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멋진 날에
내가 사는 창원과 거리가 제법 떨어진 경주 산내 골짝에 주말농장을 가꾸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울산 북구에서 살며 초등교사로 근무한다. 친구는 나처럼 교육대학을 나와 야간강좌 국문학과를 나왔다. 친구는 한때 거제 어느 중등으로 잠시 올라왔다가 다시 초등으로 복귀했다. 젊은 날 틈이 나면 아이들과 야영을 떠나거나 동료들과 문화답사를 다니는 등 영혼이 자유롭게 사는 친구다.
친구는 중년 이후 텃밭이 딸린 전원생활을 꿈꾸면서 영덕이나 밀양까지도 촌집을 보러 부지런히 다녔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어 각종 공구도 잘 다룬다. 언젠가 방학이면 강원도 원주까지 ‘집짓기 학교’ 연수에도 다녀온 바 있다. 친구는 부산에서 초중고를 나왔고 현재도 도시생활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시골에 두고 있다. 그러다 몇 해 전 마음을 크게 먹고 주말농장을 마련했다.
친구가 주말농장을 마련한 곳은 경주 산내 골짝이다. 울산 북구에서 경주와 건천을 거쳐 당고개를 넘은 골짜기다. 언양에서는 석남사 못 미쳐 문복산과 단석산 사이 골짜기로 빠져든다. 친구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라 울산까지 매일 드나들기엔 무리다. 전 농장주는 그곳에서 살림을 살면서 눌러 살았다만 친구는 주말이나 방학 때만 들어가 세상사 잊고 땀을 흘리고 나온다.
천 평 가량 되는 밭은 친구 혼자 관리하기엔 힘에 벅찼다. 친구가 처음 농장을 인수했을 때는 현인 토종닭과 실크 오골계를 키웠다. 수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육과 관찰에서 보람을 찾은 관상용 닭 기르기였다. 이태 닭을 치 보더니만 닭에만 매인 수발에 지쳐 훌쩍 접고 말았다. 이후 곰취나 눈개승마와 천궁을 비롯한 약초재배에 심취해 있다. 표고버섯은 전 농장주 때부터 길렀다.
나는 가끔 틈을 내어 친구 농장을 방문하고 있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고 친구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지라 우리 만남은 간첩이 접선하는 식이다. 유선전화로 미리 경주나 언양 버스터미널 앞 어디에서 만나기로 약속된다. 그러면 울산 집을 출발한 친구가 그곳에서 나를 태워 농장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농장에서 무념무상 흙에 뒹굴며 밤 이슥하도록 곡차를 들며 세상을 잊고 나왔다.
우리는 서로 송무백열(松茂栢悅)과 같은 사이다. 내가 한때 젊은 날 목판에 새긴 글씨에 자극 받아 친구는 서각에 몰입하여 이제 전문가 경지에 이르렀다. 친구 농장 살림집 이름을 스스로 지음산방(知音山房)라 붙였다. 이 당호(堂號) 현판을 비롯해 몇몇 한시 명구와 한글 우리시를 새겼다. 이중섭 그림을 복제해내고 여인의 요염한 나신까지 목판에 새긴 작품이 거실 벽면 가득 걸려 있다.
나는 지나 봄날 언 땅이 풀렸을 때 친구 농장을 찾아 영아자와 참나물을 비롯한 약초를 같이 심었다. 매실이 익어갈 때도 일손을 돕고 나왔다. 칠월에는 잘 영근 토마토를 따오기도 했고 팔월에는 친구 농장에서 이틀 밤을 같이 보냈다. 그럴 때마다 텃밭 진입로부터 무성한 풀을 제압하느라 얼굴의 땀방울은 소금기로 버석버석했다. 산중에서 묵언 수행으로 지친 일상을 치유한 시간이었다.
친구 농장 지음산방에 들리는 이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다. 한방약초향이 진한 백숙을 맛 볼 수 있다. 싱싱한 곰취 잎을 따오고 오가피순 장아찌를 내놓는다. 때로는 지음산방 뒤란 숲에서 바로 채취하는 산양삼이나 표고버섯 숙회를 맛보기도 한다. 본가처가 식구들이 1순위로 초대받는다. 난 그다음 차례지 싶다. 오래전 졸업시켜 떠나보낸 제자나 직장 동료들이 찾아간 경우도 있다.
지난여름 친구 농장에 들렸을 때다. 곁에 울산에서 동행한 지인이 둘 더 있었다. 친구가 제안하길 가을 어느 멋진 날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나보고 창원에서 지인을 한 분 더 모셔 산중 음악회를 열자고 했다. 친구는 색소폰 연주가 수준급이고 울산 지인은 기타 줄을 고를 줄 안다고 했다. 누구는 그냥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고 나보고는 자작시 낭송을 맡겼다. 약속된 그날이 오는 주말이다. 14.10.21
첫댓글 멋진 밤이 기대됩니다. 재미있어서 숨도 안쉬고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