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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타락
왕상 11:1-13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왕상 11:1-13 / [이방 여인들과 우상숭배] 솔로몬왕은 여자들을 좋아하였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이웃 나라의 여자들을 좋아하였다. 솔로몬은 본래 애굽의 공주와 결혼하였으나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족속과 같은 인접 국가의 이방여자들도 아내로 맞아들였다. 2) 일찍이 여호와께서는 이방여인들과의 결혼문제에 대하여 명백하게 금지 명령을 내리셨다. `너희는 이방의 남자나 여자와 결혼하지 말아라. 그들이 너희를 꾀어 그들의 신을 섬기게 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경고를 멀리하고 이방여자들을 좋아하였다. 3-4) 그가 왕비로 맞은 아내는 모두 700명이요, 그 밖에도 첩이 300명이나 되었다. 이렇게 많은 이방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여호와로부터 온갖 우상에게로 옮겨 놓았다. 솔로몬이 늙어 가서 그들이 솔로몬을 꾀어 다른 신을 섬기게 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한 마음으로 섬길 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 다윗과 같은 마음을 품고 살지 못하였다. 5) 솔로몬은 시돈 족속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 족속의 우상 밀곰도 섬겼다. 6) 이렇게 솔로몬은 여호와의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저지르고 자기의 아버지 다윗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였다. 7) 솔로몬은 또 모압 족속의 우상 그모스와 암몬 족속의 우상 몰렉을 위하여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산 위에 산당을 지었다. 8) 그리고 이방의 아내들을 위해서 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분향도 하고 제물도 바칠 수 있게 해주었다. 9-10) 여호와께서는 일찍이 솔로몬에게 두 번씩이나 나타나셔서 이방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백하게 경고하셨으나 솔로몬은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이에 진노하신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11) 다음과 같은 형벌을 내리셨다. `네가 나와 맺은 언약을 위반하고 나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통치권을 빼앗아 네 신하에게 넘겨주겠다.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생각해서 네 생전에는 참고 있다가 네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으면 내가 그렇게 하겠다. 13) 물론 나는 네 아들에게서도 나라를 다 빼앗지는 않고, 나의 종 다윗과 약속한 것을 생각하고 내가 예루살렘을 나의 영원한 도성으로 선택한 것을 생각해서 유다 지파 하나만은 네 아들에게 남겨 두겠다.'
이스라엘의 왕권 제도는 독특합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래 왕이 있든, 사사가 있든 상관이 없습니다. 왕은 통치 행위자가 아니라 통치 대행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왕권정치라는 말보다는 신권정치라는 말이 더 맞습니다.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1-8) 다윗의 위대함은 도덕과 윤리에 있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통치자이심을 인식하고 왕의 삶을 살았기에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다윗과 달랐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변 이방 민족과 혼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7:3). 왜냐하면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신 7:4).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아스다롯과 밀곰과 그모스의 길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방 신들을 섬기는 척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 자신이 여호와의 길을 버리고 이방 신들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이방여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니라(9-13) 하나님은 솔로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두 번이란 기브온에서 한 번, 그리고 왕궁 건설 이후 또 한 번(9:2) 그렇게 두 번 꿈에서 나타나 그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솔로몬을 사랑하여 그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7장에는 이스라엘의 왕된 자가 해서는 안 될 것을 말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신 7:16-17) 열왕기가 솔로몬에 대해 보여주는 은금의 풍성함과 군마의 많음과 아내의 많음은 솔로몬이 말년에 타락하여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적용: 탁월한 지혜라도 현실에서 올바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지혜가 지식의 적용이라면 순종은 지혜의 적용입니다. 후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타락을 솔로몬의 타락으로 비유합니다(느 13:26).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야겠습니다.
솔로몬은 능력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집권동안 나라는 강력했고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기에 성전 봉헌식 기도에서 나타났던 훌륭한 신앙은 손상되었습니다. 이유는 솔로몬의 국제적인 관심과 그에 따른 영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외국 여인들과의 결혼에서 초래된 우상 섬김은 확실한 타락의 원인이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뻐꾸기 알을 신앙의 둥지에 떨어뜨리는 재주가 있다. 부패한 은혜가 풍기는 악취에 비하면 지옥의 유황불 냄새는 아무것도 아니다.”(헬무트 틸리케)
< 설 교 >
죄를 이기는 방법
열왕기상11:1~43
수많은 은과 금을 자신을 위하여 쌓아 두기만 했지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베풀고 나누지 않았던 솔로몬은 점점 타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애굽으로부터 수많은 군마들과 전차를 사들이고, 애굽식 군사문화를 흡수해 들이면서 그것으로 군수물자 사업까지 벌여 이익을 챙겼습니다. 무리한 공사와 노예와 일꾼 혹사 그리고 과중한 세금 정책으로 백성들의 어깨를 무겁게 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최고의 번영기에 솔로몬의 신앙생활은 점점 시들어 갔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노년에는 결국 1000명이나 되는 이방 여인들이 솔로몬을 타락의 길로 몰고 갔습니다. 결국 처음 시작했던 그 아름다운 신앙은 무너졌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경고도 듣지 않는 교만하고 완고한 모습을 보이면서 용두사미의 인생으로 마쳤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솔로몬의 삶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어떻게 하면 솔로몬처럼 타락의 길을 가지 않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세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죄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는 아담의 후손 중에 아무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솔로몬은 자신감이 지나쳤습니다. 왜냐하면 머리로 생각할 때, 자기 같은 사람이 이방 여자에게 빠지거나 우상의 죄에 빠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솔로몬은 머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죄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신앙의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성전을 지는 자로 하나님께 택함받았습니다.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릴 정도로 하나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과 중심이 있었고 예배가 있었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 신앙이 뜨거웠겠습니까? 솔로몬은 자신감으로 충만했습니다. 성전도 하나님의 축복속에서 완공했습니다. 왕궁도 세상 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잘 지었습니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백성들의 지지도도 최고였습니다. 솔로몬에게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처럼 죄에 대해서 벌벌떠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너무 머리도 좋고 신앙심도 좋다 보닌까 평범한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죄의 낚시에 걸려들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아슬아슬한 짓을 하다가 어느 한 순간 죄의 미끼에 걸려들게 됩니다.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지 말라!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절대로 안 그럴 것이다! 자신감 갖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저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전병욱 목사님처럼 될 수 있다. 나도 정삼지 목사님처럼 돈 문제로 무너질 수 있다! 우리교회도 분열될 수 있다! 우리는 늘 타산지석 삼아서 스스로를 조심해야 합니다. 절대로 우리는 그렇지 않는다고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절대로 썩어질 몸은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비만을 치료할 때 머리로는 음식을 절제하고 먹지 말아야지 하는데 입은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밤에 절대로 라면 먹지 말아야지 하는데 출출하면 이미 물 끓이고 있는 자신을 봅니다. 비만 치료하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를 하고 정기적으로 생활패턴을 바꾸어야만 비로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적당히 대충 나는 내 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100% 집니다. 암걸려서 이제 음식먹으면 죽는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음식조절하고 함부러 먹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타락하여서 죄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백했던 것처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롬7:18~19) 우리 썩어질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육신은 오로지 육신의 본성을 따라 행동하려 듭니다. 육신의 감정은 본성대로 움직입니다. 내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비상한 결단과 비상한 영성을 가지고 기도하고 내 몸을 다스리지 않으면 몸은 곧바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향해 달리고 맙니다.
우리는 육신을 의의 병기로 길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솔로몬이 타락의 길로 갔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명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몰라서 이런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경고하셨습니다. ‘왕 된 자는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을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신17:17) 많은 아내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습니다. 솔로몬은 어렸을 때부터 율법과 말씀을 배웠습니다. 또한 유대최고의 지혜의 책, 잠언의 저자로서 솔로몬은 이방 여인을 사랑하여 마음을 잃어버릴 때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잠언서에 했던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잠언5:20~23) 솔로몬은 충분히 이방여인을 사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습니다. 여러분!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참으로 다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충만히 받은 사람이니 이론적으로는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축복에 너무 취해서 그것을 실천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지식으로 몸을 이길 수 없습니다. 결심으로 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자심감으로 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썩어질 몸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거룩한 삶의 습관을 만들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자리에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힘을 공급받습니다. 말씀을 공급 받는 은혜의 자리에 썩어질 몸을 있게 하십시오! 기도하는 자리에 썩어질 몸을 있게 하십시오. 금요저녁기도회의 자리에 내 몸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의 자리에 내 몸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주일이면 변함없이 내 몸을 예배의 자리에 앉게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큐티하는 자리에 내 몸을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을 수 있는 장소는 의도적으로 내 몸을 가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죄의 자리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합니다. 육신의 감정이 발동하고 육신의 정욕이 발동합니다. 요셉처럼 죄를 지을 수 있는 자리를 뛰쳐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승리합니다. 우리는 항상 죄의 가공할만한 힘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 앞에 설 때 우리는 몸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깨어 있는 신앙의 힘만이 몸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충만하게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은혜의 자리에 두는 훈련을 합시다.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서 내 마음을 항상 살피는 훈련을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죄의 몸을 이길 수 있습니다. 경건한 습관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로 죄는 서서히 조금씩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3~5)
여기서 보면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볼 때, 솔로몬의 타락은 서서히 조금씩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솔로몬이 타락의 길로 들어 선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아내들의 요구에 조금씩 마음이 해이해지고 타협하면서 이방신들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기 시작하고, 결국은 거리낌 없이 우상숭배에 빠져서 국고를 털어 곳곳에 이방 신당들을 세우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습니다. 타락은 점진적으로 이루어 집니다. 결코 한 순간에 죄의 길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행동은 오랫동안 생각 속에서 범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마음에서 죄는 자랐습니다. 상상력 속에서 죄는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언어로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런 생각과 마음의 요소가 어느 날 불쑥 뛰쳐나온 것입니다.
헬스클럽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몸무게를 재어 보고 놀라서 외쳤습니다. “와~! 하룻밤만에 10kg이 늘었네” 이 때 주변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룻밤만에 10kg의 몸무게가 늘어납니까? 계속 과식하고 운동 안하는 나쁜 습관을 오랜 세월 해왔던 까닭에 그렇게 몸무게가 서서히 늘어난 것입니다. 죄도 마찬 가지입니다. 죄를 가볍게 보고 장난치듯 서서히 빠져들어 거기에 익숙해지고 타협하기 시작하면 어느덧 죄가 쌓이고 쌓여 결국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서 저자는 솔로몬이 우상숭배의 길로 가게 된 이유가 마음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켰다고 했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여호와를 향해야 할 솔로몬의 마음이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얼마 안가서 삶도 무너집니다. 신앙생활에서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각을 지키는 것이고 상상력을 지키는 것이고 언어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끝없이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조용히 내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깜짝 깜짝 놀랄 정도로 내 속에 좌정하고 있는 죄의 요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날 말씀이 내 속의 죄를 지적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큐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조용한 곳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 속의 죄의 요소가 발견될 때 즉시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의 요소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삶으로 나아가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몸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육체적으로 살인하는 것만 살인죄가 아니라 마음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에서 살인죄는 시작됨으로 마음에서부터 살인죄의 요소를 없애라는 뜻에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간음죄에 대해서도 동일한 차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이것은 육신의 정욕의 죄를 유발하는 근원을 철저히 가려서 제거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예수님은 과격할 정도로 죄는 근원부터 잘라낼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게 내 몸을 내주게 됩니다. 죄의 힘에 이끌려서 범죄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의 작은 요소도 끊어 내야 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신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정말 눈이 범죄 한다고 파내고, 손이 범죄 한다고 찍어 내버리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근원을 철저히 잘라내야만 우리가 죄의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전염병과 같아서 사소한 죄라도 순식간에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마음을 온통 장악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힘을 결코 쉽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정신을 알았던 바울 사도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1~22)고 권면했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죄는 작은 모양이라도 싹뚝 싹뚝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서 죄가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반대로 범사에 좋은 것을 택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악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할 수 만 있으면 신앙생활은 좀 우직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멀리하고 바보같이 자기 자신을 지킬 때 죄의 올무에 걸려들 가능성은 줄어드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죄의 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함부로 하지 맙시다. 죄의 언어는 그 단어마져도 사용하지 맙시다. 저는 우리 새숲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서로에게 죄를 이기는 일에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어지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죄에 대해서 정죄하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죄를 용납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승리하도록 돕고 죄에서 일어나도록 돕고 설상 죄에 빠졌더라도 살리고자 힘쓰는 공동체가 되자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를 이 지상에 세우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중보기도함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지키고 보호하며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힘을 모으자는 뜻이라고 봅니다.
셋째로 징계 받는 중에도 회개하면 삽니다(9~11절).
마침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죄를 징계하고자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나타나서 솔로몬의 죄를 지적하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책망하실 때가 좋은 것입니다. 이 때 솔로몬은 정신차리고 회개하고 다시 마음을 잡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회복했다면 솔로몬은 다윗보다 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두 번의 경고를 다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하나님께서 징계라는 몽둥이로 솔로몬을 때리고자 결심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다스리는 나라를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두 단계로 솔로몬에게 은혜를 빼앗아 가는 것을 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솔로몬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빼앗아 갔습니다. 죄는 우리 마음에 샬롬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면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고 공허해 집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고 공허함이 찾아온다면 내 신앙생활에 이상함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님께서 내 삶을 징계하신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불편하고 기쁨이 없고 뭔가 양심이 불편하고 두려움이 임하고 있다면 우리는 빨리 자신의 내면을 점검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 안에 죄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와서 내 심령에 다시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 기쁨을 선물해 주십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샘물이 솟듯이 다시 기쁨이 솟구쳐 나옵니다. 둘째 단계는 몽둥이로 치는 단계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고 양심이 불편하고 뭔가 모르는 두려움이 오고 있을 때 그래도 회개함 없이 이런 상태로 죄의 삶을 지속하면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몽둥이를 드십니다.
저는 솔로몬을 징계하고자 몽둥이를 드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 해 봅니다. 영적으로 철이 든 자식이라면 자신을 무섭게 때리는 아버지의 눈에 고여 있는 눈물을 읽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매를 드는 부모님의 마음처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다 경험 해 보셨잖습니까? 징계하는 일은 사실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그것도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고 축복했던 사람을 심판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타락한 솔로몬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회개하면 삽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도 밧세바 사건 같은 무서운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다윗의 차이점은 실수를 저지른 후에 하나님이 경고와 징계를 할 때 솔로몬은 회개하지 않았고 다윗은 피를 토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솔로몬이 몽둥이로 징계를 받을 때에라도 아버지 다윗처럼 회개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저는 열왕기상 21장에 나오는 아합의 회개를 보면서 참으로 큰 은혜를 받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상 전무후무한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자입니다. 또한 나봇의 포도원을 갈취한 잔인한 윤리적 죄도 범했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아합 왕에게 전달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임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왕상21:21~22) 이 때 아합 왕은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녔습니다. 그런에 하나님께서 아합이 그렇게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우리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 가슴을 치며 회개했더라면 그 징계마져도 거두어 가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그토록 사랑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내리는 중에라도 회개하는 자들의 회개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늦은 회개라도 심지어 징계를 맞는 중에라도 회개 할 수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늦은 회개도 하나님은 받아 주시고 그 회개를 통해서 새로운 자비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책망의 음성을 우리가 즐거이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내 죄가 발견되면 즉시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 때라도 결코 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징계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에도 회개만 한다면 우리는 삽니다. 왜? 솔로몬이 망했습니까?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대적들인 에돔의 하닷과 수리아의 르손과 에브라임 지파 출신인 르호보암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솔로몬의 죄 때문에 일어난 대적들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회개하는 대신에 대적들과 싸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결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온갖 어려움이 발생하고 대적들이 나를 향해서 시비를 걸어온다면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이 상황이 무엇이냐고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 왜? 이 고난이 시작되었습니까? 하나님 왜? 원수가 저렇게 강성하여 나를 적대시하면서 조롱하고 멸시합니까? 우리는 반드시 고난을 해석하여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회개할 것이 없는 단순한 훈련을 통한 연단이라면 우리는 그 연단을 기쁨으로 받아야 합니다. 연단 뒤에는 엄청난 축복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을 통해서 죄를 이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세 가지로 배웠습니다. 첫째로 죄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둘째로 죄는 서서히 조금씩 발전해 나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죄도 무서운 마음으로 잘라내야 합니다. 결코 죄가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자라지 못하게 그 싹부터 잘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징계받는 중이라도 회개하면 삽니다. 아무리 늦은 회개라도 회개는 좋은 것입니다.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십자가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죄로부터 승리해서 우리 모두가 초지일관으로 복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늘 처음처럼 그 첫사랑의 열심히 하나님 사랑하고 내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