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역사에는 규칙을 지키며 길을 만든 사람도 있지만 모든 규칙을 깨며 새로운 질문을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 중광 스님은 후자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예술가이면서 수행자였고 수행자이면서 세상의 규범을 거침없이 넘어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기교나 형식보다 삶 자체가 예술이 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중광 스님의 본명은 고창률입니다. 1934년생이며 1960년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에서 출가했습니다. 불문에 들어간 그는 오랜 시간 참선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불교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과 기행으로 1979년 승적이 박탈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불교계의 걸레다. 걸레는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지만 자신은 더러워진다.” 이러한 삶 때문에 세상은 그를 걸레 스님 미친 중 파계승 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삶을 ‘무애(無碍)’의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중광 스님의 작품은 ‘무심선필(無心禪筆)’이라 불립니다. 생각과 계산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마음이 비워진 상태에서 나오는 붓이라는 뜻입니다. 1981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카소보다 내가 낫지. 피카소의 그림은 생각과 기교로 차 있지만 내 그림은 무심선필이다.” 그의 작품은 달마도 선 수행의 정신 자유로운 선의 움직임 으로 표현됩니다. 형식은 단순하지만 붓의 움직임에는 강렬한 에너지와 자유가 담겨 있습니다. 해외 활동 중광 스님의 예술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양학과장이었던 루이스 랭카스터 박사가 그의 작품을 발견하고 세계에 소개했습니다. 이후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미국 버클리대학교 록펠러 재단 등에서 선화와 선시를 발표하며 국제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랭카스터 박사는 그를 ‘한국의 피카소’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저술과 활동 중광 스님은 그림뿐 아니라 시, 글,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했습니다. 대표 저서 《허튼 소리》 《유치찬란》 또한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 에 출연하여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989년 한국평론가협회 최우수 예술인상을 수상 하였습니다
중광 스님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기행과 파격적인 행동을 먼저 떠올립니다. 겉으로 모습만 보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만나본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그는 정말 따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수익 대부분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했다고 합니다. 예술가의 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이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광 스님은 그 모순과 자유를 함께 보여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