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새 없이 울려대는 벨소리에 문득 눈을 떴다.
상철이가 뜬금없이 이른아침에 20번이나 전화를 한 것을 보니 아마도
오늘이 기다려왔던 강원도로 향하는 날인 듯싶다. 끈질긴 감기와도 같이
내 잠은 나와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가보다.
시간이 40여분이나 흐른것을 확인한 나는 분주히 움직였다.
기대심 만큼이나 바삐 움직이며 서둘러 우리 단대로 향하였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그다지 맑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리과의 저주를 다시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여하튼 허겁지겁 도착하여 상철이에게 하이킥을 맞고 정신을 차린뒤 승차하였다.
고대하던여행의 출발이었다.
승차한 뒤에도 변함없이 수마는 나를 찾아왔다.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있는 머리가 무거워 보일 정도로 피곤함이 머물렀다.
생각해 보니 어제 저녁에 많이 무리한것 같다. 간만에 친구를 만나 형만형과 술을 마셨으니
멀쩡히 일어난다면 그것이 사람이겠는가.
여하튼 각설하고 차량안에서는 권민정선배님과 이혜림선배님께서 총무부 이심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끼로 레크레이션을 시작하셨다. 그 내용인 즉슨 간단한 심리테스트와
사천만이 즐기는 놀이 빙고였다. 또 한가지 있다면 새로운 센세이션으로 떠오른 테니스공놀이.
제목은 거창하지만 열고보면 노래를 부르다 멈추는 순간에 공을 갖은 사람이
벌칙을 수행해야하는 고(?)난이도있는 놀이이다.
그러나 나는 졸면서 했기 때문에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고 멍하게 있었다.
여하튼 두 선배님의 레크레이션이 끝나는 순간에 나는 머나먼 잠의 나라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귀가 답답해 지는 것을 느끼며 귀찮은 두눈을 깨웠다.
버스는 굽이굽이 휘몰아 치듯이 고개를 넘고 터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때 송승민 선배님께서 터널을 지나면 밖을 잘 보라고 하셔서 흐리멍텅한 두눈에 긴장을 두었다.
터널이 지나고 조금은 기대를 감춰둘 수 밖에 없었다.
무시무시한 리젠드가 되어버린 사복과의 저주.
바로 행사날 비오기놀이가 재현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뚝 솓은 봉우리의 장관들이 선명히 내눈에 각인되어야 할 순간에
이것을 방해하는 안개가 밉상이었다. 이것저것 생각 하고 있을때 순간 차가 멈췄다.
사람들은 당황해 했고 무언가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었지만,
신혜교 학회장님의 중대한 업무 때문에 잠시 멈췄던 것이었다.
여하튼 버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속도를 높여갔다.
30분여가 흐른 뒤 고대하던 철암의 풍경이 두눈에 투영되어 왔다.
마치 수상가옥을 보는듯한 다리가 달린 집들과 그것의 아래로 흐르는 청색의 하천,
그리고 초록의 바다와 따뜻함의 검은 구름들, 실로 장관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비록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곳이 하찮다, 혹은 불쌍하다,
볼품없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생의 절경이며 잊지못할 광경이었다.
이것이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이 아닌가. 이곳이 사람이 살고 있는 냄새가 아닌가.
현재의 시간과 내가 흘러보낸 시간과의 거리 사이에서 커다란 의미의 공간으로 기억되었다.
또 한번 아직 내가 느끼지 못한 세상과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버스는 길을 몰아 드디어 목표로 하던 연구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연구소 주변으로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넓은 토지에 배추들이 심어져있었고
앞에는 존재 의미가 궁금한 허물어져가는 건물이 있었다.
놀랍게도 의구심을 일케했던 건물은 영화촬영에 쓰여질 정도의 가치를 가진 건물이었다.
여하튼 그만큼 연구소주변은 연구소라는 표제가 어울리지 않을 만치 다양한 곳이었다.
간단히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박미애 간사님과 김동찬 실장님의 지도
아래에서 철암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연탄을 제조하는 공장이었다.
모두들 바닥의 검은 진흙(?)에 신발과 옷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바지를 걷고 조심히 걷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를 걷은 나는 곁에서 걸어가는
광부를 보며 문득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잠시나마 지식의 폭과 만남을 통한 일말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였지만, 정작 이곳에 머무른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며
삶자체로써 살아가고 있었던것이다.
말 그대로 지금 내가 두둔으로 바라보는
저곳의 연탄들은 이들의 땀이며 피이며 삶을 영유케 해줄
기초적 바탕이 되는 곳이었다.
순간 울컥하며 떠오른 사고들의 혼란으로 인하여 정립되지 아니한
두뇌때문에 눈앞에 떠오른 연탄을 잊고 먼산을 바라보았다.
헌데 놀랍게도 이곳은 검고 저곳은 초록이었다.
깊은 고찰이 흐른 뒤에 떠오른 것은 절대로 이곳은 암울함만이 존재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이들이 자라온 환경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지내는 것이고
나에게는 내가 자라온 환경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삶을 지내는 것일 뿐이다.
단지 그것의 차이는 자라온 환경을 앞으로의 의미로써 어떻게 적용하여
자신에게 이롭고 후의 미래를 향하여서도 후회되지 아니할 선택을 하는 것이냐 점이다.
고로 이들의 환경에 대하여 현재 삶의 환경을 옳게 적용시키지 못하는
나의 처지에서 왈가왈부할 거리가 되지않는다.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이들이 바라는 환경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것일뿐이다.
철암을 둘러보고 나는 간단한 사고의 정리를 마친 후
그제서야 멍했던 눈동자에 힘을 두었다. 조금의 휴식 후 간편하게 저녁식사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고추장과 참기름, 쌀밥, 김, 열무김치, 그리고 컵라면. 자신이 평범하다고
자부한다면 이것이 무엇인지 아주아주 간단하게 회로를 돌려보면 조합이 나올것이다.
여하튼 의외로(아주많이 의외로) 저녁은 맛있었다.
엠티때보다 더 맛있었던것 같다(실은 엠티때가 기억이 않난다).
조금의 휴식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박미애 간사님과 김동찬 실장님을 모시고 대화를 나누었다.
두분의 대화에서 나는 삶에 있어 경험과 인간관계가 어느정도의 퍼센티지를 확보하는 가에 대하여 정도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대화과 끝나고 난 뒤에는 모두가 이번 기관방문 겸 여행의 커다란 재미라고
입을모아 즐거워했던 상큼한 공포체험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두둥두둥 거리는 소리가
뇌속에서 충돌하며 원기준 소장님이 당도하셨다는 목소리가 귓속에서 메아리 쳤다.
여하튼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원기준 소장님을 기쁜(?)마음으로 맞이하였다.
첫 인상은 조금은 온화해 보이시면서도 날카로움을 겸비한 분 같아 보였다.
그러나 소장님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꽤나 유머러스 하시고
털털하신 분이란건 깨닫게 되었다.
또한 정사각의 틀과같이 형체를 부동하게 하는 규제에 대하여
시니컬한 사고로 비판할 줄 알고 얽매임에 요동치시라는 분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나는 여기서 소장님의 이야기중 특별히 한 구절만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소장님의 이야기는 특별한 한 구절로써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라는 이름의 규모로써 스며들기 때문이다. 역시나 관록이 묻어나시는
화법을 소유하고 계셨다. 의외로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꽤나 유쾌함을 주셨던
시간이 흐르고, 기다리던 상콤달콤매콤한 공포체험의 시간이 다가왔다.
몇몇 여학우들은 벌써부터 걱정을 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고,
혈기왕성한 (나같은) 부류의 남학우들은 놀라서 선배님들을 때리지만 않기를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9조였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야만 했다.
화살은 잡을 수 있지만 시간은 잡을 수 없다고 하였던가,
감쪽같이 어느새 나의 차례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9조의 구성원은
나와 현정이 그리고 권민정 선배님, 즉 3인1조로 꽤나 비율적인 구성이었다.
여하튼 목적지에 해당되는 미션을 수행하며 낡고 어두운 건물에 발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아마 나 홀로 갔다면 엄청나게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두명의 여학우가 있기 때문일까. 없던 오기마저도 생기면서
노력하신 선배님들의 모습에 놀랄 수 가 없었다.
여기서 우스운점은 권민정 선배님은 계속 놀라시는 모습을 보이시면서
겁이 많으시구나 하는것을 느꼈지만, 현정이는 조금 독특하였다.
일단 뭔가 놀래키는 것이 나타나면 상당히 놀란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면 "에 저게 머야?"하면서 시니컬하게 웃는다.
솔직히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즐거운(?)시간이 흐르고 9조의 발걸음은 어느새 건물 밖으로 나와있었다.
이제는 자야만 하는 시간. 아쉬움이 꽤나 크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 학과의 남학우들이 편히 잠을 요하겠는가.
젊은이의 이름으로 우리는 공포체험으로 쓰인 건물에 다시금 발을 들였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르게 오싹한 느낌이 등을 타고 흘렀다. 여기서 우리는
용감(?)하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서 한시간여 정도를 보냈다.
이제는 정말로 자야할 시간. 그러나 이번 기관방문 최대의 유행어인 버즈의 노래가
매콤하게 울려퍼지면서 '빠러웨이'를 원망하게 되었다. 정말로 여러 사람이 잠을
곤히 잘 수 없었다. 김형만학우는 여기서 상당히 뜨끔할 것이다.
여하튼 시간은 흐를 수밖에 없었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아침의 공기가 폐부에 스며들고 있었다.
본래 4시30분부터 시작한다던 산보라고 들어서 덜덜 떨고있었으나 다행히도
7시를 넘어서 가벼운 산보를 할 수 있었다. 우리 학과의 사람들은
세마리의 개들과 함께 산을 올랐다. 마치 세마리의 개들은 자신들이 길잡이라도 된것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우리를 안내하였다. 두뇌를 깨워줄 정도의 적은 땀이 볼을 타고 흐르고 상쾌한 바람은 폐부를 스며듬에 주저가 없다. 그리고 저곳의 하늘에는 산이 머물렀고 구름에는 태양이 함께였다. 내 두눈이 사진기의 렌즈였다면 필히 이 광경 앞에서 깜박거림을 수십번 행했을것이다.
간편하게 아침을 해결한 후 우리는 아쉬움과 함께 차량에 승차하였다.
우리를 반갑게 환영해 주시고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는데 주저하지 않으셨던
연구소 식구들을 뒤로하고 철암을 떠났다.
지친 학우들은 버스안에서 모두 잠에 빠져들었고, 휴게소에 도착하는
순간에만 조금씩 잠을 깨웠다. 여기서 나는 김형만 학우를 확실하게 박스아웃
하지 못한것에 아쉬움을 표한다. 사설이 조금 있었지만 이렇게 기관방문록을 마치겠다.
05학번 김홍기 학우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