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베아브
투 베아브(Tu B’Av) 5786
아브월 15일 (투 베아브)은 가장 신비로운 날로, 올해는 2026년 7월 29일에 기념합니다. 슐칸 아루흐(Shulchan Aruch: R. 조셉 카로(1488~1575년)가 편찬한 유대인 법의 표준 규범)를 검색해 보면, 이날에 대한 어떤 의식이나 관습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다만 타하눈(תַּחֲנוּן, tachanun)과 유사한 부분을 매일 기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모든 명절과 마찬가지로)과 밤이 길어지기 시작했으며 "밤은 공부를 위해 창조되었으므로" 토라 공부를 더 늘려야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입니다.
※ 타하눈(תַּחֲנוּן, tachanun): 유대교의 아침과 오후 예배에서 낭송되는 간구와 회개의 기도.
탈무드에 따르면, 오래전 아브월 15일에 "예루샬라임의 딸들이 포도원에서 춤을 추었고", "아내가 없는 사람들은 신부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라고 합니다. 탈무드는 이 축제를 일 년 중 가장 큰 축제로 여기며, 욤 키푸르가 그다음이라고 합니다!
아브월의 "보름달"인 이 날은 미래의 구원을 기념하는 축제로, 아브월의 전반부를 뒤흔든 비극(티샤 베아브)의 끝을 알립니다. 이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슬픔을 달래고 구원을 앞당기기 위해 시유밈(סיום, siyumim)을 개최하고,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아브월 15일부터는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로쉬 하사나((Rosh Hashanah) 45일 전인 이날은 서로에게 케티바 바하티마 토바(כְּתִיבָה וַחֲתִימָה טוֹבָה, ketivah vachatimah tovah)를 기원하며 좋은 한 해를 위해 서명하고, 인장하기 시작하는 첫날이기도 합니다.
※ 시유밈(סיום, siyumim): 완료, 결론을 뜻하며, 토라 공부의 한 단원, 특히 탈무드나 미슈나 의 논문이 끝날 때 가장 흔히 사용됩니다. 시유밈은 이러한 성취를 기념하는 즐거운 축하 행사입니다.
※ 케티바 바하티마 토바(כתיבה וחתימה טובה, ketivah vachatimah tovah): “좋은 비문과 봉인". 욤 키푸르 를 앞둔 날에 사용되는 전통적인 인사말로 , 로쉬 하샤나 에 운명이 기록되고 욤 키푸르에 운명이 확정된다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아브월 15일에는 총 일곱 가지 기쁜 일이 일어났습니다.
1. 예루샬라임의 춤추는 처녀들
랍비 시몬 벤 감리엘(Shimon ben Gamlie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아브월 15일과 욤 키푸르보다 더 큰 축제는 없습니다. 이 날에 예루샬라임의 딸들은 나가서… 포도원에서 춤을 추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젊은이여, 눈을 들어 네가 스스로 무엇을 고르는지 보라…" (탈무드 , 타아닛 26b)라는 말을 했습니다.
2. 출애굽 첫 세대의 죽음이 멈췄습니다.
정탐꾼들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성지로 들어가려는 그들의 준비가 미흡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세대 전체가 광야에서 죽고, 그들의 자손들이 대신 그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민수기 13장과 14장). 40년간의 광야 방황 끝에 마침내 죽음은 끝났고, 새로운 세대의 유대인들이 성지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날은 창조력 2487년(기원전 1274년) 아브월 15일이었습니다.
이 멸망할 세대의 구성원들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은 모쉐와 애정 어린 소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 세대의 구성원이 죽자마자, 하나님은 다시 한번 모쉐와 사랑으로 소통하셨습니다.
3. 이스라엘 지파 간의 결혼이 허락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사이에 성지가 질서 있게 분배 되도록 하기 위해, 서로 다른 두 지파의 구성원 간의 결혼에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지파의 땅을 상속받은 여성은 다른 지파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는 그녀의 자녀들, 즉 아버지 지파의 구성원들이 그녀의 재산을 상속받아 한 지파에서 다른 지파로 땅을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민수기 36장). 이 조례는 성지를 정복하고 정착한 세대에게 구속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월 15일에 이 제한이 해제되고, 이 사건은 축하와 축제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4. 베냐민 지파는 다시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브월 15일, "기브아의 첩(Concubine at Giv’ah)” 사건으로 파문당했던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다시 합류했습니다(사사기 19-21장). 이는 창조 이후 2533년부터 2573년까지(기원전 1228년에서 1188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오스니엘 벤 케나즈(Othniel ben Kenaz)가 사사로 재임하던 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 "기브아의 첩(Concubine at Giv’ah)”사건: 레위 사람과 그의 첩에 관한 이야기. 그들이 베냐민의 도시 기브아를 지나갈 때, 베냐민 사람들이 레위인의 첩을 집단 강간하여 죽였습니다. 그녀가 학대로 죽자 레위 사람은 그녀의 시신을 절단하여 유해를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에게 전했습니다. 이 사건에 분노한 지파들은 아무도 베냐민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전쟁을 일으켜 지파를 거의 전멸시키고 600명만 남겼습니다.
5. 호셰아 벤 엘라(Hoshea ben Elah)는 예루샬라임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죽고 성지가 두 왕국으로 나뉘자, 북이스라엘 왕국의 통치자 예로보암 벤 네밧(Jeroboam ben Nebat)은 백성들이 남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샬라임에 있는 성전으로 매년 세차례 순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로를 차단했습니다. 이 결정은 200여 년 후, 북 이스라엘 의 마지막 왕 호세아 벤 엘라에 의해 아브월 15일(기원전 574년)에 마침내 철회되었습니다.
6. 베타르(Betar)의 죽은 자들은 매장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베타르 요새는 바르 코크바 반란(Bar Kochba)의 마지막 저항 요새였습니다. 3893년(서기 133년) 아브월 9 일, 베타르가 함락되자 바르 코크바와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했고, 유대인들이 죽은 자들을 매장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3908년(서기 148년) 아브월 15일, 마침내 베타르의 시신들이 매장할 수 있었고, 이를 기념하여, 기도에 "하토브 베하메이티브(הטוב והמטיב, Hatov Vehameitiv)"라는 축복이 추가 되었습니다 .
※ 하토브 베하메이티브(הטוב והמטיב, Hatov Vehameitiv): “선하고 자비로운 자”.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특별한 순간을 기념한다는 축복기도.
7. “도끼가 부러지는 날(Yom Tabar Maagal)”
예루샬라임에 성전이 세워졌을 당시, 제단에 쓸 장작을 베는 일은 매년 아브월 15일에 끝났습니다. 이 행사는 (거룩한 일을 마무리하는 관습처럼) 잔치와 기쁨으로 기념되었고, 도끼를 꺾는 의식도 거행되었는데, 이것에서 이날의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 도끼가 부러지는 날( יום טבר מעגל, Yom Tabar Maagal): 제 2성전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70년간 바빌론에 유배되어 이스라엘 땅이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나무가 귀했습니다. 따라서 나무는 귀하고 비쌌습니다. 제단에 제물을 위한 나무가 항상 충분하도록 나무를 기부했습니다. 나무는 곤충의 침입을 받지 않도록 완전히 건조되어야 했습니다. 아브월 15일은 "도끼를 꺾을 수 있는" 날, 즉 나무 기부를 받을 수 있는 마감일이었습니다. 투 베아브 이후 이스라엘의 기후가 서늘해지고 장작이 축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기쁨의 날이었습니다. 다음 해에 제물을 위한 나무가 충분할 것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By Yanki Tauber
Art by Sefra L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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