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번째 맞는 월요일 아침. 오전 7시 30분까지 미리 약속한대로 공장(shop)입구에 서 있으니 프릿즈란 사람이 나를 찾았다. 30대 후반 나이 정도 되었을까? 공장에 들어서니 굉음과 함께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기계 앞에 바짝 붙어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릎이 풀리며 주저앉고 싶었다. 기계에 대한 거부감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 설수도 없지 않은가?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프릿즈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기계의 소음 때문에 말이 잘 안 들렸다. 그는 거의 고함치듯이 공장구조와 비상시 대피 방법, 작업방식에 대해 일일이 차트(chart)를 보여 주며 안내를 하였다. 작업 내용은 할로우 블록(hollow block)이라 불리는 부피가 꽤 큰 어린이 놀이 기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날카롭게 잘라진 나무 판넬의 모서리를 기계로 깎아 내는 작업을 직접 해 보이면서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작업을 두 시간 반쯤 하고 난 뒤, 모두들 작업을 중지하고 공장에 딸린 휴식 공간으로 갔다. 열시부터 20분간 스낵타임이라며 뜨거운 커피와 홍차를 마시며 쉬는 시간이다.
모두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아내, 윤경이는 각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며 자기소개와 함께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국에서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느냐? 나이는 몇 살이냐? 학교는 어느 정도 다녔느냐?
그들은 마치 시골 할머니들처럼 곰살궂게 물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는 나는 미리 준비한 공식적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읊어 댔다. 한국의 예수원이란 공동체에서 총 6년 정도 살았으며 예수원에서 발행하는 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다, 또 성공회 사제로서 미사를 집전하는 일을 하였다. 이런 저런 말을 주고받았지만 그들이 마흔아홉 살의 나이에 보따리를 싸서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의 공동체에 살러 온 나의 심정을 과연 이해 할 수 있을까?
20분간의 스낵시간이 끝나자 누군가 국그릇을 엎어 놓은 것 같은 종을 티스푼으로 장난치듯 두들기더니 모두들 다시 일하러 흩어져갔다. 그러고 보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부엌이든 세탁소든 어느 장소에서 일하든지 스낵시간에는 공동체 가족들이 거의 대부분 모이는 것 같았다. 다시 오전 12시까지 작업을 계속 하였다. 작업이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11시부터 벌써 배가 고팠다. 그리고 보니 군 제대 이후로 배가 고파본 기억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예감하고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심호흡을 하며 링에 오르는 권투 선수처럼 비장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주경이 녀석은 비슷한 또래 꼬마들과 함께 선생님 손에 이끌려 공동식사를 하는 홀에 나타났다. 주경이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달려온다. 주경이 녀석은 어느새 왼손에 포크, 오른손에 나이프를 하늘을 찌를 듯 세워 쥐고는 배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너무도 당당한 행동거지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포크대신 숟가락을 쥐어주려 해도 아니라고 거부한다. 주경이는 이미 분위기를 파악한 것이다. 여하튼 주경이의 적응력은 놀라울 뿐이다. 화음이 아름다운 봄을 기다리는 내용의 찬미를 두곡정도 부르고는 식사를 시작하였다. 행복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홀을 나오니 호스트(host)인 루실킹이 윤경이와 나의 안색을 살피며 오후에는 작업을 하지 말고 집에서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였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긴장 탓인지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던 것이다. 감기몸살과 고열은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온 식구가 다 정신없이 한 숨 잤다. 그때 스티븐 킹이 자고 있는 우리를 찾았다. 일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할 수없이 따라 나섰다. 가보니 오전에 일하던 사람은 거의 다 빠져 나가고 몇 사람만 남아 일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각자 공동체 내에서 개인적으로 맡은 일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흩어진다고 스티븐이 알려 주었다.
부르더호프에서 노동은 특별한 이유 없이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신성한 의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노동시간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다는 표현을 넘어선다. 하기야 미국에서 비행기로 장시간 날아온 공동체 가족의 친인척도 도착시간이 작업시간 중이면 어김없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공장에 들어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치매에 걸린 노인정도이다. 정말 노동을 즐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정년도 은퇴도 없는 것이다.
내 옆에서 일을 하던 오십대 초반 정도의 멤버는 남자치고는 눈이 너무도 맑고 잔잔해 도저히 한 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당신의 눈은 어쩌면 그렇게 맑고 아름답소? 마치 철학자처럼 보이네요." 그는 순진하게 귀밑까지 얼굴이 빨개지며 적당히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러더니 "내가 이 샵(shop)일을 한지는 40년이 넘었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공동체에서 열두어 살 어린 나이부터 공장 일을 한 모양이다.
허리 통증과 배고픔 때문에 잠시 어두워졌든 마음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책상물림으로 입만 놀려 먹고 살았던 지난 세월이 죄스러울 뿐이었다. 나는 적적할 정도로 비어있는 공장에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 처음에 부르더호프행을 결심할 때는 사제로서의 특권적 삶을 뿌리에서부터 부정해 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늘 대접만 받다 보니 공짜로 사는 생활과 얻어먹는 습관이 어느새 몸에 배었고 교회 내 종교적 권위 뿐 만 아니라 사회적 권위 까지 주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별 내용도 없이 거들먹거리는 내 모습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었다. 이렇게 세월에 떠밀려 살다가는 인격파탄이 멀지 않았음을 여러 번의 실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훌륭하신 종교계 인물들이 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내적 성찰과 수행이 어느 정도 안심할 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나로서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뜨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노동이 만만치 않다. 이 일을 평생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왈칵 몰려온다. 큰 놈인 윤경이는 오후작업이 끝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공부는 안 시켜주고 하루 종일 일만 시킨다며. '여기서는 학생들까지 노동착취의 대상이다.' 라고 소리 지른다. 그래, 학교만 다니던 윤경이에게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고역일 것이다. 언제 노동을 해 봤어야지. 더구나 이 추운 겨울에 변덕스런 날씨를 견디며 야외 작업을 해야 하는 윤경이의 마음속에도 비바람이 치고 있을 것이다.
만 16세가 되어야 공장 내에서 일하게 되어있는 공동체 내부 규정도 윤경이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공장안의 난방시설이 몹시 부러웠던 모양이다. 우리가족이 부르터호프와 처음 이메일로 접촉하고 부르더호프의 가족이 되고 싶다고 우리의 의사를 밝혔을 때 손님담당인 데이비드 힙스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표명했다. "나는 당신들이 이곳에서 매일 노동하며 사는 생활을 이해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그때는 그 말이 다소 차게 느껴졌었다.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노동하는 삶은 쉽지 않다.
해가 가라않는 어스름한 시간에 일을 마치고 무거운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집으로 오는데, 누가 인사말로 "Are you happy?" 하고 묻는다. 나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상대방을 쳐다봤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하는 로렌스였다. 그는 나와 나이가 같다. 나는 조금 과장되게 웃으며 나는 항상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싱긋 웃어 주고는 지나갔다.
행복! 행복! 너 정말 행복하니? 행복이란 말이 갑자기 바위 덩어리 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어야 정직한 대답이 아니었을까. 사실 행복하게 살자고 만든 공동체인데 억지로 견디며 살아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찌 됐건 여기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정말 행복한 모양이다. 미소 띤 얼굴, 끝없이 이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특히 할머니들의 그 소녀 같은 까르르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는 진짜 인상적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천국이다. 이분들이 세상 여행을 끝내고 천국에 간다면 자신들의 어린 시절 그 공간으로 되돌아 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린 시절의 발전적 재생산을 위해 공동체가 총력을 다 쏟아 붓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유치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주경이를 데리러 갔다. 주경이보다 작은 아이들이 책 읽어 주는 선생님의 동화구연을 빙 둘러 앉아 듣고 있었다.
주경이는 창 밖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아빠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창 밖에서 손을 흔들자 나와 눈이 마주친 주경이가 신발도 안 신고 문 밖으로 튀어 나왔다. 가슴에 안긴 주경이를 보며 나는 문뜩 깨달았다. 그래 이게 행복이다. 더 이상 무얼 바라랴. 주경이의 얼굴이 이렇게 티 없이 밝은데...
사실 그날 나는 프릿즈에게서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단지 그저 나무가루가 수북하게 내 앞에 쌓이고, 목구멍이 몹시 아프고 답답했던 기억밖에 없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긴 여행의 피로와 긴장 때문에 거의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앓았다. 몸이 아프니 포항에서 먹던 얼큰한 '물곰탕' 생각이 간절해졌다. 밤이 깊어지자 불안과 공포는 더욱 확대되었다.
나의 지병인 기관지 확장증이 이 공장에서 더 심하게 악화되어 결국 폐를 하나 잘라 내게 되지 않을까? 악몽과 가위 눌림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주먹을 쥘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부어있다. 그런데 도대체 공장일이 왜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는가? 며칠 일을 하고 보니 나무가루 때문에 목이 아팠던 것은 내가 설명을 잘 못 알아들어 나무가루를 빨아들이는 기계장치(sucktion)를 작동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공장은 안전을 위해 매우 세심하게 설계된 내부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일이 익숙해지면 몸의 통증이나 피로정도는 많이 경감되리라고 기대하고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저녁을 먹고 공동체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welcome!" 하며 인사를 건넨다. 나도 역시 큰소리로 "welcome!" 을 외친다. 그런데 상대방의 반응이 의외로 뜨악한 표정이다. 옆에 있던 아내가 속삭이듯 핀잔을 주었다. "당신은 여기에 잠깐 들른 게스트에요. 웰컴이 뭐예요, 웰컴이. 당신이 누구를 환영한다는 거예요?" 그래! 그래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구나. 금방 도착한 놈이 무슨 놈의 얼어 죽을 웰컴이냐? 상대방의 인사말을 복창하는 버릇은 한 달내내 고쳐지질 않는다. 언어 문제는 막상 부딪쳐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장벽이다. 간단한 말을 못해서 속을 태우다가 말해야할 시점을 놓쳐 버린다든지, 그나마 가능한 표현을 찾다 보니 말하려던 뜻이 왜곡되어 버린다.
(2)
다운신드롬을 앓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아픔은 가족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많다. 나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의 정도와 깊이가 그 사회의 건강성과 성숙의 실체라고 믿고 있다.
런던 공항에서 우리 가족을 픽업해 주었던 조 신부님의 말에 의하면 영국 사회는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사회라고 했다. 자신이 사목하는 교회에서도 한 명의 장애아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고 한다. 또 자신이 직접 목격한 바로는 장애아를 조롱하는 아이를 가차 없이 때려 주는 부모를 본 적도 있다고 하였다. 사회 분위기가 어린애의 그런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르더호프의 분위기는 이를 넘어선다. 우리가 부르더호프에 온 이래 마치 부르더호프가 주경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실제로 내가 사는 동안 미국에 있는 부르터호프에서 근육이 마비되어 가는 루게릭 병을 앓는 여인이 어렵사리 애를 낳았다는 소식이 공동식사시간 중에 발표 되었다. 그 순간 모두들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서로 악수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별한 축복을 받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나는 순간적으로 선천적 장애가 없을까 걱정 했지만 그들은 전혀 그런 내색 없이 태어난 생명은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일 뿐이었다.
부르더호프 사람들이 주경이를 대하는 태도에는 부모인 나도 때로 당황할 정도의 철저한 배려가 있다. 그들은 나를 좀 더 아이에게 적극적인 아버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권면을 하였다. 도착한 다음날, 호스트인 루실 킹이 무거운 화판 같은 것을 들었기에 내가 대신 들어주겠다고 하자 딱 잘라 거절하면서 주경이에게 좀 더 관심을 집중해 줄 것을 요구했다. 거의 무안할 정도로 정색을 하면서.
아마 추측건대 이들의 기준으로 보면 나의 아버지 노릇은 상식선 이하였던 모양이다. 때로 우리 가족이 호스트인 스티븐 킹 부부와 대화할 때면 둘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주경이를 봐준다며 애를 데리고 나가서 그네를 태워 주던지 소를 보러 가든지 하였다. 그들에게는 철칙이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어린애 혼자 집 밖에서 놀게 하는 법이 없었다. 항상 어른이 애를 지켜보게 하였다. 주경이가 혼자서 돼지를 보러 가든가 풀밭에서 쉬는 말을 보러 가고 있으면 누군가가 달려와서 주경이가 어디를 혼자 걷고 있다고 꼭 알려 주었다. 또 저녁 식사 시간이면 웟치(watch) 근무라고 해서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왔다.
웟치 근무는 당번제로 돌아가며 맡는데, 웟치는 저녁식사도 먼저 하고 저녁식사 이후 미팅까지 애들이 잘 자고 있는지, 돌아다니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책임이 있다. 이렇게 철저히 애를 보호하게 되어 있는 시스템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특별히 아이를 유괴해 가는 위험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또 한편 육아의 부담을 덜어 주고 어른들만의 저녁 미팅을 보장해 주는 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든 어린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저녁식사를 미리하고 집에 오며 저녁 7시가 되기 전에 재운다. 주경이는 우리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안자고 기다린다거나,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거나, 웟치를 상대로 숨바꼭질을 함으로써 애를 태웠다.
주경이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 아이다. 게다가 부모가 없으면 결코 자는 법이 없다. 함께 자다가도 부모의 인기척이 없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일어나 앉는 예민한 아이이다. 주경이 문제는 우리나 웟치를 맡은 사람에게나 골칫거리였다. 재우려니 자지를 않고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미팅에 참석 시키자니 지루해 하면서 몸부림을 치고. 한 사람의 웟치가 여러 집을 관리해야 함으로 주경이만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다. 말썽은 언제나 주경이로 인해 시작됨으로 우리가 미팅에서 돌아오면 웟치는 항상 주경이의 동태를 보고한다.
우리는 주경이가 이 체제에 적응하기를 손 모아 기도했다. 주경이의 교육에 대한 부르더호프의 배려는 각별한 바가 있었다. 우선 교장선생님은 주경이를 나이에 맞게 공동체내에 있는 초등학교 일학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각 학년 학생들을 순번제로 주경이의 보조교사를 맡게 해 주경이의 존재와 특성을 이해시켰다. 어찌 보면 잠깐 있다가 갈 손님의 처지에 있는 우리아이에게 이렇게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보여 준데 대해 솔직히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우리는 한달단위로 체류여부를 결정해야할 그야말로 객이었다.
주경이는 정말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매일 복지관으로 가는 통학버스를 탈 때의 그 절망과 체념의 어두운 표정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여기서 본 주경이의 얼굴은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활짝 핀 꽃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곳에서 주경이의 한국말 어휘력이 놀랍게 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경이가 새로운 표현을 쓸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주경이의 일학년 선생님은 젊은 여선생님인데 수줍게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투가 어찌 그리 고운지, 주경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얼마나 따뜻한지 그리고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이 어찌 그리 부드러운지. 주경이가 장난을 치고 행패를 부려도 그저 예쁘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주경이는 집 앞에 있는 풀밭에서 이웃집 아이들과 레슬링을 하자고 덤빈다. 아이들도 즐겁게 응해준다. 유난히 몸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주경이는 모두 호의적으로 대하는 아이들 틈에 둘러 싸여 바람이 꽉 든 풍선처럼 사기가 충천해 있다. 주경이가 눈 깜짝할 새에 아이들이 던지고 놀던 럭비공을 뺏어 도망간다. 아이들은 순간 난감해 하다가 적극적으로 주경이를 놀이에 끼워준다. 아무도 화를 안 낸다.
아이들의 이 평화로운 품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루실 킹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함께 집으로 내려오면서 주경이에 대해 흥분해서 얘기를 한다. 초등학교 일학년 반에 안 가려고 하도 버티기에 말을 보러 가자고 유인해서는 애기들을 태우는 수레에 태워서 학교에 보내줬다고 말한다. 예수원에서 어떤 자매가 이렇게 말했었다. 주경이가 신부님 댁의 닻이라고. 아! 우리 가족은 이제야 닻을 내릴 곳을 찾은 것일까?
(3)
한 주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우리가족이 모두 감기 기운이 있는데다 스팀이 저녁에만 잠깐 들어옴으로 몹시 추위를 타자, 스티븐이 전기 라디에이타를 특별히 구해 주었다. 정말이지 좀 살 것 같았다. 여기는 너무나도 검소하게 산다. 미국 부르더호프는 더 춥게 산다고 했다. 그들은 모여 앉기만 하면 날씨 이야기고, 그래도 영국은 따뜻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모두들 공장에서 일하다가 스낵시간이 되면 뜨거운 커피나 홍차를 마시는 이유가 음습하고 비바람 치는 날씨가 사람을 속에서부터 얼어들어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일이 고된지 밤이면 등판이 힘줄이 꼬인 듯 아파 와서 새벽이 올 때까지 몇 번이나 잠이 깰 정도이다. 작업 요령을 아직 완전히 몸에 익히지 못한 탓인지 쓸데없이 몸에 힘을 주어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다. 자기 전에 요가를 해서 몸을 풀고 아침에 다시 요가를 하는데도 몸이 잘 풀리지를 않는다.
하기야 이제 겨우 공장내부가 눈에 들어오는걸 보면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수 있다. 일주일이 지나니까 스티븐이 전동 드라이버로 나무블록에 나사못을 똑바로 박아 넣는 훈련을 시킨다. 팔뚝 힘이 약한 탓인지 못이 자꾸만 옆으로 삐그러지며 박힌다. 온 힘을 다해 집중을 해야 간신히 제대로 자리를 잡고 들어간다. 키가 작아 자세가 안나오고 각도가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 발판을 갖다 놓고 작업을 하니 훨씬 잘된다.
스티븐이 지나치다가 발밑의 발판을 보고는 'good idea'라며 격려해 준다. 단순 노동인데도 작업은 단순하지가 않다. 나뭇결과 나무의 강도에 따라 작업하는데 미세한 차이가 있고 많은 노하우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순히 날카로운 나무토막 끝을 깎아 내거나 나사못을 박아 넣는 정도의 일인데도, 의외의 상황이 계속 생긴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인데도 작업 감독에게 일일이 물어야 하고 매번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단순노동에는 어떤 신비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똑 같은 일을 똑 같은 자세로 반복하다 보니, 작업 중에 어떤 주제로 생각을 하다 보면 한 없이 깊이 빠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이 깊어진다는 얘기다. 집중하게 되고 몰두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많이 쓰는 근육이 단련되고 나니 내가 다루는 할로우 블록의 나무 결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결이 어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여러 형태로 잘라져 나오는 블록 자재에 새겨진 나이테의 그 다양한 무늬는 나를 매혹시키고 남을 정도로 신묘했고 노동의 지루함을 잊게 해 줄 정도였다. 자연이 시간을 들여 아로새긴 나무결의 무늬가 한 폭의 그림으로 가슴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나뭇결 속에는 완만하고 급한 능선의 산과 창공을 나는 쭉 펼쳐진 날개의 새, 뛰노는 사슴, 낙락장송, 일엽편주에 몸을 실은 담뱃대를 물고 있는 늙은 사공, 도도히 흐르는 강물 등 고향 산천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문주란의 "비 내리는 명동거리"를 흥얼거리게 된다. 바야흐로 뽕짝이 가슴에서 한숨처럼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아침부터 아내와 말 펀치를 교환하고 난 날은 잘 박히던 나사못이 계속 옆으로 튕겨 나와 파열음을 내는 통에 주위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숨길 수 있으랴! 늘 하는 박스를 포장하는 일도 아침에 큰 아들놈이 성질내고 나간 날은 여러 박스를 잘못 포장해 작업을 끝낸 박스를 다시 다 뜯어서 재 포장하는 해프닝을 벌렸다.
그 때 스티븐이 나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오늘 아침에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니?" 단순노동은 나의 영적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종의 바로미터였다. 일이 계속 어그러지면,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보려고 작업복 셔츠 주머니에 넣어둔 성구 카드를 기계 귀퉁이에 올려놓고, 말씀에 집중하면서 어둠의 무저갱에 떨어지는 지옥고통을 극복해 보려 애썼다.
(4)
부르더호프에서 윤경이의 존재는 독특했다. 고등학생이 장기 손님으로 온 경우는 윤경이가 처음이라고 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부르더호프의 가족이 되겠다고 입장표명을 했기 때문에 윤경이의 학업 문제는 부르더호프 내에서도 고민거리였다. 원래 손님담당인 데이비드 힙스는 윤경이가 도착하면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메일을 보내 왔으나, 막상 와 보니 윤경이가 다닐 마땅한 학교가 없었다.
공동체 내에는 중학교 2학년과정까지 밖에 개설되어 있지 않았다. 공동체 바깥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는 여행객의 관광 비자로는 다닐 수가 없었다. 호스트인 스티븐 킹과 루실 킹은 이 문제로 상당히 고심을 하는 눈치였다. 루실 킹은 아내에게 만약 한 달 후에 여기서 더 살게 된다면, 윤경이가 학교에 다니지 못해도 괜찮으냐고 물었다고 하였다. 아내는 내심 놀랐다. 학교에 꼭 가야한다고 말한다면 아이 영어공부 때문에 공동체에 들어왔느냐고 물을 것이고, 안가도 좋다고 대답한다면, 윤경이가 매일 바깥에서 노동하는 것을 견뎌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사실 이곳의 고등학생들은 학교 가기 전에 30분 정도 공장 일을 하고 등교하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매일 또 30분 정도 일을 더 한다. 노동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공부가 중심인 한국 학생들과는 확실히 가치관이 다른 것 같았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이미 학업을 중단해 버리는 학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윤경이는 하루하루가 힘겹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늘 화가 난 얼굴이다.
한국에서는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낮 12시가 넘어서야 일어나는 방학생활을 하다가, 그야말로 새벽밥 먹고 7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목수보조 일을 하려니 죽을 맛이겠지. 윤경이에게 아빠는 항상 무언가 골탕 먹일 궁리만 하는 얄궂은 존재가 아닐까? 어쨌든 부르더호프에서는 본인이 싫어하든 말든 일을 시켜야겠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학교는 비자문제로 다닐 형편이 안 되지만 고등학생 모임에는 반드시 연락을 주어 참석을 시킨다. 고등학생 대접을 깍듯이 해주는 것이다. 이 공동체에서는 어린 학생이라 할지라도 노동에 관한한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휴일인 부활절 휴가 때도 중 고등학생들은 어김없이 단체노동을 한다. 애시당초 어릴 때부터 노동을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교육방침으로 되어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초등학생들이 공동체내에 있는 낡은 집을 철거하면서 나온 헌 벽돌들을 다듬어 팔아서 그 수입을 전도용 버스를 사는데 보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경이가 이런 분위기에서 느끼는 바는 많은 것 같다. 밤에 등 근육이 하도 아파서 자다 말고 일어나 윤경이를 깨웠다. 서로 아픈 부위에 파스를 부쳐 주며 윤경이가 말을 건넸다. "아빠, 여기서 평생 이렇게 일만 하면서 살 작정이야? 난 아빠가 이렇게 공장에서 일하는 거 별로야. 차라리 설교해서 먹고 살 때가 좋았던 것 같아.
왠지 아빠가 불쌍해 보여. 엄마는 그렇게 일이 힘든 것 같지 않던데.... 세탁소에서 할머니들하고 말 상대나 하며 빨래나 슬슬 개면 시간이 금방 가잖아. 아빠는 죽어라고 기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쩔쩔매고 있으니 말이야."
" 윤경아, 아빠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설교를 해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든 건 마찬가지야. 몸이 고달프지 않은 대신, 마음이 떳떳치 않아. 아빠가 설교 하는 대로 삶을 살 수 있다면 몰라도. 뼈와 살로 된 몸이 어떻게 말을 따라 잡겠냐?"
" 아빠, 그래도 아빠 설교가 좋다는 사람도 있잖아."
" 그래! 그게 다 괜히 자기 흥에 겨워서 폼 잡는 거지. 아빠가 하나님을 알면 얼마나 알고, 예수를 알면 또 얼마나 알겠니?"
" 아빠, 그래도 아빠가 남을 위해 기도 할 때는 폼이 아니잖아."
" 그래 그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기도 안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냐? 누구든지 사람이 코너에 몰리고 상황이 어렵게 되면 다 기도하기 마련이야. 아무리 아빠가 기도를 해주니, 어쩌니 해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만큼은 하겠냐. 당사자의 기도가 가장 절실한거야. 기도 값으로 먹고 사는 건 아무래도 좀 그래. 아빠가 남을 위해 기도도 많이 했지만 아빠야말로 기도 받아야 될 사람이다. 여기서 아빠가 사는 것 좀 봐라. 남에게 얘기는 잘 하지만 막상 자신은 이 모양 이 꼴이지 뭐냐? 아빠는 윤경이가 노동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좋은 경험이 될 거야."
" 아빠, 여기 일이 장난이 아니야. 농담이 아니라구.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좀 나아. 할 일이 없어서 옆에 그냥 서 있을 때 진짜 심심해 미치겠다고. 춥지, 비바람 치지, 그리고 여기 애들 일 진짜 잘해. 남자애들은 그렇다 치고, 여자애들도 다 나보다 힘이 쎄. 여자애들 도끼로 나무패는 거 보니까 나는 쪽팔려서 옆에 끼기도 챙피해."
" 그래 너 말 타는 문제는 어떻게 됐니? 허락 받았니? 말이라도 탈 수 있으면 그렇게 심심하진 않을텐데. 그리고 또 네가 그렇게 목숨 거는 드럼은 치게 해 준다니?"
" 응, 말은 엄마가 그러는데 아랫집의 존 킹에게 직접 물어보래. 그 분이 말 책임자래. 내가 손님이기 때문에 떨어져서 다치면 문제가 복잡해지고 그래서 허락이 어렵다는 가봐. 엄마는 계속해서 존 킹과 대화를 시도하고 그러다 보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쉽지는 않을 거 같아. 드럼은 스티븐 킹이 알아봐 준다고 했고. 실내 체육관 창고 안에 드럼이 있다니까 그걸 토요일이나 일요일 날 학생들이 수업이 없을 때 교실에 옮겨다 놓고 한 번 쳐 볼 생각이야. 드럼 옮길 때 아빠가 한 번 도와줘."
" 윤경아 너 솔직히 축제 때 한 번 쳐 본 그 곡 밖에 못 치지? 그런데도 무슨 드럼 타령이냐? 꼭 드럼을 여기서 쳐야겠냐?"
윤경이는 대꾸도 안하고 그냥 나가버리려다가 던지듯이 한 마디 했다.
첫째, 죽어도 머리는 못 깎는다. 특히 눈을 가릴 정도로 기른 앞머리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마라.
둘째, 지금 입고 있는 힙합바지는 색이 바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더러워져도 빨지 않겠다.
셋째, 호스트인 스티븐 킹에게 아빠가 아무리 반대해도 씨디 플레이어를 빌려서 음악을 들어야겠다. 이 문제에 대해 부당하게 간섭하면 본인은 혼자 귀국할 수밖에 없다.
거의 최후통첩이다. 나는 가슴이 무너지고 더 이상 말 할 기력도 없어 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자식 놈하고는 대화가 되다가도 안 된다.
(5)
밖이 시끄러워 창밖을 내다보니, 누군가가 "계수나무 한 나무 하얀 쪽배에" 라는 한국말 동요를 부르며 요란한 손바닥 치는 소리가 난다. 다운신드롬이 분명한 자그마한 체구의 아가씨가 한국아가씨를 상대로 식당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계수나무..."놀이를 하고 있었다.
꽤 빠른 속도로 놀이를 하는 것을 보니 많이 해 본 솜씨다. 예수원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자매가 가르쳐 준 것일까? 너무도 표정이 밝고 명랑해서 약간 과장을 한다면 아이리스의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듯 하다. 모두들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다. 주경이는 아이리스를 향해 달려갔다. 자기도 그 게임을 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주경이도 그 게임을 배웠었다. 아이리스는 주경이를 보더니 이상한 표정을 짓고는 피하듯이 몸을 돌려 가버린다.
나는 아이리스와 사는 이 공동체와 아이리스가 누리는 이 삶의 여건이 너무도 부러워서 아이리스와 그녀를 항상 에스코트하는 자매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이리스를 마치 스타처럼 보이게 하는 공동체 이웃들의 그 성숙함이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인근의 다벨 부르더호프에서 작업 지원을 나온 것이다.
켄트 부부(한국인)의 나비스 서약식때 만난 사람들이다. 아! 한국인들을 다시 대하니 너무 반갑다. 갑자기 언어의 중압감에서 해방되면서 가슴이 막 뛴다. 저녁 식사 후 우리 집에서 녹차를 마시며 일종의 파티를 열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 남녀 장로교신학 대학원생, 의상디자인을 전공한다는 여대생 등 꽤 여러 사람이 모였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신대원 남학생이 물었다.
" 여기 아예 살려고 오셨습니까?"
" 아니 그럼 여행 삼아 오신 줄 아세요? 우리는 집이고 뭐고 다 정리하고 왔어요. 여기서 한국에 돌아가면 갈 데도 없다고요. 어딜 가도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야지 임시로 잠깐 살려고 마음먹고 살수는 없는 거잖아요."
" 그러면 성직에 대한 부르심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것은 잘못 알은 것인가요? 아니면 확인도 안 해 보신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요. 소명을 받은 순간만큼은 진정한 부르심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사제 생활을 해 보니 성직에 대한 부르심은 회의가 왔어요. 진리를 향한 부르심이라면 몰라도."
" 아니 그럼 그게 다른 길입니까?"
" 다르다기 보다도 성직사회와 성직생활의 실상에 대해서 회의가 있다 보니까, 차라리 진리에 대한 부르심이란 말이 더 온당한 것 같아서요."
" 오늘 대화 가운데 교회에 대해 너무 부정적 견해를 갖고 계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 하하...제 관점에 대해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어느 종교든 한 시대에 한 사람이 날까 말까한 걸출한 종교적 천재에 의해 그 본질과 이미지가 계승되는 것이고,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적당히 그 삶을 흉내 내다 가는 것 아닙니까? 저 역시 그 중 하나이고. 한 마디로 말해서 저는 기독교를 혁신할만한 큰 그릇도 못되고 그렇다고 기독교의 생명력을 다시 회복시킬 능력도 없는 그저 그런 지리멸렬로 사는 존재이니 성직소명이란 말조차 가당찮은 시정잡배라고 보면 됩니다. 갑자기 한국말로 말 할 기회가 생기니 안해보던 말도 하게 되네요. 마음에 부담이 됐다면 저의 망발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벨 부르더호프로 돌아가는 전용버스의 차창 밖으로 나온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나는 다시 만나자고 소리 질렀다.
첫댓글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글입니다. 길지만 짬짬이 읽어 보세요? 절대 실망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