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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8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어제 이사를 잘 마쳤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습한 날씨가 사람을 많이 지치게 했지만 그래도 돕는 손길들이 있어서 순조롭게 잘 마무리 했습니다.
오늘은 공동체로 예배하는 주의 날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연합하여 주께 드리는 아름다운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옛 사람으로 행한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오늘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 되게 하소서.
우리가 자랑하는 소망과 확신(파레시아)를 주 안에서 꼭 붙들게 하시어 나는 연약하지만 온전한 주의 집(히 3:6)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11:1-13
제목 :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700명이요 첩이 300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의 품에 있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면서 하나님의 품을 떠나 동산 나무 뒤로 숨었을 때 하나님의 허전한 품속, 공허함이 어떠하셨을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입애굽과 출애굽을 시키신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의 규정으로 계명을 주셨다.
그런데 그들은 조건의 규정인 계명에 쉐마 하지 않으므로 언약을 깨트리고 말았다.
사람은 불의하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 없기에 깨진 언약은 파기하고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다.
그 이유는 언약이 깨져서 백성들이 언약 밖에 있으면 그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세우신 언약은 모압 언약이다.
백성들이 계명에 쉐마 하지 않고 시내산 언약을 깨트렸기 때문에 이번 모압 언약은 쉐마 했을 때 주시는 복과 함께 지키지 않았을 때, 즉 쉐마 하지 않을 경우 주시는 저주까지 선포하신다.
물론 이 저주는 정말로 그들을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야에서도 그 계명을 지키지 않았는데, 하물며 가나안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유혹하는 풍요의 신 바알과 쾌락의 신 아세라가 있는데 지킬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지없이 넘어지고 만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가나안에 있는 이방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차마 눈뜨고 보실 수가 없었다.
결국 모압 언약도 깨지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죽기 전 다시 세겜 언약을 체결하신다.
(수 24: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그러나 그 이후 사사 시대에 접어들면서 400년 동안 이스라엘은 암흑의 시대를 살아간다.
진정한 사사인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이 사사가 되어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시내산 언약, 모압 언약, 세겜 언약 등을 체결 하실 때마다 그들은 쉐마하겠노라고 철썩같이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나님의 품속에서 떠나버릴 때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이후 하나님은 오랜 가뭄에 단비 같은 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가 바로 다윗이다.
(행 13:22)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즉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다윗이 여호와의 전을 짓겠다고 할 때, 짓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지어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집을 지어주시는데 하나님이 지어 주신 다윗의 집은 다름 아니라 다윗의 가문에서 그리스도가 나시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어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윗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여디디야, 즉 솔로몬을 아들로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태어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죽기 전에 말한 유언을 그의 가슴에 새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물으실 때, 부귀영화나 무병장수 혹은 원수의 생명 멸하는 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기억하여 ‘듣는 마음’을 구하였다.
아마도 솔로몬에게서 이런 대답을 들으신 하나님의 마음은 기쁘고 흥분하셔서 가슴이 ‘콩닥콩닥, 쿵쿵쿵’ 하고 뛰셨으리라.
이런 솔로몬을 하나님은 정말 사랑하셨다.
그래서 솔로몬에게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 주셨다.
거기에 한 가지 당부하시는 것은 정말 쉐마를 잘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왕상 3: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이후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한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째 나타나셔서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과 마음을 그곳에 두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이시기를 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시고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에게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시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왕상 9:6-8)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하나님과 철썩 같이 약속한 솔로몬은 결국 그의 말년에 하나님의 품속을 떠나고 만다.
사막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다윗을 만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하여 다시금 허전하고 공허한 품속을 경험하시게 된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품속을 떠나 다른 이방 신들에게로 가버렸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이처럼 솔로몬에게 배반을 당하신 하나님은 그 나라를 빼앗아 솔로몬의 신하에게 주시는 심판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심판은 단순한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구원의 길을 여시는데 그것은 솔로몬 시대에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시대에 빼앗을 것이며 또한 모두 빼앗지 않고 다윗과 택하신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는 남겨 두시마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기도를 여기서 들어주시는 것 같다.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나 살면서도 아버지의 허전한 품속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패역한 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는 아버지의 품을 떠났으면서도 현상적으로는 품을 떠났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영적 눈으로 보기보다 육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그런 육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순간순간 하나님은 사인을 주시고 심판의 무덤 속으로 초청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저 그 상황을 해결하려고 애쓰기만 하였다.
그런 무덤의 자리에 먼저 와 계시는 주님이 나를 부르시며 그 자리로 부르셨지만, 나는 깜깜한 영적 눈으로 볼 수 없기에 몸부림치면서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얼마나 부르짖으며 기도했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오히려 상황은 어려워지고 교회는 점점 어려워지며 성도들이 나가기 시작하더니 한 해에 수십 명이 교회를 나간 적도 있었다.
그 자리가 무덤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복음이요 나를 살리는 자리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그 후에 나는 복음과 생명을 알게 되었고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교회의 문제와 그 당시 건강의 문제들이 바로 무덤의 복음, 즉 장사 복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그런 무덤에서 나를 초청하여 성소를 짓기를 그토록 원하셨건만 나는 미련하여 그 주님의 초청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기도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주님은 나를 무덤으로 밀어 넣으시는데 나는 그것을 거부하면서 빠져나오려 한다고 내가 나올 수 있겠는가?
주님은 이토록 미련한 종놈을 왜 그리 참고 기다려 주셨는지...
그저 황송하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이제는 그 주님의 은혜로 교회 안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이 복음은 정말 우리 영혼이 잘 되는 복이다.
아들의 생명을 얻는 것만큼 복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적 환경적으로는 여전히 고통이 지속되지만 복음 안에서 생명을 얻은 자들은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되므로 거기로부터 오는 하늘의 기쁨이 넉넉히 땅의 고통을 삼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항상 기뻐하라’는 주님의 말씀의 성취가 아닌가?
오늘도 그 주님과 함께 영생의 삶이 현재로 이루어짐을 누리며 또한 기대와 소망으로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같이 미련하고 둔한 종을 아들 삼아주시려고 그토록 기다려 주셨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찬송합니다.
죽기에만 합당한 죄인이요, 그런 내 죄로 인하여 고통 받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그런 고통과 무덤을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몸부림치며 애쓰고 부르짖었나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깊은 수렁이 나를 기다리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의심하기까지 하였나이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것이 나에게 주신 생명을 얻는 무덤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거나 부르짖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먼저 찾아오신 주님과 함께 말씀으로 교제하며 성소를 짓나이다.
이제는 주님 품안에 안겨 있는 요한처럼 나도 오직 주님 품안에 안겨 있나이다.
그것은 창세 전 주님께서 아버지의 품속에 안겨 있음과 같나이다.
그곳이 바로 내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곳이요, 오늘 이 시간 내가 있어야 할 자리임을 아나이다.
나로 하여금 다른 곳에 눈 팔지 말게 하시고, 오직 그 품안에서 진리의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나에게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그 나라의 영광을 오늘도 보게 하시오니 감사하나이다.
아버지는 진리니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