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맛
유옹 송창재
내가 요즘 까다로운 애인에게 느즈막한 나이에 애태우고 있다.
멋지고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내가 찾던 스타일 이라서 늙어서나마 웬 떡이냐하고 덥석 물었더니, 어찌나 꼬장거리고 까다로운지…
슬쩍 손가락이라도 만져주면 붙잡고 놔주지를 않으니 부족한 양기에 진이 빠진다.
어디갔다가 이제와서는 영감을 녹초가 되게 만든다.
다행하게 기초체력이 있고 팔뚝에 알통이라도 남아있으니 천만다행이지 소싯적 체력을 전부 돈벌이, 꽃놀이한다고 탕진해 버렸더라면 늦게 이런 운우의 행운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불끈솟은 하초대신에 양기는 손가락끝에 모이고,
어두운 눈에서는 낮은 촉광의 Led불빛이 희롱하니..
용든 보약이라도 지어달라고해서 필요없는 하초대신
가운데 손가락이나 보약을 흠씬 먹여야 하려나 보다.
요즘 기운이 떨어져 하모니카 언더커버를 하면 가운데 장지손가락에 기운이 없어지고 하모니카가 미끄러져 떨어지려고 하니
이 시간에는 유난히 긴장해서 땀을 많이 흘린다.
분명
용든 보약에 손가락이라도 적시고 그 손가락이라도 빨아 먹어야 할텐데,
누가 가치도 없는 곳에 투자를 하랴?
요즘 얼마나 경제원리에 영악해진 이웃이 많은지 복날 보신탕 한 그릇 먹자고 하는 이들도 없는 세상인데
효율성투자가 제로인 내게 언감생심
보약이라니.,
이런 사나운 인심에
컴퓨터 자판기와 핸드폰 문자판만 두드리는
가운데 긴 독수리 손가락만
중노동에 시달린다.
요즈음 늦게 독학하는 한시의 매력에 폭빠졌다.
그렇다고 대국(바둑 대국말고 때국을 말한다. 이것이 한자를 알아야 욕인지 아닌지 분간 판단할수 있는 검증예이다.)이 크다고해서 구경가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높고 힘있는 놈들에게 꾸뻑가는 사대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이러려고 한시를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목적은
표의문자의 표현법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때문이었다.
이러한 의도로 한문시를 공부하다보니 우리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며 풍부한 의성어, 의태어를 비롯한 기가막힌 형용적표현을 할수있는 관형사들이 많은지.,
이러한 글과 말을 두고서 웃기지도, 무슨 말인지 뜻인지도 모르는 ET나라의 우주언어가 마치 진보적 표현이며 트렌드인 것처럼, 마구 미사일처럼 난무하는 공중매체들이고 신조어를 생산하는 지성적 행위인 줄 알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편지글 한줄도 못쓰고 자기소개서를 돈주고 남의소개서 쓰듯이하는 기가막힌 폐허의 쓰레기 통속을 보는 것 같다.
이러면 내가 보수꼴통 꼰대가 되겠지.
우리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 학문적, 시적인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감성언어이고 지성언어인지를 극명하게 비교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우리의 멋진 언어를 가지고도
세계에 회자하는 시 한편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다른 세계들이 무식해서인 것이 확실하겠지?
자기가 알아야 남을 이해할수 있는 것이니까.
돼지에게 진주목걸이 격이지!
무식해도 힘만 있으면 된다는 산적의 논리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작금의 우리 앞마당에서도 익히 보고 있으니 누구를 탓하랴?
내 탓이지!
이것은 한시를 읽고 지으면서 느낀 학문적, 애족적 소감이었고…
사실 한시공부의 시작은,
예전에 황진이 할머니가 서화담 선생님을 어떻게 꼬셨는데 안 넘어가셨는지 그 쓰잘데 없는 방중술을 알고 싶어서였다.
내가 요즘 글을 써보니 화담선생냥반 해탈하신 신성을 가지신 백두산 신령님이셔서가 아니고,
글 쓰시고 싯구 생각 하시느라 양기가 전부 머리와 입과 손가락으로 모아지니
이 세상에는 황할머니보다 더 멋지고 신나는 것들이 널려있어서
양물은 쓸데없는 운우의 것이 되니 당연한 이치이셨을 것이고..
이런 양반한테는 아무리 용든 약을 드려도,
사슴 한 마리를 통째로 드셔도
후학들에게 공부하고 외워야 할 시만 많이 남기실 뿐이시지 황할머니에게는 전혀 소용이 닿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것을 체득으로 실증할수 있게되는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내가 한시공부를 한 역사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적 즐거움이구나하고 감히 웃어본다.
이사다닐 때마다
이제 책은 안 사겠다고 다른 지인들에게 주거나 도서관에 기증해버려서, 이제는 기억력이 가물거려 글쓰고도 제대로 썼는지 믿을 수가 없어서
안경을 두개씩 바꿔쓰며 핸드폰에 의존해서 찾아야할 때는 이제 글도 집어치워야지, 돈도 안되고 막걸리도 안 나온는 거 쥐어짜면 머리나 아프지 하고 후회하면서도
또 책을 안살 수가 없다.
애인 생기면 속옷도 사주고 화장품도 사 줘야 하는데
한시라는 애인이 생겼는데 책쯤이야 하고 주섬주섬 샀더니
침대에서 자는 놈은 책이고 나는 방바닥 신세이다.
다행인 것이 술마시고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허공을 날지 않아서 그나마 큰 덕이기는 하다.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모르는
명색이 시인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헛꿈을 꾼다.
내 붓으로, 내 글씨로, 내 글을 써 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한글을 쓸 줄을 모르는 것이다.
처음부터 한자서예만해서 그럭저럭 몇년을 해왔는데
이제 한글서예를 배우려니 선생님이 처음부터 하시자 하신다.
옳은 말씀이시다.
그런데 배우다 꺾을 것 같아서
차라리 한시공부해서 한시를 쓰는 것이 빠르겠다 싶어서 독학을 감행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놔둔 물건은 제때에 찾지 못해도 말뜻은 제대로 알아들으니 한시공부가 빠르겠다 싶었다.
가르쳐 줄 사람들도 없으니 책과 유튜브만 의지하면서
이해는 되는데 머리에 남는 그림은 추상화일뿐 데생만 그려지고 구상화가 안되니
역시 공부는 때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선생이었을 때 애들은 잘 가르쳤나 보다.
공부는 때가 있다며 단어는 머리 좋을 때 외울수 밖에 없다고 몰아쳤으니
그덕에 나도 그때 외웠던 것들은 많이 남아있는데 이제는 시작조차 자신이 없고 불안해서 못하겠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어려우니까 더 재미가있다.
그러니 애인 애무하듯이 자주 들여다 볼 밖에!
예전부터 공부에 이렇게 재미를 붙였으면 애인 확보에는 걱정이 없었을텐데.
그러나 문제는 있다.
자꾸 방이 난장판이 된다.
연습장에, 휴지에, 책에, 노트에..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면서 꿈은 크게 가지고 있다.
우리의 현대시를 표의문자인 한자로 멋드러지게 의역을 해낼 수 있는 방법과
오언 칠언 그런 규칙에 벗어나서 자유시로 쓸수 있을까?
우리 시의 내재율의 멋드러짐을 생각중이다.
아마 내가 다시 환생하면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되고 싶어 질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꼭지만 전해서 교수들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 싶다.
이것은 시인들과의 공동작업이어야 할 것이고
시 쓰는 중어중문학자라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사대주의자는 아닐될 것이다.
우리 한글이 너무 멋지고 사유도 자유롭고 표현도 멋스럽기 때문이다.
법학을 공부하고 쎄쎄하면 되는 공부는 절대로 안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야만 이룰수
있는 꿈이 생겼다.
내게는 꿈은 없었는데.
공부는 늙어서 해야 제 맛을 안다.
암기가 공부의 전부는 절대 아니다.
외워서 시험 잘 보는 것이 절대 공부는 아니다.
건강한 상식과 사고와 이해로 깊은 사유에 의한 판단을 제대로 하는 것이 공부다.
공부들을 너무 안한다. 세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