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내식 김귀녀 부부시인 / 다음 카페 '허돌과 비비추'
벌레와 마주보다 / 김내식
냇가에 앉아
내가 벌레를 바라본다
바람불어 잎새에서 떨어진
벌레도 나를 본다
우리는 다 같이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다니다가
지금은 갈 길을 잃어
날이 저문다.
소금쟁이 아저씨 / 김내식
가볍다
뜬다
그 물에 살아가도 젖지 않는다
한 낱 소금쟁이보다 못한
나의 인생
쓸모 없는 지식과 욕심으로
자꾸만 가라 앉는다
초월의 긴 다리로 이승을 건너가는
소금쟁이를 바라본다
무안하다
구름 한 번 바라본다
허허 웃는다
바위 채송화 / 김내식
뜨거운 햇빛에 금이 간 바위의 상처
바람 속의 먼지가 날아 내린
절망의 구덩이에 씨앗이 떨어져
외로운 이들끼리 서로 돕는다
먼지는 바위의 풍화를 막아주고
꽃은 먼지를 씻어내는 비를 막아 보호한다.
무심한 바위도 뿌리가 미끄러질 때
약한 손을 잡아주며 위로한다
밤마다 바다위에 날아 내리는
달과 별을 바라보며 기도하여
꽃피우는 소망을 이루어 내는
기적의 현장이다
배부른 갈매기 우연히 날아가며
찍- 하여 물똥을 갈겨주니
양식에서 나오는 냄새가 고약하여
얼굴이 노랗게 핀다
콧등치기국수 / 김내식
깊은 산골 보릿고개
밀가루도 귀하였네
시래기를 보태 삶아 쇠죽처럼
거뭇한 면발
태어난 죄 밖에 없는 여린 콧등
냅다 한번 후려치고는
입속으로 빨려들던
뭉툭한 면발
호롱불 출렁이는 국숫물로
올챙이 배가되어
참으라던 오줌을 누면
도로 푹 꺼져
소쩍새 핏쭉 배 고파 우는 봄밤
어메. 밥 주게 하니
외양간 송아지도
따라 움메- 하더라니
가마골 다랑이논 / 김내식
마른 논에 물을 대니
산이 내려와 드러누워 팔을 벌린다.
그 품에 개구리 뛰어들어
사랑하고 알을 슨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저녁놀 곱게 물든 서편의 구름
물위에 둥실 뜬다.
새들도 지저귀는 이승의 부귀영화
잔치 한마당.
너도바람꽃 / 김내식
구름 사이 비추는 햇살
노란 복수초 살짜기 웃고
얼음이 녹아 흐르는 계곡
서늘한 물바람 타는
별처럼 초롱초롱
희고 작은 꽃
외로울 때 찾아가던
정든 계곡 떠나온 후
늦은 밤 전등을 끄고 누워
은밀히 다시 찾으니
귀속에 소곤거린다
나도 바람꽃
너도 바람꽃
흔드는 바람을 피하기 보다
차라리 즐기며
살아 가잔다
어부 아내의 노래 / 김내식
빈 배와 해당화
거기에 무슨
말 못할 사연 숨어있기에
갈매기 떼
자유와 평화를 물고 날으는
동쪽 바닷가
온몸에 가시를
곧추
세우고
해풍에 휘둘리는
등 굽은
그녀의 삶
김내식 시인
어머니가 심어놓은 강낭콩 / 김귀녀
- 소천하신 어머니를 그리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
담장 위에 강낭콩
단풍이 든다
연분홍 색깔
가을볕에 익어가니
립스틱 바르며 단장하시던
어머니 모습 닮았다
언제 심어 놓으셨을까
못다 준 자식사랑
남기고 가신 걸까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렸다
조석으로 따다가
밥솥에 앉혀
아이처럼 마알 간
어머니의 마음을 먹는다
자주감자꽃 / 김귀녀
나도 한 떨기 꽃이라면
아마도 자주감자 꽃일게야
어릴 적에는 부모님 틀에 맞추다
내 식으로 살아가는 신랑 만났네
나의 색 찾을 수 없었네
어디 있을까
한참을 헤매고 길을 잃기도 했었네
산길을 걷다가
향이 없는 자주 감자꽃
가슴에 앉아 뿌리를 내리네
알덩이 술술 기도를 낳고
사랑 속에
소망을 실었네
후회는 말아야지
춥고 외로운 비탈 밭에서
스치는 바람과 아침이슬 가는 비 맞으며
땅 밑으로 영그는
홍조 띤 자주감자
펄펄 끓는 가마솥 무른 감자처럼
타인의 맛 받아들이는 투박하고 둥근 삶
오롯이 받는
나는야, 자주감자꽃
김내식 김귀녀 부부 시인 / 다음 카페 '허돌과 비비추'
시집을 읽다가 / 김귀녀
누군가 너를 키우고 있다고 느껴지는구나“ *
라는 시 한 구절을 읽을 때 슬며시 눈물이 흐른다
흐릿한 눈물에 비치는 벚꽃
무엇이 그리 바빠
창문 밖 한번 내다 볼 시간이 없었을까
꽃봉오리, 이제야 발견했다
참새 한 마리 햇살 만지며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폴짝 폴짝 뛰어오르며 새로이 돋아나는 봉오리에다 입맞춤한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칼잠 자면서도 깨알 같은 꽃눈 내고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잘 다듬어져 있다
세상을 보는 분홍빛 꽃을 바라보며
내 아이들의 하루도 그 분 품에 안겨
행복할 거라고 벚꽃을 보며
화사하게 웃는다
*도종환 시집에서
히말라야 삼나무 / 김귀녀
200년 후에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연인으로 만납시다
불쑥!
담담하면서도 진지하게
말을 건네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말이 어린아이처럼 하도 순수해 웃음으로 답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짝사랑 했나보다
강산이 변해도 여러번 변했을 텐데
오래 동안 나를 잊지 않고 있었나보다
지금의 내 마음
나도 모르지만
고마운 마음이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가슴에 나를 품고 있었다니
'여보' 참 좋은 말인데 / 김귀녀
여보라는 말
참 좋은 말인데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부르고는 싶은데
마음만 있지
부를 수가 없다. 부끄러워서
여 보 여보라고
남들은 숨도 안 쉬고 잘도 부르던데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이 부끄러워 부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정말 부끄럽나보다 그이도
아마! 사는 날 동안
못 불러보고 죽을지도 모른다
죽기 전엔 한 번만이라도 꼭! 불러봐야 하는데
나 혼자 속으로 입술로만 달싹
여보! 라고 불러본다
고등어를 구으며 / 김귀녀
고등어를 손질한다
비늘을 벗기고
내장까지 드러내도
사라지지 않는 비린내
비린 가슴으로 몸이 되어 버린
고등어 한 마리 속에는
할머니로부터 내려오는
수천, 수만의 푸르름이 있다
유년의 그리움
속살까지 파고드는
비릿한 바다가 있다
은밀하게 중년까지 감추어 둔
추억을 함께 굽는다
보는 이 없어도
푸른 기억이
노랗게 익어 간다
이별 - 떠나는 겨울 / 김귀녀
텅 빈 낚시터에 주인 없는 의자
싸늘한 바람에 쓰러지고
겨우내 움츠린 마음 일어설 줄 모르네
새봄은 오시는데
바람은 아직도 쟁쟁한 울음소리를 내고
언제부터인지 낚시터 갈대숲에선
새봄이 밀려온다
겨울은 어디론가 떠나려는 듯
외투를 집어 들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얼어붙은 갈잎 하나 못가에 남겨둔 채
떠나기 싫은가
뚝방 가에서 서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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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김내식, 김귀자 부부시인님의 시 카페에서
아침 저녁 안부를 나누며 활동하다 개인사정으로 중단하고
오늘 다시 두 분의 아름다운 시편과 그때 저장해 두었던
사진을 다시 보며 감회에 젖는다.
그간의 사연을 나누고, 옛날 집같은 푸근한 부부시인께
우선 전화를 드려야 겠다. 그리고 새로 온 봄에는
그간 미루었던 상면을 준비해야 겠다.
(사실은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냥 떠났습니다.)
무고하셨는지요?
제가 참 부러워 하던 부부시인님,
다시 읽는 시편에 마음이 달뜨는 휴일 오후에...
/ 동산
첫댓글 시인님, 정말 오래만이세요. 잘 계신거지요? 저희는 이곳 안성시 미양면에 잘 정착해서 조그마한 마당에 꽃 가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주가 그리 먼 곳은 아니지요? 마음이 안정되시면 한번 뵙고도 싶네요. 다시 카페를 찾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탈퇴한 사람의 글도 등록이 되니, 두 분의 마음을 다시 읽게 됩니다.
오랫만의 통화, 행복한 아침입니다.
봄날에 꼭 두 분 시인님과 뵙게 되기를..... 감사합니다
이성선의 맑은시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동산 시인님 반갑습니다. 그동안 뵙지는 못했지만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동산 시인님과 교류할 때가 나로서는 가장 열심히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시를 쓰고있는 때였으니까요...금년 봄에는 한 번쯤 뵙기를 고대합니다.
지금 댁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만 통화가 되지 않았는데, 마을에 나오셨다는 사모님과 통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감기로 고생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도 그때 강릉 계실 때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간의 사정은 사모님과 잠시 말씀을 드렸고요)
다시 옛날로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