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주목! - 사람들은 악해.
주목! - 사람들은 선해.
주목하는 동안 황무지가 만들어지고,
쉬는 동안 피땀 흘려 집들이 지어져.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에 재빨리 정착하지.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예를 들어 넌 꿈을 꾸는데 한 푼도 지불하지 않지.
환상의 경우는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대가를 치르고.
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나가고 있어.
그것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한지
너는 표 값도 지불하지 않고, 행성의 회전목마를 탄 채 빙글
빙글 돌고 있어.
그리고 회전목마와 더불어 은하계의 눈보라에 무임승차를 해.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
가까이 와서 이것 좀 보라고
탁자는 본래 있던 그 자리에 정확히 서 있어.
책상 위에는 본래 있던 그대로 종이가 놓여 있고,
반쯤 열린 창으로 한 줌의 공기가 스며들어 오지.
벽에 무시무시한 틈바구니 따위는 없어.
혹시 널 어디론가 날려버릴지도 모를 틈바구니 따위는 말이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유고 시집 『충분하다』문학과 지성사, 2016년)
[작가소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폴란드 쿠르닉 출생. 8세 때 남부 도시 크라쿠프로 이주.
1945년 <폴란드 일보>에 「단어를 찾아서」로 등단. 첫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1952년』부터 마지막 시집『여기, 2009년』까지 총 12권의 시집 출간을 했으며, 그해 시인은 다음 시집 제목을『충분하다』로 결정하여 선포함. 동료 시인 겸 편집자인 리샤르드 크리니츠키에 의해 유고 시집『충분하다, 2012』발간. 독일 괴테문학상, 독일 헤르드문학상, 폴란드펜클럽문학상, 노벨문학상(1996) 수상.
[시향]
첫연에서 시인은, 세상에 대해 주목하도록 권한다 사람들은 악하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들은 선하다는 것을! 이들을 주목하는 동안, 수많은 격전들이 세상을 휩쓸고 가고, 황무지가 만들어지고, 그 틈에도 피땀 흘려 집들이 지어지고, 사람들은 그곳에 재빨리 정착했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힘들게 만들어진 세상임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시인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꿈을 꾸고, 헛된 생각이나 공상(환상)에 대한 대가는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치르게 되고, 육신을 소유하고도 조금씩 늙어가는 것으로 그 대가를 갚아나가고 있으니, 참으로 저렴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어디 그 뿐이랴! 표 값도 내지 않고 행성의 회전목마를 타고 빙글빙글 돌 수 있고, 회전목마를 탄 채 은하계의 눈보라에도 무임승차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거대한 시간 여행 속에서도 여기 지구에서는 그 어떤 흔들림도 느끼지 못한다
“가까이 와서 이걸 좀 보라고/ 탁자는 본래 있던 그 자리에 정확히 서있”고 책상 위에 있던 종이도 그대로 놓여 있으며 반쯤 열린 창문으론 숨 쉴 수 있는 한 줌의 공기가 스며들 뿐, 벽엔 널 어디론가 날려버릴지도 모를 무시무시한 틈이 생기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충돌하지 않고 가지런히 돌아가는 우주 생태계에 대해 마치 “감사하지 않니?”라고 묻고 있는 듯하다 10대에 세계 2차 대전을 겪은 시인이기에 더 그렇다
존재의 본질과 가치를 보는 혜안을 장착한 시인이기에, 흔히 있는 일상적인 대상을 향해 이렇듯 따뜻한 눈길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쉼보르스카만의 상상력과 사유로, 그리고 쉽고 단순한 詩語로 대상의 참된 가치를 찾아낸 대표적 詩라 하겠다
글 : 박정인(시인)
첫댓글 쉼보르스카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쉼보르스카가 아니더라도
요즘 환경을 생각하는 이웃들 입에서 흔하게 감사함을 들을 수 있지요.시적포착을 선별해오는 것이 박정인 시인님의 사유의 폭을 들여다봅니다. 존재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
유단천 선생님 다녀가셨네요
우리가 기나긴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너무나 많은 고난과 전쟁과 희생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세상이니까 살기 힘들어도 감사해야 할 것 같네요 우리 문협 카페의 활성화를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도 감사드리구요 시를 많이 사랑하심에도 든든합니다
저렴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저는 그저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하루를 정리합니다. 너무도 저렴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옳은 건지 잊고 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저의 인사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삶을 기만하고 있고 가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성찰 할 수 있는 시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방에서 여러날 일에 지쳐 지내다 올라오니 문협 카페가 살짝 낯설어지네요 저만 십년쯤 과거로 갔다온 느낌요
뭔가 활기차고 살맛나는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네요
살아오는 동안 매사에 진심으로 감사했는지, 좋을 때만 감사한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네요
선생님의 성찰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방문글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