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향락의 대명사 나라도 멸망시키다
서태후와 오리고기
19세기 말 청나라 서태후, 군비 빼돌려 별장 ‘이화원’
건설
오리 혀·제비집 소스 등 즐겨…한 끼에 평민 일년 수입
사용

지나친 음식 사치와 식탐으로 패가망신한 1세기 로마 황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그와 비교할 수 있는 동양의 인물이 19세기 말 청나라
서태후다. 당시 동양 최대 해군력이었던 청나라 북양함대(北洋艦隊) 유지에 필요한 군비를 빼돌려 황실의 여름별장인 이화원 건설에 쏟아부었고
흥청망청 먹는 데 낭비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리훙장 주축, 현대화된 해군력 구축 추진
북양함대는 청나라가 서양 열강과의 전쟁에서
잇따라 패전하자 이에 충격을 받고 북양대신 리훙장이 주축이 돼 1871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현대화된 해군력이다. 해마다 은화 300만 냥에
이르는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 독일과 영국에서 전량 자재를 들여와 군함을 건조했다. 1888년 북양함대로 정식 발족했을 때는 순양함과
철갑함·보조함을 포함해 총 배수량이 8만3900톤, 함정 수가 총 78대에 이르는 동양 최대 규모였다.
기사사진과 설명

북양함대 군비를 빼돌려 지은 청나라
황실 여름궁전 이화원. |
함대 유지비 빼돌려 별장
세워
그런데 권력을 잡은 서태후가 사치와 향락에 빠지면서 더는 함대 건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북양함대의
유지와 훈련에 필요한 군비 수백만 냥을 전용해 베이징 외곽에다 여름 별장인 이화원을 건설하는 데 쏟아부었다. 명목은 해군 수병들의 훈련기지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화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쿤밍 호수가 그때 수병들의 훈련장으로 활용한다는 명목으로 파놓은
인공호수다. 함대 유지 비용을 이렇게 빼돌려 낭비한 결과 북양함대는 1894년 청일전쟁 때 황해 해전에서 일본 함대에 대패해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다.
100종류의 음식 중 3~4가지 요리만 먹어
군비를 빼돌려
이화원을 건설한 서태후는 자금성을 떠나 그곳에 머물면서 온갖 사치를 누리는데 그중에서도 먹는 음식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다. 보통 한 끼 식사에
백은 100냥을 썼다고 하는데 당시 평민들의 일 년 치 수입을 넘는 금액이었다.
도대체 이런 엄청난 돈을 쓰면서 어떤 음식을
장만했을까? 서태후의 한 끼 식사에는 보통 100가지 요리를 차렸는데 아무리 서태후가 대식가이고 미식가였다고 해도 한 번에 100가지 요리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대체로 3~4가지 요리만 먹었다고 한다. 서태후가 젓가락도 대지 않은 음식들은 모두 궁궐의 내시와 궁녀들의 몫이었으니
엉뚱한 사람들이 음식 호사를 누린 셈이다.
기사사진과 설명

북양함대 주력인 철갑함
진원함. |
특별히 좋아한 음식은 오리고기
그렇다면 서태후는 도대체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서태후가
특별히 좋아한 음식은 오리고기였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북경 오리구이는 청나라 황실에서 특별히 발전시킨 요리법으로 보통의 경우
살코기는 먹지 않고 바삭하게 잘 구운 껍질만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살코기는 아랫사람들 몫이다. 오리고기 중에서도 서태후가 특별히 좋아한 것은
엽기적이게도 오리 혀였다고 한다. 서태후를 모셨던 덕령이라는 궁녀가 남긴 어향표묘록에는 오리 혀를 고기와 함께 찌는데 서태후가 좋아했기 때문에
커다란 접시에 담아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았다고 나온다.
다양한 오리고기 요리로 차린 생일상
얼핏 보기에는 겨우 오리고기, 그것도 오리 혀 같은 엽기적인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많은 돈을 낭비하면서
결국에는 나라를 망쳐버렸나 싶지만 사실 서태후 식탁에 차려진 요리가 그렇게 만만한 음식들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서태후의 생일상을 보면 알 수
있다. 1861년 음력 10월 10일, 서태후의 31살 생일상인데 기록에 의하면 이날 아침상으로 모두 24가지의 요리가 준비됐다.
주요리로 만 년 동안 복과 수명을 누리라는 뜻에서 복(福)·수(壽)·만(萬)·년(年)이라는 글자가 한 글자씩 새겨진 4개의 대형
접시에 두 종류의 오리고기와 닭고기, 돼지고기가 각각 올라왔는데 과일과 사탕, 떡으로 이뤄진 디저트 4종류를 뺀 20가지 음식 중에서 무려 여덟
가지가 오리구이와 오리탕, 오리콩팥을 비롯한 갖가지 오리 요리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은 주식은 닭고기 육수로 끓인 계사면(鷄絲麵)이라는
국수인데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서도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기스면이다.
간소한 24가지 요리? 최고급
재료로 조리
오리고기를 유별나게 좋아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특별히 화려하다거나 사치스럽다고 할 만한 요리는 눈에 띄지
않는데, 왜 서태후를 보고 음식에 엄청난 돈을 흥청망청 쏟아부은 미식가라고 비난하는 것일까?
평소 100종류의 음식을 준비하고
그중에서 서너 가지만 골라서 먹었다는 기록과 비교하면 생일상의 24가지 요리는 간소하기 그지없는데, 그만큼 핵심 요리만 차렸다는 뜻이다. 음식
자체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요리 재료가 유별났다. 후식과 국수를 제외한 요리 중에서 일곱 가지를 귀하다는 제비집을 소스로 해서 조리했다.
서태후의 생일상이 특별했던 이유다.
지금 서태후가 저승에서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잠시 동안 입이 느끼는 만족과
순간의 부귀영화를 위해 함대 군비를 빼돌려 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음으로써 백성을 100년 넘게 고생시킨 데 대해 후회하지 않을까? 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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