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대선배인 다윗이 기도하며 찬미하고 경배하면서 말씀으로 살고 죽고자 했을 때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면서 날마다 힘주시고 도우시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셨고, 진정 골리앗 같은 거인 장수도, 민족 차원의 전쟁에서도 이기게 하셨을 뿐 아니라 갈수록 더 강인하고 은혜와 응답과 복들이 깊어지게 하셨으며, 더 나아가 험한 세상의 가장 큰 시련들 속에서도 오히려 더 큰 그릇으로 연단시키시면서 갈수록 더 놀라운 선과 복들이 되게 하시는 등 모든 상황들에 있어서 전적으로 도우시고 예비하시며 책임져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 땅의 한쪽 귀퉁이에서의 목동에서 전체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의 왕으로 세우셨을 뿐 아니라 가면 갈수록 더 형통케 하셨고, 크고 작은 적과 전쟁들에서 대신 싸워 주시고 이기게 하시면서 온 지경을 평안케 하셨으며, 결국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워 주셨고, 더 나아가 마태복음의 시작인 1장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에서 뿐 아니라 복음서 속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시게 하는 등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다윗을 메시야의 가계, 구속사의 계보 한 가운데 두시면서 전 인류를 위한 아름다운 도구가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대단한 자라도, 진정 그러한 다윗 같은 자라도, 더 나아가 솔로몬도, 게다가 구주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니며 직접 생생한 역사와 말씀들을 수없이 경험하며 특별하게 훈련받았던 수제자인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도 인간적으로는 심히 연약했고 생각 이상으로 큰 악을 행하는 등 허물없는 인생들이 없음을 볼 수 있는데 심지어 다윗은 한 때이긴 했지만 간음을 범했고, 그 여인의 남편이자 충성된 용사를 죽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은혜의 직위를 이용해 살인 교사까지 하는 믿기 힘든 죄악들까지 범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사실상 그러한 실제와 현실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우리 인생들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고, 그 누구라도 스스로를 예외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과 전 인류보다,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고,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에 있어 필요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를 넘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구원에 있어서, 특히 근원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하게 하나되시어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되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며 완전히 인치신 것이고 실상 구원이라는 것이 처음에 참예할 때부터 영원까지 확증되는 완료형의 의미도 포함된 것이기에 참으로 한번 제대로 믿고 구원에 참예한 자들은 크고 작은 죄악들로 인해 그러한 구원과 거듭남이 돌이켜 지지는 않고, 사실상 돌이켜 질 수 있는 개념 자체가 아닌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을 수는 없는 것이며, 진정 아래 본문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죄악들에 빠지는 그 백성들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더 이상의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되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은혜들, 응답과 복들 등은 막히게 하시는 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 사랑의 매와 같은 쓰라린 일들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특히 다윗만 하더라도 그와 같이 있을 수 없는 죄악들이었다고는 하더라고 구원이 취소되기는커녕 오히려 결국은 정반대에 가깝게 되어 갈수록 합력하여 선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래도 어쨌든 밧세바와 그 남편 우리아에게 큰 죄악들을 범한 후 갓 태어난 아들이 죽었고, 뿐만 아니라 그가 범했던 죄악들의 정도와 강도들, 또한 그러한 다윗의 영성과 변화,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들 등에 따라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등과 같은 징계들이 길어 졌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까지도 그의 배다른 자녀들 간에 강간과 살인까지 있었던 것이며,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에게 반역 당해 일정 기간 나라를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그 후궁들이 수치스럽게 범해지게 까지 되었고, 후에 반역을 진압하긴 했지만 그 아들이 죽임 당했고, 다른 반역과 전쟁들도 이어졌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참회하며 감당 못할 시험 당함은 면했고, 그러한 죄악의 정도와 강도와 모양에 따라 하나님의 시간까지만 징계들이 있었으며, 결국 합력하여 선이 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진정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그로 인한 은혜와 영향력들은 말로 다 표현도 못할 정도인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죄악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만만하거나 우스울 수가 없으며, 실상은 생각 이상으로 사납고 유혹이 크며 무섭고 끔찍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날마다 모든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보게 되고, 모든 인생들, 특히 먼저 구원에 참예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날마다 순간마다, 그 언제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영적인 이치이자 현실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과 나음과 화평 등의 구원이 시대와 나라를 넘어 믿음과 함께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그러한 십자가를 그 누구나, 언제 어디서라도, 그 어떤 상황들에서든 붙잡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 그 이상의 하늘의 은혜와 능력들이고, 직접적인 죄사함과 나음들, 온갖 구원의 실제적인 힘과 역전들 등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진정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의 힘과 의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 등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로 죄, 세속들과는 싸우고, 범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회개하며, 특히 그에 있어 그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함께, 실상 직접적으로는 그 이름 가운데 예비되시고 약속되시며 실제로 생생히 일하시는 성령님의 힘으로 모든 죄와 악한 권세들에서 이기고 최대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실천하며 증거도 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정말 말씀대로 누리고 경험하며 성취되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한 시라도 간과하지 말아야 하고 갈수록 더 몸부림치며 실질적으로 순간순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상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몸부림과 함께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말씀의 영, 곧 좀 더 넓게 해석해서 말씀과 기도와 찬미와 경배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강건해 지고 충만해 지면서 더욱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무기 삼는 살아 있는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더더욱 성령님으로 충만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들이 강렬하게 되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은혜와 능력들을 삶의 자리, 사역의 현장에서 가면 갈수록 더 생생하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그러한 믿음의 몸부림들을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라고 하고, 깨어 있는 믿음, 또는 살아 있는 믿음이라고 하며, 더 나아가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산 제사와 산 제물 같은 삶,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예배의 삶이라고도 하고, 그 가운데 실제로 사람이 못하고 세상이 짐작도 못할 하늘의 능력과 복들이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인데..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진정 말씀의 신앙, 곧 말씀의 갈망과 몸부림과 열정들 등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 경배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일하시는 실질적 통로일 뿐만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들,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특히 온갖 하늘의 힘과 은사들, 응답과 복들 등을 생각 이상으로, 상상 이상으로 풍성하게 맛보고 누리며 경험하고 실제로 거하게 되는 방법이자 비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7:8~14)
(페북두란노서원66' 중에서/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2년 10월14일(금)2/사진(조연진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