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 미군기지확장이전반대 범국민대회가 쌀쌀한 날씨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실상 범국민대회의 내용도 잘 모르고 다른 일정도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리 만큼 나와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미군”“자주”“통일”이라는 용어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타나는 문제들을 굳이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시각으로 해석된 것만을 바라봐야 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모든 사람은 현상을 자기만의 언어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왜냐면 그게 편하니까....
우리가 보는 언론도 자기들의 언어로, 자기들만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해석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 운동가들은 우리들의 언어로 해석하는 대안언론의 창출에 대해 고민하고 인터넷을 반가워하지 않았는가.
나도 그래서 평택의 미군기지 싸움을 우리의 언어로 해석하고 싶다.
나타난 현상, 목적은 미군의 기지를 이전해 주기위해 우리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는 것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국가 기구의 폭력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풍동이나 월곡동등의 철거민 투쟁과 같은 것이 아닐까?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힘없는 민중들의 주거권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닐까?
미군기지가 아니어도 국가는 언제가 그 땅이 필요하면 개발을 위해서든 공단을 만들기 위해서든 그곳에 사는 농민들과 빈민들은 내쫓고 그곳을 갖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군기지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싸움을 그들만의 자주통일을 외치는 세력만을 싸움으로 치부하려 든다. 물론 그들의 운동방식과 해석에는 동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때는 주최측에 따라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곤욕스러운 곳도 있다. 난감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싸움을 외면해서는 안될것이다. 평택의 싸움에 미군이라는 용어를 빼고 민중들의 생존권 싸움으로 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아니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까?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싸움에서 가장 큰 주제는 땅이다.
인도가 그렇고 아프리카도 그렇고 브라질의 토지없는 농민운동등도 그렇다
개발과 발전을 위해 가난한 이들의 땅을 빼앗아 그들을 강제로 어딘가로 이주시키거나 거리로 나서게 만든다.
팽성읍 대추리의 싸움도 이렇게 바라보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