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열받아 디질뻔한 날
/ 모네타
9살 해순이는 자기방에 틀어박혀
무엇을 고민하는지
온갖 인상을 따 써가면서
몰입 무아지경이다
볕이 드는 남쪽 창가에 놓인
책상에 앉아 '중얼중얼'
다리를 꼬았다 폈다 하다가
코를 후벼 코딱지를 파내
엄지와 중지로 잡고 뱅그르르 돌리다
다시 접고 끝내는 창문으로
‘팽’ 쏘아버린다
아니 그 자식은 맹추야 영구인거야
아니면 고자인거야
내가 그렇게 많이 윙크도 보내고
면전앞에서 ‘살랑살랑’
오리처럼 궁둥이를 내밀고
유혹했건만 으찌 이렇지
돼지 저금통 깨서 성탄절 카드
2시간 골라 멋진 놈으로 보냈는데
답장이 깜깜 무소식이다
개불알 씨부렁 자식
내정도 미모면 되었지
무엇이 부족해서 툭탁하면
좌우로 눈알을 ‘팽팽’ 돌리고
침까지 ‘갤갤’ 흘리지
내가 지한테 쏟은 정성
하늘이 다 알긴데
좋은 것만 날름 꿀떡처럼 삼켜버리고
싫은 것은 처다보지도 않는다
씨발 더러운 놈 개자식
개거렁벵이의 원조 중의 원조 끄나플
아무리 보아도 매력없는
참이만 좋아하는지
미치고 팔짝 뛰다 넘어져
접시물에 코박고 죽어버릴 것만 같다
내가 이럴줄 알았으면
소시적부터 태권도와 유도를
배워 유단자가 되는 건데
이소룡처럼 멋지게 양발을 날려
참이를 질러버리고
쓰러졌을 때
양팔로 목조르기 다리 꺽기
항복하면 똥침하고
코를 360도로 세 번 틀어
루돌프코를 만들어 놓는 건데
해순이가 사는 동네는 작은 시골이라
한 개의 초등학교 분교가 있고
전교생이라 해 보았자
10명이고 그 중 남자는 단 한명이니
자연스럽게 경쟁률이 높아지고
못생긴 넘도 째보인 넘도
남자면 무조건 좋게 보이게 마련이다
3학년인 해순이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 H를 남친으로 만들었다
봄에는 겨우내 저장했던
밤을 삶고 봄나물 반찬도 같이 주었고
여름에는 할아버지 채소밭에서 딴
수박이며 참외를 주었고
가을이면 고구마 사과며 온갖
과일들을 아낌없이 주었고
지난 겨울에는 간직했던 순결
입술까지 갖다 바쳤다
온통 머리나 마음속에는 H뿐이었다
그런데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던 또래 친구 참이가
어느 날 껄떡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진다
그러지 말라고 인형이랑 소꿉놀이
장난감을 주어 점잖게 달래 보았지만
받을 때 만이고 또 그런다
오늘은 참이가 일찍 등교하여
H 바로옆에 앉아서 공부는 뒷전
꼬시는 소리가 너무 구수해서
낯쌀이 엄청 찡그래지기만 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을까
해순이만 좋아하겠다고 몇 백번
맹세했던 H가 참이와 대화하며
환하게 웃고 마주보며 생글거리자
뒷좌석에 앉은 해순이는 열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급기야 4교시 국어생활시간
참다 못한 해순이는 참이의 등을
압핀으로 서너번 ‘팍팍’ 찔러버리고
의자를 뒤로 잡아당겨
참이는 벌러덩 뒤로 뎃자로
꼴사납게 넘어지며 뻗어버린다
울고불고 소란이 나고
해순이는 하루종일 교실뒤에서
두손을 들고 벌을 받았고
참이는 기절해서 양호실에 있었다
엄마를 부른다는 담임선생님에게
눈물 콧물 다 흘리고
두손 두발 ‘싹싹’ 빌고나서
간신히 무마되었지만
그 벌로 일주일간 교직원 화장실
청소당번이 되었다
시골이라 풍덩식 화장실
쬐쬐한 H는 겁이 나서
얼굴이 하얗게 변해 끝종이
울리자마자 황급히 뒷문으로 도망쳤고
해순이는 교실 청소며 화장실 청소하랴
늦게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교문을 나서니 하얀 눈발이 날린다
기상예보대로
함박눈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기분이 풀린가 싶었다
그런데 학교앞 만화가게에서
참이와 H가 다정히 앉아 뻥과자와
사이다를 사이좋게 나눠마시며
만화를 보며 히히덕거리는
모습이 유리창너머로 보인다
화가 머리까지 치솟아
년놈들 잘 먹고 잘 살아라
화풀이로 앞에 있는 돌멩이를
생각없이 걷어찬다
아뿔사 돌이 날아가 유리창을 깨고
참이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춰버린다
겁이 난 해순이는 안 그런척
주변을 살피며 쏜살같이 도망을 간다
누구도 본 사람들이 없었다
한참을 달리다 다행이다 싶어
길옆에 서서 숨을 헐떡이는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지나가는 트럭에서 튄 시커먼
물과 기름이 섞인 눈덩이가 온 몸을 뒤덮는다
화가 나 급히 눈을 닦고 보니
트럭은 온데간데 없고
귀한 옷만 완전히 더러워져
순전히 거지사촌이다
아홉 살 해순이의 입에는
담지 못할 욕이 마구 나온다
개자식 이다음에 대머리나 되라
나쁜 친구 참이 기집애
쓰레기차 피하다 똥차에 깔려 디지거라
하늘도 무심하지
저렇게 의리없고 나쁜 연놈들
다 데려가지 않고 뭐 하는지
착한 해순이만 사는 세상이면
경찰이 무어 필요 있고
감옥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늘 자신을 공주이상으로 생각하는
해순이는 세상이 싫다
자기처럼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뺑덕어미처럼 곱고
몸매도 멋진
장차 미스코리아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못 먹어도 고우야
공주에게는 불가능이란 없어
여기 읍내는 나 공주를 위해서 살아야 되어
그래야 아름다운 세상이지
해순이는 턱을 괴고 책상에 앉아
온갖 지지리 궁상
상상에 빠져 꿈속을 거닌다
내일은 자기가 최고로 먼저
학교에 가
자리를 잡아놓고 H를 곁에 앉히리라
참이가 까불면
교실 중앙 난로옆에 있는
연탄찝게로 콧구멍을 꿰어
창밖으로 던져 버리리라
이래뵈도 그 유명한 묘금도 유씨가문
적자 중의 적자인 내다
어제의 슬픔은 어제의 일
내일은 희망으로 열어갈 것이다
해순이 가는 길에는 장애물은 있으나마나
오로지 당연한 성공만이 존재할 것이다
안 그라요?
하느님 부처님 마호메트님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우상 공자님 맹자님!
'호호호호호호호'
실성한 여자처럼 멋지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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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지재미게 읽고 퇴근 합니다 내일 뵈요
고맙습니다
날이 마니 찹니다
건강에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동화처럼 고운 수필이군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시간들이시길요
읽다가 웃겨서 배꼽 빠질뻔한 글. 마음이 훈훈 해지는 글.
고맙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시간되시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