이 순간에는 멈춘 듯싶었다. 그리고 새벽 창공에 떠 있는 뮤레이·로딘은 그들의 앞에 찾아올 운명을 느끼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방금 마차가 지나간 길을 따라서 또 한 무리의 인간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새카만 로브를 얼굴까지 뒤집어 쓴 그들의 표면에는 그들을 막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듯, 싸늘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암살자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후훗. 저기에 있었군. 네놈들이 뛰어봐야 벼룩이지. 자, 가자!”
[이노님. 잘 아셨죠?]
“알겠다니까. 그러니까, 웬만하면 이 가르베니아 차원에서는 마법을 쓰지 말라는 거지?”
[네, 아무래도 이곳은 하르벤 차원과는 달리, 인과율이 존재하는 곳이니까요. 위험할 때나 다급할 때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 이외에는 쓰지 않으시는 것이 좋아요.]
“알았어. 흐음. 그나저나 그 인과율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영향을 주는 건가?”
이베리노는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리자, 샤르니아는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여웠던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인과율은 가르베니아 차원에 있는 모든 존재라면, 신이라고 해도 그 영향을 줄 수가 있어요. 하르벤 차원은 진신(眞神) 이트리나 님께서 직접 관장하시지만 이곳은 이트리나 님께서 직접 관장하시기보다는 인과율과 다른 몇 가지의 흐름을 만드셔서, 그것으로 하여금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셨으니까요.]
“으음…, 그런 거였군.”
이베리노는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그가 뭔가를 느낀 듯이 주위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샤르니아도 곧 그것을 깨달았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노님? 누가 이쪽으로 오는 듯 한데요?]
“그런 거 같네. 레가드리안 차원에서 흔히 말하는 어쌔신(암살자)인 듯한데…, 뭐, 상관없겠지. 우리가 목표는 아닌 듯하니까 말이야……. 아마도 목표가…, 우리 밑의 인물들 같은데?”
이베리노와 샤르니아는 정확히 자신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이상,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 바둥바둥 거린 다고 해서 길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굶어 죽을 일도 없는데다가 시간은 무한하게 남고, 또 이렇게 걷다 보면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과연 하늘도 그들의 생각을 알았는지, 걸은 지 30여분도 지나지 않아서 한 마차가 그들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차가 이상했던 것이 마차 표면이 마치 사람들의 피로 칠한 모습인 양 새빨간 색을 하고 있었고, 정말로 마차 표면에서 역겨운 피 냄새가 났던 것이었다.
결국 마차의 인간들이 쫓기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베리노와 샤르니아는 흥미가 동했는지, 조금만 더 지켜보기 위해서 바로 옆에 있던 커다란 나무에 올랐던 것이었다.
하지만 샤르니아는 이베리노와는 달리 약간 걱정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무 아래에 있는, 죽음이 드리워져 있는 듯한 새빨간 마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와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우리들의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들인 것 같은데…, 암살자들이 가르쳐 줄 리는 없고…….]
“귀찮아.”
[하, 하지만….]
이베리노는 싸움이라는 이름만 보이는지, 정작 중요한 길에 대한 일은 까먹고 있었다. 실제로 샤르니아의 말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도와줄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샤르니아는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글세? 이베리노는 여전히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몰라, 지금은 피곤해. 그리고 내가 신경 쓸 바도 아니잖아.”
다른 인간들이 본다면 이기적이다 할 수도 있겠지만 신족들은 개인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샤르니아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도 아무 이유 없이 인족들을 도와주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샤르니아는 알고 있었다. 인간들은 한 번 도와주면, 그 도와준 사람의 배낭까지 내노라고 한다는 것을……. 하지만 여행을 편하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돌아가려는 이베리노가 원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에휴…….]
“그렇게 편하게 가고 싶으면 에나, 네가 도와주지 그래?”
움찔.
이베리노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샤르니아의 마음이 뻔히 보인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그런 이베리노의 말을 들은 샤르니아는 움찔거리고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헤헷. 아, 아니에요. 그냥 지켜보도록 하죠.]
“훗, 그래?”
아까 와는 전혀 상반된 상황에 이베리노는 쿡쿡 거리며 웃고 있었고, 샤르니아는 그런 이베리노를 보며 분하다는 듯이 이베리노를 째려보고 있었지만 이베리노는 계속 숨을 죽이며 웃고 있을 따름이었다.
‘음?’
주위를 경계하던 알란은 저 멀리서 밀려오는 거대한 살기의 파도에 경계심을 돋우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예전에 암살자 수업을 받았던, 아니 받았던 정도가 아니라 하네스 제국의 어둠의 왕. 즉, 하네스 전체의 어쌔신 마스터였던 그로서 살기를 느낀 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다가오는 살기는 단순히 상대방을 겁주려는 종류의 살기가 아니라, 정말 살기만으로도 사람의 심장을 멈추게 할 만한 그런 엄청난 살기였다.
“이럇!”
그런 갑작스러운 알란의 행동에 놀랐는지, 그 붉은 머리칼의 소녀는 다시금 창밖에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알란? 무슨 일이라도…….”
“아가씨! 이제부터 전속력으로 달릴 테니 꼭 붙잡으세요. 그리고 제 말이 있기 전까지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크윽!”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붉은 머리의 소녀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의 목이 새빨간 죽음의 기운을 내뿜으며 땅으로 추락했으며, 동시에 그의 몸도 땅바닥을 굴러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뮤레이·로딘의 자주색 달빛마저 어둠의 장막으로 가리고 있는 숲의 커다란 나무들 위에서는 검은 죽음의 그림자들 여럿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 이런…, 젠장!”
낙마한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알란은 고개를 휘휘 내저으면서도 지금의 상황이 대충 어떤지 정리하고는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토록 이들의 손아귀에서 도망치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역시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결국 죽음의 그림자는 자신을 향해, 아니 자신이 지키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아가씨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역시 저들을 따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보군…….’
알란이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고, 혼란에서 빠져나올 무렵. 어둠의 그림자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그들의 리더인 듯한 사람이 알란을 아는 체 하기 시작했다.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큭큭… 오오! 이거 놀라운데? 우리가 찾고 있는 목표에 배신자, 알란까지? 이거 일석이조로군, 그래?”
“제, 젠장 할……, 역시 너희들이었군. 더러운 자식들.”
“왕년의 마스터께서도 참도 처량하시군 그래? 그 콧대 높던 어쌔신 마스터께서 이제는 어쌔신들에게 쫓기는 신세라니…….”
“…….”
“아, 알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알란이 어쌔신 마스터였다니?’
붉은 머리의 소녀는 앞에 있는 암살자들이 뿜어내는 살기보다도 자신의 마부이자 지금은 유일한 보호자가 된 알란이 어쌔신이었다는 것이 더 놀랍고 경악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서 굳은 일도 도맡아 했으며, 항상 남에게 친절을 베풀던 알란이 죽음의 그림자들의 수장이었다니…….
어쨌든 알란을 비꼬던 그 어둠의 그림자들은 이제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더더욱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기운에 알란과 그 소녀는 점차 몸이 굳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 잠깐. 아가씨, 아가씨만이라도 살려주면 안 되겠는가?”
“흥, 네 녀석도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카르에센 제국 내에까지 들어왔는지를 알텐데?”
물론 그도 알았다. 이 죽음의 그림자들의 목표는 자신이 아닌,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를 모시고 왔다는 것을…….
하지만 약속이 아니더라도, 이 아가씨를 어떻게 하더라도 지켜내고 싶었다.
처음에는 이미 죽어버린 케리어스 공작과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아가씨를 지키고 있었지만 사람의 정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듯, 이 아가씨가 5살이 되던 해부터 지켜왔던 지라 자신의 딸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때 어디선가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분명 그것은 인계의 생물들이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은 아니었지만, 알란에게는 어느 누구보다도 익숙한 기운이었다.
‘그, 그가 이곳에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 그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지?’
알란은 생각했다. 분명히 그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기운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고 있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그가 이곳에 있다는 뜻, 그것은 아가씨를 살릴 수 있다는 뜻과 동일했다.
물론 그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으니까.
‘그래, 어차피 아가씨를 지키기로 약속한 이상. 내 목숨을 잃더라도 아가씨를 살리는 것이 좋겠지. 더구나 그는 아가씨에게 나보다 더 어울리는 존재가 될 테니까.’
그는 결심했다. 비록 자신의 목숨은 사라지겠지만 아가씨는 그가 살려줄 것이고, 아가씨에게는 자신보다 그가 더 어울릴 것이라고…….
그리고 결심한 이후에 행동은 어쌔신들이 어떻게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새벽 창공을 가르는 찬란한 광휘여! 나 그대와의 계약에 따라 내 목숨을 제물로 바치겠다! 계약의 조건은 이 암살자들의 몰살과 아가씨께서 하늘의 품으로 돌아가실 때까지의 보호, 그 두 가지다! 흐아앗!”
[후우. 그나저나 이름은 무엇으로 바꾸실 거냐고요!]
“……, 이름이라?”
원래 신족은 하계에 내려갈 때는 반드시 자신의 본 이름은 쓰지 못하게 되어있다. 신족의 이름이 하계에 알려진다면 신족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쓸 때 없는 자존심이 그 이유였다. 그 덕분에 지금 이베리노가 이렇게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뭐, 적당한 이름 없나?”
그때 갑자기 이베리노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이름. 그건 다름 아닌…….
“아! 로아네스! 로아네스가 좋겠다!”
[네? 로, 로아네스요?]
“그래! 로아네스. 통합신, 루비나의 부인. 얼음의 왕비라 불리는 그 로아네스님 말이야.”
[하, 하지만 이노님은 남자잖아요, 하필이면 왜 그 여자의 이름을…, 다른 좋은 이름도 많을 텐데…….]
샤르니아는 그 이름이 마치 저주의 대상이라도 되는 양, 상당히 꺼리는 듯한 표정을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그런 말을 귀담아 들을 이베리노가 아니었다. 자신이 일단 결정한 일은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바꾸지 않는 인물이 바로 그였으니까 말이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처음부터 인계의 여행은 여성 체로 하려고 했으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사실이었다. 그는 인계에 강림하기 전부터 한 번쯤은 여성 체로 변신을 해서 여행을 하고 싶었다. 뭐, 하도 누나인 라이나르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여자보다도 더 여자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그의 이성적인 체계가 여성으로 바뀌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베리노는 그렇게 말하고는 뭔가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냐?”
[뭐, 뭐가요? 앗! 이건?!]
“그래, 이건 인간과 신족의 계약에 대한 실행의 주문인데…, 더구나 그 주인공이…, 나잖아?”
[네에? 그, 그게 무슨…….]
샤르니아는 무슨 소리냐는 듯 재차 질문을 했지만 이베리노는 그녀의 물음에도 침묵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설마, 저 밑에 있는 붉은 색 마차가 알란 녀석이 타고 있었던 마차였단 말이야? 이런 낭패가…, 지금 이 주문을 실행하면 자신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것을 모를 녀석이 아닌데. 이거 어쩌지?”
[이노님!]
자신의 말에 이베리노가 대답하지 않자, 샤르니아는 화가 났는지 거의 괴성에 가까운 목소리로 이베리노를 불렀다.
그리고 이베리노는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던 중에 갑작스럽게 귓속으로 울려 퍼진 엄청난 괴음에 귀를 막으며 아미를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노님의 계약이라니?]
“아아, 그거?”
이베리노는 정말로 별 것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건 사업상 비밀이야.”
도대체 뭐가 사업상 비밀이라는 것인지, 샤르니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베리노가 한 번 말해주지 않는 것들은 아무리 괴롭(?)혀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알기에, 재빨리 단념했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저 복잡한 일들 사이에 끼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에휴…, 맘대로 하세요.]
샤르니아는 자신이 말릴 수 없는 일임을 깨달은 대다가, 어차피 여행을 위해서라도 저 마차의 주인들을 돕자고 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에 한숨을 내쉬고는 그 조그맣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날개를 열심히 놀려서 이미 저만치 내려가고 있는 이베리노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크윽!”
“아, 알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알란의 복부가 암살자들의 암기에 뚫려버린 것은 말이다. 하지만 알란은 피로 범벅된 자신의 복부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죽음의 기운보다는 아가씨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계약자에 대한 희망만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이런 젠장…, 아프잖아. 그나저나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계약자가 이렇게 불성실해도 되는 거야?’
“아, 아가씨. 레리어스 아가씨…….”
“흑흑흑. 아, 알란…….”
루비처럼 아름답고 붉은 두 눈동자에서 나오는 저 샘물같이 맑은 눈물을 보면서 알란은 생각했다. 내가 죽더라도 저 아름다운 아가씨는 살려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는 저 아름다운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다.
다만…, 그의 계약자가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때의 이야기겠지만…….
‘그 녀석, 설마 귀찮다고 거절하는 것은 아닌지 몰라. 그러면 좀 곤란한데…….’
그의 계약자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본래부터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인간이 아니니, 강제로 듣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후훗. 아가씨. 울지 마세요. 아름다운 얼굴이 완전히 부어오르겠네.”
“이, 이 바보야! 지금 그런 거 신경 쓰게 됐어? 그리고 곧 죽을 사람이 그렇게 즐거워 보이면……,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레리어스라 불린 소녀는 주위에 있는 죽음의 기운들도 무시한 채 알란의 얼굴을 붙들고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하긴 어릴 때부터 따르던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쳐해 있는데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 감정한 사람이거나 인간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 붉은 머리 아가씨는 적어도 그 둘에 해당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쿨럭. 거, 걱정 마세요. 아가씨. 저는 죽더라도 아가씨만은 살려 보낼 테니까요.”
“그, 그런! 알란마저 죽으면…, 난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라고!”
“조만간, 조만간 나타날 거예요. 저보다 레리어스 아가씨께 어울리는 사람이…….”
그렇게 죽어 가는 알란과 레리어스의 대화를 저만치서 따분하게 듣던 암살자들은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잠시 죽여 놓았던 죽음의 기운을 한순간에 풀며 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마치 근대들이 다 잡은 사냥감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 슬금슬금 다가가는 것과 같이 말이다.
“후훗. 더 이상은 지겨워서 못 봐주겠군. 그래. 그러니까 알란 자네는 길드에서 도망친 이후로 계속 케리어스 공작 가에 있었던 것이로군 그래? 뭐…, 그런 것은 상관없지. 훗. 이제 땅의 정령들에게 제사를 지낼 시간이다. 그럼, 잘 가거라!”
“쿨럭, 훗! 어림없는 소리. 나는 죽더라도 아가씨의 목숨은 못 준다. 이노 녀석! 언제 나올 참인야! 거기서 지켜보고 있으면 누가 모를 줄 알았냐?”
어쌔신들은 물론 붉은 머리 소녀마저 그렇게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는 알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궁금증도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알란의 말과 함께, 하늘에서는…, 아니 정확히는 그들의 머리 위에서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같이 아름답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계약 접수다! 죽음의 기사, 알란! 편히 잠들거라! 새벽의 광명이 너의 지친 영혼을 달래줄 것이니라!”
찌잉!
“으음? 이런, 그 녀석인가? 이곳에 오면 한 번 만나보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만남이 이뤄지다니 이거 참 아이러니 하네.”
여전히 나무 위에서 인간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이베리노는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기운에 약간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그가 인계에서 아는 존재라고 있었던가?
샤르니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이베리노님! 그, 그게 무슨 말이죠? 아는 사람인가요?]
“아아? 응, 저기 죽어 가는 녀석. 아는 녀석인데 말이야. 꽤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이런데서 죽는군. 뭐, 어쩔 수 없지. 인간들이나 신족들이나 죽음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죽어 가는 알란을 향해 잠깐의 애도를 하던 이베리노는 드디어 결심했다는 듯이 그 예의 부드럽게 파도치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일어섰다.
“그래. 계약 접수다! 죽음의 기사, 알란! 편히 잠들거라! 새벽의 광명이 너의 지친 영혼을 달래줄 것이니라!”
그렇게 간결하게 알란의 계약을 접수한 이베리노. 갑작스럽게 마법의 가방에서 하프를 꺼내들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얼음같이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은색 빛이 하프의 매끄러운 표면을 타고 흐른다. 물색 빛이 아홉 개의 현을 타고 흘러내리며 하프의 표면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이노님? 도대체 무슨…….]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한줄기 새하얀 희망의 꽃과 같이……, 죄수의 목을 향해 떨어지는 날카로운 죽음의 단두대 같이……. 허공에 흐트러지는 죄수의 피가 땅의 정령들의 입을 적셔주네…….”
이베리노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붉은 머리의 소녀는 물론이고, 암살자들까지 놀랐다. 하지만 그 소녀는 알란이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는지, 더욱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암살자들은…….
“이, 이럴 수가! 아까 전의 그 주문은 설마…….”
“크윽…. 이제야 알았느냐? 나 혼자 죽지는 않겠다. 아가씨를 위험에 쳐하게 할 존재들은 모두 없애 버릴 테다!”
그리고 피맺힌 절규보다도 더 악에 받친 듯한 알란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육체는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마 사막에서 쌓았던 모래성이 거센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때 흐느껴 울던 소녀가 오른 쪽 다리를 절면서도 바람처럼 사라져 가는 알란의 모습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꼭 움켜잡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흑. 아, 알란. 나, 나도 따라서…….”
“후훗. 아가씨. 이제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제가 죽더라도 이제 그런 소리는 절대 하지 마세요. 아셨죠? 지금부터 아가씨께서 만나실 분은 그런 소리를 가장 싫어하거든요. 그럼……. 제가 하늘에서 다 지켜 볼 테니까 힘내세요, 레리어스 아가씨,”
알란은 자신을 꼭 잡으며 울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 레리어스의 흐르는 눈물을 닦고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신은 이제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한 그러한 웃음.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얼굴까지도 바람에 날려 허공에서 흐트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 알란을 보며 기절한 레리어스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의 흐름에 맞춰 울려 퍼지는 듯한 아름다운 하프소리와 그 뒤를 이어 허공에 울려 퍼지는 섬뜩하고도 아름다운 천사의 노랫소리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한줄기 새하얀 희망의 꽃과 같이……, 죄수의 목을 향해 떨어지는 날카로운 죽음의 단두대 같이……. 허공에 흐트러지는 죄수의 피가 땅의 정령들의 입을 적셔주네…….”
갑작스런 알란의 행동에 당황해하는 암살자들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하늘에서는 섬뜩한 빛의 화살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암살자들의 절규. 어둠의 사신들이 죽음의 기운에 겁에 질려 괴성을 지른다면 이런 목소리였을까? 쇠를 긁는 듯한 섬뜩한 죽음의 목소리가 아직 자애로운 아침의 태양을 맞이하지 못한 어두운 숲을 울리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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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曉天星夢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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