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農樂) 진주삼천포농악 평택농악 이리농악 강릉농악
상모놀이
채굿
종 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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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농악(農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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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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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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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
1966.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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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기타 전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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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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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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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리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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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 |
농악(農樂)은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서로 도우며 일할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 넓은 의미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과 같은 악기를 치며 행진, 의식, 노동, 판놀음 등을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굿, 매구, 풍장, 금고(金鼓), 취군 등으로도 불린다.
상고시대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남녀가 노래하고, 춤추었다는 기록이 있어 농악의 기원을 흔히 여기에 두고 있으며,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농악을 공연하는 목적·계기·방법에 따라 당산굿, 마당밟기, 걸립굿, 두레굿, 판굿으로 나누며, 그 밖에도 기우제굿, 배굿 등이 있다.
농악에 쓰이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호적, 나발이 있으며, 주된 악기가 꽹과리이므로 농악장단을 흔히 꽹과리가락으로 나타낸다.
농악은 지역마다 특징이 있어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지역적 특징에 따라 분류하면 대개 경기농악·영동농악·호남우도농악·호남좌도농악·경남농악·경북농악으로 나눈다. 이들 중 진주삼천포농악·강릉농악·이리농악·평택농악·임실필봉농악 등 다섯 지방의 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보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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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은 상고시대의 농경의례의 악(樂)으로 발달하여 마을 단위의 군대조련(軍隊調練)의 방편으로 연주되기도 했으며, 은산별신굿의 신목봉영절차(神木奉迎節次)에 그 잔영이 남아 있다.
오늘날에는 농민의 오락으로 변하여 악사들이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와 같은 타악기를 치며 의식, 행진, 등놀이, 춤, 노작(勞作) 등을 연행하는 음악을 가리킨다. 본래 농악은 굿, 풍장, 매구 따위로 불리었다.
농악에는 그 기능에 따라 당굿, 마당밟이(답정굿(踏庭굿)), 걸립굿, 두레굿, 판굿 따위로 갈라지며 또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경기농악, 호남농악, 영남농악, 영동농악으로 나누어지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농악으로 지정된 것은 경기농악의 평택, 호남농악의 이리임실, 영동농악의 강릉, 영남농악의 진주삼천포 등에 전승되는 판굿이다.
상고시대 제천의식에서 남녀가 가무(歌舞)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농악의 기원을 흔히 여기에 두고 있다. 농악은 이런 제천의식과 같은 마을굿에서 발생하여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동제(洞祭)에는 흔히 굿패들이 서낭대를 모시고 풍장을 치며 서낭당에 가서 서낭을 받아모시고 다시 풍장을 치며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집돌이를 하고 굿청에서 굿을 하는데 집돌이할 때 마을 사람들이 서낭대에 돈과 쌀을 달아준다. 무당이 없이 굿패들이 마을굿을 하게 되어 당굿농악이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며 정초에 액을 막고 복을 빌기 위하여 당굿과 같이 농악을 치는 데서 마당밟이농악(踏庭굿, 地神밟기)이 발생하였다.
당굿농악이나 마당밟이농악을 칠 때 돈과 쌀이 걷는다. 마을의 공금을 각출하기 위하여 마을을 돌며 마당밟이와 같이 농악을 치는 데서 걸립농악(乞粒農樂)이 발생했고, 두레패들이 김매기할 때 풍년을 빌고 두레의 일이 잘 되도록 당굿과 같이 농악을 치는 데서 두레굿이 생겼다고 본다.
당굿에서도 서낭당에서 판놀음을 벌이고 집돌이에서 마당굿으로 판놀음을 벌이는데, 걸립패들이 따로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크게 판놀음을 벌이는 데서 판굿이 발생했다. 판굿에서 농악의 기예가 발전함에 따라 저자를 돌며 판굿을 벌인 데서 남사당패농악이나 짠지패농악과 같은 것들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
진주삼천포농악
종 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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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진주삼천포농악(晋州三千浦農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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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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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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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
1966.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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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남 경남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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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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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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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리 자 |
진주삼천포농악보존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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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 |
진주삼천포농악은 진주 삼천포 지역에 전래되고 있는 농악으로 영남농악에 속한다.
진주삼천포농악에 쓰이는 악기에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법고가 있으며, 편성은 기수(旗手)와 쇠, 징, 북, 장구, 법고 그리고 양반과 포수로 되어 있다. 모두가 흰바지와 색깔있는 저고리의 농악복에 색띠를 두루고, 모자(상모)를 쓴 채 연주하는데 개인놀이가 비교적 발달하였다. 판굿에서는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인 팔진해식진(八陣解式陣)굿이 특이하다. 빠른 가락을 모는 경우가 많아 힘차고 가락이 다채로워 흥겹다.
진주삼천포농악은 판굿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팔진법이라든가 버꾸놀이, 상쇠놀이, 무동놀이(사내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 등의 개인기가 뛰어나다. 현재 박염과 김선옥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 보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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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을 지역적으로 경기충청농악, 호남좌도농악, 영남농악과 영동농악으로 분류하면 진주삼천포농악은 영남농악에 포함된다.
진양군 정촌의 박경호 상쇠의 뒤를 역시 정촌사람 김한로가 있었다. 김한로의 제자로는 진주의 황일백(상쇠), 김수갑, 정삼수와 삼천포의 문백윤이 있었으나 지정당시 황일백과 문백윤만 '농악12차'라는 명칭으로 그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1980년에 뒤를 이어 보유자로 인정된 이영우(상쇠)도 별세하였다.
농기수와 영기수2, 긴나발2, 쇄납, 사물(쇠4, 징3, 북3, 장고4), 법고 9~12 및 잡색(양반, 집사, 포수, 허드레 광대)으로 편성된다. 치배들은 모두 흰바지저고리에다 삼색띠만 매며 전립모자(쇄잽이와 징수는 부포상모, 북·장고·법고잽이는 채상모)를 쓴다.
판굿은 다음과 같이 12차로 짜는데 1.오방진(반덧배기 가락) 2.얼림굿(느린덧배기 가락) 3.덧배기 법고놀음 4.길군악 5.영산다드라기(자부랑깽이) 6.멋 법고놀음(빠른 삼채가락) 7.등맞이굿(쇄잽이들이 쇠를 땅에다 놓고 일어나 춤을 추고 잡색들은 '용개통통') 8.풍류굿 9.호호굿 10.개인 영산놀이 11.별굿놀이(사모잡이가락) 12.팔진 해무진굿(허튼굿)이다. 고깔을 쓴 치배가 없고 채상놀음이 뛰어나며, 무동이 없다.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연풍대, 지반뒤집기 같은 묘기는 진주삼천포농악의 특기였다. 가락이 빠르고 남성적이나, 북놀음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은 진주삼천포를 비롯한 서부 경남농악이 영남농악 가운데서도 밀양이나 경북농악과 다른 점이다. | 평택농악
종 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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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평택농악(平澤農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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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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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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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
1985.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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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기 경기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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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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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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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리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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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 |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靑龍寺)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중들이 꽹과리치면서 염불하고 동냥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북, 버꾸, 호적, 나팔이 있다. 편성은 영기수(令旗手), 농기수(農旗手), 나팔수, 호적수, 상쇠, 부쇠, 종쇠, 징수 1, 징수 2, 설장구, 부장구, 상장구, 북, 상버꾸, 부버꾸, 종버꾸, 꼬리버꾸, 상무동, 종무동, 삼무동, 칠무동, 중애(사미), 양반으로 되어있다. 농악수들은 옛날 군졸들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그 위에 색띠를 걸쳐 매며 머리에는 벙거지나 고깔을 쓴다. 악기에 있어서 징과 북이 타지역에 비하여 적으며 소고와 법고의 구별이 없다. 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며 노래굿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또한 길군악칠채는 경기농악에만 보이는 장단으로 평택농악의 길군악칠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의 소박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공연성이 뛰어난 남사당패 예인들의 전문적인 연희를 받아들여 복합적으로 구성한 수준높은 농악이며, 무동놀이(어른의 목말을 타고 아이가 춤추는 놀이)가 특히 발달하였다. | 보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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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리농악에 속하는 평택농악은 넓은 소사벌을 배경으로 한 두레농악인 동시에 전문 걸립패적인 연희농악이라는 복합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농기수, 영기수, 쇄납, 쇠, 징, 북, 장고, 법고, 잡색(무동, 사미, 양반, 농부)으로 편성하되 8잽이(사물), 8법고, 8무동이 기본이다. 쇠, 장고, 법고수는 벙거지(전립)을 쓰며 쇄납, 징, 북수는 고깔 또는 벙거지를 쓴다. 벙거지의 물채엔 나비상을 단다.
판굿은 인사굿, 돌림법고, 오방진, 돌림법고, 당산벌림, 절구땡이법고, 사통백이, 원좌우치기, 네줄좌우치기, 가새벌림, 돌림법고, 연풍대(쩍쩍이), 무동놀이 등으로 짜여진다. 쇠가락은 기본적으로 칠채-마당일채-쩍쩍이-자진가락-더드래기-자진가락-삼채-쩍쩍이-자진가락-(물채가락)-영산더드래기-연풍대가락으로 진행된다.
무동의 수가 많고 무동타기가 돋보이며 칠채가락을 쓰는 점은 웃다리농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가락은 가림새가 분명하고 빠른 편이며 쩍쩍이 등의 독특한 가락이 있다. 굿거리는 원칙적으로 치지않고, 호호굿이 없으며 잡색중에 포수가 없다.
이리 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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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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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이리농악(裡里農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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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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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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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
1966.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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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전북 전북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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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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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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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리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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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 |
이리농악은 익산(옛 이리)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우도농악에 속한다. 익산시 새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농악이 왕성했고, 김제·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할 수 있었다.
이리농악은 용기, 농기, 쇄납, 나팔, 사물(쇠4, 징2, 북2, 장고4), 법고(불교의식에서 쓰는 작은 북), 잡색(양반, 대포수, 조리중, 창부, 각시, 무동)으로 편성된다. 농악수들은 치배 또는 군총이라고도 하는데 흰 바지 저고리에 색동달린 반소매의 검은색 쇠옷이나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상모와 고깔을 쓴다. 쇠가락에는 일체, 이채, 삼채, 외마치질굿, 풍류굿, 오채질굿, 좌질굿, 양산도가락, 호호굿, 오방진가락 등이 있다. 판굿의 절차는 인사굿, 오체질굿(오른쪽으로 돈다 하여 우질굿), 좌질굿, 풍류굿, 양산도, 긴매도지(미지기 : 쇠와 장구가 마주보고 전진후퇴), 삼방진굿, 방울진굿, 호호굿, 달라치기, 짧은매도지, 짝드름, 일광놀이, 구정놀이(개인놀이), 기(旗)쓸기 순서이다.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있으며,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자주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덩덕궁이(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은 마을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민속예술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보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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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우도농악에 속하며 용기, 농기, 영기, 쇄납, 나팔, 사물(쇠4, 징2, 북2, 장고4), 법고, 잡색(양반, 대포수, 조리중, 창부, 각시, 무동)으로 편성된다.
쇠는 부포상모의 전립을 쓰고 색동 반소매창옷에 삼색띠를 매며 징, 장고, 북은 큰 꽃 다섯을 단 고깔을 쓴다. 법고수는 고깔을 쓰는 것이 원칙이나 좌도농악의 영향으로 채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쓰기도 한다.
문굿, 당산굿, 샘굿, 들당산굿에 이어 마당밟기에 들어간다. 마당밟기의 판굿에서는 인사굿, 오체질굿(오른쪽으로 돈다하여 우질굿), 좌질굿, 풍류굿, 양산도, 매도지(미지기;쇠와 장구가 마주보고 전진후퇴), 삼방진굿, 방울진굿, 호호굿, 달라치기, 매도지, 짝드름, 일광놀이와 구정놀이(개인놀이)를 논다. 기(旗)쓸기로 끝을 맺는다. 쇠가락으로는 일채, 이채, 삼채(늦은 삼채와 된삼채), 외마치질굿, 풍류굿, 오채질굿, 좌질굿, 양산도가락, 호호굿, 오방진가락 등이 있다.
이리농악의 쇠가락은 비교적 느린 편이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주되어 다양한 가락을 구사한다. 상쇠의 부포놀이와 설장구춤, 소고춤이 돋보이며 또한 진법이 다양하다.
강릉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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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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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강릉농악(江陵農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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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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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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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
1985.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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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강원 강원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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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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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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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리 자 |
강릉농악보존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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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 |
강릉농악은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에 전승되어 오는 영동농악의 대표격으로 강릉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농악을 가리킨다. 농사풀이농악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농경생활을 흉내내어 재현하는 농사풀이가 있기 때문이다. 유래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강릉농악은 농기, 쇄납(날라리), 꽹과리, 징, 북, 장구, 소고, 법고(불교의식 때 쓰는 작은북) 및 무동(사내아이)으로 편성된다. 연주자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홍·청·황의 삼색띠를 두르고 무동들은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옷을 입는다.
강릉농악에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3∼4일간 농악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악과 고사를 나는 지신밟기, 마을의 공동 기금을 걷기 위해 걸립패로 꾸며 농악을 하는 걸립농악, 모심기와 김매기 등을 할 때 하는 김매기농악, 김매기가 끝난 후 질 먹을 때 하는 질먹기, 건립굿이나 봄철 화전놀이 때 큰 마당에서 벌이는 마당굿이 있다. 타지역에 없는 달맞이굿(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 횃불놀이, 놋다리밟기(젊은 여자들이 1명을 뽑아 자신들의 허리 위로 걸어가게 하는 놀이)가 있고, 두레농악이라 할 수 있는 김매기농악과 질먹기, 길놀이농악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강릉농악은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하여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보충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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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농악의 하나로 강릉시에서 전승되고 있다. 농기, 쇄납, 사물, 소고, 법고 및 무동으로 편성된다.
쇠꾼은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쓰고 삼색띠를 두른다. 상쇠만 연초록의 등지기를 걸쳤다. 징, 장고, 북, 소고수는 방망이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법고수는 긴 상모지를 단 벙거지를 썼다. 이들 외엔 고깔을 쓴다.
판굿은 인사굿, 멍석말이, 발맞추기, 황덕굿(소고놀이, 법고놀이, 무동놀이), 진놀이, 지신밟기, 팔진법, 농사풀이, 개인놀이(동고리, 열두발채상 등) 및 뒷굿으로 구성된 영동농악의 하나로 강릉시에서 전승되고 있다. 농기, 쇄납, 사물, 소고, 법고 및 무동으로 편성된다.
쇠꾼은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쓰고 삼색띠를 두른다. 상쇠만 연초록의 등지기를 걸쳤다. 징, 장고, 북, 소고수는 방망이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법고수는 긴 상모지를 단 벙거지를 썼다. 이들 외엔 고깔을 쓴다.
판굿은 인사굿, 멍석말이, 발맞추기, 황덕굿(소고놀이, 법고놀이, 무동놀이), 진놀이, 지신밟기, 팔진법, 농사풀이, 개인놀이(동고리, 열두발채상 등) 및 뒷굿으로 구성된다. 인사굿, 발맞추기, 뒷굿 등은 근래에 생긴 것이다. 쇠가락엔 일채(천부당 만부당), 이채, 삼채, 사채, 굿거리, 길놀이(구식길놀이, 신식행진가락) 등이 있다.
당굿이 없으면, 사설이 길고 다양한 지신밟기(고사반)가 있다. 농사풀이는 영동농악의 가장 큰 특색이다. 입체적으로 동고리 탑을 쌓는 점이 웃다리농악 등의 평면적 무동 동고리와 다르다. 소고과 법고의 구별이 있고 쇠가락에서는 잔가락이 적으며, 단순한 외가락인 점이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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