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둑 길
이정연
바람은 언제나
거기서 불어왔습니다.
그애와 같이 걷던 강둑길
그러나 한 번도 같이 걸어보지 못한
강둑길
그애는 언제나
시오리 등하교길
건너편에서 걸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개울물보다 먼저 오던 강둑길
우리들만을 위한
강둑길
우린 서로 다른 무대에서 연기하며
서로 바라보는 배우였습니다.
아니 한눈파는 척
열심히 훔쳐보는 관객이었습니다.
강둑 기슭에서 쑥 캐는 체
물풀 아래 각시붕어 잡는 체
억새풀 흔들다
건너편으로 날아가는 꽃씨 보는 체
그러다 누군가 물수제비라도 뜨면
물결 모양 흉내를 내며
검은등할미새도 한 마리
수면 위를 멀리 멀리 날아갔습니다.
소도구처럼
능소화 빛 해가 줄줄이 뜨고
바람이 불고
들꽃이 내리고
고추잠자리 떼지어 오르고
눈이 내리고
그애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길
하느님이 만드시는 길
하지만
맑은 개울 속으로만 만나던
강둑길
하늘 빛 하늘 길에서만 만나던
강둑길
아니 아니
해질 녘 내 긴 그림자 기울어
강 건너편
그애의 신발에 닿아
숨죽인 기쁨으로
고양이 걸음으로
함께 걷던
강둑길
그러나 가도 가도
만날 수 없는
강둑길
가다 가다 가끔씩 징검다리로나 이어지던
강둑길
어쩌다 한가위 성묘길에
남편과 나란히 걷는 그애를
지금도
건너편에서만 바라다보는
강둑길
그것이 여지껏 아픔인 줄도 모르고 걸었던 강둑길
그것이 여지껏 능소화인 줄도 모르고
지금도
그애 집 돌담에 피어내리는 꽃
이라고만...
그 꽃
줄기처럼 길고
긴
강둑길
갈수록 개울물 불어
넘실대는 강물에
무너질까 조바심하면서도
한없이 이어지는
강둑
길
내 가슴 속
아무도 모르는
강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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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너질까봐 조바심하면서도 한없이 이어지는 강둑길...지금은 접해보긴 힘든일지요.. 즐감하고 갑니다...좋은시간 되소서~
안녕하세요 즐거운 연휴, 고운 봄길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