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다다다 단♪딴♪ 따~ 다다다단~♬국민체조 시~ 작!"
이른 아침 빨래를 널려고 베란다 창문을 여는데 근처 초등학교에서
국민체조의 음악이 울려퍼졌다.
"후훗, 녀석들..몸 꽤나 꼬고 있겠군." 하얀 와이셔츠를 탁탁 털면
서 나는 몇가지 기억에 몸을 맡겼다.
초등학교 5, 6학년때 월요일 아침이면 대 운동장에 줄을 서서 모여
숨쉬기 운동부터 노젓기 등등 온몸을 하기 싫어 비비 틀면서 억지
춘향으로 음악을 따라 했었지. 그 음악이 얼마나 지긋지긋 하던지
춥거나 덥거나 관계없이 불러냈던 교감선생님의 날카로운 눈매가
더불어 싫어져서 슬슬 피해 다녔던 어린 시절. 꽁꽁 언 손을 옷소
매 안에 감추느라 늘여뜨린 소맷자락을 무슨 고전무용을 하는 언니
들의 춤사위 마냥 흔들곤 했었다.
방학이 되면 월요조회가 없으니 그 국민체조를 안해도 좋았는데,
짬을 내서 일주일의 일정으로 놀러간 외갓집에서 다시 그 음악을
듣게 되었다. 새벽마다 인왕산 약수터로 운동을 나갔던 막내외삼촌
을 선두로 외할머니, 나의 고만고만한 외사촌들이 제각기 물통을
어깨에 척~ 걸려메고 모처럼 놀러 온 우리 남매에게도 함께 가자고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 꼭두새벽에.....
겨울방학 때 이니 추운것은 더 할말이 없고 가파르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입술이 한발은 나와서 투덜거리면서도 함께 안놀아 준다
는 외삼촌 (당시 총각이던 외삼촌이 우리 무리의 대장이었다.) 의
눈치를 봐 가며 무릎이 끊어져라 얼굴을 베일 듯한 칼바람을 헤집고
약수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잠시후 어디선가 라디오 시계로 6시를
알리더니 "국민체조 ~~~~~~시~~~작!" 하며 그 지긋지긋한 음악이
나오는게 아닌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약수터 오르느라 배어나온 땀에 젖은 옷을 냉동
바람이 柰? 지나갔다. 코도 시렵고 눈물도 나고 아마 군대가면 이
런 고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배는 또
어찌나 고프던지 고프다 못해 아파와서 허리를 곧게 못 필 즘에야
다리의 힘이 다 빠진 채 구르듯 질질 끌려 외갓집으로 돌아왔다.
"외숙모! 에구 저 죽겠어요. "
"처음이라 힘들지?" 웃으며 우리 남매를 쳐다보는 외숙모는 그저 재
미있으신 모양이었다.
"내일한번 더 하면 모레부터는 좀 수월 할께다."
우리 남매는 얼이 빠져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무언의 음모를
꾸몄다.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오랜만에 통일된 의견을
가진 셈이었다.
그날밤, 우리 남매는 엄마가 보고싶다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정말 새벽에 일어나 그 추운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 약수터에
서 국민보건체조가 하기 싫어서 였는데, 훌쩍거리다 보니 정말, 견
딜 수 없이 엄마가 보고싶어지는 것이었다. 동생도 똑같았는지 흐느
낌은 금새 대성통곡으로 변하고 급기야 큰외삼촌이 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는 택시를 1시간이나 타고 우리 남매를 데릴러 오셔야 했다.
외사촌들과 방학을 더 같이 못보내는것은 아쉬웠지만 새벽출정에 대
한 두려움으로부터 일단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입김을 호호 불면
금새 근사한 도화지로 변하는 택시 유리창에다 별의 별 낙서를 해대
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유난히 푸르스름한 가로등이 휙휙 지나갔다.
국민보건체조의 그 음악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교정
에 울려퍼지다니....세월은 한참 앞질러 갔는데 기억은 가까이 웅크
리고 있나보다.......
nooy
첫댓글 나중에 책한권 내실려고... 이번엔 수필이군...
자꾸 내용이 괜찮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