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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제주도 한라산에 무려 70cm 가까이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부터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친구 H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한라산 눈꽃산행 가자. 친구 S도 갈 수 있다고 하더라. 내일 첫 비행기 예약해.”
H의 메시지를 받고 즉시 S에게 전화하니 멋진 한라산의 설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꼭 함께 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와 H와 S가 함께 한라산을 올라본 게 무려 33년 전의 일이었다. 각각 둘이서 산행을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셋이서 함께 산행을 하는 것은 1978년 여름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는 태풍 ‘웬디’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셋이서 유리창이 모두 깨진 용진각대피소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지내다가 비바람과 안개 속을 헤치고 백록담까지 갔었다. 그때만 해도 백록담 분화구에 물이 담겨 있었고, 우리는 그 물에 손을 씻어보기까지 했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시절엔 참 순수하고 착한 더벅머리 청년들이었는데 이제는 벌써 나이 오십이 훌쩍 넘어버린 중년이 되어 버렸다.
갑작스런 계획인데다가 평일이라 약간의 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늦게까지 업무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들어가 부리나케 겨울산행 준비를 했다. 아내에게는 전화로 미리 ‘33년 만의 멋진 우정산행’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달아 반대할 생각을 아예 못 하게 해두었다.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H가 먼저 와 있었다. 33년 전이나 다름없는 옅은 미소를 띠우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조금 있으니 S가 비행기 값보다 더 비싼 택시 값을 치르고 왔다면서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33년 전에는 관음사 코스로 올라가서 영실 코스로 하산을 했는데 이번에는 성판악 코스로 올라가서 관음사코스로 내려오기로 했다. 다른 코스는 아직 눈길이 제대로 뚫리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