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낮술 한 날
모처럼 낮술을 했다.
지난주 금요일인 2021년 10월 20일 한낮의 일로, 서초동 오리 전문점인 ‘참 배나무골’에서였다.
이날은 소위 ‘서리풀 모임’이라고 해서, 검찰에서 오랜 세월 함께 근무했던 선후배 그리고 동료들의 만남이 있었다.
코로나 19 이후로 거의 1년 정도 만남의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거리두기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서 성사된 모임이었다.
사실 나는 이날 그 모임에 발걸음을 할 처지가 되지를 못했다.
‘햇비농원’ 우리들 텃밭에서 들깨 타작을 해야 하는 둥해서, 가을걷이 할 일이 태산 같아서였다.
그래서 일찌감치 불참을 통보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날씨가 한 몫 해줬다.
오락가락하는 비 소식 때문에, 눅눅하게 젖은 들깨여서 다음 주중에 이르기까지 타작 일정이 늦춰질 줄 알았었는데, 주말에 반짝 날이 개는 바람에, 베어서 밭에 늘어놓고 비를 맞췄던 젖은 들깨가, 그 하루의 청명에 바싹 말라서, 들깨 타작을 주초로 당겨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 만남이 있는 수요일 당일 아침에 텃밭의 자질구레한 농사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부리나케 달려 약속된 시간이 낮 12시를 조금 넘겨, 우리들 만남의 현장인 ‘참 배나무골’집에 당도했다.
이재영 전 대검찰청 사무국장님을 비롯해서, 동료 수사관들 일곱이 이미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다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 반김이 참 기분 좋았다.
그 좋은 기분에, 내 이렇게 인사의 말을 전했다.
“상서로운 날에, 상서로운 얼굴들을 보니, 내 기분이 너무나 상서롭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이 자리에서 상서로운 존재로 거듭나겠습니다. 불러주심에 감사드리고, 기다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들 ‘서리풀 모임’의 어원인 ‘서초’(瑞草)의 첫 자인 상서로울 ‘서’(瑞)자에 유의해서 그렇게 덕담 인사를 한 것이다.
차려진 밥상은 뒷전이었다.
권커니 잣거니 주로 술잔이 거듭거듭 오갔다.
참으로 기분 좋은 낮술이었다.
그렇게 낮술을 하는 동안, 내 생각의 세계에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창현 내 친구가 그 얼굴의 주인공이었다.
낮술의 취기 중에서도, 이날 오후에 인천지방법원에 들러서 접수해야 할 등기신청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일을 끝내고 난 뒤에 비게 될 이날의 나머지 한낮 일정에서, 뭘 할까 생각을 하던 중에 떠오른 것이, 역시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 친구 얼굴이었다.
그 친구와 낮술을 더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까지 이어진 것이다.
내가 그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 것은, 그 친구가 터 잡고 사는 곳이 그곳 법원에서 가까운 거리인 부천이어서 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웬만해선 내 청을 거절하지 않는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랬다.
“창현아, 우리 낮술 한 잔 할래?”
내 그 청에, 친구의 답은 대뜸 이랬다.
“좋아여. 어디로 갈까?”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음에도, 내 하자는 그 낮술의 이유를 따져 물어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장소 선택의 결정권까지 그렇게 내게 넘겨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편한대로 정하지도 않았다.
“너 집 가까운 전철역 부근에서 하자.”
내 그렇게 장소 결정권을 친구에게 다시 넘겼다.
그래서 정한 때와 곳은, 오후 4시쯤의 전철 1호선 송내역 북쪽 광장이었다.
눈에 보이는 아무 곳이나 찾아들어갔다.
낮술의 이어짐이었다.
얼마나 많이 술을 마셨고,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는지, 그리고 언제 판이 어떻게 끝났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다음날 깨어서 들여다본 내 핸드폰에 사진 한 장으로, 내가 친구와 헤어진 시간을 확인 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 시각, 오후 8시 35분이었다.
사진에는 전철 2호선 신도림역의 슬라이딩도어 창에 새겨진 시구로, 2019년 시민 공모작인 송영미의 ‘빈집 소리’라는 한 수 시였는데, 다음은 그 전문이다.
소라가 남긴 집엔 바다가 들어 산다
빈집에 귀를 대면 들리는 파도 소리
바다로 가고 싶었던 이야기 절절하고
떠나온 산골 집엔 바람이 들어 산다
홀로된 너와집에 문풍지 떠는 소리
파르르 주인 부르는 손길이 애달프다//
첫댓글 독감예방주사를 맞은날이었는데...
ㅎ.
그래도 만나
긴 이야기 나눴지...
그렇게 취한줄은 몰랐는데,
나중에 취한다기에 알았지!
찾아주시고,
써주시고.
고맙다는 말이 부끄럽게 감사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