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키아스 1편: http://cafe.daum.net/Europa/1AT/15164
이사키아스 5편: http://cafe.daum.net/Europa/1AT/15610
외세를 끌어들여 제위를 찬탈한 이사키오스.
다수의 군사귀족들은 찬탈자 이사키오스를 좋아하지 않았고, 다만 민중과 교회, 그리고 서방 황제의 지원을 받는 이사키오스의 폭압을 묵묵히 참아넘길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소리 없는 저항과 사보타주로 인해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맹세 서약 회수에만 10년이나 소요되었습니다.
두카스 황조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지방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상당수가 남아있었고, 그들을 몰아내는 와중에 이사키오스는 셀주크가 메소포타미아 침공을 단행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여성 결투사'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명성높은 그레고리아가 콘스탄티누폴리스 한복판에서 하샤신의 습격을 받아 절명하는 사건도 벌어지며 수도의 안전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서쪽으로는 예루살렘으로 달려든 1차 십자군을, 동쪽으로는 바그다드로 달려든 셀주크를 모두 격퇴해낸 파티마조 칼리프의 위신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1108년, 황후 이레네가 66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혼처는 후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부러 최대한 나이가 많은 여성을 선정합니다. 이를 위해 콘스탄티누폴리스의 북서쪽 구역인 블라헤르나이에서 살고 있던 36세의 발레리아라는 하급귀족 여식을 지명했습니다.
셀주크에게 빼앗긴 아르메니아를 회복하기 위하여 콜로네이아를 향해 진격합니다.
가임기의 끝자락에 있던 발레리아가 임신해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국 공작장관 겸 킬리키아 사령관 요세포스는 멜레티오스의 암살계획을 알아냈다가 꼬리가 잡혀 살해협박을 받고 있다고 호소해왔습니다.
멜레티오스는 황후의 오라버니로 곧 이사키오스의 처남이 되는데, 여동생이 황후로 간택되어 황궁으로 들어온 이래 야심이 깊어 정치적 무리수를 두어왔으며 마치 악마가 들린 것처럼 포악하여 평판이 상당히 좋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셀주크 방계에 해당하는 베르칸이 대규모 원정군을 조직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습니다.
결국 우려했던대로 황자가 태어나고 맙니다.
황후 이레네의 뒤를 이어 공작장관(μυστικός, Mystikos. 직역하면 '비밀인물'로, 9세기경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황제의 개인비서였던 것으로 추정되나 점차 사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냈고, 콤니노스 시대를 거치며 황가의 재무까지 담당하기 시작했으며 팔레올로고스 시대에는 최중요 기관으로 성장했다. 조선으로 치면 내시부 및 승정원과 성격이 비슷하다.)으로 암약하던 킬리키아의 요세포스가 대황궁 서측 복도에서 하샤신의 습격을 받아 쓰러졌습니다. 단순한 약쟁이로 여기던 하샤신이 황궁 내 중요인물에게까지 암살을 일삼을 정도로 성장한 것입니다.
쿠마니아의 카간이 페체네그를 몰아내고 타우리카(크림)를 정복할 계획이니 동참해달라는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딱히 깊이 개입할 생각도 없었지만, 어차피 이미 승패는 기울어진 상태입니다.
셀주크가 콜로네이아를 할양하는 조건으로 종전을 청해왔습니다.
아르메니아 왕국의 약 20~25%를 되찾았습니다.
베르칸이 드디어 비잔티움 제국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목표는 시리아의 왕좌입니다.
돌리키 일대의 '킬리키아 문' 근방에 약 2만 병력을 집결시켜놓는 동안, 베르칸의 1만 병력이 유프라테스 강을 도하하는 것을 확인합니다.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데이르에조르에 제국군이 접근합니다. 전초전(스커미시) 단계에서는, 경기병, 궁병, 궁기병 비율이 일정 이상이라면 대개 harass, volley, swarm의 가위바위보 게임이 됩니다(경기병 궁병 궁기병이 많지 않다면 보통 방어태세를 갖추어 전면전 단계까지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경기병이 치고 빠지는 harass는 궁기병으로 치고 빠지는 swarm을 이깁니다. swarm은 궁병들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일제사격을 퍼붓는 volley를 이깁니다. volley는 harass를 이기고요. 제국군 중앙이 셀주크군 경기병에게 일제사격을 가하며 당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근접전에 돌입하기도 전에 셀주크 중앙은 화살꽂이 신세가 되어 와해되었고, 중앙을 돌파한 제국군 중기병대가 셀주크군 좌익을 강타합니다. 중보병대를 앞세워 보병 간 백병전 양상으로 끌고 가려던 적 좌익은 기병돌격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급격히 붕괴합니다.
병력 규모에서부터 2배수 차이가 났고, 전술 면에서도 앞섰기 때문에 1700 대 8100에 이르는 압도적인 교환비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베르칸은 200의 위신과 490원만 헌납당하고, 전쟁은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이사키오스가 사로잡힌 베르칸을 정중히 맞이하는 대신 개종을 강요합니다.
베르칸 셀주크와 그 부하 장수 데미르는 모두 비잔티움 제국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정교회로 개종합니다.
한편 파티마 제국에서 일어난 내전을 틈타 반란군에게 다마스쿠스를 포함한 시리아 왕국 남부 일대를 요구하며 성전을 선포합니다.
다마스쿠스를 포위한 제국군은 4천 명, 이를 저지하기 위해 6천의 레반트군이 진군해오고 있습니다.
수적 불리로 인해 좌익이 거의 무너질 위기에 처하지만, 북쪽에서 내려오는 지원군이 합류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냅니다.
경기병을 동원해 적 중기병의 돌격을 방해하며 간신히 창병 방진을 완성시킨 제국군 중앙이 중기병대를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반란군 병력의 거의 대부분을 무너뜨리고 시리아 남부 일대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콘스탄티누폴리스의 대황궁 침소에 누워있던 '찬탈자' 황제 이사키오스 2세에게 승전보가 전해진 것은 전투 종료 14일 뒤, 12월 23일의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안티오키아에서 29년, 콘스탄티누폴리스에서 17년을 살아온 이사키오스에게는, 실상 시리아 왕국이야말로 자신의 고향과 같았습니다. 그는 제국 동방 총사령관이자 시리아의 전제군주였으며, 독일인들의 목숨을 빌려서까지 빼앗아온 제관은 그저 동방 국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전리품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안티오키아와 예루살렘, 이스파한과 카이로에 닿아있었으며, 제국의 확장과 기독교의 부흥은 동방을 향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그런 그가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 관용과 동정심이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은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겠습니다만 말이죠.
이사키오스 2세는 이제 65세의 고령이 되었습니다. 언제 낙원으로 향할지 알 수 없는 나이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건강에 어떤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처지인 것입니다. 그는 정력적이었지만 동시에 지쳐있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런 피로를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카르발라의 칼리프 제국 반란군 수장으로부터 항복 교섭을 받아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죠. 다만 낮잠을 한숨 자고 난 뒤에 업무를 재개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잠시 조그마한 휴게실에 들러 몸을 뉘였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보이는 한적한 휴게실이었고, 요 근래 발견한 꽤 마음에 드는 휴게 장소였습니다.
그렇게 동쪽 바다를 향해 난 창 아래에서, 이사키오스 2세는 숨을 멈췄습니다. 휴게실 문 옆에는 그가 시리아 전제군주국을 선포하던 당시에 사용한, 검은 바탕에 흰 십자 무늬가 새겨진 깃발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시아 방향에서 들어온 해풍이 깃발을 살짝 흔들어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황궁에서 외교 업무를 보고 있던 이사키오스는, 자신이 8시간 뒤 대경기장으로 나가 시민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고 황제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리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주요 연표
1066년 동방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안티오키아로 부임하다.
1067년 돌리키 전투에서 술탄 알프 아르슬란의 셀주크 군에게 패배하다.
1068년 디미트리 바그라티오니의 딸 이레네와 결혼하다.
1069년 12월 28일 황제 콘스탄티누스 10세가 자연사하다.
1070년 장남 이사키오스가 태어나다.
1071년 티아나 전투에서 요안니스의 비잔티움 반군에게 승리하다.
1072년 3월 13일 총대주교 요안니스 8세가 심신장애로 사망하다.
셀주크 반군 아메트와의 전쟁에 돌입하다.
1차 필리포폴리스 전투에서 요안니스의 비잔티움 반군에게 승리하다.
2차 필리포폴리스 전투에서 요안니스의 비잔티움 반군에게 패배하다.
1073년 3차 필리포폴리스 전투에서 요안니스의 비잔티움 반군에게 승리하다.
1074년 파플라고니아 전투에서 펠라기오스의 성상파괴주의 반군에게 승리하다.
1076년 1월 17일 이사키오스의 아버지 '정결공' 요안니스 2세가 혼수상태에서 사망하다.
앙키라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의 비잔티움 반군에게 승리하다.
11월 8일 황제 미카일 7세가 이사키오스의 사주로 살해당하다.
1077년 아미소스 전투와 시노페 전투에서 펠라기오스의 성상파괴주의 반군에게 승리하다.
셀주크 반군 아메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라시드 우다울라 마무드 미르다시드로부터 알레포를 획득하다.
갈라티아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의 비잔티움 반군에게 승리하다.
1078년 홈스 전투에서 칼리프 아부 2세 만수르 알 니자르의 파티마 군에게 패배하다.
1079년 다마스쿠스를 요구하며 쉬아 칼리프와의 단독전쟁에 돌입하다.
1차 하마 전투에서 파티마 군에게 승리하다.
2차 하마 전투에서 파티마 군에게 승리하다.
1차 안티오키아 전투에서 에미르 이스마일의 유시프 에미르 군에게 승리하다.
2차 안티오키아 전투에서 파티마 군에게 승리하다.
1080년 쉬아 칼리프와 종전하다.
예루살렘으로의 성지순례를 떠나다.
1082년 트리폴리 셰이크 메수드와의 전쟁에 돌입하다.
1083년 트리폴리 셰이크 메수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트리폴리를 점령하고 트리폴리 군관구를 신설하다.
1084년 안티오키아에 큰 풍년이 들다.
1085년 2월 4일 이사키오스의 어머니 안나가 자연사하다.
1086년 토르토사에서 두 개의 태양이 목격되다.
1088년 안티오키아 시민들이 이사키오스의 자애로운 통치를 찬양하다.
1089년 4월 4일 총대주교 네오피토스가 과로사하다.
1090년 시리아 전제군주국의 성립을 선포하다.
1091년 8월 12일 총대주교 네오피토스 2세가 병사하다.
1092년 알레포에서 두 개의 태양이 목격되다.
1093년 비잔티움 황제 쎄오도시우스 4세와의 전쟁에 돌입하다.
1094년 수만 마리의 까마귀가 팔미라의 수확을 망치다.
1095년 비잔티움 황제 쎄오도시우스 4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비잔티움 황제 이사키오스 2세로 등극하다.
'찬탈자'라 불리기 시작하다.
1096년 디라키온에서 성상파괴주의가 기승을 부리다.
1097년 자카리아스가 이끄는 성상파괴주의 봉기가 일어나다.
쎄살로니키 전투에서 키비라이오트 사령관 야코보스가 지휘하는 제국 해군이 성상파괴주의자들에게 승리하다.
알라이가 이끄는 순니파 봉기가 일어나다.
1098년 알 수크나 전투에서 크리제브치의 즈보니미르가 지휘하는 제국군이 순니파 반군에게 승리하다.
1100년 디라키온에서 안테미오스가 이끄는 농민봉기가 일어나 1년만에 진압되다.
1106년 니코미디아에서 수천 마리의 야생 토끼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다.
1108년 8월 8일 황후 이레네가 자연사하다.
블라헤르나이의 칼리스토스의 딸 발레리아와 결혼하다.
셀주크 술탄 말리크 샤와의 전쟁에 돌입하다.
1111년 셀주크 술탄 '장엄왕' 말리크 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콜로네이아를 획득하다.
베르칸 군의 시리아 침공이 시작되다.
1112년 알 비크리 전투에서 디미트리우스 2세가 지휘하는 제국군이 베르칸에게 승리하다.
파티마 반군 하빌과의 전쟁에 돌입하다.
다마스쿠스 전투에서 디미트리우스 2세가 지휘하는 제국군이 파티마 반군에게 승리하다.
12월 23일 이사키오스 2세가 자연사하다.
이사키오스 2세 사망 직전의 세계. 비잔티움 제국은 아르메니아를 상실하였으나 시리아 내륙지역과 도나우 강안으로 확장했다. 파티마는 셀주크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중부를 탈취하였으나 현재는 내전 중에 있다.
이사키아스 2권 1편: http://cafe.daum.net/Europa/1AT/15813
첫댓글 로마인의 황제 이사키오스에게 영원한 안식을! 새 황제 이사키오스 만세!
엌ㅋㅋ 애니 포트레잇 ㅋㅋㅋㅋ
첫댓글 로마인의 황제 이사키오스에게 영원한 안식을! 새 황제 이사키오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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