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
유옹 송창재
올 여름은 너무나 덥다.
온난화 현상으로 한반도가 아열대가 된다고 하더니 그 징후의 전조인지 아니면 올해 여름만의 이상인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기록적인 폭염에 온열환자들이 속출하는 한낮 태양의 지글거림뿐이 아니라 계속되는 열대야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들이다.
어릴 적의 여름밤은 지금처럼 이렇게 덥지는 않아서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곁에는 마른 쑥 모깃불을 피우고 메케한 연기 속에서도 할머니의 옛날 얘기를 듣는 재미로 눈을 부비고 앉아서 잠을 안 잔 것 일뿐이지,
열대야 때문에 잠을 이루지를 못했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서 귀는 이야기를 듣고 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별똥별을 보며 할머니 이야기와 별똥별을 섞어서 내 나름의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하였다.
할머니가 부쳐주시는 시멘트종이로 만든 손부채의 바람은 지금의 선풍기바람 보다도 시원했으며 간혹 한 번씩 불어오는 자연풍은 에어컨바람보다 더한 얼음 바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들..,
그것도 합창으로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
완전히 그랜드피아노에 맞춘 대합창이 이루어진다.
지금은 한밤중에 가로수 불빛에 잠도 못 이루는 매미들이 외로움을 견딜 수 없는 밤에 짝을 찾아 노래하는데,
사람들은 소위 문명이라는 불빛 때문에 그 애들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면 수년간 땅속 벌레로 살다가 겨우 한여름 짝을 찾아 자기의 핏줄을 남기고자 하는 매미를 애석하게 생각해 주지도 못하고 시끄럽다고 생난리이다.
오히려 시골의 밤에는 매미는 울지 않는다.
도시의 밤에만 매미가 운다고 시끄럽다니...
매미도 정신이 산란하다. 도회지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 시골 밤에 없어진 소리들이 많다.
그 중에 대표적인 소리가 여치와 베짱이 소리이다.
하늘의 반딧불과 함께!
여름밤에 분분히 날아다니는 개똥벌레의 불빛을 보며 개똥벌레의 암컷을 쫓는 경주를 응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멋지게 격려음악을 연주하던 여치와 베짱이는, 개똥벌레가 없어지니 함께 따라서 깊은 오지로 이사를 가 버렸나 보다.
모두 다 가버리고 너무나 이곳이 정들고 좋아서 떠나지 못하고 남은 몇몇 아이들의 소리만을.. 그것도 가끔 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소리마저도 잊고 있었는데....
요즘 날이 너무 더워 선풍기만 켜놓고 온 창문은 모두 열어 놓은 채 잠을 청해본다.
일찍 잠이 들지도 않는 잠자리에서 어쩌다 눈을 잠깐 붙인 한밤중에, 잠결에 들리는 여치의 노래 소리에 잠이 번쩍 깨었다.
오랜만에 듣는 귀에 익은 소리였다
여러분 여치 알지요?
여치의 그 소리 기억하시죠?
요즘은 시골에서조차 볼 수 없어져서, 곤충도감이나 보아야 기억이 나는 이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러니 그 소리를 듣고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있겠어요?
그 청아한 소리에 여치의 모습들이 눈에 훤하게 보여서, 어릴 적 여치를 잡아서 성냥 통으로 만든 여치 집에 초롱 잎을 깔고 길렀던 예쁜 기억이 떠올라 다시 아이로 되돌아 갑니다.
그 옛날 할머니와 멍석, 반딧불이, 밤하늘을 날아가는 밤 비행기... 눈에 선해옵니다.
그런데 베짱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치보다도 약하고 날씬한 베짱이는, 이제 한 가족도 없이 모두 이민을 가버렸나 봅니다.
여치가 노래하면 자기도 질세라 꼭 함께 목청을 자랑하던 베짱이가..,
어떻게 여치만 두고 내 땅을 떠날 수가 있었는지?
오죽하면 떠났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 속에서 일도 안 하고 개미한테 얻어 먹으러 다니는 숲속의 날라리 악사로 나오던 베짱이는,
욕심이 사나워진 개미한테 얻어먹기가 어려워서 이 땅과 시골을 버렸는지, 아니면 그 날씬한 몸매 하나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먹이가 없어서 굶어들 죽었는지....
지금은 국가에서 복지를 해준다는데 조금만 참고 기다렸으면 밥이라도 먹여 주었을 런지 모르는데...
그놈의 알량한 자존심의 목소리로 얻어먹고 살기는 싫어서 이 땅을 버리고 떠나 버렸는가 봅니다.
우리들 여름 밤의 시골에는 하늘과 땅위에서 멋진 향연들이 벌어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여름 하늘에는, 그리도 수없이 많던 은하수는 하늘을 올려다 볼 아이들만큼이나 귀해서 어쩌다가 무엇을 은하수라고 하는지 물어오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을 정도로 귀해져 버렸고...
할머니의 도깨비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불이 돌아다니는 줄 알고, 밤중에 변소에도 못 가게 만들던 그 많던 반딧불이는, 멀리 여행이라도 가서 하루저녁이라도 자야 겨우 볼 수 있는 정말 귀한 도깨비가 되어버렸고...
숲속의 멋지고 잘 생긴 여치와 베짱이는 하나도 볼 수 없으니...
한여름 밤의 시골에도 눈을 들어 볼 곳도 없어졌고, 귀를 세워 들을 것도 없어진 지금에...
푹푹 찌는 열대야 더위에 열어젖힌 창문으로 들려오는 그 귀한 여치소리를 들으니, 어찌 잠을 이루기가 쉽겠는가?
이것은 올 여름 더위의 덕분이니 여름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인가 보다.
여름아 고맙다!
하지만 이제는 여치만 놔두고 가면 안 될까?
아니다.
할머니도 놓아두고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