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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임시거처에 지낸 지도 30일이 다 되어간다.
몸은 대충 회복이 되었으나, 전기가 끊기고 식량마저 고갈이 되어 생존해 있는 사람들 또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임시거처라는 곳은 학교건물이다.
우리는 식당에 옹기종기 모여 생활을 하고 있다.
밖은 어둡고 추우며 지독한 산성비에 함부로 나갈 수도 없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찾아주는 사람도 없고 찾으러 나서는 사람도 없다.
하루하루 어둠 속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어가고 있다.
“쿨럭~! 쿨럭~! 엄마 나 추워... 배고파... 쿨럭~!”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참아봐... 사람들이 구하러 올 거야...”
초하나에 빛을 의지한 채 얇은 담요로 애를 감싸고 있는 아주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애처롭다.
천둥소리 같은 굉음과 진동은 이제 익숙해져서 몸이 적응한듯하다.
그러나 시커먼 산성비가 추가되면서 을씨년스러운 광경에 우리의 현실과 뒤섞여 좌절을 느끼며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가 되었다.
이대로 있다간 아마 모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쌀쌀하고 어두운 학교식당에 생존해있는 사람들은 대략 50여 명 쯤 되는듯하다.
처음 여기로 왔을 때는 사람들이 100명도 넘은듯했지만, 한 달 사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죽은 사람들과 음식이 모자라고 전기가 끊기면서 다른 곳으로 떠난 사람들이 많아져서이다.
떠난 사람들 중에 다시 돌아온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철영씨~! 우리 이대로 있다가 다 굶어 죽겠다! 밖에 음식 좀 구하로 가봅시다!”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한 젊은 남자가 말을 건넨다.
“남자들 몇 명 데리고 탐사대 만들어서 주변에 수색한 번 해봅시다! 분명히 주변 건물에 잘 찾아보면 음식이 있을 거야!...”
그러나 나는 의지를 잃었다.
배고픔과 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 아들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들의 대한 그리움이 좌절로 변하더니, 이젠 체념한듯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되고 나니 삶의 의욕을 누구보다 빨리 잃어버리게 되고 창밖만 보며 우울하게 앉아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게 말을 걸던 청년이 말없이 창문 밖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러다 식탁 위로 껑충 뛰어올라서더니 큰소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저기 여러분들! 잠시만 주목해 주십시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물과 음식이 이젠 거의 다 고갈이 된 상태입니다! 앉아서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축 처져있는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반응은 하지만 이렇다 할 동조는 없다.
그는 사람들을 한번 쭉 둘러 보더니 계속 말을 잇는다.
“분명히 밖에는 음식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생필품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누가 갖다 주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 스스로 찾아서 구해와야 합니다! 저 아래 도롯가 쪽에 대형마트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분명히 우리가 필요한 것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올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때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랫동네 도롯가에 토네이도 있는 곳 말하는 겁니까? 거기에 갔다 무슨 일 당하면 어쩔라 그래요?!”
“맞아 맞아 거기 갔다간 죽고 말 거야! TV에서도 가지 말라고 그러던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된다.
“여러분들 밖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 붉게 타오르는 토네이도는 여기저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위험한지 안 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밖에서 죽나 안에서 굶어 죽나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어휴 끔찍해 멀리서 봐도 위험해 보이구만... 저기 갔다간 분명히 죽을 거야 난 안 갈래...”
“너무 무서워... 그냥 여기 있으면 분명히 사람들이 구하로 올꺼야... 가만히 있는 게 나아...”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찮다.
용기를 내 사람들에게 어필했던 그 청년도 머쓱한지 별말 없이 그대로 서 있다.
나는 창문 밖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붉게 타오르는 토네이도를 보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저 회오리들은 왜 움직임이 없는 걸까... 토네이도라면 분명히 이동을 할 텐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위치가 변함이 없는 거 같다... 고정되어 있는 건가?...
나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밖을 나가보지 않아 상황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붉은 토네이도가 이동하지 않는다는 점은 거의 확신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점인, 정말 토네이도 같은 성질의 것이라면 주변을 빨아들일 것이다.
근데 주변을 빨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는 멀어서 그것까지는 자세히 보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식탁 위에 서 있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우두커니 서서 난처한 표정으로 있는 그에게 살며시 말을 건넨다.
“태영씨...”
그가 아래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본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요...”
이런저런 생각들을 그에게 얘기를 해주었다.
한참 내 말을 듣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밖에 나가 확인도 해보고 건물도 뒤져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태영은 내 말이 끝나자 다시 큰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
“여러분들~! 토네이도가 걱정된다고 하시지만 가만히 보십시오! 며칠 전과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전혀 움직임이 없단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 회오리 같은게 주변을 확 빨아당긴다든가 그런 거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나가서 직접 확인을 해보자는 겁니다!”
그는 내가 하지 않은 말도 내뱉는다.
그러나 가만있기로 한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이번에는 약간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기 이렇게 모여있는 우리는 또 다른 가족입니다. 가족이 굶어 죽게 내버려 둘 겁니까?! 남자들은 가장이라 생각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굶어죽을 때까지 움츠려만 있을 겁니까!? 지금은 행동을 할 때 입니다! 자!! 누가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누가 저와 함께 음식과 생필품을 가지로 가겠습니까!? 누가 가족들에게 나눠주겠습니까!? 용기있는 남자분들이 아무도 없습니까!?”
사람들이 웅성웅성 댄다.
“같이 가입시다!”
웬 지긋하신 노인분이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늙은이라도 필요하다면 같이 가봅시다! 까짓 거 죽기뿐이 더하겠나... 나라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도움을 드리리다!”
노인의 말에 아까보다 더욱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그러더니 영감님의 말을 선두로 같이 가자고 손을 들며 일어서는 이가 많아졌다.
태영의 입가에 미소가 든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이렇게 탐사대가 만들어졌다.
남자 10명이 의기투합하여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밖엔 화산재와 산성비가 섞인 검은 비가 내리고 있다.
맨몸으론 나가기가 어렵다.
“태영씨 우비가 필요할 듯한데... 지금 장비가 아무것도 없는데 어쩌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연다.
“여긴 학교니깐 분명히 찾아보면 뭐라도 있을 겁니다! 우리 흩어져서 여기저기 샅샅이 뒤져 봅시다!”
그의 말과 함께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학교 내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소란이 있었던 후 사람들은 이것저것을 내어놓기 시작한다.
실내화, 양동이, 끈이 풀린 작은 운동화, 책가방, 농구공, 작은 우산... 이런 것들이 사람들 앞에 놓여있다.
태영은 농구공을 한 손으로 들며 한숨을 내쉰다.
“농구공 가져온 사람 누굽니까? 농구시합 하자구요?”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린다.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왔는데 힝...”
왠 남자 꼬마가 엄마 뒤에 숨어 얼굴만 빼죽 내밀고는 입술을 뿌루퉁하게 내민다.
나는 갑자기 드는 생각에 꼬마를 불러본다.
“꼬마야~ 이 농구공 어디서 구했니? 더 있어?”
그러자 꼬마는 손가락으로 체육관을 가리킨다.
“네! 저기저기 아주 많이 있어요~ 히히...”
태영은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느끼곤 입을 연다.
“농구공을 헬멧대용으로 씁시다... 밖에 비 오잖아요...”
그제야 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하는 눈치다.
나는 태영과 탐사대원들을 이끌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후레쉬로 주변을 둘러보니 꽤 넓은 실내에 바닥엔 먼지가 자욱했다.
관중석 쪽 아래에 보니 물품보관실이라 쓰여있는 문이 반쯤 열려있다.
나는 그곳을 후레쉬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가봅시다!”
꼬마 말대로 농구공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뒤쪽엔 천막 같은 게 구겨져 처박혀 있다.
가까이 가서 들춰보니 꽤 묵직하다.
힘껏 들춰내니 땡그랑 하며 쇠막대가 우르르 쏟아진다.
“이게 뭐지...? 아... 야외용 천막 같은 건가 보다...!”
나는 태영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밖으로 빼내자는 신호를 한다.
사람들과 물품을 다 빼내고 나니 농구공, 축구공, 배구공, 천막, 그물 등이 나왔다.
“자 이걸로 비를 막을 수 있는 장비로 제작해 봅시다!”
태영의 말에 사람들은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공을 사람 머리에 맞춰 헬멧 모양으로 자르고 천막을 잘라서 우비를 만들었다.
이렇게 희망을 품고 사람들이 움직여주니 아까와는 다른 훈기가 돌기 시작했고, 근래에 들어와 처음으로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가랑비처럼 시커먼 비가 흩날리고 있었고, 바닥은 늪지대처럼 질퍽거렸다.
먹구름 사이의 붉은 기둥과 우레는 한층 더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였다.
몇 개 되지않는 후레쉬 빛에 의지하여 주변을 경계하며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아악~! 철퍽!!”
얼마 못가 앞서 가던 무리에서 소리가 들린다.
일행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살폈다.
바닥에 넘어져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아아... 씨발! 아파라... 아야 아야...”
일행 중에 나이가 제일 어린 윤후가 자기 두상보다 큰 농구공헬멧을 고쳐 쓰며 일어나는 게 보인다.
“아... 밑에 돌뿌린가...? 뭐에 걸려서 넘어졌어요...!”
그러면서 윤후는 지팡이대용으로 가지고 있던 쇠막대로 바닥을 훑어본다.
그리곤 무언가를 쇠막대기로 들어 올리더니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아...아... 시... 시... 시체... 으...”
반쯤 썩은 사람시체가 흙탕물에 뒤섞여 흉측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것이 보였다.
“아오~ 개깜놀! 시발... 간 떨어질 뻔 했잖아...”
계속 투덜대던 윤후를 태영이 주의를 시키곤 뒷사람들에게 다시 출발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일행은 시체를 애써 외면하며 전방만 주시한 체 더딘 발걸음을 떼었다.
분명 이 근방 사람들 일 텐데도 지금은 마치 처음 와보는 듯한 동네에서 홍길동 씨 댁을 찾는 것처럼 어렵게 이동을 하고 있다.
익숙했던 동내가 완전히 낯선 곳으로 뒤바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건물들 외벽은 검은 비 자욱에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렵고 군데군데 지진으로 인해 쓰러진 건물과 갈라진 땅, 온갖 잡다한 물건들과 쓰레기들이 뒤엉켜 널브러져 있으니 도로와 비포장길, 내리막 오르막을 분간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나마 붉은 토네이도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완전한 어둠이 아니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아랫마을 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자 하니 그 붉은 토네이도에서 나오는듯한 굉음이 점점 커지는 게 들린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옆에 시커먼 물줄기가 하수구를 향해 흘러간다.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가던 장난감 자동차가 보인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준이와 아내가 떠오른다.
아...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어떻게 갑자기 증발하게 된 거지?... 살아는 있을까?...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낼 거야... 반드시...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올라온다.
그리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도대체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누군가가 아내와 아이를 납치해 간 걸까?... 아니면 정신 잃은 나를 두고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를 버리고 갈 사람도 아닐 테지만 누가 와서 납치를 해갈 이유도 없다...
얼마나 갔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멍하니 바닥만 보고 앞으로 가다가 앞사람과 부딪치며 멈추게 되었다.
저기 멀리 붉게 타오르는 토네이도가 보인다.
그리고 바로 옆에 대형마트인듯한 큰 건물도 보인다.
“자 거의 다 왔습니다! 저기 토네이도 보이시죠!?”
태영이 검지로 붉게 타오르는 토네이도를 가리킨다.
“흠...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안전해 보이지도 않는구만...”
태영이 붉게 타오르는 토네이도를 보며 나지막이 내뱉는다.
온 세상이 컴컴하지만, 토네이도 주변은 밝다.
그리고 토네이도와 잇는 하늘은 석양에 물든 노을처럼 불그스레하다.
태양처럼 쳐다보기도 어려울 만큼의 아주 밝은 빛은 아니지만, 형광등처럼 계속 보고 있으면 불편한 정도의 밝기는 되는듯하다.
길거리에 내팽개쳐져 있는 자동차 뒤에 숨어 우리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의논을 하고 있다.
토네이도와의 거리는 대략100미터 남짓 되는듯하다.
“지금 몸이 불편하거나 어떤 이상 증상이 있는 사람 있습니까?”
태영이 모여있는 일행들에게 낮게 소리친다.
그러자 막내 윤후가 손을 들며 외친다.
“배가 너무 고파요...! 아마도 저기 저 회오리가 내 배고픔을 더욱 촉진시키는거 같에요~!!”
장난꾸러기 윤후는 어김없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농담을 던진다.
그런 윤후를 보고 일행은 작은 실소를 날리며 다들 꿀밤 한 대씩을 먹인다.
“아! 아야!... 사실인데 왜 그래요~! 꿀밤 먹이지 말고 배부른 걸 먹여줘요!! 아... 배고파 얼른 가봐요! 회오리에 죽나 배고파죽나!,,, 얼른가요 태영형~!! ”
태영은 일단 당장 몸에 아무런 증상이 없자 나에게 눈으로 신호를 주며 회오리 쪽으로 조금 더 접근해보자고 한다.
“자! 여러분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봅시다... 지금도 충분히 가깝긴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선 조금 더 가야 할 듯 합니다!”
일행들은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물체들에 몸을 숨기며, 은폐 엄폐를 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종종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회오리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이상하게 굉음은 조금씩 줄어드는 듯하고, 옆 사람의 작은 소리도 잘 들렸다.
대략 50m쯤 접근했을 무렵 태영이 일행을 세운다.
“일단은 위험할지도 모르니깐 한꺼번에 몰려가는 거보단 세 사람만 우선 정찰조로 가보도록 합시다... 같이 가실 두 분만 거수하세요...”
윤후가 잽싸게 손을 든다!
“저요!”
“같이 갑시다!”
나도 손을 들었다.
이렇게 윤후와 나, 태영 세 명에서 정찰조로 회오리 쪽으로 먼저 가보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엉거주춤 자세로 앞으로 나아간다.
굉음은 귀가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줄어드는 것인가? 어떻든 이제 불편하지는 않다.
다만 정전기 같은 게 생기는지 머리가 쭈뼛 서는 게 느껴지고 자석이 금속을 당기듯 약간 당기는듯한 감각도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 또한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기분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거 같기도 하다.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붉은 토네이도 쪽으로 계속 움직였다.
지금은 15미터 앞까지 왔다.
붉게 타오르는 토네이도는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주변을 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냥 기둥처럼 그 자리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뜨겁지도 않다.
붉고 푸른 라이터 빛처럼 하염없이 소용돌이치며 타오르고 있다.
아니 흐른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빛이 흐른다...
하늘에서 땅으로 계속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 붉은 토네이도가 가까이에서 보니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것의 지름은 대략 5미터쯤 되는듯하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빛을 하염없이 바라 보고만 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윤후가 붉은 기둥 쪽으로 뭐에 홀린 듯 손을 앞으로 뻗고는 천천히 걸어가는 게 보인다.
마치 내 어릴 때 가스 불을 처음 보고 겁 없이 손을 뻗어봤던 것처럼...
그러다 손을 데이고는 엄청난 고통에 신기함에서 끔찍함으로 바꿔 생각하게 되었지...
붉은 기둥 쪽으로 손을 뻗고 걸어가는 윤후를 난 잠시 보았다가 다시 붉은빛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 아름답다... 나도 만져보고 싶다... 나도 만져봐야지...”
윤후를 뒤따라 나도 만져보기 위해 앞으로 서서히 나아간다.
왠지 저 붉은 기둥 쪽으로 가면 우리 가족을 만나볼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런 행복한 생각에 젖은 채 그 붉은 기둥으로 서서히 걸어가고 있다.
“윤후야... 같이가...”
나보다 앞서는 윤후가 밉기까지 하다.
그러나 미운감정도 잠시, 2명이 먹기에 엄청난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에 가는 것처럼 천천히 가도 손해 볼 건 없을 거 같다.
그냥 이 아름다운 빛을 느끼면서 저기로 가기만 하면 될 거 같다.
행복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마치 꿈속에서 구름 위를 걷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빛 한가운데에 아내와 준이가 있을 것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진다.
“준아... 준아... 아빠가 갈게 거기 있어... 아...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몇 발짝만 다가가면 그곳에 닿는다.
아내와 아들이 틀림없이 있을 거 같다.
...세발짝
...두발짝
“아...아... 준아...”
[쿵!]
뭔가가 나를 덮쳤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며 고통이 전해져온다.
“윽...!”
골이 흔들린다.
다행히 진흙 바닥이고 헬멧까지 쓰고 있어 머리가 깨진 거 같진 않다.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누군가 나를 바닥에 쓰러뜨려 제압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으... 누구야?... 누구야!... 왜 이러는 거야!?”
머리가 띵하고 아팠지만 누가 왜 이러는지 나를 바닥에 왜 쓰러뜨린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경질도 난다.
“철영씨!! 괜찮아? 철영씨 괜찮은 거야!?”
웬 거구가 내 어깨를 누른 체 위에서 쳐다보며 다그친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우리 일행 중 진철이라는 사람이다.
“왜 이러는 겁니까?...”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어 소리치듯 물어본다.
“그리고 이것 좀 놓으세요!... 얼굴에 산성비 들어가요...”
얼굴에 검은 산성비가 흘러들어와 눈이 시리고 입맛이 쓰다.
“어어... 알았어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일행 몇 명이 태영과 윤후를 부축해서 붉은빛이 비치지 않는 자동차 뒤편으로 옮기는 게 보였다.
“철영씨도 빨리 저기로 갑시다!”
진철은 나를 부축하고는 서둘러 자동차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와 태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렇게 앉아 있고, 윤후는 누워있다.
정신을 온전히 차리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행들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 셋은 손을 앞으로 뻗은 체 뭐에 홀린 사람처럼 붉은 기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란다.
붉은 기둥과의 거리가 짧았더라면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텐데, 다행히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라 이상하게 느낀 일행 몇 명이 부리나케 달려가서 그대로 우리를 붉은 기둥 반대쪽으로 쓰러뜨려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데 윤후는 손 한쪽이 붉은 기둥과 잠시 접촉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기절하여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붉은 기둥이 어떤 물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위험하다고 판단, 일단 자리를 마트 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서둘러 이동하였다.
붉은 기둥 반대쪽으로 마트를 돌아 입구를 찾기 위해 이동했다.
한참을 찾았지만 입구는 모두 철재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기는 불가능하겠는데요...?”
태영이 한숨을 내쉬며 셔터를 발로 냅다 차버린다.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결국엔 아무것도 얻는 게 없이 철수해야 하는 건가...”
나는 아직도 붉은 기둥의 여운이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듯, 잠시 착각한 거겠지만 아내와 준이를 볼 수 있다는 환상이 진짜였으면 하고 아려오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일행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한참을 그곳에 앉아있었다.
윤후는 아직도 의식이 없다.
태영은 어린 윤후가 이리된 거는 자기 때문이라며 자책을 하며 괴로워한다.
“내가 왜 윤후를 데리고 갔을까... 아직 17살밖에 안 된 꼬맹이를... 전부 제책임입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며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아댄다.
“태영씨 고마하소,,, 오데 태영씨만 책임이 있습니까... 여기 있는 우리전부 책임이 있지요... 우리 어른들이 나서지 않으니 저 어린것이 먼저 나선게지... 다 우리들 공동 책임이요...”
자책하는 태영의 어깨를 다독이며 최씨 아저씨가 위로를 한다.
“윤후는 어쩌죠?... 윤후 부모님께는 뭐라 그러죠?... 부모님이 학교에 있습니까?”
나는 최씨 아저씨께 물어보았다.
“아마 부모는 없을끼라... 혼자서 계속 있었던 거 같은디...”
윤후의 안색이 왔다갔다한다.
붉어졌다 창백해졌다가 수시로 변한다.
“아무래도 윤후는 학교로 가서 쉬어야 할거 같습니다... 누가 윤후를 좀 데리고 갔으면 하는데...”
나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다 같이 철수 안 하고요?”
일행 중 한 명이 반문한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이곳으로 들어가서 음식과 생필품을 가져갈 겁니다... 그래야 윤후가 깨어났을 때 그놈이 기뻐하지 않겠어요... 아무것도 없이 돌아가면 윤후도 그렇고 사람들은 좌절할 겁니다... ”
내 말에 사람들의 한숨 소리만 들릴뿐 아무도 대꾸는 없다.
검은 비는 여전히 가랑비처럼 휘날리고 있고, 건물 반대쪽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기둥의 빛은 왠지모를 아련한 마음이 들게 한다.
애써 처진 기분을 전환하려 해보지만 쓰러진 윤후의 잿빛 안색이 더욱 마음을 불편하게만 한다.
일행은 다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벽에 기대어 앉은 채 땅만 보며 지금의 현실에 처량함을 느끼는 듯 검은 가랑비에 온몸을 젖게 내버려두고 있다.
어두워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기운을 얻고 행복을 느끼며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사람 때문에 절망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는 절망에 빠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면 더욱 힘들고 의지를 잃을지도 모른다.
태영 또한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침울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침울해 있다.
그렇게 한참을 땅만 보고 한숨을 쉬고 있을 때였다.
[크르릉...]
짐승의 으르릉대는 소리가 들린다.
“쉿!...”
움츠려있던 태영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일행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크르릉... 크르릉...”
어느샌가 건물 뒤쪽에서 늑대 같아 보이는 짐승이 네 발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지만, 늑대나 개 같은 동물인듯하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 몸을 낮추며 소리를 죽인다.
그리고 지팡이 대용으로 하나씩 들고왔던 쇠막대기를 다들 치켜들며 위협에 대비한다.
“크아악!!!”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물체에 우리는 혼비백산하며 몸을 피하려 움직였다.
그러나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다들 그 자리에 넘어지고 만다.
괴음을 내며 달려든 그 늑대 같은 동물이 눈에 들어왔다.
최씨 아저씨의 머리통을 문 채 고개를 격하게 좌우로 흔들어댄다.
그 바람에 최씨 아저씨의 몸통은 벽에 튕겨 부딪치며 떨어졌고 머리가 없어진 목에서는 분수 같은 피가 솟아나는 게 보였다.
“으아아악~!!”
최씨 아저씨 옆에 있다가 피범벅이 된 일행 하나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다.
짐승은 물고 있던 머리통을 옆으로 뱉어버리더니 달아나던 일행을 추격해 앞발로 등을 찍어눌러 쓰러뜨린다.
그리곤 인정사정없이 이빨로 목을 찢어내곤 포효한다.
“아우~~~!!”
나는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을 해치운 그 짐승은 천천히 뒤로 돌아서더니 또 으르릉거린다.
두 눈으로 빤히 보고 있지만 믿기지가 않는다.
그 짐승은 늑대다.
아니 늑대처럼 생겼다.
천천히 두 발로 선다.
그리곤 웃는다.
웃는다?
그때 뒤쪽에 넘어져 있던 태영이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쇠막대기로 그 야수의 머리통을 후려갈겨 버린다.
“땡~!~!”
금속끼리 부딪칠때 나는 맑은 음이 들린다.
잠시 휘청하던 야수는 잽싸게 돌아서며 태영을 한쪽 팔로 쳐서 날려버린다.
태영은 멀리 날아가 지저분하게 엉켜있던 쓰레기더미에 처박혀 버렸다.
“이야~~~!!”
어디선가 나타난 진철이 소리를 지르며 야수에게 달려간다.
야수의 옆구리를 쇠막대로 치려는 순간 야수는 한 손으로 진철의 쇠막대를 잡는다.
그러더니 쇠막대를 쥐고 있는 오른팔을 완력으로 우악스럽게 뜯어내 버린다.
“아악!!!”
진철은 단발 마의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졸도해 버렸다.
185센치에 90킬로 정도의 거구가 저항한 번 못하고 맥없이 쓰러진다.
이쯤 되자 일행은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뿔뿔이 달아난다.
그 야수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도망가던 일행들을 하나하나 빠르게 쫓으며 물어뜯고,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심장을 뜯어내며 처참하게 죽여갔다.
아비규환과 같은 이런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제자리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이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너무나 처참했다.
공포에 모든 감각이 마비가 되어 넋이 나가 있었다.
몸의 세포 어느 것 하나 느껴지는 게 없이 마치 돌덩이에 내 영혼만 씌어있는 기분이었다.
어디에서 읽었던가?
포유류는 자신이 저항할 수 없는 엄청난 위험에 놓이게 되면 뇌는 세포의 감각을 모두 마비시켜 버린단다.
죽을 때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하기 위함이란다.
금세 모든 일행을 살해했는지 넋이 나간 채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네발로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는 야수가 보인다.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 앞에 바보같이 앉아서 소리도 못낸 채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벌벌 떨고만 있다.
코앞까지 다가온 야수는 두 발로 다시 서더니 밑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러더니 다시 웃는다.
“크크크...”
평소같았으면 사람처럼 비웃는 늑대를 희한하게 생각하며 신기하다 했을 텐데, 죽음 앞에 주저앉아있는 현재의 나는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다.
단지 2미터도 넘을 거 같은 그 야수를 두려움에 벌벌 떨며 쳐다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때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야수는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다 쏜살같이 날아온 물체에 눈을 맞고는 옆으로 휘청한다.
“형! 어서 뛰어요!!”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윤후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내 쪽으로 소리치더니 앞으로 냅다 뛰는 게 눈에 보였다.
순간 뇌에서 살 수 있다는 판단이 선건지 일제히 몸의 모든 감각을 돌려준다.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윤후가 뛰어가는 방향으로 전력질주를 하였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야수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매우 화가 난듯한 포효와 함께...
“쿠아아~!!!”
앞서 뛰어가던 윤후도 약간 뒤에서 따라 뛰던 나도 뒤를 돌아볼 엄두도 못 낸 체 죽어라 있는힘껏 앞으로만 달렸다.
바닥도 미끄러운데다가 한쪽 눈도 다친듯한 야수는 아까완 다르게 날렵하게 움직이지는 못하는듯 했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무조건 뛰어야한다 살기위해서는...
뛰다보니 아까 붉은 기둥이 있는곳으로 오게 됐다.
붉은 기둥과의 거리는 30미터...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왼쪽 눈에 피를 흘리며 우릴 씹어먹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네발로 미친 듯이 달려오는 야수가 눈에 들어왔다.
멈추면 죽는다.
붉은 기둥 쪽으로 죽어라 뛰었다.
10미터...
아까와는 다르게 붉은 기둥에 홀리는듯한 느낌은 없다.
5미터...
오른쪽 귓불 뒤에 야수의 거친 숨결이 느껴진다.
2미터...
시간이 정지된듯하다.
시커먼 가랑비가 허공에 멈춰져 있다.
얼굴에 스치는 흙빛 물결이 부드럽다.
붉은 기둥에서 나오는 빛에 눈이 부시다.
뒤돌아 보는 윤후의 놀란 얼굴이 보인다.
어라... 윤후의 얼굴이 아니다.
아니 윤후가 맞는 거 같긴 하다.
그러나 얼굴이 작아졌고 곱상해졌다.
얼굴 크기에 비해 눈이 매우 컸고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빛난다.
입술은 매우 붉고 하얀 치아 사이로 삐져나오는 비명은 여자의 목소리같이 고음이다.
야수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귀에서 느껴진다.
귀에서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
“엎드려!!!”
나는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지르며 윤후를 안은 채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붉은 기둥을 피해 옆으로 쓰러졌다.
[철퍼덕!!]
내 바로 뒤에 쫓아오던 야수는 미쳐 몸을 돌리지 못해 붉은 기둥에 그대로 몸을 통과시키며 앞으로 나자빠지고 만다.
한참을 미끄러져 나간 야수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우리 쪽으로 달려온다.
그런데 달려오면 올수록 몸이 점점 부서져 간다.
이윽고 우리 앞에 다가왔을 즘엔 형태도 없이 잿가루가 되어 사라진 후다.
“하악... 하악...”
숨이 목까지 가득 찼다.
폐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한참을 그렇게 윤후를 안은 채 숨을 고른다.
“헉...헉... 윤후야 괜찮나?...”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부드럽다 폭신하다.
마치 여자의 가슴과 같은 느낌이다.
“헉...헉... 뭐가 이리 푹신해 뱃살이가...?”
무의식적으로 주물러본다.
“형! 남의 가슴은 왜 그리 주물러요... 아이고 삭신이야...”
윤후가 바닥에 손을 짚으며 일어난다.
“아... 저 샹놈새끼는 도대체 뭐에요?... 어? 내 목소리가 왜 이래... 흠!흠!... 아!아!...
그리고 남의 가슴을 왜 그리 주물... 러... 가슴...?”
윤후가 자신의 가슴을 보더니 소리를 지른다.
“으아~~~ 뭐야! 뭐야! 뭐야뭐야뭐야 도대체 이게 뭐야!!!”
덜렁이는 자신의 가슴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형?! 형?! 이...이거 봐봐요?!... 내 가슴이... 가슴이 생겼... 어요?!”
여자와 같은 가슴이 봉긋 솟아나 있다.
윤후는 자신의 가슴을 이리저리 만져보다 아연실색한다.
“이게 어찌 된 거야... 가슴이 왜 이리 된 거지... 그리고 목소리도 왜 이래...”
혼자서 오두방정을 떨며 자신의 이곳저곳을 만지며 놀라고, 또 만지다 놀라고 생쇼를 하고 있다.
“윤후야... 지금 놀라고 있는 너보다 너를 보는 내가 더 놀랍다... 너는 지금 네 몸만 보이겠지만...”
아무래도 충격을 받을 거 같아서 말을 잇지 못하겠다.
윤후는 여자가 된 거 같다.
170센치정도 되던 녀석이었는데 키도 몸도 조금씩 줄었다.
얼굴도 작아졌으며 하얗다.
무엇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건 녀석의 푸른 눈이다.
저 녀석의 눈이 외국인처럼 푸른색을 띄고 있다.
일어서서 자신의 이곳저곳을 만지던 윤후가 바지 안에 손을 넣어보더니 또 소리를 지른다.
“으헉~!! 내꼬추... 내꼬추!!... 내에꼬오추~~~~~~~!!!!!”
한 손은 자신의 가슴을, 다른 한 손은 바지 안에 넣고는 오두방정을 떨며 소리 지르는 녀석이 우습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다니 이것 또한 우습다.
녀석이 털썩 주저앉으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운다.
“으앙~~~! 내꼬추~! 어디 간 거니~? 흑흑... 이건 꿈일 거야! 형 내 뺨 좀 때려봐요!... 흑흑!”
녀석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내게 왼쪽 뺨을 갖다 댄다.
[찰싹~!]
가볍게 한 대 때려준다.
“으앙~~~! 더쌔게!!”
[철~썩!]
“으앙~~~!! 아프잖아!! 꿈이 아닌가 봐! 으헝~~~!”
주저앉아 팔과 다리를 흔들어대며 우는 녀석이 가엽다.
그런 녀석을 나는 안으며 등을 토닥토닥 대며 달랜다.
“괜찮아... 괜찮아... 나아질 거야 울지마라... 남자 새끼가 이리 울어대냐... 아니 지금은 여자인가...?”
“으아앙~~~! 여자 아니야! 여자 아니야!! 흐엉~~~!”
여자라는 말에 녀석은 더욱 서럽게 울어댄다.
이때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쉿! 윤후야... 윤후야... 조용해 봐...”
서럽게 울어대는 윤후의 입을 틀어막으며 시선은 전방을 주시한 채 뒤쪽의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저벅... 저벅... 저벅...]
황급히 뒤쪽으로 몸을 돌리며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 눈에 힘을 준다.
멀리서 무언가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게 눈에 띈다.
태영이다!
태영이 팔한쪽이 떨어져나간 진철을 부축하며 힘겹게 걸어오는게 보인다.
“태영씨!!!”
나는 잽싸게 일어나 그들에게 달려갔다.
쓰러지려는 그들을 간신히 붙잡으며 조심스레 바닥에 앉힌다.
“태영씨! 괜찮아요? 진철씨?”
뜯겨나간 오른팔을 태영이 그랬는지 셔츠로 묶어놓은 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는 계속해서 온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쿨럭~! 으으...”
피를 한 모금 토해내던 진철이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본다.
“철영씨...”
말을 잇지 못하며 너무 고통스러운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바르르 떤다.
옆에 부축해 있던 태영이 진철의 몸을 진정시키려는 듯 꽉 껴안으며 달랜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견뎌봐... 어떻게든 내가 살릴 테니깐 정신줄 놓으면 안 돼요...”
그러더니 나를 보며 묻는다.
“철영씨는 어때요? 다친 데는 없어요? 그 늑대새끼는 어떻게 된 거에요? 도망갔나?”
태영이 야수에게 맞아 튕겨 나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흠... 저 붉은 기둥이 그랬다고?... 저것의 정체가 뭐지?...”
마침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윤후가 보인다.
“윤후는 분명히 저 붉은 기둥에 손이 닿고는 의식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이 바뀌어있었다?...”
붉은 기둥을 잠시 쳐다보던 태영이 윤후에게 시선을 돌리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듯하다.
“형...”
이내 우리 쪽으로 바짝 다가온 윤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철을 쳐다본다.
“형... 괜찮아요?... 으... 어떡해...”
피가 스멀스멀 흘러내리는 진철의 오른쪽 어깨를 만질 듯 말듯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윤후는 잠시 자신의 바뀐 몸을 잊은 듯 보인다.
“윤후야...”
태영이 시선은 진철을 향한 채 윤후를 부른다.
“네... 형...”
“너 지금 몸 상태가 어떠니? 몸이 아프다거나 이상한 증상은 없어?”
태영의 말에 생각난 듯 자신의 몸을 또 한 번 더듬더니 다시 울상을 지으며 답을 한다.
“증상이야 보시는 거처럼 가슴 생기고 꼬추 떨어지고... 이씨...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거에요...”
“기분은 어때?”
“뭐 나쁘지는 않은 거 같에요... 배가고픈거 말고는요...”
“너 오른팔에 흉터 큰 거 있지 않았냐?”
여전히 시선은 진철을 향한 채 태영이 윤후에게 묻는다.
“어? 형 눈썰미 좋네... 일부러 가리고 다녔는데 그건 또 언제 봤데? 흐흐... 중학교 때 애들이랑 패싸움하다가 유리에 찢어졌었는데 와 그때 진짜 팔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우비를 잡고 있는 오른팔을 앞으로 빼내며 살피던 윤후는 깜짝 놀란다.
“어랏! 흉터가 없어졌네? 어? 어?”
어리둥절해하며 오른팔 구석구석을 살피던 윤후를 잠시 바라보던 태영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낸다.
“해봅시다!”
그의 의도를 알겠다.
“태영씨... 너무 위험합니다... 어떻게 될지 몰라요... 아까 그 괴물처럼 잿가루가 되면 어떡할 겁니까?”
“지금 이대로 있어도 진철씨는 죽습니다... 두손놓고 죽는걸 지켜보는 거보단 낫지 않겠어요...?”
그의 말도 어쩌면 일리가 있다.
괴물은 온몸이 통과돼서 그렇다 쳐도, 윤후처럼 살짝만 닿으면 뭔가 몸의 변화가 생기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태영은 진철을 부축해 일으키며 행동에 나서려 한다.
“어?... 어?... 형 뭐 하시려구요? 설마 저기 데려 가시려구요?”
윤후가 커다란 두 눈을 더 커다랗게 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반댈세... 반대야... 저기 손 닿았다가 저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전기에 감전된듯한 느낌...? 그리고 말안하게 있는데... 사실 저 기절한 거는 맞는데 의식이 전혀 없지는 않았어요... 몸은 안 움직였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정신은 있었어요... 차라리 완전히 기절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누워있는 내내 그 전기에 감전된듯한 고통에 말은 못하지 고통은 느껴지지... 아오 살떨려...”
아... 그래서 기절했을 때 윤후의 안색이 그렇게 계속 변했던 거구나...
나는 자신의 몸을 양팔로 감싼 채 부들부들 떠는 윤후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러니? 지금도 찌릿찌릿해?”
태영이 묻는다.
“아뇨... 뭐... 지금은 괜찮은 거 같아요...”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이대로 진철씨 죽어가는 걸 지켜보느니 작은 희망이라도 걸어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며 진철을 부축한 태영이 쩔뚝이며 붉은 기둥 쪽으로 가는 게 보인다.
윤후와 나는 그들을 보면서 어떡해야 하나 망설이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