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다름아니오라 3.1 독립유공자 배영직(裵榮直)선생이 80여년만에 대통령상을 추서받고 국가유공자로 지정됨에 따라 다음같이 대전국립묘지 '현충원' 애국지사묘지에서 안장식 겸 추모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배영직 선생은 1919년4월1일 전국적인 3.1 독립만세 시위봉기의 일환으로 천안 아우내장터의 유관순 열사등과 연계해 논산계룡대앞 두계장터에서 1천여명을 이끌고 3·1독립시위중 일경에 잡혀가 당시 공주지법 강경지청에서 초기 6개월형을 받았습니다. 그후 지속적인 독립운동으로 2년형을 추가로 받고 재수감, 1926년 군산감옥에서 출감한 뒤 3일만에 끝내 순사한 독립운동가로 2000년8월15일 대한민국 정부포상을 받았습니다.
유족으로는 장손 배기성(裵基聖) 광복회원(前부여부군수)이 있으며, 증손으로 배유현(裵有鉉) 한국공공정책연구원장(한나라당 논산·금산지구당 前위원장)이 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배영직 선생 안장식 일정
1. 일시=10월11일(금) 오후2시(아침 9시 은평구청앞 버스출발·지하철 3호선 녹번역, ☎ 018-353-3349)
2. 국립묘지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묘역
※대전광역시유성구갑동 산23-1번지/국림묘지대전현충원
장학재단 고려대교우회 은평회장 이 민 홍
사단법인 배영직 선생기념사업회장 김 금 석
사단법인 3·1운동기념사업회장 이 원 범
■3·1 독립유공자 배영직(裵榮直)선생
♧1919년4월1일 천안 아우내장터의 유관순열사등과 연계해 논산계룡대앞 두계장터에서 1천여명을 이끌고 3·1 독립시위중 일경에 잡혀가 공주지법 강경지청에서 6개월형을 받았다. 그후 지속적인 독립운동으로 2년형을 추가로 받고 재수감, 심한 옥고 끝에 1926년 군산감옥에서 출감한 뒤 3일만에 끝내 순사한 독립운동가. 2000년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에서 대통령상을 추서 받고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다.
유족으로는 장손 배기성(裵基聖) 前부여부군수을 포함해 배명숙·배기국·배명자·배기홍·배기동·배성국등 7명의 직손이 있으며, 증손으로 배유현(裵有鉉) 한나라당 논산·금산지구당 前위원장과 배은현·배오현·배장현·배충현·배승현·배지현이 있다.
◈약전
1. 1886년1월3일 父 裵大植 승정원 비서감승(정삼품/독립운동지원 및 자선사업가)과 母 합천 李씨 사이에 4남으로 출생
2. 1899년 논산채운면화정리 부인 尹榮遠씨와 결혼.
3. 1908년 등과, 궁내부 주사로 임용 받음
4. 부친 배대식 선생과 해마다 수십석의 조와 수백원의 금품을 구휼함.
(동아일보 기록)
5. 1919년4월1일 논산두계장터에서 시위중 일경에 체포,징역 6개월선고받음.
6. 추가 독립활동 중 1921년 2월 이후 다시 구속됨(추가 2년형)
7. 1926년10월27일 들 것으로 떼메어 군산감옥을 출옥한지 3일만에 순사.
8. 2000년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에서 대통령상 추서(국가유공자 지정).
※참고/증빙자료
▲大正8년(1919년)형사재판서원본 판결문(공주지방법원강경지청/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1999년6월2일 발견)▲韓國獨立史(金承學 편저)▲韓國獨立運動史(사단법인 애국동지원호회/대표 文一民/단기4289년1월15일 인쇄)▲獨立有功者功勳錄(국가보훈처)▲대한독립항일투쟁총사(下/대한독립항일투쟁총사편찬위원회)▲논산군지(논산군지편찬위원회)▲논산지역의 독립운동사(논산문화원)▲논산문화(논산문화원)▲논산군두마면입암리341번지 朴盛根씨(1910년1월생)등 입증서류▲동아일보 대정12년(1923년)3월10일자 4면
■두계(豆溪) 배영직(裵榮直)선생 기념사업회
◈의의: 두계(豆溪) 배영직(裵榮直)선생은 1919년3월1일 서울탑골공원에서 33인이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천안의 유관순 열사등 전국의 독립지사들과 연계해 1919년4월1일 대규모시위봉기를 결의하고 논산계룡대앞 두계장터에서 1천여명을 운집시켜 3·1 독립시위를 펼치던 중 일경과 강한 몸싸움 끝에 잡혀가 공주지법 강경지청에서 초기 6개월형을 받았습니다. 그후 지속적인 독립활동으로 투옥과 고문을 여러차례하던 중 1921년 이후 논산일대의 추가적인 시위로 2년형을 받아 모진 고문 끝에 기골이 장대하던 분이 몸에 고자리가 꾀는 정도의 사경에 헤매다가 1926년 군산감옥에서 출감한 뒤 3일만에 끝내 순사한 독립운동가입니다. 특히 배영직 선생은 부친 배대식(裵大植) 선생과같이 해마다 수십석의 조와 수백량의 금품으로 농민들을 구휼했으며 사촌 배영춘(裵榮春)선생과는 대한매일 경영에 참여, 일제치하의 우리 민족에 대한 계몽운동도 펼쳤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서 2000년8월15일 대통령상을 추서 받고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으며 2002년10월11일 국립묘지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에 다음 목적으로 사단법인 두계 배영직 선생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오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단법인 두계 배영직 선생 기념 사업회의 목적
1. 배영직선생의 순국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서훈과 보훈.
2. 배대식-배영직-배영춘 선생이 대주주로 참여했던
대한매일신문의 원상 회복과 경영에 대한 참여.
3. 배영직 선생의 기념비와 묘지 관리, 추모사업.
4. 배영직 선생의 유족에 대한 장학사업과 지원.
5. 배영직 선생의 유지 계승과 3.1 운동 관련 사업.
♣회원참여는 1만원 이상 가능합니다(문의:HP018-353-3349)
(성금구좌:농협중앙회:013-12-076861(배유현)
◈발기인 대표:김금석·이민홍·이원범
■시사칼럼-우리 나라에 사는 것을 은혜롭게 생각하자.
배 유 현<시사뉴스 주필/한국공공정책연구원장>
태풍의 상처를 딛고 추석 명절을 맞아 1천만 교통인파 속에 묻혀 고향을 다녀왔다. 곳곳에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상처를 받은 모습을 보면서도 고향의 품은 몹시 푸근했다. 치솟은 과일 값 속에서도 정성을 담은 차례 상 앞에 나누는 덕담은 정녕 훈훈했다.
우리 민족은 5천년 동안 이곳 한반도에서 숱한 눈물과 애환을 겪어왔다. 불과 7∼8년 전의 일이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연이어 무너졌다. 서울 아현동에서는 도시가스가 폭발하고 어린아이들이 청소년시설에서 불에 타 숨지는 안타까운 기억도 새롭다.
교통지옥에 허덕이고 환경오염에 시달리며 고기에 양잿물을 섞고 불량식품을 파는 사례도 많다. 정치인은 불신을 받고 공무원은 뇌물을 받으며 기업인은 구조조정이라는 빌미로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특히 IMF사태를 맞아서는 한국에 살고 싶지 않았다.
필자도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딸아이 오른 쪽 팔꿈치 생장판 70%가 파괴되는 사고를 당했을 때 한때 이민을 결심했다. 가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캐나다를 찾았다. 미국 LA를 거쳐 밴쿠버에 갔을 때 한 교민의 집에 민박을 했다.
그 교민은 부산 군수기지에서 근무했던 예비역 육군대령이었다. 복잡한 사연으로 60년대에 정착했다고 했다. 그는 컬럼비아 강변 언덕에 꽃피는 아름다운 집에 살았다. 자녀들은 명문대학에 다녔고 생활도 여유로와 보였다. 얼른 보기 남부럽지 않아 보였다.
그 분과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허드슨만을 드라이브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가지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그 곳 밴쿠버에는 인도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돈을 벌어 여유롭게 사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인도사람'이라고 했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이 미국에 살든 일본에 살던 한국사람이다. 영어를 잘하고 일어를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일본 큐슈와 대마도 취재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찬 서리 비바람에도 고향인 북쪽을 바라보는 이름 모를 묘소가 많았다.
캐나다의 교민은 내게 조언을 했다. 당신은 명문대학도 다녔고 훌륭한 신문에서 기자 생활도 했으니 한국에 돌아가 고국을 위해 사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분의 말에 필자는 크게 각성을 했다. 그래 '한국으로 돌아가자'라고-. '어려움을 정면으로 맞서자'면서.
그래서 창설한 것이 '은혜로운 서울의 모임(은서회)'이다. 은서회는 수년동안 '불우이웃돕기 선양 활동'을 해왔다. 은서포럼을 열었고 모임을 하고 남은 돈은 그때그때 불우이웃돕기를 해왔다. 올해 태풍피해를 당했을 때도 언론사를 통해 수재의연금을 냈다.
이제 우리는 서울보다는 우리 나라에 사는 것을 '매우 은혜롭게 생각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는 할 일이 많다. 우선 남북한이 대치 상태다. 북한은 믿기가 매우 어렵다. 김일성-정일 체제는 60년 가까이 버티고 있다. 전쟁과 테러를 수시로 자행했다.
우리 나라는 인구도 많다. 사람이 많으니 사고도 많고 할 일도 많다. 교육문제도 큰 골치 거리이고 먹고사는 일도 숙제다. 음식주의 기본문제를 떠나서 문화와 종교생활도 골치다. 사람들의 취직문제와 교통-환경문제, 먹거리·볼거리·즐길 거리가 산적하다.
우리 나라는 자원이 빈곤한 나라다. 무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역거래는 외교통상문제부터 시작된다. 적자가 누적돼서도 안 된다. 한푼이라도 남아야 살아간다. 그래야 기름을 사고 가스와 철광석을 산다. 외환의 공백과 적자를 메울 수가 있다.
외교의 문제도 심각하다. 남북외교를 포함해 미국·일본·중국·러시아외교도 잘못이 많다.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대북 퍼주기 형식 외교는 근 상처를 주고있다. 부산아시안 게임의 응원비용가지 우리가 대고 있다. 러시아 차관 30만 달러는 상환자체가 어렵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문제가 많기에 한국에 살만하다. 할 일이 많기에 즐거움이 있다. 우리 나라는 올림픽과 월드컵 4강에 오를만한 잠재력이 있다. 사람에 대한 자질이 뛰어나고 감각도 뛰어나다. 정이 있고 뜨거운 열정이 있으며 응집력이 있고 눈물이 있다.
우리는 21세기에 이어갈 꿈과 비전이 도사리고 있다. 한번 힘을 합쳐보자. 을지문덕이나 이순신 장군이 천군만마를 물리칠 때처럼 '대∼한 민국'을 외치며 목놓아 울어 제칠만한 용기와 능력이 있다.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나라에 이곳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고 은혜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배유현(HP018-353-3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